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대는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조몬시대, 벼농사와 함께 청동기나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야요이시대,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고훈시대로 나누어진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조몬시대의 토기, 야요이시대의 청동방울, 고운시대의 하니와을 꼽고 있다. 일본 고유의 조형미와 특색 등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원숭이 형태의 하니와는 매우 드뭅니다. 새끼를 업고 있던 흔적이 등에 남아 있으며, 얼굴을 붉게 칠해지고 새끼에게 눈길을 주듯 뒤돌아 보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자연을 향한 고훈시대 사람들의 정확한 관찰력을 알 수 있는 걸작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조몬.야요이.고훈시대의 대표적인 조형과 그 역할
이곳에서는 조몬시대의 토기, 야요이시대의 청동방울, 고훈시대의 하니와 등 각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합니다. 역동적인 조몬시대의 조형, 세련된 야요이시대의 조형,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고훈시대의 조형 등 시대별 조형 감각을 통해 일본 미술의 원류를 살표볼 수 있습니다. 조몬토기는 점토로 만든 취사도구가 주를 이루는데, 원하는 대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재료의 특성상 죽은 이를 묻는 관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청동방울은 중국이나 한반도에서 전해진 기술로 만들어졌으며, 풍작을 기원하는 의식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하니와는 왕이나 지배자의 무덤(고분)에 진열되어 왕의 제례나 생전 의식을 재현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조몬시대 후기 전반의 도후쿠 지방 북부에서는 죽은 이의 장사를 지낼 때 이러한 토기가 사용되었습니다. 두꺼운 점토 띠로 몸통을 구획하고 안쪽에는 소용돌이 무늬를 새겼으며 안료를 이용하여 붉은 색을 선명하게 칠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동탁(청동방울)은 일본 야요이시대를 대표하는 청동기 유물이다. 일본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유물로 비교적 많은 500여 점이 출토되고 있다.
하니와(埴輪)는 일본 고훈시대 무덤에서 볼 수 있는 일본 특유의 기물이다. 흙으로 만들어진 토제품으로 제사용으로 만들어졌던 토기를 응용하여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진.한 대의 무덤의 토용이나 당나라 도용과 비슷한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작은 토우가 이런 역할을 했으며, 통일신라 이후 무덤 앞에 세워졌던 석물과 형태나 기능이 비슷해 보인다. 원통형과 인물이나 동물 등을 본떠서 만든 형상형이 있다.
조몬.야요이.고훈시대의 대표적인 조형물이 탄생한 배경
수렵과 채집을 생업으로 했던 조몬시대에는 자연의 은덕에 대한 감사, 재앙에 대한 두려움, 생명에 대한 숭상을 바탕으로 기능성을 배제한 듯한 토기와 독창성이 넘치는 토우가 만들어졌습니다. 한편, 중국 및 한반도와의 교류를 통해 논농사와 금속기가 전래된 야요이시대에는 목적과 기능을 우선시한 실용적인 토기와 금속제품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왕과 지배자가 등장한 고훈시대에는 권력을 상징하는 조형물로서 하니와가 왕의 무덤(고분)에 진열되었으며, 거울과 무기, 무구 등이 부장품으로 매장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백색표면에 채색한 화려한 색감의 토기이다. 야요이시대 후기에 나고야 인근 이세만 연안에서 유행했던 스타일이라 한다.
야요이시대 후기의 이세만 연안에서는 백색 표면에 적색으로 채색한 화려한 토기가 성행했습니다. 그리스 크레타섬에 있는 크노소스 궁전에서 출토된 정갈한 토기에 빗대어 팰리스 스타일(궁정 양식) 토기라고도 불립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청동거울은 칼, 곡옥과 함께 고대 일본 사회에서 보물로 여겨졌던 유물이다. 중국에서 직접 수입한 것도 많으며, 일본에서 제작하여 일본적인 특색을 보여주는 것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비교적 많은 수의 청동거울이 전해오고 있다.
투구와 갑옷은 한반도에서 전래되어 비슷한 형태가 사용되었지만, 점차 일본적인 모습을 갖추어 갔다. 일본적인 특색을 보여주는 유물로 이 투구가 전시되고 있다.
충각부주란 일본의 독자적인 형태의 투구입니다. 정면의 볼록한 부분이 군함의 뱃머리(충각)와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었습니다. 입체적으로 구부린 세로로 길고 폭이 넓은 철판을 징으로 이어붙여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개가 사슴과 멧돼지를 쫓는 수렵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굽다리단지이다.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에서 만들어졌던 상형토기와 비슷한 형태와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개의 작은 단지와 동물 모형으로 장식한 다리가 달린 단지입니다. 사람의 모습은 없으나 개가 사슴과 멧돼지를 쫓듯이 배치한 모습에서 수렵의 한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1-1 일본 미술의 새벽, 조몬.야요이.고훈시대
일본 열도에서는 대략 1만 3000년 전부터 토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합니다. 그 후, 일본 열도 각지에서 풍부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토기와 독특한 흙인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시대를 조몬시대(기원전 11000년 ~ 기원전 400년)라고 합니다. 조몬시대 사람들은 수렵과 어로, 식물채집을 기반으로 정착 생활을 했지만, 농경이나 목축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진 야요이시대 (기원전4세기 ~ 기원후 4세기 전반 무렵)는 일본이 동아시아와 교류를 시작한 시대입니다.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 전해진 벼농사 문화 및 청동이나 철로 만들어진 도구가 사람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새로운 조형미를 탄생시켰습니다. 고훈시대(3세기 후반 ~ 7세기 무렵)는 국가 형성의 시대입니다. 청동제 거울, 철제 무기, 또 금동이나 비취처럼 아름다운 돌을 사용한 장신구 등 호족과 왕을 위한 미술이 등장했습니다. 고분(일본어로 고훈)이라 불리는 거대한 무덤에는 흙으로 만든 사람이나 동물 모양 등의 하니와를 세웠습니다. 이는 지배자의 명성을 드높이고, 무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일본 미술의 흐름
본관 2층에서는 일본 열도에 사람들이 자리잡고 살기 시작한 조몬시대 (기원전 11000년 무렵 ~ 기원전 5세기 무렵)부터, 큰 전란이 없이 상공인들의 문화가 번성하였던 에도시대(1603~1868)까지의 작품을 통해 일본 미술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먼전 일본 미술의 원점이라고도 불리는 조몬 토기와 흙인형 등 고대 일본의 조형물을 감상하시겠습니다. 6세기 중반에 들어서는 한반도로부터 불교가 전해져, 일본 문화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아스카.나라시대(593~794)에는 대륙 양식을 받아들인 불교 미술의 꽃이 풍성하게 만개하였는데, 헤이안시대(794~1192) 후기에는 사람들의 미의식에 변화가 생겨나 훗날 일본 미술사에서 고전으로 평가받게 되는 작품들이 여러 분야에서 탄생하였습니다. 무사가 정치적으로 대두한 가마쿠라시대(1192~1333)에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선종은 수묵화와 다도 등 이후의 일본 문화가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무사 정권의 탄생 이후 무사 세력은 일본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는 새로운 미의식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에도시대(1603~1868)에는 평화로운 시대가 오랫동안 이어지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문화를 이끄는 주체의 범위도 무사나 귀족뿐만 아니라 상공공인들로 확대되었습니다. 그 결과, 일상을 소재로 한 특색 있고 다양한 작품이 탄생하였고, 감상을 위한 물건뿐만 아니라 옷과 그릇 등 생활에 필요한 도구, 그리고 무구 등도 아름답게 장식되어 삶에 화려함을 더하였습니다. 일본의 미술은 끊임없이 외래 미술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일본 열도의 풍토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감성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해 왔습니다. 각 전시실을 순서대로 두러보시면서 일본인의 미의식과 다채로운 일본 미술의 역사를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출처>
-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 Wikipedia,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