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질토기는 원삼국시대에 주로 만들어진 토기로 단단하기와 바탕흙의 성분이 기와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방처럼 밀폐된 가마에서 구워져 회백색을 띠고 있다. 와질토기는 다양한 형태로도 만들어졌으며 주로 무덤에 껴묻거리로 주로 이용되었다. 습니다. 4세기 이후 높은 온도에서 구워진 경질토기가 만들어지면서 신라 고유의 특색을 보여주게 되었다. 직선적이면서 기하학적 무늬,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인 토우로 장식한 것이 주요 특징이다.
새로운 기술로 토기를 빚다
사로국 초기에는 이전의 민무늬토기를 계속 사용했지만 이후 와질토기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와질토기는 단단하기와 바탕흙의 성분이 기와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사금 시기를 대표하는 토기입니다. 지붕이 업슨 한뎃가마에서 구워 붉은 색을 띠는 민무늬토기와는 달리 밀폐된 가마에서 800~900℃로 구워 내 회백색을 띱니다. 그릇 모양은 민무늬토기에서 유래한 것이 많으나 점차 굽다리가 붙고 뚜껑이 갖추어지는 등 새로운 종류들이 나타났습니다. 4세기에 가까워지면서 와질토기에 이어 경질토기가 나타났습니다. 경질토기는 밀폐된 굴가마에서 1,000℃가 넘는 높은 온도로 구워 회청색을 띠며, 신라와 가야의 토기가 뚜렷이 구분되기 시작하는 것도 이 시기부터입니다. 신라 토기는 항아리와 굽다리접시, 잔 등 토기의 종류는 가야 토기와 비슷하지만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가야 토기에 비해 직선적이며, 기하학적 무늬나 흙으로 빚은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인 토우를 붙여 장식한 것이 많습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
신라가 왕조국가로 통합될 즈음인 3~4세기에는 지배층 무덤에 새 모양 주전자를 묻는 풍습이 유행하였다. 죽어서 천상의 세계로 날아가고픈 당시 사람들의 바람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새 모양 토기를 왜 무덤 안에 넣었을까
3세기 중반 무렵 사로국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 동쪽의 무덤에서는 새 모양 토기가 발견됩니다. 새는 오리모양인데 특이하게 위로 볏이 붙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 토기는 술 등 액체를 담았다가 따르는 주자입니다. 몸통 속은 비어 있고 등과 꼬리 부분에 있는 구멍으로 액체를 넣거나 따를 수 있습니다. 장례 의식에 사용한 뒤 무덤에 넣은 듯 합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변진조에는 “장례에 큰 새의 깃털을 사용하는데, 이는 죽은 이가 날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새 모양 토기 역시 죽어서 천상의 세계로 날아가고픈 당시 사람들의 바람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
무늬토기는 토기의 겉면에 동물.사람.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거나 점토를 덧붙인 것, 또는 토기의 겉면에 안료를 바르거나 문질러서 채색효과를 낸 토기들을 말한다. 토기에 새겨져 있는 내용은 말.사슴.호랑.거북.돼지 등의 동물, 그리고 사람이나 기하학적인 무늬 등인데, 이들은 대체로 거칠고 간략한 석각무늬로 표현되어 있다.
토우(흙인형)란 보통 흙으로 만든 인물상인데, 넓은 의미로 동물이나 생활용구.집 등을 본떠서 흙으로 빚어 만든 것을 일컫기도 한다. 토우는 주로 고대국가에서 조성한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주술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 많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무덤의 껴묻거리라고 할 수 있다. 경주박물관에서는 경주 대릉원에서 출토된 토우장식 항아리(국보)를 전시하고 있다. 이 항아리에는 신라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토우들로 장식하고 있다. 다산을 기원하는 남녀의 성행위를 묘사한 토우, 배부른 임산부가 가야금을 타는 토우, 토끼와 뱀, 개구리, 거북 등의 동물들을 간략하면서도 그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1973년 미추왕릉지구 정화사업을 위해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출토되었습니다. 간목 항아리에 사람과 자연의 생명체를 주제로 한 다양한 형상의 토우를 부착하여 최대의 장식효과를 낸 신라의 대표적인 토우장식항아리입니다. 항아리의 목과 어깨부분에는 개구리의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과 오리모양 토우를 세 곳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에 성기가 강조된 남자, 신라금을 타고 있는 사람, 물고기.새.거북 등의 토우를 장식하였습니다. 순간 포착된 생동감과 진흙의 투박함이 넘치는 이라한 장식토우들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조형물로서 신라인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자연과 조화된 당시 사람들이 정신셰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
경주 대릉원 미추왕릉 부근 무덤에서 출토된 도기로 만든 명기이다. 거북모양의 몸을 하고 있으며, 머리와 꼬리는 용모양이다. 머리는 S자형으로 높이 들고 있고 목덜미, 등, 꼬레 뿔이 붙어 있다. 몸통은 비어있고 가슴에는 물을 따르는 주구(注口)가, 있고 엉덩이에 밥그릇 모양의 주입구(注入口)가 있어 주전자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토기에 보이는 신라인의 모습
신라 무덤에서는 말, 오리 같은 동물은 물론 배, 수레, 뿔잔, 집, 신발처럼 특정한 물건을 본떠서 만든 상형토기가 종종 발견됩니다. 상형토기는 장례를 치를 때 술 같은 액체를 담아 따르는 데 쓰였던 것으로, 의식이 끝난 뒤 사후 세계를 위해 무덤에 넣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신라 사람들은 굽다리접시나 긴목항아리 등에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흙으로 작게 빚은 토우를 붙이거나 갖가지 무늬를 새겨 장색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하지만 사실적으로 표현한 상형토기나 토우 등에서 신라 사람의 생활 모습과 희로애락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
<출처>
- 안내문, 국립경주박물관, 2024년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 위키백과,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