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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박물관] 청동기, 철기 시대

한반도 청동기문화는 중국동북지방의 영향을 받은 것을 보이며 이시기의 무덤형태인 고인돌의 분포와 비슷하게 청동기 시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청동기는 권위의 상징물이나 의기로 주로 사용되었으며, 실제로는 간석기나, 목기 등이 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강원지역의 청동기 유적들은 신석기 유적지와 비슷하게 남한강, 북한강 주변의 춘천, 횡성, 양구, 정선 등과 동해안 지방의 고성, 속초, 양양, 강릉 등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다.

<청동검, 홍천 방량리><요령식 동검>

표면에 무늬가 없는 민무늬토기는 새로운 기술의 토기들이 전해지는 철기시대나 삼한시대 초기까지 사용되었다. 강원 지역에서의 청동기시대 토기는 강릉 교동.방동리.방내리.송림리, 정선 여량리, 속초 조양동, 양양 포월리, 원주 가현동, 화천 용암리, 홍천 철정리.외삼포리, 춘천 천전리.신매리.거두리.우두동 유적 등에서 출토되고 있다.

<항아리모양토기, 영월 와석리><돋은띠무늬토기, 홍천 하화계리><구멍무늬 토기, 강릉 방내리><민무늬토기, 철원 와수리>< 겹아가리토기, 강릉 교동>
<새김 돋은띠무늬 토기, 정선 여량리, 홍천 철정리><구멍무늬 토기, 평창 후평리,평창 약수리, 홍천 하화계리, 춘천 신매리>
<붉은간토기, 정선 어량리, 강릉 방동리, 강릉 방내리, 평창 약수리, 춘천 거두리><항아리모양토기, 영월 와석리, 춘천 신매리, 춘천 천전리, 춘천 산천리>
<덧띠토기, 고성 초도리, 삼척 갈천동.증산동, 강릉 방동리, 고성 제진리><민무늬토기, 강릉 교동, 고성 송현리.사천리, 속초 조양동, 춘천 천전리, 춘천 신매리, 원주 문막리, 화천 용암리><새김 돋은띠무늬 토기, 홍천 외심포리>
<구멍무늬 토기, 평창 약수리, 홍천 하화계리, 춘천 신매리, 양구 고대리, 속초 조양동, 춘천 천전리, 춘천 신매리>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그릇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토기 표면에 장식이 없는 민무늬토기를 사용했습니다. 진흙에 굵은 모래를 섞어 표면은 거칠고 형태도 투박했지만 빗살무늬토기에 비해 더 단단하고 실용적인 토기로 발전한 것입니다. 간혹 무늬를 새길 때는 아가리 부분에만 단순한 빗금을 긋거나 구멍을 뚫었습니다. 특별한 용도의 토기는 별도로 정성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아주 고운 흙을 사용해 그릇을 만들고 표면에는 산화철을 바른 후 반질반질하게 갈아 만든 붉은간토기는 장례를 비롯한 각종 의례 활동에 사용되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청동기는 지배자의 꾸미개나 무기, 의기 등 매우 제한적으로 만들어진 데 비해 일상생활도구는 나무나 돌로 만든 도구가 널리 사용되었다. 돌로 만든 칼, 화살촉, 창끝 같은 무기류, 반달돌칼, 낫, 괭이, 호미.가래 같은 농기구와 나무를 베거나 다듬는 데에 이용된 도끼, 대팻날, 끌, 자귀 등의 공구, 가락바퀴나 숫돌 같은 생활용구, 그리고 음식 가공에 쓰인 갈돌과 갈판 등이 있다. 이외에도 지배자들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한 바퀴날도끼와 톱니날도끼 등이 있다.

<뒤지개, 양구 하리, 춘천 중도동, 홍천 외삼포리, 평창 종부리>
<‘ㄱ’자 모양 돌칼, 평창 약수리, 강릉 방내리, 영월 삼옥리, 속초 조양동>

반달돌칼은 농구류 가운데 반달돌칼은 곡식의 이삭을 따는데 사용되는 수확용 도구이다. 원래 중국의 화북지방에서 발달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에 벼농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사용되다가 철기가 생산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반달돌칼, 홍천 철정리, 정선 여량리, 춘천 우무동, 원주 가형동, 속초 조양동, 강릉 방동리 강릉 방내리, 강릉 입암동, 고성 송현리.사천리, 춘천 금산리, 춘천 신매리, 화천 거례리, 화천 용암리>

수확량의 증가와 수확 도구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이 본격화됩니다.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곡식을 수확하기 위한 도구도 새로 고안됩니다. 반달돌칼은 끈을 매달아 손에 끼워 쉽게 이삭을 수확할 수 있게 만든 도구로 농경이 보편화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조갯날도끼, 춘천 천전리, 춘천 금산리, 춘천 신매리, 춘천 철정리, 고성 송현리.사천리, 삼척 갈천동.증산동, 출토지 모름>
<돌끌, 화천 용람리, 춘천 신매리, 춘천 발산리, 춘천 천전리, 춘천 중도동>
<자귀, 춘천 신매리, 춘천 삼천동, 춘천 발산리, 양양 포월리, 춘천 천전리, 화천 용암리, 강릉 방동리>

홈자귀는 ‘ㄱ’자 모양 자루에 묶어 쓸 수 있도록 피홈이 패여 있는 자귀의 일종으로, 청동기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다. 나무를 가공하는 목공구, 농사를 지을 때 땅을 파는 도구, 일반적인 도끼 등 다목적으로 사용되었다. 함경도의 일부 지방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전역에서 출토되며, 기원전후에 중국제 쇠도끼가 들어오면서 다른 석기들과 같이 소멸된 것으로 보고 있다.

<홈자귀, 춘천 천전리, 강릉 방동리, 고성 송현리.사천리, 춘천 중도동, 화천 용암리, 화천 거례리>

나무를 가공하는 여러 도구들
마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나무 울타리를 치고 생활에 필요한 집과 창고를 짓는 등 청동기시대 건축의 주 재료는 나무였습니다. 나무를 베고 용도에 맞게 손질할 때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도끼나 자귀를 사용하였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뚜르개><가락바퀴>
<숫돌>
<돌창>
<돌화살촉>
<화살촉과 화살대, 정선 여량리,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 화살대와 화살촉
춘천 천전리 유적과 정선 아우라지 유적에서 청동기시대 화살이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아우라지 화살대는 화살촉과 결합되는 부분이 잘 남아 있으며, 수종 분석 결과 버드나무로 만들어진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사냥도구에서 무기로
농경이 보편화되었지만 사냥은 여전히 식생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구석기시대 말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활은 점차 위력적으로 발전하여 훌륭한 사냥 도구로 쓰임과 동시에 전투용 무기로도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찌르개살><돌칼을 재활용한 반달돌칼><썰개>

도구의 전문화와 재활용
청동기시대에는 돌을 이용해 더욱 다양한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돌도끼는 나무를 자르는 도끼날과 가공을 위한 자귀날을 구분하여 썼고, 곡물 수황용 낫과 이삭만을 따기 위한 반달돌칼을 별도로 구분하여 제작.사용하였습니다. 단순히 집단의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라 활동도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또한 부서진 토기를 그물추로 재활용하거나 부러진 돌칼을 수리하여 반복 사용하는 등의 지혜로운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그물추><토기를 재활용한 그물추>

간돌검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석기이다.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연해주와 일본규수지방에서 출토되고 있다. 주로 고인돌과 돌널무덤에서 출토되지만 집터에서 나온 경우도 있다. 초기에는 실제 사용한 것으로 보이나 후대에는 무덤에 묻기 위해 과장된 형태로 만들어졌다.특이하게 한반도에서는 많이 출토되고 있으나 야요이시대 일본에서는 많지 않은 편이다.

<간돌검, 횡성 중금리, 속초 장사동, 강릉 주문진, 평창 약수리, 영월 와석리, 원주 문막리>
<간돌검, 평창 약수리, 영월 와석리, 원주 문막리, 원주 가형동, 횡성 중금리, 평창 계장리, 횡성 반곡리>

달도끼는 바퀴날도끼라고도 부르며 청동기시대에 사용된 돌도끼이다. 실제 무기 등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별도끼와 함께 의식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달도끼, 춘천 천전리, 고성 대대, 영월 와석리, 평창 약수리, 춘천 신매3리><별도끼, 춘천 신매3리, 영월 와석리>
<청동검, 횡성 강림 1리, 양양 정암리, 고성 사평리>
<칼자루 끝 장식, 강릉 송림리, 양양 북평리, 강릉 방동리, 춘천 우두동, 고성 송현리.사천리>
<청동 잔무늬 거울, 횡성 강림리, 청동기시대><청동 잔무늬 거울, 양양 정암리, 청동기시대>

지배계급의 출현
청동기시대에는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지도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청동검과 청동거울, 둥글거 톱니바퀴 모양을 한 도끼를 몸에 지녔고, 이것으로 신분과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울타리를 두른 청동시시대 마을
집단 규모가 대형화되면서 청동기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춘천 천전리 유적의 경우 집터 75동이 발견되어 당시 마을의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마을에는 외부로부터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 시설이 필요해졌습니다. 마을 외곽을 둘러싸는 높은 목책, 환호, 외부 감시용 망루 등을 설치하여 주민과 가축을 보호하였습니다. 마을 바깥에는 농경지와 함정, 그리고 고인돌과 같은 무덤 영역이 있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조양동 고인돌에서는 부채모양 청동도끼가 출토되었다. 부월이라고도 불리는 도끼는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의기로서의 역할을 했던 도구이다.

<속초 조양동 고인돌 출토품, 1 부채도끼, 2 돌화살촉, 청동기시대>
<춘천 천전리 고인돌 출토품, 1 돌화살촉, 2 돌로 만든 꾸미개, 청동기시대>
<인제 월학리 고인돌 출토품, 1 간돌검, 2 돌화살촉, 청동기시대>
<춘천 발산리 고인돌 출토품, 간돌검, 청동기 시대>
<춘천 우두동 돌널무덤 출토품, 1 청동 검, 2 동화살촉, 3 곱은옥, 청동기시대>
<춘천 우두동 돌널무덤 출토품, 4 돌화살촉, 청동기시대>

청동기 사람들의 무덤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은 고인돌이지만 돌로 만든 관을 만든 돌널무덤과 무덤 주변에 도랑을 두른 도랑 갖춘 무덤도 만들었습니다. 무덤 안에는 청동검과 거울, 간돌칼, 화살촉 등을 함께 묻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평창 종부리 도랑 갖춘 무덤 출토품, 1 민무늬 토기, 2 붉은간토기, 3 돌화살촉, 4 돌화살촉>
<춘천 천전리 도랑 갖춘 무덤 출토품, 1 토기 조각, 2 돌화살촉, 3 반달돌칼, 4 갈돌, 5 가락바퀴, 청동기시대>

도랑 갖춘 무덤
시신이 묻히는 구덩이 주위에 일정한 형태의 도랑을 파 돌린 무덤입니다. 고인돌, 돌널무덤과 함께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무덤이며 춘천 천전리유적, 평창 종부리유적 등에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춘천 천전리유적에서는 도랑에서 반달돌칼이 출토되어 당시 의례활동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청동기시대, 사회 조직의 태동
청동기시대에는 금속기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대규모 공사와 공동 노동이 발생하여 이에 대한 관리가 필요해지면서 계급이 생겨나고 대규모 마을이 형성되는 등 사회 구조가 복잡해집니다 주거 형태를 살펴보면, 기원전 8~7세기 강원 지역에는 사각형 집터로 대표되는 천전리형 집터가 등장하였습니다. 이 시기 다른 지역에서 원형 집터 중앙에 기둥 구멍이 있는 송국리형 집터가 나타난 것과 대비됩니다. 한반도 전역에서 확인되는 고인돌도 이 시기에 축조되며, 도랑을 갖춘 무덤도 만들어집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기원전 1세기무렵, 한반도 전 지역으로 철기문화가 확산되면서 단단하고 예리한 철제 농기구와 무기의 발달을 가져와 사회분화가 촉진되고 지배질서가 확립되면서 각지에 새로운 정치집단이 등장하였다. 이 시기의 생활모습은 낮은 구릉이나 강변 대지에 위치한 집터나 토기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춘천 중도, 횡성 둔내, 양양 가평리, 강릉 안인리 등의 집터 유적이 대표적이다.

<출입구가 달린 집>

강원지역 철기시대 주거시설은 돌출된 출입시설이 달린 평면 ‘凸’자나 ‘呂’자 모양 움집입니다. 집 내부 벽면에 판자를 사용하여 벽을 만들었고 집 가운데에는 돌을 이용해 취사와 난방을 위한 화덕을 설치하였습니다. 화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벽 쪽으로 이동하여 ‘一’자나, ‘ㄱ’자 모양 구들로 발전하였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탄화된 짚, 춘천 지내리, 철기시대><불에 탄 쌀, 춘천 율문리, 철기시대>
<쇠삽, 춘천 율문리, 홍천 성산리, 춘천 중도동, 강릉 강문동, 춘천 근화동>
<괭이, 강릉 강문동, 홍천 성산리, 홍천 하화계리, 정선 예미리, 동해 송정동, 춘천 근화동>

삽과 괭이
농경의 규모가 커지면서 청동기시대 땅 뒤지개는 삽과 괭이로 기능이 세분화됩니다. 철제 삽과 괭이는 날의 끝부분만 철로 만들고 나무 자루에 끼워 사용하였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가락바퀴, 강릉 병산동, 동해 송정도, 강릉 강문동, 강릉 안인리>
<쇠끌, 홍천 성산리, 양구 고대리,동해 송정동><숫돌, 강릉 교항리, 양양 지경리, 횡성 둔방내리, 강릉 안인리>
<손칼, 양구 고대리, 영월 삼옥리, 춘천 우두동>
<쇠낫, 동해 송정동, 영월 주천리, 춘천 중도동, 홍천 성산리>
<작살, 동해 송정동>
<작살, 홍천 성산리, 평창 천동리, 동해 송정동>
<옥으로 만든 목걸이, 횡성 둔방내리, 동해 송정동>
<흙으로 만든 동물, 1 강릉 병산동, 2 춘천 우두동, 철기시대>
<철복, 춘천 우두동, 철기시대>
<오수전, 1 강릉 초당동, 2 춘천 천전리, 철기시대>
<추, 강릉 안인리, 철기시대><쇠낚시바늘, 강릉 강문동, 철기시대>

일상도구
철기시대 강원 지역에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재료인 철로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철은 청동에 비해 단단하여 더 실용적이었습니다. 철로 만든 삽날, 괭이, 낫 같은 농기구와 작살 같은 어로 도구를 이용해 보다 풍요로운 경제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송풍관>
<쇠찌꺼기>
<도가니>

망상 유적은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의 동해안 모래언덕 위에 형성된 집터 유적이다. 발굴조사 결과 4세기 중반부터 5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철(凸)자 모양의 집터가 확인되었으며, 여기에서는 토기를 비롯한 각종 철기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단야로를 비롯하여 모룻돌, 숫돌, 송풍관, 노바닥, 단조박편, 폐철 야적장 등 철기 제작 관련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었다.

<단야로와 송풍관, 동해 송정동, 철기시대>

철의 수입과 가공
강원 지역 철기시대에 관한 기록 중 <삼국지> 위서 동이열전 한조에는 “진한에서 철이 생산되는데 예, 왜, 마한이 모두 와서 사간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동해 망상동에서는 철을 두드려 철기를 만드는 단야로가 확인되었고, 춘천 우두동 철기시대 유적에서도 단야로와 관련된 철기 제작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습니다. <삼국지>의 기록과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조사 성과를 종합해 보면 강원 지역에서는 반제품 철을 수입하여 가공해서 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쇠화살촉, 강릉 강문동, 춘천 우무동, 평창 천동리, 원주 동화리, 평창 약수리, 홍천 성산리, 동해 송정동, 홍천 철정리, 양구 고대리, 춘천 율문리, 영월 삼옥리, 철원 와수리, 원주 가현동, 춘천 중도동, 정선 예미리>
<고리자루 칼, 평창 천동리, 동해 송정동, 춘천 우두동, 양구 고대리>
<뼈화살촉 강릉 강문동, 철기시대, 강릉 강문동><화살촉, 철원 와수리, 철기시대>
<쇠화살촉, 춘천 중도동, 홍천 성산리, 양구 고대리, 평창 천동리>
<쇠화살촉, 강릉 강문동, 원주 가현동, 춘천 중도동 정선 예미리, 평창 천동리>
<쇠칼, 춘천 율문리>
<쇠투겁창, 강릉 강문동>
<쇠창, 춘천 우두동>
<쇠물미, 동해 송정동, 강릉 강문동, 홍천 성산리>
<쇠도끼, 동해 송정동, 강릉 주수리, 원주 가현동, 홍천 성산리>

철제 전쟁 무기
철기시대에는 지역 간 전쟁이 더욱 빈번해졌습니다. 이 시기 강원 지역에서도 철을 이용한 창, 도끼, 화살촉과 같은 무기들이 많이 만들어져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돌을 쌓아 만든 무덤
강원 지역 철기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은 강돌을 쌓아 만든 돌무지무덤입니다. 현재까지 돌무지무덤은 남한강과 북한강, 임진강 유역에서 확인됩니다. 돌무지무덤은 대체로 강 가까이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돌무지무덤에서는 옥, 두드림무늬 토기 무늬없는 단단한 토기, 청동기, 철로 만든 손칼과 화살촉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토기 회전판, 춘천 천절리, 철기시대><받침모루, 강릉 안인리, 철기시대>

회전판으로 만든 토기
철기시대 토기 제작에는 회전판이 등장합니다. 회전판의 원심력을 이용해 토기 형태를 다듬는 것인데, 이로써 작업 속도와 토기의 균형미가 향상되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단단한 민무늬 토기>
<단단한 민무늬 토기>
<단단한 민무늬 토기>
<단단한 민무늬 토기>
<잔>
<세발토기><네발토기><중도식 토기>
<중도식토기>
<두드림무늬 토기, 원주 가현동, 춘천 중도, 춘천 율문리, 양양 가평리, 춘천 근화동 홍천 성산리>
<검은간토기, 동해 송정동, 양양 동호리, 양양 가평리, 춘천 우두동>
<평평한 바닥 목긴 항아리, 춘천 우두동, 동해 송정동, 강릉 안인리><화분모양 토기, 춘천 우두동><새모양 토기, 동해 송정동><두귀 달린 잔, 원주 반곡동><일본계토기, 강릉 강문동><시루, 영월 주천리, 홍천 하화계리>
<시루, 홍천 성산리, 강릉 안인리, 원주 반곡동, 춘천 신매리, 횡성 둔방내리, 동해 송정동>
<소형토기, 동해 송정동, 원주 반곡동, 횡성 둔방내리, 강릉 방동리, 양양 동호리, 강릉 강문동>
<작은 항아리>
<단단한 민무늬토기>
<단단한 민무늬토기>
<단단한 민무늬토기>
<단단한 민무늬토기>

중도식 토기
중도식 토기는 우리나라 중부 지역에서 주로 발굴되는 철기시대의 단단한 민무늬 토기를 말합니다. 춘천 중도 유적에서 다량으로 확인되어 비슷한 모양의 토기 전체를 부르는 이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중도식 토기의 종류는 독, 항아리, 바리, 시루, 완, 뚜껑 등이 있으며, 아가리가 밖으로 벌어진 형태가 많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철기시대
기원전 100년 무렵 강원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중부지역에서는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은 입구가 돌출된 네모꼴 움집으로 내부에는 취사와 난방 시설이 있었습니다. 또 무늬없는 단단한 토기와 두드림무늬 토기를 사용했으며, 강변에 강돌을 쌓아 돌무지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집터와 토기, 도구, 무덤 양식은 강원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중부 지역에서 폭 넓게 확인됩니다. 이와 같은 문화를 ‘중도문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출처>

  1. 안내문, 춘천박물관, 2012년/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