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시대(古墳時代)는 일본역사에 야요이시대에서 아스카시대까지 3세기 중반부터 7세기 중반까지 약 400년간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원삼국시대 이후 삼국시대와 거의 비슷한 시기이다. 이 시기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호족의 연합정권이 야마토정권이 일본을 통일하였다. 이 시기에는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고대한 무덤(古墳)이 축조되었으며 화려한 껴묻거리를 무덤에 같이 묻었다. 천황의 권위를 상징하는 삼종신기인 검, 청동거울, 곡옥이 지배층을 상징하는 보물로 여겨졌으며 중요한 유물로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은상감으로 75자의 명문과 새, 물고기, 말 모양 무늬를 표현한 칼이다. 한반도나 일본열도에서는 중국 후한 때 성립한 명문양식을 답습하면서 각 지역 언어표현을 사용하여 새로운 명문양식을 양식을 만들어 내었다. 칼에 새겨진 글자의 내용은 역사적 기술과 고대 일본어에 의한 인명표현, 5세기의 세계관 등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비석에 중요한 내용을 글로 새긴 중국과 한반도와는 달리 일본은 보물로 여겼던 칼에 중요한 내용을 글로 새겼다.
은상감명 큰 칼, 고대 동아시아 명문銘文 칼의 세;계
75문자나 되는 장대한 명문을 갖는 큰 칼로, 5세기의 정치, 사회나 세계관을 전해주는 문자 자료로서 일본 고대사에 있어서 제1급의 사료입니다. 고대 동아시아의 유명有銘 칼에는 중국.한반도.일본열도에서 만들어진 것이 있습니다. 중구.후한 시대 이후의 청동거울이나 쇠칼의 명문은 기본적으로 ‘기년紀年’ ‘길상구吉祥句’.상투구常套句’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후 3~5세기 경에는 제재도액을 기원하는 사신四神사상을 핵심으로 세계관을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5~7세기에 일본열도서 제작된 유명 칼은 일부 일본어의 발음을 표기하는 인명의 서식이나 제작지의 역사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등 독자성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치천하治天下’의 서식은 독자적 세계관으로 주목할만 합니다. 한편 대룍에서는 명문을 새기는 대상이 주로 석비와 같은 기념물이었는데 일본열도에서는 들고 다닐 수 있는 쇠 칼이 대상이 되었던 것도 큰 특징입니다. 일본열도에서는 쇠 칼이 야요이시대 이후 소중히 여겨져, 동아시아 중에서도 특이하게 발전되었다는 사실과 고훈시대에 유명 칼이 성행되었다는 사실은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고훈시대 토기는 하지키(土師器)라고 불리며, 야요이 토기에 비해 무늬 등의 지역성이 사라지고 전국적으로 획일화된 종류가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만들어진 것은 병이나 항아리같은 저장용구이지만 9세기 중반까지 접시, 굽다리접시, 완 등이 만들어졌다. 일상적인 용도로 만들어진 것 외에도 제사나 껴묻거리로도 많이 만들어져 고분같은 유적에서도 출토된다.
겹아가리 단지는 초기의 초대형 전방후원분에서 제사를 위해 사용되었으며 실용적인 토기에서 점차 하니와로 변합니다. 소형 고분에서도 자주 사용된 점을 보아 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S자형’이라는 이름은 입둘레의 단면이 S자 모양인데서 유래했습니다. 주로 동일본 지역에서 사용된 얇고 가벼운 단지로 다리가 달려 있어 불 위에 띄워서 음식을 조리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신수경(神獸鏡)은 중국신화에 나오는 신과 동물로 장식한 고대 청동거울이다. 동한 중기에 처음 등장하여 남북조시대까지 이어졌다. 한반도와 일본에서도 만들어졌다. 삼국지 위지(魏志)에 일본과의 조공관계가 기록되어 있으며 청동거울을 하사한 내용도 있다. 일본 고분시대 고분에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삼각연신수경(三角緣神獸鏡), 고훈시대 3~4세기
고훈시대(古墳時代), 3 ~ 4세기, 정치적 사회의 성숙화, 보물의 창출
야요이시대 말경(3세기 전반)에는 간토 지방에서 규슈 지방 각지에 걸쳐 지역마다 독자적 형태를 지닌 대규모 분구묘가 출현했습니다. 마을에서 나라가 탄생되고, 나아가 그것을 통합하는 세력이 탄생되어 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239년, 240년에는 야마타이코쿠의 여왕 히미코가 중국의 위魏에 사자를 보냈다는 기록이 중국의 역사서 <위지왜인전>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3세기 후반, 나라 분지를 중심으로 하는 기나이(畿內) 지방에 과거의 분구묘와는 완전히 다른 규모와 구조를 갖춘 전방후원분이 등장했습니다. 고분에는 거울이나 치레걸이(장신구) 등 죽은이의 권위를 과시하는 보물들이 함께 부장되었습니다. 이는 정치사회가 성숙해져 막강한 힘을 갖는 야마토(倭) 왕권이 탄생되었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 이후 고분이 한창 만들어진 7세기까지를 고훈시대라고 부릅니다. 한반도에서는 마한.변한.진한의 삼한(기원전 108년 ~ 4세기), 중국에서는 위.초.촉의 삼국시대(221~280년)가 서진의 시대로 바뀌어가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의 토기는 하지키(土師器)라고 불리며, 야요이 토기에 비해 무늬 등의 지역성이 사라지고 전국적으로 획일화된 종류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코너에서는 하지키와 고분에 부장된 중국세 신수경神獸鏡을 통해 고훈시대의 시작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景初三年(239년)’ 글자가 새겨져 있다.
‘正治元年(240년)’ 글자가 새겨져 있다.
‘赤烏元年(238년)’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기년명경紀年銘鏡과 전세경傳世鏡
전시 중인 기년명경은 중국 대륙의 위나 오의 연호를 가지고 있고 일본열도의 고분에서 출토된 몇 안되는 귀중한 거울입니다. 전세경은 제작으로부터 매납까지 시간차가 있는 거울로, 고분문화 성립과 관련된 제1급의 자료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일본 고분에서는 금속제 무기나 도구 등을 모방하여 석재, 토제로 만든 유물들이 발견된다. 제사나 껴묻거리를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에서도 발견되는 형태이다
이처럼 여러 개의 독립된 다리가 달린 용기는 나무로 만든 용기를 돌로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외에도 목제품을 돌로 모방하여 만든 부중품에는 합자나 굽다리 접시 등이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장식성이 뛰어나고 사용한 흔적이 없다는 점에서 부장하기 위한 모조품으로 추정됩니다. 진사라는 광물을 으깨 만든 주홍색 안료를 매장 시설에 뿌리거나 불로불사를 바라는 선약을 만들 때 사용하였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고분에서 발견된 석제 모조품
4세기 무렵부터 활석과 같은 무른 재질의 석재를 사용해 다양한 기물을 실용적 목적이 아니라 고분에 부장하기 위해 작게 만든 모조품이 나타납니다. 이 전시에서는 석제 모조품을 통해 고훈시대의 도구와 생활을 재현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가이초시즈카 고분(甲斐銚子塚古墳)은 야마나시현에 있는 전방후원분 형태의 고분이다. 야마토정권 초기인 4세기에 조성된 고분으로 동일본 최대급이다. 발굴조사 결과 석실이 있었으며 바닥에 대나무형 목관이 흔적이 남아 이다. 부장품으로는 청동거울 5점을 비롯하여 수정 곱은옥, 도가니, 쇠도끼를 비롯하여 고훈시대 제사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돌로 모방하여 만든 기물 등이 있다.
고훈시대 전기의 고후 분지 – 가이초시즈카 고분의 시대
4세기 후반에 축조된 가이초시스카 고분은 전체 길이가 169m에 달해 고훈시대 전기로서는 동일본 지역 최대급의 전방후원분(앞쪽은 사각형, 뒤쪽은 원형을 이루는 무덤)입니다. 이 대규모 고분을 축조한 배경 중 하나로서 야마나시현 지역에서 채굴되는 수정을 바탕으로 이 지역 수장의 권력과 부가 축적되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수정 곱은옥, 고훈시대 4세기, 야마나시현
야마나시현 지역의 수정은 고훈시대 전기의 동일본 지역에서 폭넓게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고후 분지이 권력자가 수정의 유통에 관여하며 권력의 기반을 다진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돌 절굿공이, 고훈시대 4세기, 야마나시현
돌 접시와 함께 사용된 절굿공이 모양이 석제품으로, 벽옥으로 만들었으나 사용한 흔적이 없습니다. 불로장생의 선약을 조합하기 위한 절굿공이를 상징적으로 부장한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고훈시대의 제사
고훈시대의 제사는 중요한 교통로나 일상생활로부터 떨어져 있는 언덕 위, 작은 섬 등 신이 머무는 곳이라고 여겨졌던 장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행사의 도구는 흙이나 돌, 철로 만든 것 등 종류가 다양하며 동일본 지역에서는 활석으로 반든 거울과 검, 구슬이 보급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활석으로 만들어진 돌 베개입니다. 측면에 거칠게 깎은 흔적이 남아있는 한편 윗면은 아주 정성스럽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위아래로 뚫려 있는 5개의 작은 구멍은 릿카(장식)을 꽂기 위한 것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릿카는 곱은옥을 여러 개 합친 듯한 형태이 돌 베개 장식으로 막대를 따로 꽂도록 만들어진 것과 일체형이 있습니다. 조소 지역에서는 릿카를 꽂은 돌 베개를 부장하는 것이 성행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조소지역의 고분 문화 – 돌 베개와 릿카 (돌 베개 장식)
현재의 이바라키현과 지하현에 해당하는 조소 지역에서는 고훈시대 중기에 ‘릿카’라고 불리는 장식을 꽂은 돌 베개를 부장하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여기에서는 활석으로 만든 돌 베개와 릿카를 통해 조소 지역의 독자적인 매장 의례를 소개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야요이시대는 짐승의 뼈나 뿔을 사용한 낚싯바늘이 주를 이루며 철의 사용은 제한적이었습니다. 고훈시대에 이르러서는 큰 규격의 철제 낚싯바늘이 출현하여 작살과 함께 고분에 부장하게 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주꾸미는 동아시아의 얕은 바다에 서식하는 작은 문어입니다. 주꾸미 단지는 폐쇄된 곳을 좋아하는 문어의 습성을 이용해 만든 문어잡이용 도구로서 야요이시대에 처음 만들어져 지금까지 전해집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그물추는 그물을 원하는 범위에 가라앉게 하기 위한 그물추입니다. 어획 방법에 따라 여러 무게와 형태의 그물추를 사용하였습니다. 고훈시대 전기의 그물추는 야요이시대 후기의 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고훈시대의 낚시도구
고훈시대 전기의 어로는 야요이시대의 방식을 계승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서는 흙으로 만든 그물 추와 주꾸미 단지, 고분에 부장되었던 낚시바늘을 전시하여 고훈시대 전기의 어로 문화를 소개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구슬 생산 전개
고훈시대의 구슬은 종류와 재료가 다양하며 시기별로 복잡하게 변천되고 있습니다. 걸치는 사람의 성격이나 제사의 장면 마다 구슬은 다양하게 조합되었습니다. 고훈시대 전반에는 호쿠리쿠 지방이나 산인 지방이 제작의 중심지였으며 후반에는 긴키 지방에서도 대량으로 생산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4세기 고분에서는 구멍을 뚫어 무언가에 묶은 듯한 조개 장신구와 이를 본뜬 돌 장식이 출토되곤 합니다. 자세한 건 알려지지 않으나 방패 등의 장식으로 사용되었을 거라 여겨집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큰 구슬에 다른 색의 작은 구슬을 상감한 유리구슬로 잠자리의 겹눈을 연상시켜 잠자리 구슬로도 불립니다. 이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유래되어 동남아시아에서도 비슷한 예가 발견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고분 문화의 지역성
고분에서는 야마토 정권에서 유래된 출토품 외에도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특징적인 부장품이 출토되기도 합니다. 이와사키야마 4호 무덤과 1호 무덤의 조개 장신구와 모리도야마 고분의 유리구슬에 주목하며 다른 유물과 함께 소개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4세기기 되면서 일본열도에서 독자적인 무늬를 표현한 대평거울이 만들어졌다. 또한 야요이시대 보물로 여겨졌던 조개팔찌를 본뜬 구와카타이시(鍬形石)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신구들이 만들어졌다. 장신구들은 지방호족들의 협조를 통해 만들어졌다. 이들 장신구들은 나라(奈良) 주변 지역에서 출토되는데 주로 서쪽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야마토정권과 호족과의 유대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속이 빈 둥근 통 속에 청동 또는 철로 된 작은 구슬이 들어 있어 흔들면 소리가 난다. 장대에 꽂아 사용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 다양한 지역의 여러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다.
4세기 일본에서 만들어진 독자적인 형태의 칼 고리자루(環頭)이다. 당시 일본에 있었던 움집의 형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움집 모양 장식이 달린 고리자루 큰 칼입니다. 이 움집은 고귀한 인물이 살았던 건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바람개비 모양 동기는 일본 고분시대의 문물로 방패나 화살통에 붙인 청동 꾸미개로 추정됩니다. 일본 기나이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가나가와현 오즈카 고분, 서로는 후쿠오카현 마루쿠야마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습니다.
야마토 왕권의 성립, 보물 생산
4세기가 되면서 중국제 거울을 모방하거나 일본열도에서 독자적 무늬를 표현한 정교한 대형 거울이 만들어진 사실은 왜인倭人으로 하여금 거울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야요이시대에 소중히 여겨졌던 남방지역산의 조개 팔찌를 본뜬 구와카타이시(鍬形石)를 비롯, 다양한 장식품을 본뜬 벽옥, 청동, 돌제품 등도 만들어졌습니다. 벽옥제품들은 지방의 호족들의 협조를 얻어 생산된 것입니다. 이들 보물은 기나이(畿內)지방을 중심으로 분포되고 있으며, 기나이의 고분에 많이 보이는 구덩식돌방이나 구와카타이시는 도카이(東海).주부(中部) 지방보다 서쪽에만 분포되고 있습니다. 각지의 호족들이 야마토 왕권과 정치적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증거로서 스스로의 위신을 표현하기 위해 공유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국에서는 서진이 망하고 북방민족에 의한 여러 왕조들이 흥망성쇠하는 오호십육국시대가 시작되고, 한반도에서는 313년에 북부의 고구려가 낙랑.대방군을 합병시켰고, 남부의 백제.신라도 주변 지역을 통합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야마토 왕권의 성립과 확대도 이러한 동아시아의 움직임과 깊이 연관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출처>
-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 Wikipedia,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