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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 구한말 서울 종로에 세워졌던 비석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척화비”이다. 서울 종로에 세웠던 것을을 임오군란 이후 철거되어 묻혔다가 1915년 보신각 이전 시 발굴되었다. 척화비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대표하며, 쇄국정책은 후대 사람들이 조선의 근대화가 늦어지고, 멸망하게 된 큰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아편전쟁 이후 피폐된 중국 청나라의 정세를 듣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당연히 취할수 있는 여러 정책 중 하나라고 보여지며 이를 폄훼하는 것은 바림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척화비, 조선 1871년(고종), 석>

서양 세력의 침입을 경계하는 비석
19세기 후반 조선은 농민들의 봉기와 제국주의 열강의 문호 개방 요구에 직면했다. 고종을 대신하여 실권을 장악한 흥선대원군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후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외세의 침입에 대항할 것을 선언했다. 이 척화비는 서울 종로에 세웟던 것으로 임오군란 이후 철거되어 묻혔다가 1915년 보신각 이전 시 발굴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2. 위키백과,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