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고분에서는 실크로드를 통해서 서역에서 들여왔을 것으로 보이는 유리제품들이 출토되고 있어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활발했던 교류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유물들은 신라가 서역과 직접 교류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교의 전파와 함께 당시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가 활발했던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는 견해도 있다. 서역물품들은 신라뿐만 아니라 삼한 이래로 백제, 가야에서 그 사례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신라만의 특징은 아닌 듯 하다.
리톤(Rhyton)으로 불리는 쇠뿔 형태의 뿔잔(각배)은 멀리 지중해 연안과 서아시아에 기원을 두고 있다. 서역과의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출토지가 알려진 뿔잔은 많지 않지만 대체로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김해, 부산, 창녕, 달성 등에서 출토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뿔잔
뿔잔은 소나 양 등의 뿔을 이용하여 만든 잔으로 초원지대에 살던 유목민들이 즐겨 썼다고 합니다. 그리스어로는 리토이라고 하여 그리스, 로마,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에서 널리 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뿔잔은 삼국시대부터 보입니다. 대체로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의 영향을 받았던 지역에서 확인됩니다. 신라의 뿔잔에는 신라인의 토기에 장식하던 무늬가 새겨져 있거나, 뿔잔의 받침대가 신라의 굽다리접시 다리 모양을 하고 있어 신라화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
계림로 보검(보물)은 경주시 황남동 계림로에 있는 작은 고분에서 출토된 길이 36 cm의 칼이다. 철제 칼집과 칼은 녹슬어 남아 있지 않고 금으로 된 장식만 남아 있다. 자루 끝부분은 골무처럼 생겼는데 가운데 붉은 마노를 박았다. 가운데에는 있는 반원형 돌출부는 칼을 허리에 매달기 위한 장치이다. 금알갱이를 붙인 금판의 내부에 붉은 석류석과 유리를 넣었다. 이런 형태의 칼은 동아시아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유럽이나 중동지방에서 발견되는 형태로 당시 동,서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황금보검의 주인은 누구인가
계림로 14호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으로 두 명의 남성이 묻혀 있었습니다. 신라의 대외교류를 보여주는 보물인 황금보검의 주인은 왼쪽 사람으로 혹시 서아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계림로 14호 무덤에는 황금보검 이외에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 없고, 무덤의 구조나 장례 방식에서 신라의 전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먼 서쪽나라에서 제작되어 들어온 이 귀한 보검의 주인은 신분이 매우 높은 신라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
유리그릇이나 유리잔 등은 서아시아지역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물들은 동부 지중해 연안에서 제작된 로마 유리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유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비단길 또는 바닷길로 신라에 전해졌다고 한다.
유리그릇
고대 사회에서 유리는 황금에 버금가는 귀중한 재료였습니다. 유리 그릇은 최상의 교역품이었으며, 신라로 전해진 대부분의 유리그릇은 동부 지중해 연안에서 제작된 로마 유리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유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신라 유리그릇은 지금까지 25개가 확인되었는데 금관이 출토된 황남대총과 서봉총, 금관총, 금령총, 천마총에도 모두 유리그릇이 부장되어 최상의 위세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황남대총 남쪽 무덤에서 7개, 북쪽 무덤에서는 4개의 유리그릇이 출토되었습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
실크로드를 거쳐 온 물품
신라는 한반도 동남쪽 끝에 자리하였으나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발전하였습니다.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 사실을 보여주는 이국적인 물품에는 수입품도 있고 외래의 영향을 받아 신라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지중해 연안이나 중앙아시아 등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만들어진 물품이 어떤 연유와 경로로 신라까지 전해졌을까요? 초원길과 비단길, 바닷길 등을 통해 신라는 머나먼 지역과 교류하거나 정보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특히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리그릇은 신라의 왕릉급 무덤에서만 확인되었습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
<출처>
- 안내문, 국립경주박물관, 2024년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 위키백과,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