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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국립박물관, 헤이세이관]헤이안 시대, 귀족 사회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 ~ 1185년)는 일본 간무 천황이 헤이조쿄(平城京, 나라시)에서 헤이안코(平安京, 교토부)로 천도한 794년부터 가마쿠라막부가 세워질 때까지 약 390년간을 말한다. 당나라 장안성을 모범을 새로 건설한 헤이안코에서 중앙집권적인 율령정치가 시작되면서 천황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졌디.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귀족, 승려 세력이 크지고 이에 불만을 품은 반란이 일어나고 도적이 설치는 등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무사세력이 정치의 중심이 되어 귀족을 대신하는 무사정치의 시대가 되었다. 나라시대와 마찬가지로 불교가 사회의 중심이 되었으며 헤이안시대를 대표하는 유물 또한 대부분 불교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가을풀무늬 항아리 秋草文壺, 국보, 헤이안시대 12세기, 나라현>

화장한 인골을 넣는 뼈항아리로, 가을을 나타내는 무늬가 자유분방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박물관, 2024년)

<선각 자오곤겐 경상, 중요문화재, 동제, 헤이안시대 10~12세기, 나라현>

자오곤겐藏王은 일본 고유의 신입니다. 오른손과 오른발을 크게 들어 올린 자오곤겐의 격노한 표현이 특징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자오곤겐상 일부, 중요문화재, 헤이안시대 10~12세기, 나라현>
<자오곤겐상 일부, 중요문화제, 헤이안시대 10~12세기, 나라현>
<동파경의 일부, 중요문화재, 헤이안시대 10~12세기, 나라현>

얇은 동판에 경문을 새긴 경전의 일종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예는 수차례에 불과합니다. 매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여겨지나 동판에 경문을 새기는 행위는 매납 이외의 목적도 가지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가는 선으로 불상을 조각한 거울, 동제, 중요문화재, 헤이안시대 10~12세기, 나라현>
<압출 자오곤겐 상, 중요문화재, 헤이안시대 10~12세기, 나라현>

신불습합(神仏習合)은 일본의 토착신앙인 신토와 외래신앙인 불교가 융합한 형태의 종교현상을 말한다.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었을 때부터 일본사람들인 신神과 부처는 같은 존재로 신앙되었으며 그 관념이 구체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헤이안시대에는 정치, 사회의 혼란과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불안에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말법사상이 침투하면서, 도시에서는 귀족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경총 축조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닛코난타이산 산정유적 출토품, 헤이안 ~ 가라마쿠시대 10~13세기, 도치키현, 1 서화쌍조팔능경 瑞花双鳥八稜鏡><2 화지비조경 花枝飛鳥鏡><3 서화팔능경 瑞花八稜鏡>
<4 동제 도장 銅印>
<5 동탑원 銅塔鋺>
<6 동령 銅鈴><7 철령 鐵鈴>
<8 독점저 独鈷杵>
<9 삼점저 三鈷杵>
<10 경축단 經軸端>
<11 배 坏><12 수날토기 手捏土器>
<13 작은입 병 細口甁><14 큰입 병 廣口壺>
<15 작은 술잔 埦>
<16 삼점요 三鈷鐃><17 동석장두 銅錫杖頭><18 철석장두 鐵錫杖頭>
<19 철모 鐵矛><20 이오모 二又矛><21 철검 鐵劍>
<22 화타겸 火打鎌><23 도자 刀子><24 철제단도 鐵製短刀>
<25 철탁 鐵鐸>
<26 철전 鐵錢>

닛코 난타이산 출토품
도치기현 닛코시에 있는 난타이산의 정상에 출된 유물들로, 산악신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기도하는 모습 – 산악신앙과 말법사상

나라시대 말 이후 헤이안시대에 걸쳐, 산에서 수행하는 승려가 각지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수행승들은, 신은 부처님의 일시적 모습이며 본래는 동일하다고 하는 신불습합神佛習合 사상의 영향을 받고 영장을 찾아 산에 올라가 산령을 모시기도 했습니다. 나라현 오이네大峰산 산정유적이나 도치기현 니코난타이산 산정유적이 대표적인 거으로, 수행시에 봉납된 각종 물품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산악신앙은 나중에 수험도라는 일본의 독자적 민속종교로 발전하게 됩니다. 한편, 헤이안시대에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의 순서로 불법의 힘이 쇠퇴해간다고 생각하는 말법사상이 침투하면서, 도시에서는 귀족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경총經塚 축조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1052년이 말법의 첫해가 된다고 여겨져 잇따라 일어난 자연재해나 시회적 혼란은 말법이 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귀족들은 56억 7600만 년 후에 다시 미륵보살이 나타나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예언을 믿고, 사경寫經한 경전을 경총에 매납함으로써 현세와 내세 모두의 안녕을 기원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서는 이러한 산악신앙과 관련된 출토품을 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경총(經塚)은 경전을 땅에 매합한 작은 언덕을 말한다. 불교 경전을 베끼는 사경寫經은 초기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었지만 헤이안시대에 정토사상이 보급되면서 개인적인 기원 성취의 목적으로 귀족들을 중심으로 경총 조중이 유행하였다. 경전은 종이에 쓴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점토판이나 동판, 석경 등의 소재도 이용되었다. 경전은 금속제 경통에 납입되고, 경통에는 그 이력을 적은 명문이 새겨진다. 우리나라는 다라니경을 비롯한 경전 등을 석탑이나 불상 등에 안치하는 형태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통, 중요문화재, 헤이안시대 1103년, 아마나시현>
<뚜껑에 새겨진 글씨>

한자와 가나가 섞인 783문자에 이르는 동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명을 갖는 경통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경통, 헤이안시대 12세기, 와카야마현>
<경통 외용기, 헤이안시대 12세기, 와카야마현>

일본에서 가장 큰 경통과 그 용기로 대반여경 600권을 50권씩 넣었다고 전해집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이나리야마 교즈카 출토품, 헤이안시대 12세기, 교토부, 1 동제경통 銅製經筒><2 도제경통 陶製經筒>

고대의 경총
고대 (헤이안시대)의 경총에는 경전 외에도 다양한 물건이 함께 묻혔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3 백자명 白磁皿><4 백자소호 白磁小壺><5 백자소합자신 白磁小合子身><6 백자소배 白磁小盃><7 백자합자 白磁合子>
<8 은국절지문합자 銀菊折枝文合子><9 은시자 銀提子><10 수정수주옥 水晶數珠玉><11 은제잠 銀製簪>
<12 금동화병 金銅花甁><13 은제명 銀製皿><14 석제접자 錫製楪子><15 은제소원 銀製小鋺>
<16 화경 化境>
<17 소문경 素文鏡>
<18 동전 銅錢>
<19 연금 延金><20 은괴 銀塊>
<21 단도 短刀>
<나가노현 우에다시 니시우치 출토품, 무로마치시대 15~16세기, 1 외용기>

중세의 경총
중세 (가마쿠라 ~ 무로마치시대)의 경총은 한 승려가 전국을 돌며 경전을 묻은 것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2 경통, 1536년><3 경통, 1536년>
<4 국화산쌍조경 菊花散双鳥鏡><5 국화산쌍조경>
<6 편륜차쌍조경 片輪車双鳥鏡><7 시원유수쌍조경 柴垣柳樹双鳥鏡>
<8 주병국화쌍조경 州浜菊花双鳥鏡>
<외용기, 무로마치시대 16세기, 시즈오카현><경통, 무로마치시대 16세기, 시즈오카현>
<경통, 무로마치시대 16세기, 후쿠이현><경통, 무로마치시대 1523년, 도토리시>
<청석경, 무로마치시대 16세기, 에히메현>

근세의 경총
근세 (무로마치 ~ 에도시대)의 경총은 경문 속의 글자를 자갈에 쓴 뒤 이를 대량으로 묻은 것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일석경, 무로마치시대 16세기, 나가노현>
<일석경, 무로마치시대 16세기, 미에현>
<니탑경, 무로마치시대 15세기, 도토리현>
<패각경, 무로마치시대 16세기, 야마구치현>
<경통, 헤이안시대 1140년, 야마가타현>
<경통, 헤이안시대 1124년, 이바라키현>

원래 바닥인 곳이 뚜껑으로 되어 있으며 몸통의 윗부분에 영락무늬가 선각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경통, 가마쿠라시대 1196년, 사이타마현>
<경통, 헤이안시대 1115년, 후쿠오카현>

뚜껑에 보주 모양의 장식이 달렸는데, 보주보다 보주대가 크게 밖으로 돌출된 것이 특징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경통, 헤이안시대 1114년, 후쿠오카현><경통, 헤이안시대 1105년, 가고시마현>
<와경의 일부, 헤이안시대 12세기, 교토부>
<와경의 일부, 헤이안시대 12세기, 교토부>
<동판경, 중요문화재, 헤이안시대 1141년, 오이타현>

얇은 동판에 경문을 새긴 경전의 일종으로 전국적으로도 발견된 예는 손에 꼽습니다. 동판경은 매납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동판에 경문을 새기는 행위는 다른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활석경, 헤이안시대 12세기, 전 후쿠오카현>

활석을 다듬으면 광택을 띠고 가공이 쉬워 예로부터 즐겨 사용되었습니다. 휜 형태의 활석에 선을 그어 <법화경>을 앞뒤로 가득 새겼으며 유사한 예가 없어 제작 경위 등 수수께끼가 많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경총에 묻힌 경전 – 와경, 활석경, 동판경 –
경전을 오랫동안 보호하고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경통에 넣어 지하에 묻은 경총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종이에 필사한 경전을 넣지만, 점토판에 경전을 새긴 후 구운 와경, 활석 혹은 동판에 경문을 새긴 경전 등도 발견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경총經塚, 56억7000만 년의 타임캡슐
경총은 헤이안시대부터 에도시대에 걸쳐 불교 경전을 매납하기 위해 만들어진 둔덕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례는 나라현 긴푸센산 정장에서 출토된 경통으로, 헤이안시대의 귀족인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1007년에 봉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총은 만들어진 시기와 장소에 따라 둔덕의 모양이나 경전의 종류, 같이 매납된 물품 등에 차이가 있습니다. 종이 이외에도 기와나 동판, 돌이나 조가비 등 다양한 소재에 쓰여진 불경도 있습니다. 경총은 헤이안시대 중엽에 유행한 말법사상의 영향을 받고 만들어졌습니다. 말법이란 석가의 사후 2000년 후 불법의 힘이 쇠퇴한 세상을 가리킵니다. 말법의 시작은 1052년으로 생각되었으며, 마침 그 때 잇따라 일어난 자연재해나 동란 등 사회적 혼란은 말법의 세상이 시작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56억7000만년 후에 미륵보살이 나타나 다시 불교가 번승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까지 경전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경총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경총은 경전을 소중히 지키기 위한 타입갭슐과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출처>

  1.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2. Wikipedia,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