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퇴계종택”이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유학자 퇴계 이황의 종가로 장손이 이안도가 처음 지었다. 원래 있던 종택은 없어지고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이황의 13대손 이중후가 옛 종택 규모를 짐작하여 새로 지은 집이다. 동향을 하고 있는 종택은 앞.뒤로 산이 막혀 있지만, 작은 개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총 34칸 규모로 제법 규모가 있는 사대부 저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도산서원 주차장에서 북쪽 언덕길을 따라 1.5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본채와 별채 성격의 정자인 추월한수정, 솟을대문이 있는 대문채,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채는 안채와 사랑채가 하나의 건물로 되어 있는 ‘ㅁ’자형 건물로 앞쪽에 사랑채, 뒷편에 안채가 있으며, 중문은 사당이 있는 옆쪽에 위치하고 있다. 구한말 안동지역에서 유행했던 건물 양식들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퇴계 종손이 집을 지키고 살고 있으며, 항상 손님들을 반갑게 맞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골목을 향해 창문을 둔 문간방이 있는 도시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 종손이 손님들에게 선물로 줄 붓글씨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손님 맞기에 정성을 다하는 전통있고 품위에 넘치는 모습에서 퇴계선생의 정신이 후손들에까지 이어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는 본채는 앞면 6칸, 옆면 5칸의 ‘ㅁ’자형 건물이다. 사랑채는 별도 건물의 형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퇴계종택은 건물 전체가 하나의 건물로 보이게 지었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은 사당과 정자가 있는 오른쪽편에 있고, 앞면 전체가 사랑채로 되어 있다.
사랑채 왼쪽 사랑방 옆에 통로 겸 누마루 용도의 작은 마루를 두고 있다.
사랑채는 본채와 담장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으며, 솟을대문이 있는 별도의 대문채를 두고 있다. 정자는 앞면 5칸의 큰 규모로 큰 건물로 대청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는데, 서원의 강당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사당은 앞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앞쪽에 툇간을 두고 있다
퇴계종택
종택이란 한 가문에서 맏이로 이어 온 가족이 대대로 사용해 온 집을 말한다. 퇴계종택은 조선시대의 학자 퇴계 이황 가문의 종택으로, 이황의 장손인 이안도(1541~1584)가 처음 지었다. 그러나 이안도가 지은 원래의 건물은 1907년에 불에 타 소실되었다. 지금의 가옥은 이황의 13대손 이충호가 1926년부터 3년에 걸쳐 새로 만든 것이다. 퇴계종택은 정침, 정자, 사당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영역은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정침 영역은 정침과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정침은 ‘ㅁ’자형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배치되어 있으며, 행랑채로 통하는 솟을대문에는 이안도 부인 안동 권씨의 절개를 기르는 정려가 걸려 있다. ‘퇴계선생구택’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린 대문을 지나면 정자 영역에 도달한다. 정자 영역에는 조선시대의 문신 권두경이 숙종 41년에 이황을 추모하여 지은 추월한수정이 있다. 원래의 정자는 1896년 일제에 의하여 불탔고, 1926년에 400여 문중의 성금으로 다시 지어졌다. 현재 추월한수정은 수련생을 강의하거나 문중 모임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안내문, 안동시, 2024년)
<출처>
- 안내문, 안동시, 2024년
- “퇴계종택”,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