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스카시대(飛鳥時代, 592~710년)는 고훈시대를 지나 나라시대까지 118년 간을 말한다. 한반도에서 불교에 전래되어 일본 최초의 불교 문화가 생겨났다. 천황의 불교에 귀의하고 쇼오토쿠 태자가 친불파의 편에서 서서 배불파 씨족을 멸망시킨 후에 친불파가 권력을 잡았다. 588년 최초의 불교 사찰인 아스카데라(飛鳥寺)가 세워졌다. 아스카 시대 불교 문화는 주로 사찰 건축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당시에 세워졌던 많은 사찰에서 사용되었던 건축부재들이 출토되고 있다.
나라시대는 헤이조쿄(平城京, 나라시)로 천도한 710년부터 헤이안코(平安京, 교토부)로 천도한 794년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에는 중당 당나라 율령을 받아들여 율령국가, 중앙집권국가, 천황중심의 전제국가를 지향하던 시기이다. 전국에 고쿠분지(国分寺)를 세웠으며 불교문화가 크게 융성했다.
후미 노 네마로는 <일본서기>와 <속일본기>에 등장하며 진신의 난에서 공적을 인정받아 높은 관직에 오른 인물입니다. 무덤의 출토품에서 생전에 누렸던 영달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1774년에 석관에 묻힌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뚜껑에 16줄에 108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호키배 가문은 이나바국(현재의 돗토리현)의 호족으로 대대로 우베 신사의 제사를 담당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회유 뼈항아리는 상류 계층의 것으로 여겨집니다. 긴키 지방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나 그 이상으로 지바현과 이바라키현에서 출토됩니다. 이 작품은 아이치현의 시나게 가마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아스카시대와 나라시대 기와는 주로 궁궐이나 사찰 건축에 사용되었다. 백제를 통해 중국 남조의 기와가 전래된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 기와와 형태나 무늬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588년 일본에 기와 제작법이 전해졌으나, 사원 등 일부 건물에 한해 사용되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고쿠분지(国分寺)는 일본 각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을 말한다. 쇼무 천황이 각 지역에 국영 사랑에 해당하는 고쿠분지를 세웠으며 나라시에 있는 도다이지가 전국 고쿠분디를 대표했다. 가마쿠라 막부시대 이후 쇠락했다. 특정 종파에 속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절터만 남아 있는 곳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고쿠분지와 고쿠분지의 기와 741년 천황의 명령으로 전국에 관영 사원인 ‘고쿠분지國分寺’와 ‘고쿠부니지國分尼寺’가 건립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고대 화폐 일본에서 최초로 본격적으로 유통된 회폐는 와도원년(708)에 만들어진 와도카이친이었다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나라시대에서 헤이안시대에 걸쳐 12종류의 화폐가 만들어졌습니다만, 중국에서 수입된 동전이 보급되면서 10세기 후반에는 만들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지하 1.5m 밑에 판 구멍에 화장한 유골을 담은 주칠한 목궤가 있었는데, 그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고대의 묘지 고인의 성명, 몰년월일, 사망 시의 연령, 생전의 지위나 관직, 업적 등을 적고 무덤에 넣은 것을 묘지라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전반에 걸쳐 화장이 보급되면서 기나이 지방의 귀족층을 중심으로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메이지시대에 석관에서 출토된 뼈항아리입니다. 겉면의 삼채유는 풍화로 인해 벗겨졌습니다. 나라삼채 단지로서는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완성도도 뛰어나 높은 신분의 인물을 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중국의 당삼채를 모방한 나라삼채는 일본에서 최초로 유약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도기입니다. 녹색, 백색, 갈색 유약의 선명한 색채는 귀족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고대의 삼채 7세기 이후 발전한 당삼채는 머지않아 일본에 전해져 8세기에는 당삼채를 모방한 나라삼채가 생산되었습니다. 당삼채의 대부분이 무덤에 부장된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국가와 귀족의 제사나 불사에 실제로 사용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아스카시대에는 목조불상이나 금동불상이 주로 조성되었다. 대표적인 불상으로는 ‘아스카데라 석가여래상(아스카대불)’, ‘호류지 금당 석가삼존삼’, ‘호류지 백제관음상’ 등이 있다. 대체로 서역을 통해 전해진 중국 북조 불상양식을 따르고 있다. 삼국시대 백제와 마찬가지로 서역에서 주로 조성되었던 전불塼佛도 많이 볼 수 있다.
고대 사원 내부 벽에는 타일 형태의 불상인 전루을 이어 붙여 장식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다량의 전불 파편과 호류지 절의 다마무시 노즈시(감실) 내부의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일본에서 전불은 주로 7세구 후반에 만들어졌으며 출토지인 기데라 절은 670년에는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같은 시기의 금동불이나 건칠상은 수나라의 것을 모방했으나 이 작품은 당시대의 양식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전불은 사원의 벽을 장식하기 위해 틀을 사용해 규격화된 형태로 대량 생산되었습니다. 아스카시대를 대표하는 야마다데라 절에서는 틀도 다량으로 출토되어 사원에서 전불을 생산했음을 알려줍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전과 전불 전불은 점토판에 부처나 보살상 등을 부조 형태로 표현한 것입니다. 나무로 된 거푸집에 점토를 누른 뒤 건조하여 굽습니다. 그 후, 물감이나 옻칠로 색을 입히거나 금박(금물감) 등으로 장식합니다. 사원의 벽면 장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율령국가의 형성, 아스카-나라시대 701년 당의 법률을 본뜬 다이호大寶 율령이 제정되면서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율령국가가 성립되고, 710년에는 나라현에 헤이조코平城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후 나라에 서울이 두어졌던 70여 년 동안을 나라시대라고 부릅니다. 나라시대는, 서울이나 지방마다의 국부의 조성이나 관영 사원 건립, 관도 정비 등 국가적 대사업이 잇따라 추진되었습니다. 이에 앞서 7세기 이후, 견수사遣隋使, 견당사遣唐使로서 수, 당을 다녀왔던 유학생이나 유학스님이 가져온 최신 제도와 사상, 종교, 기술, 문물 등이 정치와 문화의 혁신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특히 불교는 사회에 여러가지 영향을 가져왔습니다. 그 중 하나가 천왕이나 유력 귀족을 중심으로 보급된 화장이었습니다. 또한, 6세기 말에 전래된 기와에도 주목합니다. 기와는 주로 사원의 지붕을 이기 위한 것이었지만 아스카 시대의 후지와라쿄藤原京(694~710년) 축조 이후 궁정이나 관공서 등에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741년, 쇼무 천황의 고쿠분지國分寺와 고쿠분니지國分尼寺의 건립을 명령하는 조칙이 내려지자 서울을 본뜨고 각지에서 기와 만들기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여기서는 규슈 지방에서 도호쿠 지방까지 여러 지역에서 출토된 개성적 기와를 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