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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정전, 인정전(국보)과 조정

인정전는 창덕궁을 정전으로 조선 500년 동안 가장 오랜 기간동안 법전 역할을 했던 곳이다. 법전은 왕의 즉위식, 결혼식, 세자책봉식, 문무백관의 하례식 등 국가적인 행사를 치렀던 건물이다. 또한 인정전은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길을 출발한 곳이었으며, 인조반정도 이곳에서 벌어지는 등 많은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창덕궁 정전 영역>

인정전은 태종대에 처음 세워졌고, 임진왜란대에 소실된 것을 광해군대에 오늘날과 같은 궁궐 정전의 규모로 중건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순조대에 중건한 것이라 한다. 인정전은 궁궐 정전으로 인정문과 회랑으로 둘러져 있어 조정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원래 상왕이 머무는 이궁으로 건립한 까닭에 경복궁에 비해서 인정전 앞 마당과 회랑의 규모는 약간 좁은 편이며, 편전과 내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다. 경복궁 근정전이 약간은 위압적이고 웅장한 면을 보여준다면 창덕궁 인정전은 편안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인정문과 외조>

창덕궁 정전 출입문인 인정문(仁政門)과 앞마당인 외조(外朝)이다. 인정문(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3개의 출입문을 두고 있다. 가운데 문은 국왕이, 동쪽은 문반, 서쪽은 무반이 출입한다. 인정문 앞 마당을 외조(外朝)라 하는데 역대국왕의 즉위식이 열리는 장소이다.

<인정문 계단>

인정전이 있는 정전 영역은 축대를 쌓아서 단을 높이지 않았으며, 계단이 낮은 편이다. 국왕이 탄 가마가 지나가는 소맷돌을 배치해 놓지 않고 있으며, 석수를 난간 형태로 세워놓고 있다. 반면 경복궁 근정문 앞 계단에는 소맷돌이 설치되어 있다.

인정전(국보)

인정전(仁政殿)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 버린 이후 구한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조선후기 정치의 중심이 되었던 창덕궁의 정전 건물이다 . 인정전은 태종 이방원이 상왕이 되었을 때 거처할 궁전으로 창덕궁이 건립될 때 정전으로 세워진 건물로 당시에는 앞면 3칸의 크지 않은 규모였다. 임진왜란때 경복궁과 함께 불타버린 것을 궁궐 정전의 형식에 맞게 현재의 규모로 앞면 5칸의 2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순조대에 화재로 불타버린것을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순종이 거처하는 궁궐의 정전으로 바뀌면서 내부에 마루를 깔고 전등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인정전은 왕이 거처하던 곳이 아니라 왕의 공식적인 행사를 거행하던 의식의 공간이다. 경복궁 근정전과 함께 조선의 대표적인 법궁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창덕궁 인정전(국보)>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외관상 2층 건물을 하고 있으며,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하고 있고, 용마루에는 대한제국의 상징인 오얏꽃문양을 새겨 놓고 있다. 궁궐 정전 건물로 2층 월대 위에 세워져 있다. 경복궁 근정전이 약간은 위압적이고 웅장한 면을 보여준다면 창덕궁 인정전은 편안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인정전 월대>

<왕의 가마가 지나가는 답도>

인정전은 2층 월대 위에 세워져 있다. 월대를 오르는 계단 또한 삼도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왕이 탄 가마가 지나가는 가운데 계단에는 답도에는 소맷돌이 설치되어 있고 삼는 석수의 난간간으로 삼도를 구분하고 있다. 소맷돌에는 구름속을 날고 있는 봉황 한쌍이 새겨져 있다. 반면에 중국 자금성 답도에는 대리석에 용이 새겨져 있다.

<신하들이 사용하는 월대 서쪽편 계단>

 월대 모서리에는 ‘드므’가 설치되어 있다. ‘드므’는 불을 꺼기 위한 물을 담아두는 곳이지만, 실제 사용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화재를 예방하고자 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창덕궁 월대 위에는 ‘드므’ 이외에 특별한 시설을 두고 있지 않다.

<상월대와 드므>

<내부>

인정전 내부에는 지붕이 있는 닫집 안에 국왕이 앉는 어좌가 있고, 그 뒤에는 나무로 만든 곡병과 곡병 뒤에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라는 병풍이 있다. 일월오악도는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해와달, 우리나라 동.서.남.북.중앙의 다섯산을 상징하는 오악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임금이 중앙에서 사방을 다스리고,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펼친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천정>

 인정전 천정에는 답도 소맷돌과 마찬가지로 2마리의 봉황이 새겨져 있다.  반면, 경복궁 근정전 천정에는 용이 새겨져 있다.

<내부에 설치된 전동과 서양식 장식>

창덕궁 인정전은 1405년 태종대에 이궁으로 건립된 이래로 수차례 중수가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1803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다시 건립하였다. 창덕궁은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이 거처한 곳으로 정전인 인정전은 시대에 변화에 맞추거 전돌이 깔려있던 바닥에 마루를 깔았으며, 전구나 커튼 등 서양식 장신구가 설치되었으며, 문에는 유리창으로 바뀌었다.

<인정전 유리창과 커튼>

문살 등 기본적인 부분은 그대로 남겨두고 유리와 커튼만 달아놓고 있다.

<앞에서 본 모습>

<오른쪽에서 본 모습>

<왼쪽에서 본 모습>

창덕궁 조정(朝廷)과 회랑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 앞 마당은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치루는 장소로서 조정(朝廷)이라고 부른다. 마당에는 화강석을 다듬은 거친박석을 깔아 놓고 있으며, 중문인 인정문에서 인정전 월대까지는 국왕의 가마가 지나가는 길인 삼도가 놓여 있다. 삼도 좌.우에는 품계석이 세워져 있는데, 정전에서 국가적인 공식 행사가 있을 때 동쪽에는 문신, 서쪽에는 무신들이 서는 자리를 표시해 준다. 국가적인 행사시 관료들이 조정에 도열하는데 문.무관은 인정전을 향해 도열하는 것이 아니라고  중앙 삼도를 중심으로 서로 마주 보면서 서게 된다. 경복궁 근정전 앞 마당은 웅장한 느낌을 주는데 비해 창덕궁 인정전 앞 마당은 편안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정전을 중심으로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동쪽에는 편전과 연결된 출입문을, 서쪽에는 궐내각사와 연결되는 출입문을 두고 있다.

<월대에서 내려다 본 조정(朝廷) 마>

월대(月臺)는 궁궐 정전같은 건물 앞에 두는 사각형의 넓은 단(壇)이다. 달을 바라보는 대라는 월견대(月見臺)에서 유래된 말이다. 직위가 높더라도 일반 가옥에서 월대를 두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국왕을 상징하는 궁궐 전각이나 사찰전각에서 설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1단인데, 궁궐 정전 월대만 2단으로 되어 있다. 월대에는 국가 주요 행사시 종친, 내시, 악공 등의 자리를 잡으며, 주변에는 군사들이 호위하도록 되어 있다.

<조정 마당>

인정전의 넓은 마당은 조회가 있었던 뜰이란 뜻으로 조정(朝廷)이라고 부른다. 인정문에서 인정전 월대까지는 삼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양쪽에 품계석이 세워져 있다. 바닥에는 거친 박석을 깔아 놓아 빗물에 미끄러지지 않게 하거나,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정전 앞에서 조심스럽게 걷도록 하고 있다.

<창덕궁 품계석(동쪽)>

품계석은 정전에서 조회와 같은 공식행사를 할 때 신하들이 품계에 따라 정렬하여 서 있을 수 있도록 세운 돌로 정치의 중심인 조정(朝廷)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품계석은 동.서에 각각 12개씩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 관직의 품계는 9품까지 있는데, 품계석은 1~3품까지는 정(正)과 종(從)을 구분하여 6개씩, 나머지는 정,종을 구분하지 않고 6개씩 세워져 있다.

<무반들이 도열해 서 있던 서쪽 품계석>

<인정문과 양쪽 행각>

인정전 좌.우로 동행각 36칸, 서행각 38칸이 딸려 있다고 되어 있다.

<인정전 동쪽 행각>

편전인 선정전과 연결되는 출입문이 있는데 단을 약간 높여 솟을대문처럼 하고 있다. 동행각에는 원래 악기고, 서방색 등이 있었다고 한다.

<동쪽 뒷편 행각>

<인정전 서쪽 행각>

국왕을 실무적으로 보좌하는 예문관, 내의원 등 궐내각사와 연결되는 출입문이 있으며, 행각 끝에는 향과  축문을 관리하는 향실이 있다.

<복도처럼 보이는 행각 내부>

회랑은 건물을 연결하는 복도의 기능을 갖는 건축물로 한쪽편은 폐쇄되어 있고, 중앙마당을 향해 개방되어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이는 고대 로마의 공공건물인 바실리카를 비롯하여, 황룡사와 미륵사 등 중요 사찰, 궁궐 정전 등 신성화된 영역에서 볼 수 있는 건물구조이다.

<회랑 끝에 위치한 향실>

궁궐에서 지내는 제사의 향과 축문을 관리하는 관청이다.

<마당 한쪽에 있는 우물>

삼국시대 이래 내려오는 전통신앙에서 차지하는 우물로서 역할과 화재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을 같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정전 일원
1609년에 재건된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의 조회, 외국 사신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앞쪽으로 어도와 품계석을 둔 조정 마당을 마련해 국가적인 상징 공간을 이루고, 뒤편에는 계단식 정원을 두어 뒷산인 매봉의 맥을 잇고 있다. 조정 마당을 둘러싼 내행각에는 호위대 주둔소와 창고 등을 두었으나 현재는 비어 있는 회랑이 되었다. 사다리꼴로 만들어진 인정문 앞 외행각 마당은 불규칙한 지형과 규칙적인 궁궐형식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공간으로, 세종조의 건축가 박자청의 솜씨이다. 외행각과 진선문, 숙장문은 1996년 복원된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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