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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국립박물관] 무사의 갑옷과 무기

일본 헤이안시대 말기에 사원세력을 누르고 교토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고용한 무사들이 중앙 정계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무사들은 문화와 예술을 후원하고 새로운 문화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사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미적감각으로 예능, 다도, 공예, 도자 등에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뛰어난 기능의 칼과 갑옷은 대대손손 전해지면서, 단순히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와 신체 보호용 의복의 차원을 넘어 일본 무사들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훌륭한 도검과 갑옷는 미적 가치를 인정받아 예술품이 되었고, 더 나아가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봉헌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감색에 적색 실을 꼬아 만든 끈으로 엮은 도마루 갑옷, 모로마치시대 15세기, 중요문화재>

몸통과 투구, 어깨 보호구를 전부 갖춘 도마루 갑옷입니다. 미하루번(현재의 후쿠시마현)의 아키타 가문에 전해지던 것으로, 상급 무사의 권위를 상징하는 중후하고 호화로운 조형이 돋보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구로다 조스이 초상, 모사품, 원본 에도시대 1607년>

구로다 조스이;는 오다 노무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연달아 섬긴 무장입니다. 원본은 조스이의 사망 3년 뒤에 아들이 제작을 의뢰한 것입니다. 교토 다이토쿠지 절의 승려 슌오쿠 소엔의 찬문인 적혀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다치太刀는 헤이안 시대 후기인 11세기에 처음 등장했는데, 칼날이 약간 굽은 곡선 모양의 긴 칼로 무사들이 허리에 차고 다녔다. 16세기 전국시대 이후 전투방식이 많은 군사가 직접 부딪쳐 싸우는 백병전 형태로 바뀌면서 바뀌면서 다치보다 가볍고 뽑기 쉬운 가타나刀가 널리 사용되었다. 한편 와키자시脇刀는 우치가타나보다 짧은 칼인데, 에도시대 무사는 한 쌍의 우치가타나와 와키자시를 허리춤에 끼워 지니고 다녔다. 고시가타나腰刀는 허리띠에 차는 단도로, 군사적 용도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국화무늬 고시가타나의 외장, 난부쿠초~무로마치시대 14~15세기>
<손잡이 부분>

고시가타나는 허리띠에 차는 단도로, 군사적 용도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칼자루 전체와 칼집 끝부분에 도금한 국화무늬를 부조로 장식하였으며, 은을 입히고 가오리 가죽 느낌을 낸 동판으로 칼집을 감싼 고급품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흑칠 가죽 쇠장식 오동나무무늬 끈을 담은 다치의 외장, 무로마치시대 15세기, 중요문화재>
<손잡이>
<가운데 부분>
<칼집 끝부분>

칼자루와 칼집에 끈을 감은 다치로, 흑칠한 가죽으로 칼집을 감싸 보강했습니다. 금으로 만든 어자무늬 바탕 쇠장식에는 오동나무무늬를 더했습니다. 전국시대의 무장 우에스기 가문에 전해진 작품으로, 실용적이고 호화로운 조형이 돋보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다치, 아오에쓰구요시, 나보쿠조시대 14세기>
<손잡이 부분에 새겨진 글자>

쓰구요시는 빗추국 아오에(현재의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에서 활동한 장인입니다. 튼실하고 크게 휜 칼몸에 얇고 직선적인 칼날무늬를 더했습니다. 사쿠라마치 천황이 즉위한 1735년에 8대 쇼군인 요시무네가 헌상한 것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나시지 바탕 국화와 오동나무무늬 끈을 감은 다치의 외장, 에도시대 18세기>
<손잡이 부분>
<가운데 부분>
<칼집 끝부분>

아오에 쓰구요시가 제작한 다치에 부속된 외장입니다. 칼자루와 칼집에 끈을 감은 외장은 에도시대에 고위층 무사가 의식에 참석할 때 몸에 찬 것으로, 선물이나 봉납품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주칠 바탕에 금을 두른 길고 짧은 칼 한 쌍, 이즈치모모야마시대 16세기>
<손잡이 부분>
<칼집 끝부분>

길고 짧은 칼 한 쌍의 칼집입니다. 에도시대에는 무사의 신분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였으며, 이 작품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명품입니다. 주칠을 한 칼집에 얇은 금판을 나선형으로 감아 화려함이 돋보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마키에 나전 금가루 바탕 접시꽃무늬 우치가타나의 외장, 에도시대 19세기>
<손잡이 부분>
<칼집 부분>

기슈 도쿠가와 가문에 전해지던 것으로 호화로운 만듦새가 인상적입니다. 칼집은 금가루를 빼곡히 뿌린 바탕 위에 마키에와 나전 기법으로 접시꽃무늬를 더했으며, 칼자루는 가오리 가죽을 입힌 뒤 청색 끈으로 감았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가타나, 전 다아마, 가마쿠라시대 13세기, 중요문화재>
<손잡이 부분에 새겨진 글자>

무사이자 정치가였던 오쿠보 이치오가 아꼈던 칼로, 가마쿠라시대의 다치를 연마해 가타나로 재가공한 것입니다. 명문은 없으나 형태와 무늬의 특징을 통해 다이마 유파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슴베에는 이치오의 시가 금으로 상감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주칠 바탕 위에 투명칠을 한 우치가타나의 외장, 에도 ~메이지시대 19세기>
<손잡이 부분>
<칼집 부분>

중요문화재인 가타나에 부속된 외장으로, 오쿠보 이치오의 취향을 반영하여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칼집은 주칠을 칠하고 도장구는 철로 만든 날밑을 제외하고 전부 적동으로 만들었습니다. 에도시대 말기에 유행한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나기나타, 오시후네 나가미쓰, 가마투라시대 13세기, 중요문화재>
<손잡이에 새겨진 글자>

‘나기나타’란 긴 칼자루를 가진 무기의 한 종류입니다. 나가마쓰는 비젠국(현재의 오카야마현)에서 번성했던 도공 유파인 오사후네파를 확립시킨 장인입니다. 잘 단련된 칼몸에 화려한 칼날무늬가 특징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날이 긴 창, 오사후네스케사다, 무로마치시대 1504년>

16세기의 무장이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긴 가토 기요마사의 것으로 전해지는 창입니다. 기요마사의 딸이 기슈 도쿠가와 가문의 초대 영주인 도쿠가와 요리노부와 혼인할 때 지참했던 것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도신과 도검 외장
이 전시실에서는 일본도이 도신과 그 짝을 이루는 도검 외장을 함께 전시합니다. 도검 외장은 다치(太刀, 칼날이 밑을 향하게 차는 기마병용 큰 칼), 가타나(刀, 칼날이 위를 향하게 차는 보병용 큰 칼), 와키자시(脇指, 가타나의 보조 무기로 사용된 짧은 칼), 단도(24cm 전후 길이의 짧은 칼) 등 도검 종류에 따라 형태가 다릅니다. 또, 만들어진 시대, 사용된 목적과 장소, 소유주의 신분, 유행에 따라서도 그 형태가 달라집니다. 금속 공예, 칠 공예 등 여러 기법과 재료로 장식되었으며, 디자인에는 사계절 경치와 동물, 식물, 기물 등 일본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모티프가 사용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헤이안시대 기마 무사가 입었던 오요로이大鎧는 아릅답고 튼튼했지만 무겁고 대량으로 만들 수 없었다. 16세기 전국 시대 이후 보병집단끼리 싸우는 백병전 형태로 전투방식이 바뀌면서 갑옷도 가볍고 쉽게 착용할 수 있으며 대량으로 만들 수도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런 형태의 갑옷으로 도마루胴丸, 하라마키複卷, 도세구소쿠富世具足가 있다. 갑옷은 지역이나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구조와 장식에 차이를 보인다. 갑옷의 디자인에는 무사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었다.

<철판 12장을 징으로 이어붙인 투구 본체, 헤이안시대 11세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호시카부터(철판을 접합한 징을 그대로 노출시킨 투구)입니다. 고훈시대의 충각부주와 구조가 닮았으며 가마쿠라시대에 개조되었습니다. 무사 가문의 성징으로서 여러 세대를 거치며 전해져 온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감색 끈으로 엮은 투구, 무로마치시대 1533년>

무로마치시대에 주로 동일본 지역에서 사용된 투구입니다. 묘친 가문은 갑주를 제작하는 명문가로 노부이에는 17대입니다. 투구 앞면에 고래수염을 다발로 묶어 만든 장식을 꽂고 솔개의 부리 모양을 한 얼굴 보호구를 갖추고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꽃창포 잎 모양 판자를 꽂은 투구, 아즈치모모야마 ~에도시대 16~17세기>

얇은 노송나무 판자로 꽃창포 잎을 형상화한 장식이 인상적입니다. 마카와국 오카자키번(현재의 하이치현)의 무사였던 시가 가문에 전해 내려 오던 투구입니다. 원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투구였다고 전해집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짙은 남색 가죽과 백색 끈으로 엮은 도마루 갑옷, 난보쿠초시대 14세기, 중요문화재>

도마루 갑옷은 원래 중하급 보병의 갑옷이었으나, 난보쿠초시대인 14세기에 중무장화되어 말을 탄 상급 무사도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가가번(현재의 이시카와현)의 중신인 조 가문에 전해 내려오던 것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여러 색 끈으로 엮은 하라마키 갑옷, 무로마치시대 15세기, 중요문화재>

등 쪽에서 묶어 입는 하라마키 갑옷에 어깨 방아구를 더한 고급품입니다. 여러 색실을 번갈아 엮은 화려한 배색에 가슴, 겨드랑이, 팔 쪽의 금속판은 모란과 사자무늬로 자익하고 곳곳에 국화무늬의 금속장식을 더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인왕 몸통 구소쿠 갑옷, 이츠지모모야마시대 16세기,>

벌거벗은 몸으로 표현한 갑옷의 몸통 부분이 불교의 수호신인 인왕을 연상시켜 이러한 이름이 붙었습니다. 투구의 머리 부분에 전체적으로 심은 짐승털로 머리를 묶듯 표현한 기발한 모양이 인상적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감색 끈으로 엮은 구소쿠 갑옷, 에도시대 17~18세기>

전국시대의 무장이자 다인인 고보리 엔슈가 소유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곳곳에 금속 장식을 더했으며 삿갓 모양의 독특한 투구를 갖추고 있습니다. 세밀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갑주의 종류와 변천
이 전시실에서는 갑주를 중심으로 전시합니다. 일본의 갑주는 오요로이(大鐙, 기마병용으로 발달한 완전무장 갑옷), 도마루(胴丸, 몸통에 감아 오른쪽 옆구리에서 연결하는 경량 갑옷),하라마키(腹券, 몸통에 감아 등 가운에에서 연결하는 경량 갑옷), 도세구소쿠(当世具足, 몸통 방어 기능를 갖춘 현대식 갑옷)의 네 종류로 크게 나루어지며, 각 시대의 싸움 방식이나 무기에 맞게 변화해왔습니다. 또, 만들어진 지역이나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구조와 장식에 차이를 보입니다. 갑주는 무사가 전쟁터에서 착용하는 만큼 실용성뿐만 아니라, 상징성과 미적 가치 또한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갑주의 디자인에는 무사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었습니다.(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홍색 바탕 대나무와 참새 그림 소매 없는 가죽 하오리(겉옷), 에도시대 18~19세기>

하치스카 가문의 문장이 들어간 함에서 발견된 하오리입니다. 원래 진바오리는 갑옷 위에 착용하는 겉옷이지만 이 옷은 무사 가문이 위용을 나타내기 위한 형식적인 것으로서 주문 제작한 것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백색 바탕 매화와 꽃봉오리가 달린 가지 그림 닷쓰케바카마(하의), 에도시대 18 ~ 19세기>

무사의 의상
이 전시실에서는 무사의 의상을 소개합니다. 먼저, 정식 복장으로 발달한 히타타레, 약식 예복인 스오, 약식 예복으로 등장해 17세기 무렵 정식 복장이 된 가미시모 등 일상 생활 속 의상을 전시합니다. 또 요로이(갑옷) 아래 착용하는 요로이히타타레, 요로이시타기, 요로이 위에 걸친 진바오리 등 전쟁과 관련된 복식을 전시합니다 .그 외, 16세기부터 17세기에 실내복으로 사용된 도후쿠, 17세기 무렵 화재 소화 목적으로 발달한 소방 의상 등 다양한 의상을 통해 무사의 멋스러운 면모를 살펴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마키에 두루마리무늬 안장과 등자, 에도시대 19세기>

에도시대에는 장식적인 기교를 구사한 안장이 다수 제작되었습니다. 이 안장과 등자 세트는 펼쳐진 두루마리와 매, 흐르는 물, 모란 등의 화려한 모티브를 표현했으며, 금과 은을 빈틈없이 채워 넣어 호화롭게 꾸몄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멧돼지 모피 화살통, 에도~메이지시대, 19세기>

화살을 수납하기 위한 도구로 오른쪽 허리에 장착해 사용합니다. 화살을 꽃아 넣는 상자에 멧돼지 모피를 감쌌으며, 전체를 한 장의 모피로 감싸 뒷면의 털은 아래를, 나머지 세 면은 위를 향한 것이 특징입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아와세유미 활, 에도시대 19세기>

활 본체는 나무와 대나무를 조합하여 위력을 강화했으며 전체를 흑칠하고 일곱군데나 등나무 줄기를 감아 보강했습니다. 사용 시에는 활의 흰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활 시위를 걸어 사용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화살, 에도시대 19세기>

화살의 본체에는 ‘이대’라는 식물을 사용합니다. 화살촉의 종류에 따라 전투용, 사냥용, 연습용 화살로 나뉩니다. 화살이 회전하며 직선으로 날게끔 3장의 깃털을 같은 방향으로 부착했으며, 깃털은 독수리나 매의 꽁지깃을 사용합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무사의 갑옷과 무기, 헤이안 ~ 에도시대
헤이안시대 말기에 해당하는 12세기 말부터 에도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약 700년 동안은 무사가 정치의 실권을 쥐었던 시대입니다. 무사는 궁정 귀족의 문화를 모범으로 삼으면서도 불교와 서민 문화를 받아들여 꾸밈없이 솔직하며 힘찬 느낌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습니다. 이 전시실에서는 무사의 옷차림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먼저 무사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와 역사적으로 유명한 무사가 쓴 편지를 들 수 있습니다. 도검과 도검 장식 (예를 들면 칼집)은 무사가 사용한 도구들 중에서도 가장 귀중하게 여겨진 것들입니다. 무사가 전장에 나갈 때 몸에 두른 갑주, 갑옷 위에 착용하는 겉옷과 평소에 착용하던 의복도 전시되며, 마구나 활쏘기용 도구와 같은 무기 및 무구류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들 무기와 무구 등은 시대가 지나면서 크게 변화하였는데, 무사의 신분에 따라서도 제작 방식이나 형상이 달라집니다. 또한 다양한 소재와 공예 기술을 구사하여 제작되었고, 세계적으로 보아도 색채가 풍부한 편입니다. 이 물건들은 무사 사회의 역사와 격식을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계승되었고 때로는 무사 정권의 최고 권력자와 고위층 무사 영주들이 주고 받는 선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무사의 신앙심을 드러내기 위하여 신사와 사원에 봉납되기도 하였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출처>

  1.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3. Wikipedia,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