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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국립박물관, 헤이세이관] 고훈시대, 전방후원분과 하니와(埴輪)

전방후원분(前方後円墳)은 고대 일본을 대표하는 무덤 형식이다. 원형의 둔덕에 사각형의 돌출부과 붙어 있어 주위의 연못과 함께 열쇠구멍 모양을 하고 있다. 제사 공간으로 보이는 앞쪽에는 거대한 하니와(埴輪)가 일렬로 세워져 한국이나 중국의 석물과 비슷한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방후원분은 3세기 후반에 처음 세워져 7세기 초반까지 조성되었다. 전방후원분은 일본 전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한반도 남부 전남지역에서도 일부 발견되고 있다. 지역에서는 철제 무기 등이 껴묻거리로 함께 묻어진 중소규모의 고분이 늘어났다. 이는 왕권의 영향이 중소 호족으로 확대된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띠 동향식 신과 짐승무늬 거울(畵文帶同向式神獸鏡), 고훈시대 5세기>

일본 각지에서 5세기 후반에 축조된 고분에서는 같은 형태를 한 거울이 대량으로 출토됩니다. 왜나라 5왕이 중국 남부로 보낸 사신이 일본으로 가지고 돌아온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기온 오츠카야먀(祇園大塚山) 고붕은 기후현 기사라즈시에 있는 고분으로 전방후원분 형태를 하고 있다. 원통형 하니와를 비롯하여 스에키 구벙단제, 금동제 갑옷 등의 출토되었다. 5세기 중엽에 축조된 것으로 지바현을 대표하는 고분으로 손꼽힌다.

<기온 오츠카야마(祇園大塚山) 고분 출토품, 고훈시대, 5세기, 지바현, 2 은제 드리개 달린 귀걸이>
<3 금동제 챙 달린 투구, 고훈시대 5세기>
<4 금동제 가슴가리개, 고훈시대 5세기><5 금동제 비늘갑옷, 고훈시대 5세기>
<6 스에키 구멍단지, 고훈시대 5세기>
<혁철 단갑 (革綴短甲),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
<혁철단갑, 고훈시대 4세기, 야마나시현>
<충각 투구, 고훈시대 5세기, 도쿠시마시>
<병류 단갑 (鋲留短甲), 고훈시대 5세기, 히로시마현>

일본 고분에서는 금속제 무기나 도구 등을 모방하여 석재, 토제로 만든 유물들이 발견된다. 제사나 껴묻거리를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에서도 발견되는 형태이다

<1 돌기무늬 거울,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2 돌 도끼,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3 돌 거울,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4 돌 낫,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5 돌 손칼,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6 돌 곱은옥,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
<돌 나막신, 중요문화재, 고훈시대 5세기, 도쿄도>
<돌 도수 시설 모양 제사 도구 (石製槽), 중요문화재, 고훈시대 5세기, 도쿄도><돌 도수 시설 모양 제사 도구 (石製槽), 중요문화재, 고훈시대 5세기, 도쿄도>

물을 맑게 하기 위한 도시 시설의 중심부를 본떠 돌로 만든 것입니다. 물과 관련된 제사를 재현하기 위한 것으로, 이 외에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유물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손잡이 쇠도끼, 고훈시대 4세기, 야마나시현>

나무 대신 철로 손잡이를 만든 도끼입니다. 제례에 사용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병류 단갑 (鋲留短甲), 고훈시대 5세기, 후쿠오카현>
<1 손잡이 쇠도끼,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

손잡이 나무 대신 쇠로 된 점이 독특한 도끼입니다. 무인들이 애호하여 소유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2< 쇠 괭이, 고훈시대 5~6세기, 고치현><3 쇠 낫, 고훈시대 5세기, 도쿠시마현>
<4 모루, 고훈시대 5~6세기, 가가와현><5 쇠 망치, 고훈시대 5세기, 오카야마현>
<6 쇠 가위, 고훈시대 5세기, 오카야마현><7 쇠끌, 고훈시대 5세기, 야마나시현>
<철판, 고훈시대 5세기>

가공하기 전의 철판입니다. 한반도산으로, 일본 열도 내에서 가장 큰 크기의 철판에 속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돌 합자, 고훈시대 4세기, 교토부>?

합자란 뚜껑이 달린 용기를 뜻합니다. 이 합나는 녹색 응회암을 가공해 만들었습니다. 돌 합자는 나무로 만든 용기에서 기원했다고 여겨지며 부장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금동 장식 챙 달린 투구, 고훈시대 5세기, 후쿠이현>

반달 모양의 챙이 달린 철로 만든 투구입니다. 철판을 징으로 이어 붙여 형태를 만들고 정수리 장식에는 금을 입혔습니다. 한반도에서 전해진 최신 기술이 형태와 장식에 사용된 뛰어난 작품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니이자와센즈카(新澤千塚) 고분은 나라현에 있는 고분군이다. 동서 2km, 남북 2km 규모의 구릉 지역에 600기 이상의 고분들이 모여 있다. 5세기 중반부터 6세기 말까지 활발히 만들어졌다. 무덤주인이나 씨족은 확인되지 한고 있다. 126호분에서 금.은.유리.보석 등을 이용한 대량의 장신구들이 발견되었었으며 숯을 사용하는 다리미가 일본에서 처음이다. 출토된 유리제품은 로마나 서아시아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리 접시, 중요문화재, 고훈시대 5세기, 나라현>
<유리 완, 중요문화재, 고훈시대 5세기, 나라현>
<니이자와센즈카 126호 고분 출토품, 고훈시대 5세기, 나라현, 1 금 사각판>
<2 드리개 달린 귀걸이>
<3 활석 곱은옥><4 경옥 곱은옥>
<5 유리 작은 구슬><6 유리 둥근 구슬>
<7 금 팔찌><8 은 팔찌><9 금 나선형 반지><10 금 반지><11 금동 허리띠 꾸미개>
<12 금 보요 (작은 원판 모양 떨림장식)>

니이자와센즈카(新澤千塚) 126호 고분, 금은 치레걸이와 도래 문화
니이자와센즈카 126호 고분은 나라 분지 남부에 위치하는 니이자와센즈카 구문군(약600기)에 있는 장방형분(장변 약25m)입니다. 국제성이 풍부하고 다채로운 껴묻거리로 알려져 있으며 출토품은 금.은.금동제품, 유리.청동제품이나 돌구슬, 무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금.은제 관(冠)꾸미개.귀걸이.팔찌.반지.달개, 유리 공기.접시나 잠자리 구슬.금박 구슬 등은 한반도의 신라 왕릉의 출토품과 동등한 수준의 제품들입니다. 정교하고 치밀한 용무늬가 있는 금동제 허리띠 꾸미개는 당시 중국 랴오닝 지방에서 한반도 남부에 걸쳐 많이 만들어진 전형적 금속제 치레걸이입니다. 서아시아에 기원을 두는 유리 제품은 중앙아시아에서 중국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현대의 다리미에 해당하는 숯다리미는 비단 제품이 이미 존재했음을 추정하게 하며, 또한 유해 주변에서 발견된 사공이 있는 많은 금제 장식품은 피상자의 옷에 꿰매 붙여져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편, 거울.돌구슬과 무기는 그 형태나 재질로 미루어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들 출토품은 한반도에서 전래된 최신 문화가 전파되었던 당시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고, 또한 당시의 일본열도 사람들의 대륙에 대한 동경심을 말해주는 중요한 자료하고 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전방후원분 분포>

고훈시대 5세기, 거대 고분의 시대 – 철기 생산 확대
4세기 말경이 되면, 오사카 평야와 나라 분지를 중심으로 각지에 거대한 전방후원분이 출현했습니다. 고분의 흙무지에는 집모양 하니와(埴輪), 기물 하니와를 중심으로 장대한 하니와 열이 세워져 장송의례를 통해 막강한 왕권이 과시되었습니다. 한편, 철제 무기와 무구가 넣어진 중소규모의 고분이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지방호족과 왕권과의 관계가 보다 군사적 연계로 변화된 것과 중소 호족들까지 왕권의 영향이 확대된 것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또한 철정鐵鋌으로 불리는 쇠의 원료가 대량 매납된 사례를 통해 철기 생산이 비약적으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4세기 중엽에 남부의 철자원을 배경으로 백제.신라와 가야의 왕권이 성장했고, 철이나 귀금속 제품의 생산이 증대되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남부에 송나라가 일어나고 북부는 북위가 통일을 이룩해 남북조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중국의 문헌에는 ‘왜의 5왕’이 자주 남조에 조공하면서 일본열도와 한반도에서 군사적 칭호를 요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전래된 스에키의 생산이나 철제 무기.무구의 대량생산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질서에 야마토의 왕권이 진입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전시실 입구에는 ‘하니와, 잘 갖추어 입은 여자埴輪 正装女性像'(중요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다. 여성의 전신상은 보기 드물며, 구슬이나 귀고리를 꾸미고 장식된 옷을 입고 있습니다.

<하니와, 잘 갖추어 입은 여자(埴輪 正装女性像), 중요문화재, 고분시대 6세기, 군마현 이세사키시 출토>

여자 하니와의 대부분은 반신상이지만, 이 작품처럼 전신을 표현한 하니와는 보기 드뭅니다. 이 여성은 무늬 없는 통소매 옷 위에 물결무늬의 소매없는 옷을 겹쳐 입고 있습니다. 세로줄무늬의 ‘모裳’라고 불리는 치마를 입고 있으며, 발은 가려져 있습니다. 야요이 시대의 여성들은 원피스 형태의 관두의를 입고 있으며, 투피스 모양으로 상하 나뉘어진 옷은 고훈 시대가 된 이후에 중국대륙이나 한반도에서 전래된 것입니다. 분동형 머리는 여성의 특유한 시마다마게(島田髷)입니다. 올린 머리를 세로로 긴 빗으로 고정하고 있고, 이마에는 머리띠를 하고 있습니다. 양쪽 귀에는 큰 귀고리와 작은 구슬을 달고 있습니다. 목과 손목에 많은 구슬을 차는 등 장식성이 풍부합니다. 왼쪽 허리에는 도자로 불리는 작은 칼처럼 보이는 뭔가를 차고 있습니다. 이 여성은 화려하게 차려입고 있어, 신분이 높은 사람이며 장렬이나 모가리(殯, 고귀한 사람의 시신을 임시로 관에 안치하는 의례) 등 특별한 의식에 참가한 여성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하니와(埴輪)는 일본 고훈시대 무덤에서 볼 수 있는 일본 특유의 기물이다. 흙으로 만들어진 토제품으로 제사용으로 만들어졌던 토기를 응용하여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방후군분 무덤의 제사를 위한 공간, 봉분 정상부, 봉분 경사면 등에 일렬로 늘어 놓았다. 중국 진.한 대의 무덤의 토용이나 당나라 도용과 비슷한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작은 토우가 이런 역할을 했으며, 통일신라 이후 무덤 앞에 세워졌던 석물과 형태나 기능이 비슷해 보인다. 원통형과 인물이나 동물 등을 본떠서 만든 형상형이 있다.

<하니와(埴輪)>
<갑옷모양 하니와, 복제품, 고훈시대 5세기, 미야자키현>
<원통형 하니와, 고훈시대 4세기, 시마네현>
<원통형 하니와, 고훈시대 5~6세기, 시즈오카현>
<굽다리접시 모양 하니와,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
<의자 모양 하니와,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
<뒤에서 본 모습>

수장이나 무녀 등 특별한 사람이 앉는 의자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맞배지붕 창고’ 하니와,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
<맞배집 하니와,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
<맞배집 하니와,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
<‘우진각지붕 창고’ 하니와,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
<담장 하니와,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

수장의 집에 접해 있으며 안에서 제사를 지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맞배지붕 창고’ 하니와, 고훈시대 5세기, 군마현>
<하니와 일산, 고훈시대 5~6세기, 나라현>
<원통형 하니와, 고훈시대 5~6세기, 나라현><원통형 하니와, 고훈시대 5~6세기, 이시가와현>
<목제 일산, 고훈시대 5세기, 오사카부>
<일산 모양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전 군마현><하니와 화살집, 고훈시대 6세기, 군마현>
<나팔꽃모양 원통형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군마현><원통형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사이타마현><말모양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사이타마현><원통형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사이타마현><원통형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군마현><원통형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군마현>
<‘모자를 쓴 남자’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도치기현><닭 모양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도치기현><‘책상다리를 한 남자’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도치기현>

둥근 모자를 쓰고 허리에 검을 찬 남자의 모습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거문고를 타는 남자’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이바라키현><‘상투를 튼 남자’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지바현>
<‘웃는 남자’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군마현><‘쓰개를 쓴 남자, 고훈시대 6세기, 이바라키현>
<‘양손을 내민 여자’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군마현><‘한쪽 손을 든 남자’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군마현>
<‘방패를 든 사람’ 하니와, 고훈시대 6세기, 군마현>

방패를 들고 있는 제법 큰 크기의 인물 하니와입니다. 사악한 존재가 고분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하니와의 전개
하니와는 고분 위나 주변에 세워진 점토를 구워 만들어진 것입니다. 야요이 시대 말경(3세기경)에 분구묘에서 사용된 특수기대형(特殊器臺形) 토기 등이 변화되고 3세기 후반의 전방후원분 성립과 통시에 원형하니화, 항아리형 하니와가 탄생되었습니다. 하니와는 당초 고분의 꼭대기나 사다리꼴 부분인 전방부에 배열되었습니다. 곧 집이나 일산, 갑옷, 방패, 화살을 넣는 전통, 닭, 배 등을 나타내는 형상 하니와가 추가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4세기 중엽에 가장 먼저 집모양 하니와는 다른 형상 하니와와는 달리 중앙 부분에 놓여 항상 형상 하니와의 중심적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4세기 말경에는 전방후원부의 잘록한 곳에 조출부로 불리는 언덕을 만들어 거기에 나란히 놓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5세기 중엽에는 무당, 말 등에 이어 새로 무사나 물새, 멧돼지, 개 등 인물, 동물 모양 하니와가 등장했고, 고분 주변 등에 배열되고 스로티성을 갖는 무리를 구성하는 양식이 성립되었습니다. 이렇게 원통 하니와를 기본을 다양한 모양의 형상 하니와가 시대와 더불어 점차 추가된 것이 특징입니다. 이들 하니와는 장송의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0

석인석마(세키진세키바)는 규수 북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고분에서 볼 수 있는 석상이다. 종류는 인물, 동물, 기물 등의 있다. 하니와를 돌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석인, 중요문화재, 고훈시대 6세기, 후쿠오카현>

<출처>

  1.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2. Wikipedia,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