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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궁궐

  • 부여 궁남지(사적), 백제 사비성 별궁 정원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부여 궁남지'(사적)이다. 백제 무왕 때 조성된 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연못은 ‘궁궐의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고 불린다. 긴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들여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섬을 만들었다. 현재의 연못은 1970년대에 복원 공사를 통해 조성된 것으로 실제로는 현재의 모습보다 큰 규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궁남지 서쪽 화지산에서는 건물터 등이 확인되어…

  •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안압지로 불렸던 월지(月池)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신라 궁궐 후원 연못인 월지(月池)이다. 안압지(雁鴨池)로 잘 알려진 이 연못은 동궁 영역에 있지만 국가적인 연회를 베푸는 경복궁 경회루 연못과 같은 기능과 위상을 갖는 곳이다. <삼국사기>에 문무왕 때(674년)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짐승과 새를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연못의 규모는 동서 200 m, 남북180 m 정도이다. 궁궐 전각이 있는…

  •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임해전지와 신라 별궁터

    경북 경주시 인왕동 일대에 있는 신라 왕궁 별궁터이다. 신라 태자가 머물던 거처를 중심으로 국가적인 행사나 귀한 손님을 맞을 떄를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동궁 이상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 때(674) 큰 연못을 파고 꽃과 나무를 심어 정원을 조성다는 기록과 경순왕이 왕건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는 “안압지의 서에는 임해전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시안 당 대명궁 유적, 당나라 황궁

    중국 시안에 있는 당나라 황궁이었던 대명궁(大明宮) 유적이다. 당 고종 때(662년) 처음 지어져 220년 동안 당나라 황궁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당나라 초기에는 장안성 안에 있는 수나라 때 정궁으로 지은 태극궁을 사용했으나 습하고 벌레가 많아 이궁(離宮)으로 건설되었는데 당 고종 때 대대적을 수리하면서 정궁이 되었다. 당나라 말 황소의 난(875 ~ 884년) 이후 지방 병마절도사들의 반란으로 파괴된 후 황궁의 기능을…

  • 부여 백제문화단지, 백제 왕궁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백제문화단지에 재현해 놓은 사비기 백제 왕궁이다. 재현해 놓은 백제왕궁은 정전에 해당하는 중궁과 동궁,서궁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배치 등은 부소산성 아래 관북리 유적(사적) 발굴.조사 결과 확인된 건물터와 후대 궁궐 건물 배치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건축물의 양식은 백제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 나라의 동대사 금당 건물의 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여…

  •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 확인되는 궁궐터

    전북 익산시 왕궁면과 금마면에 있는 왕궁리 유적(사적)이다. 오층석탑이 남아 있던 이곳은 마한의 도읍지설 등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으나 발굴.조사 결과 백제후기에서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 확인되는 중요한 유적이다. 유적은 백제 무왕 때 조성은 궁성 영역과 백제말 또는 통일신라 때 조성된 사찰영역이 혼재되어 있다. 궁성은 치밀한 계획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중국의 영향을…

  •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 발굴과 복원

    경희궁은 1970년대 서울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이후 그 터만 남았던 것을 발굴.조사를 거쳐 전각 일부를 복원하였다. 조선후기 많은 전각들이 있던 넓은 경희궁 권역에는 서울고 이전 이후 원래의 모습을 찾기보다는 도심에 있던 위치적인 장점때문에 많은 공공기관들이 들어설려고 했으며, 그 중 서울시교육청이 경희궁 서쪽 언덕에 이전해 왔으며, 서울역사박물관을 비롯하여 일부 공공기관이 자리잡게 되었다. 1980년대 발굴.조사 이후 경희궁은 정전인…

  •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 구한말 이후 터만 남은 경희궁지

    조선후기 국왕의 임시거처이자 왕실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서궐(西闕)로 불렸던 경희궁은 구한말 고종대 경복궁 중건과 함께 그 역할이 크게 축소되면서 궁궐로서 의미가 크게 퇴색될 수 밖에 없었다. 경복궁 중건과정에서 많은 전각들을 헐어 건축자재로 사용되었으며, 왕실가족이 생활하는 이궁(離宮)의 역할은 법궁이었던 동궐이 맡게 되면서 경희궁은 실질적인 용도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이후 숭정전을 비롯하여 일부 전각만 남아 있는 넓은 공터만 남게…

  • 경운궁(덕수궁) 양이재, 구한말 황족 교육을 전담한 수학원 건물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회 뒷편에 남아 있는 덕수궁(경운궁) 전각 중 하나인 양이재이다. 구한말인 1905년 덕수궁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지은 건물로 앞면 7칸 규모의 비교적 큰 건물이다. 함희당이라는 부속건물과 행각들이 함께 있었다고 하는데, 외형상 삼군부 총무당처럼 조선시대 한양의 관아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이곳은 황족과 귀족자제 교육을 전담하기 위해 궁궐 안에 지어진 건물이다. 건물의 보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