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에서는 중국 산동지방을 대표하는 유물인 한대화상석을 꽤 많이 전시하고 있다. 화상석(画像石)은 중국의 건축물이나 능묘의 석재에 그림을 새겨 넣은 것이다. 한무제때 장건이 서역과의 실크로드를 개척한 이후 불교를 비롯한 서역의 문화가 중국으로 급격하에 유입되던 후한(後漢)때 크게 유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화상석은 그 조각수법이나 표현방식, 건축물의 건축형태 등은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등 중동지역이나 이집트, 그리스.로마 등 지중해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그림은 선으로 간략하게 그린 선각(線刻)부터 입체감 있는 고부조(高浮彫)와 채색벽화 등 그 형태는 다양하다. 그림의 내용은 신화나 상스러운 동물,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 무덤의 주인이 살았던 모습, 농경을 비롯한 생산활동의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화상석에 그려진 그림들은 당시의 예술적인 경향과 수준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화면을 상중하의 3단으로 구획한 후, 상단에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 중단에 곡예나 유희에 흥미를 주는 장면, 하단에 술잔치에 내는 요리를 만드는 주방의 풍경을 배치하고 있다. 조상의 영혼을 즐겁게 하기 위해 술잔치 장면을 화상석으로 조각한 것으로 생각된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상단에는 퉁소簫, 북鼗, 코토 등을 연주하는 인물, 손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는 인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중단에는 잔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곡예를 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고 왼쪽에는 두사람이 육박 놀이을 하고 있다. 육박 놀이는 고대 중국의 놀이로 여섯가락의 주사위를 던져서 승부를 겨룬다. 왼쪽 아래에는 게임에 진 사람이 벌주를 마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하단에는 조리를 하는 부엌을 표현하고 있다. 천장에 매달린 물고기, 술을 거르고 있는 인물, 돼지를 해체하는 인물이 표현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음식과 음료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 이 의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조상을 모시는 장면이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 화상석에는 제사 음식을 조리하는 장면, 제사 후에 참가자가 요리를 즐기는 술잔치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오른쪽 위에는 왼쪽 두 사람이 몸을 내밀고 있고, 그 앞에는 세명의 인물이 앉아 있다. 가운데 바닥에는 편평한 북이 놓여 이다. 왼쪽의 인물은 절을 하고 바닥에 있는 북을 두드리려고 하고 있다.
반주에 맞춰 북을 두드리면서 무인이 긴 소매를 흔들어 춤추고 있다. 중국 고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칼춤 추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가운데 위에는 육박게임을 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가운데에는 악공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아래에는 음식을 들면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표현되어 있다. 악공들은 관악기를 불거나 손 박자를 치고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왼쪽에는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의 모습이 표현되어 이다. 개고기를 해체하는 모습, 우물에서 물을 긷는 모습, 그릇을 꺼내는 인물, 요리를 나르는 인물 등이 표현되어 있다. 천장에 매달린 물고기와 오리, 요리사에게 지시를 내는 인물 등도 볼 수 있다.
화상석에는 그림 중에는 충효사상을 강조하기 위해 역사적인 사건이나 일화 등을 표현한 그림들이 많다. 대표적인 내용으로는 “공자가 노자를 만나는 장면(公子见老子画像)’, 주나라 문물제도를 정비한 주문공이 어린 성왕을 돕는 장면(周公辅成王), 춘추전국시대 관중과 제환공 사이의 일화를 보여주는 ‘소백을 활로 쏘는 관중(管仲射小白)’, 진시황이 순행중 사수에서 주나라 솥을 건지는 장면(泗水捞鼎) 등이 유명하다.
화면은 상하 3단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위에서 순서대로 불로불사의 여신· 서왕모가 사는 천계, 주공단의 고사, 천계에서 마차를 타고 선조가 자손의 제사를 받으러 가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는 생각된다. 경쾌한 말의 발걸음에서는 조각자의 숙련된 솜씨가 전해져 온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상단에는 서왕모가 따르는 무리들의 인사를 받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서왕모는 높은 장소에 앉아 있다. 무리 중에는 신선들도 포함되어 있다.
중단에는 주공 단의 고사를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 인물이 주공단으로 주 무왕의 아들인 성왕을 위해 우산을 들고 있다. 성왕은 아이답게 작게 표현하고 있으며, 왕관을 쓰고 있다.
하단에는 말과 수레를 타고 출행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창을 든 인물과 말을 탄 인물이 마차를 인도하고 있다. 마차를 타고 있는 사람이 조상이라 추측된다.
수레를 탄 인물을 그린 그림은 화상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출정식이나 전투장면을 묘사할 때 볼 수 있는 수레를 끌고 기마병이 호위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묘실의 문 위에 놓인 화상석으로 추정된다. 기병에 호위된 마차 5대의 행렬을 조각하고 있다. 그 중 가운데 마차만 2마리가 끌고 있다. 그 외는 모두 1마리이므로, 중앙의 마차를 타고 있는 인물이 무덤의 주인인 것으로 생각된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양은 길상적인 상징을 갖는 동물로 ‘양羊’은 “상祥’과 같은 발음을 하고 있다. 또한 양陽에도 통해 ‘재생’, ‘자손번영’과 의미가 연결된다. 무덤에 많이 장식되었던 동물로 서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양의 머리가 돋을새김으로 표현되어 있다. 양羊 글자는 상祥과 통하여, 눈에 띄는 의미를 가진다. 또 발음이 양陽에도 통하여, ‘죽음으로부터의 재생’, ‘자손 번영’과 연결된다고도 생각된다. 한대 무덤에 양이 자주 장식되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화면을 상하로 구획하고 있다. 상단은 선인이라고 생각되는 인물, 그리고 봉황을 배치하고 있어 천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단에는 조상에게 자손이 절하고 있다. 조상의 영혼을 만나 공양하고 싶다는 효행을 표현하고 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상단에는 한 쌍의 봉황이 마주보고 있다. 오른쪽에는 5명의 신선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앉아 있다.
하단에는 조상에게 절을 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조상은 한층 높은 곳에 앉아 있으며 다른 인물보다 크게 표현했다.
춤과 곡예를 그린 그림을 화성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주제이다. 잔치 그림과 함께 조상들이 사후세계에서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이다.
화상석에는 술잔치 장면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 춤과 곡예를 선보이는 무희 등도 자주 등장한다. 이 화상석은 조상의 영혼을 즐겁게하기 위해 새겨진 것으로 생각된다. 한나라 때 악기, 무도, 곡예의 실태를 아는 데에도 중요시되고 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상단에는 사람이 춤을 추도록 북을 두드리고 있다. 북은 호랑이 모양의 받침대에 기둥을 세워 설치했다.
오른쪽에는 곡예사가 자글링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나라 떄 유행했던 긴 소매를 휘두르는 춤을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이 남성, 왼쪽이 여성이라고 생각된다.
아래에는 음악을 연주사는 악사와 악기들을 볼 수 있다. 오른쪽 악사는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 연주자의 무릎 위에 거문고를 올려 연주 당시의 주법을 엿볼 수 있다. 가운데에는 손으로 박자를 치면서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왼쪽에는 팬플룻, 작은북 등을 가지고 연주하는 악사를 볼 수 있다.
천상세계는 신선들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화상석에 그려진 그림들에는 사람들이 해, 달, 선상의 신들, 천상의 동물, 서왕모(西王母)나 동왕공(東王公) 등을 통해 우주를 재창조하고 있다. 우주와 천상세계는 우주와 삶에 대한 인식과 현세에서 천상세계로 승천하고자 하는 소망을 반영하고 있다.
상단에는 서왕모가 따르는 무리들의 인사를 받고 있다. 무리 중에는 조두의 선인, 세가의 발을 가진 새,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동물, 방아 찧는 토끼 등이 있다. 토끼가 찧고 것은 불로불사의 선약이다.
중단에는 기마 행렬을 표현하고 있다. 마차에는 조상으로 보이는 인물이 타고 있다. 창을 든 인물과 말을 탄 인물 마차를 앞뒤에서 호위하고 있다.
하단에는 사냥하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畢라는 사냥용 그물을 들고 있는 일물과 사냥개가 토끼를 쫓고 있다. 왼쪽에는 매라고 생각되는 새와 사냥개가 토끼를 노리고 있습니다. 당시 사냥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전체를 상하 4단으로 구획하고 있다. 신선이 사는 천계,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조상이라 생각하는 인물, 주공 단 고사, 사냥이 행해지는 지상 세계를 각각 나타내고 있습니다. 화상석에는 무덤의 주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고사故事를 표현하고 있다.
주공(周公)이 성왕을 돕는 장면(周公辅成王)과 공자가 노자를 만나는 장면(公子见老子画像石)을 표현하고 있다. 2개의 고사를 하나의 장면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는 사냥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상하 5단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최하단 일부만 남아 있다. 최상단에는 ‘증삼의 어머니’ 고사를, 그 아래에는 술잔치 장면을, 3단째는 잔치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을 표현하고 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윗부분에는 증삼살인曾參殺人 고사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직조기에 있는 여성에게 남성이 다가와 말하고 있다. 이 여성은 공자의 제자인 증삼의 어머니로 보인다. 이름이 같은 사람이 살인을 했을 때, 아들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고 잘못 전해져도, 어머니는 전혀 놀라지 않고 있었지만, 같은 말을 세 번째로 들었을 때는 믿게 되었다는 고사이다. 왼쪽 인물은 실을 뽑고 있다.
두 사람이 육박 놀이를 하면서 놀고 있다. 옆에는 잔에 술을 따르는 사람이 있다. 벌주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3번째는 합에 끼워진 용기 바로 아래에 또 한층 큰 다른 용기를 놓고 있다. 술이나 조미료 등의 액체를 여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는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가운데 음식이나 식기를 늘어놓은 봉이 쌓여 있다. 책임자로 보이는 인물이 지시를 하고 있다.
화면 전체를 상하 좌우로 구획한 후, 각 구획내에 봉황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어떤 봉황도 내향으로 한쪽 다리를 밟은 모습으로 표현하여 화면 전체에 리듬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봉황은 천계에 살고 있다고 믿어진 허구의 생물로, 화상석에 많이 조각되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왼쪽 상단에는 긴 왕관을 가진 봉황이 양날개와 꼬리 날개를 가득 펼치고 있다. 꼬리 날개 깃털에는 공작처럼 눈알 모양을 볼 수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다른 봉황이 같은 자세로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 사이에는 음식과 그릇이 놓여 있다.
왼쪽 하단에는 그릇 모양으로 구부러진 부리와 닭 벼슬을 가진 가진 봉황이 유연하게 걷고 있다. 그 뒤로 하늘을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 하단에는 소용돌이치는 구름 가운데 상하 거꾸로 된 봉황을 배치하고 있다. 문양의 윤곽선을 양각이 아니라 음각으로 나타내고 있다.
화상석묘(畵像石墓)는 석재와 벽돌을 이용하여 방을 만들고 기둥과 벽면 등에 다양한 장면을 표현한 화상석으로 장식한 고분이다. 한무제 때 장건이 실크로드를 개척한 이후 서역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주로 전한 말기부터 후한때까지 크게 유행하였다. 중국에서 화상석묘가 발굴되는 곳은 하남성 남양(南陽), 산동성 소북(蘇北), 사천성, 협서성 진서(晋西)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산업이 크게 발전했거나, 지리적으로 서역과의 교역창구였던 지역으로 부호들이나 고관들이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날부터 중국의 무덤에는 자손이 조상을 모시기 위한 사당이 있었다. 이 3면의 화상석은 한 세트로 사당의 벽면을 구성하고 있던 것이다. 내벽에는 다양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달에 사는 토끼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볼 수 있다.
그 아래에는 우禹임금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 치수 공사를 실시해 공적이 있던 우왕이 치수를 위해 사용되었던 도구를 가지고 있다.
옆면에는긴 창들 들고 있는 인물이 호랑이와 싸우고 있다. 그 아래에는 연회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아래에는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술을 건네주는 인물, 새와 물고기 등의 음식물, 식기 등이 조각되어 있다.
가운데 화상석에는 마차행렬과 사당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마차 행렬에 새와 짐승들이 따르고 있기 때문에 조상의 행렬이 천계에서 제사를 올리는 사당으로 이동하고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아래편 오른쪽에는 가지가 얽힌 노목이 있으며, 그 아래에서 제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자손이 조상을 모시는 장면을 조각하면서 실제 조상의 혼령이 내려 오기를 바랬던 것으로 보인다.
앞면에도 제사 모습읖 표현하고 있다. 받침대 위의 동상에 대해 제물을 바치고 있다.
중국의 화상석
기원전 2세기 되면서 중국의 무덤은 단순한 굴이 아니라 벽이나 천장을 갖추게 되고 마치 지하의 저택과 같은 조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유족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당이란 건물을 지상에 설치한 무덤까지 나타났습니다. 무덤과 사당의 건축자재로서는 특시 산동성이나 허난성의 남부 등에서는 견고한 돌이 선호되고 그 표면에는 다양한 제재로 그림이 새겨졌습니다. 이렇게 조각을 새긴 돌을 화상석이라고 하며 후한 시대의 2세기 경까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냉용은 술잔치, 취사 장면 등 현실세계를 바탕으로 한 것을 비롯하여 신화나 선인의 세계까지 광범위에 걸쳐 있습니다. 따라서 화상석의 석각화는 예술작품으로서, 그리고 당시의 생활풍속이나 사상을 나타내는 역사자료로서도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출처>
- 안내문, 도쿄국립박물관, 2024년
- 안내문, 중국 산동성박물관, 2014년
- Wikipedia,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