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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보물),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을 모신 사당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보물)이다. 고려시대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을 주향으로 안축, 안보, 주세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건물 주위로 담장을 둘렀으며, 앞과 옆에 출입문을 두고 있는데 후대 서원의 사당과는 달리 작은 협문을 사용하고 있다. 최초 서원에 세워진 사당으로 ‘사(祠’자를 쓰고 있는 다른 사당과는 달리 ‘묘(廟)’자를 사용하고 있어 격이 높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보물)>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앞쪽 제사 준비를 하는 퇴간을 두고 있다. 

<사당 건물>
<사당 앞에는 ‘문성공묘’라 적힌 현판>

삼문형식을 하고 있는 일반적인 서원과는 달리 작은 외단문을 사용하고 있다. 옆쪽에도 작은 협문을 두고 있다.

<앞에서 본 모습>
<작은 협문>

동학서묘의 공간배치에 따라 서쪽에 배치되어 있다. 향교나 후대 서원과는 달리 마당 한쪽에 담장으로 둘러진 작은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강학당 마루에서 보이는 모습>

영주 소수서원(紹修書院, 사적)은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을 모시기 위해 풍기군수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이란 이름으로 세웠던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이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재직하면서 국왕으로부터 ‘소수서원’이란 현판을 하사받은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면서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서원은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중국 당나라 때 집현전서원 등의 설치에서 유래하였다.

<영주 소수서원(사적)>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
문성굥묘는 중종 37년(1542)에 주세붕이 안향을 기리기 위해 안향의 고향인 순흥에 세운 사당으로 소수서원이 세워지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당에는 ‘사祠’자를 사용하고 왕이나 나라의 큰 인물을 모신 곳에만 ‘묘廟’호를 쓰게 하였다. 이를 보면 문성공묘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주자학을 도입한 문성공 안향을 기리고자 격을 높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기와집이다. 안향을 모신 이후 중종 39년(1544)에 안축과 안보, 인조 11년(1633)에 주세붕을 추가로 모셨으며, 매년 3월과 9월 초정일에 제향을 올리기고 있다. 주세붕과 이황이 직접 제향 의식 절차를 기록한 <홀기笏記>도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제향을 올릴 때 주세붕이 직접 지은 <도공곡>이라는 경기체가를 부르는데, 이는 안향이 중국 공자의 도道를 우리나로 옮긴 것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서원에서 도동곡을 부르는 곳은 소수서원이 유일하며, 이는 소수서원이 우리나라 도학의 연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안내문, 영주시, 2024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 2024년
  2. “보물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