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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박물관] 삼국시대, 강원에 진출한 삼국

삼국시대 강원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변방에 위치했지만, 세나라를 잇는 주요한 길목이었다. 영서 지역은 백제와 고구려의 영향권에 있었으며, 영동 지역은 신라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여러 유적지에서 출토되고 있다.

<청자 양모양 그릇, 복제품, 원주 법천리, 삼국시대 백제>

중국에서 온 양 모양 청자
중국 동진의 양 모양 청자와 동일한 것이 원주 법천리 무덤에서도 출토되었습니다. 당시 이 지역이 백제 영역이었으며 백제와 중국이 활발하게 교역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삼국시대, 강원에 진출한 삼국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고대국가로 성장.발전하면서 4세기 무렵 강원 지역은 삼국이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중요한 길목이었습니다. 강원 지역은 북한강과 남한강, 동해안을 이용한 교통로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로를 따라 영서 지역에는 백제와 고구려가, 영동 지역에는 일찍부터 신라가 진출하였습니다. 이후 신라는 영동 지역을 교두보 삼아 한강 유역으로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원주 법천리에서는 중국 동진에서 수입한 양모양 청자와 청동자루솥이 백제 유물과 출토되어 이 지역이 백제 영향권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백제를 통한 중국과의 교류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자루솥, 원주 법천리, 삼국시대 백제>
<원주 법천리 출토 철기, 삼국시대 백제, 1 발걸이, 2 투겁창, 3 철도자, 4 낫>
<살포, 홍천 혜화계리, 삼국시대 백제><원주 법천리 출토 철기, 삼국시대 백제, 5 도끼>
<원주 법천리 출토 토기, 삼국시대 백제, 1 깊은 바리, 2 뚜껑 있는 항아리, 3 짧은목항아리, 4 항아리>

백제 토기
백제 토기는 일상용 그릇과 특수 용도의 그릇으로 구분됩니다. 특수 용도의 토기는 고운 점토로 만들고, 일부는 표면을 흑색으로 물들이고 마연했습니다. 이에 비해 일상용 그릇은 모래가 많이 섞인 흙으로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원주 법천리 출토품, 삼국시대 벡제, 1 곱은옥, 2 대롱옥>
<원주 법천리 출토품, 삼국시대 벡제, 3 귀걸이, 4 신발조각>
<원주 법천리 출토품, 삼국시대 벡제, 5 뚜껑, 6 집게>

백제의 강원 진출
원주 법천리 유적에서 청동 자루솥과 양 모양 청자, 말갖춤 등 백제 관련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또한 화천 원천리 유적에서는 백제 고유의 검은간토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발굴 자료들은 늦어도 4세기 중후반 무렵에는 백제가 한강을 따라 강원의 영서 지역으로 진출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제는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의해 약 5세기 무렵 강원 영서 지역에서 물러났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고구려는 광개토왕 때 백제 정벌에 나서면서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고 장수왕 떄는 한강유역을 차지한다. 이때 강원도 일부 영역도 고구려 영역에 포함되었다 춘천의 방동리.신매리, 양양 포월리 등에서 확인된 고구려 계통의 돌방무덤 등에서 고구려가 진출했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고구려 토기 조각, 1 홍천 역내리, 2,3, 원주 건등리>

고구려 토기
고구려 토기는 모래가 거의 섞이지 않은 고운 점토로 만들었습니다. 나팔입 항아리와 긴 몸 항아리가 대표적입니다. 표면을 고르기 위해 얕고 거칠게 긁어 불규칙한 사선문이나 격자문을 새기는 암문이나 물결무늬를 새기고 띠 모양의 손잡이를 부착하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널고리, 양양 포월리, 삼국시대 고구려>

고구려의 남하와 강원
고구려는 396년 대대적인 백제 정벌에 나서면서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여 장수왕 때는 이 지역을 차지합니다. 강원 일부 지역도 이 시기에 고구려 영역에 포함되었습니다. 춘천 방동리, 신매리, 양양 포월리 유적 등에서는 고구려계 고분이 발견되었고, 홍천 철정리, 역내리 유적과 원주 건등리 유적 등에서는 고구려 관련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유적들은 남.북한강과 동해안 일대에 고구려의 세력이 미쳤음을 알려 줍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영동지방은 삼한시대에는 부족국가 동예의 영역이었다가 삼국과는 독립된 지역에 가까웠는데 지증왕대 이후에는 대체로 신라의 영역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강원도 동해안 일대의 강릉 초당동, 병산동 일대에서 덧널무덤, 돌덧널무덤과 함께 전형적인 신라 유물인 금동관과 관식 등이 출토되고 있다.

<관, 강릉 초당동, 삼국시대 신라>
<재현품>
<관, 동해 북평동, 삼국시대 신라>
<재현품>


삼국시대에 관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신라의 최고 지배층은 금으로 만든 관을 썼지만, 지바에서는 금동이나 동으로 만든 것을 사용했습니다. 강원 지역에서는 강릉과 동해에서 각각 금동관과 동관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관들은 5세기에서 6세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영동 지역이 오랫동안 신라의 영역이었음을 알려 주는 자료입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귀걸이, 강릉 병산동, 강릉 초당동, 정선 신월리>
<목걸이, 강릉 초당동, 강릉 방내리>
<말띠 드리개, 강릉 초당동, 강릉 병산동, 삼척 성북동>
<운모 꾸미개, 강릉 초당동 삼국시대 신라>
<재갈, 강릉 병산동, 삼국시대 신라>
<발걸이, 강릉 초당동, 삼국시대 신라>
<새날개 모양 관모 꾸미개>
<귀걸이>
<목걸이>
<팔찌>
<허리띠 고리와 꾸미개>
<나비모양 관모 꾸미개, 강릉 초당동, 삼국시대 신라>
<나비모양 관모 꾸미개, 강릉 초당동, 삼국시대 신라>
<투겁창, 동해 송정동, 강릉 초당당, 강릉 병산동, 강릉 강문동>
<물미, 정선 임계리, 강릉 초당동>
<화살촉, 강릉 병산동, 강릉 초당동, 원주 법천리>
<미늘쇠, 강릉 초당당, 강릉 병산동>
<도끼, 강릉 병산동, 강릉 초당동, 강릉 강문동>
<낫, 강릉 병산동, 삼척 성북동, 동해 송정동>
<장식 달린 칼, 강릉 안현동, 삼국시대 신라><칼, 강릉 안현동, 삼국시대 신라><고리자루 큰칼, 강릉 초당동, 삼국시대 신라>

신라, 강원을 차지하다
경주를 중심으로 발전한 신라는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진출하면서 일찍이 강원 영동 지역을 차지합니다. 강릉 초당동 고분에서는 신라 고유의 금동관을 비롯해 화려한 장신구와 고리칼, 말갖춤 등 중요한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신라가 영동 지역을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는 이 지역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6세기 중반에는 영서 지역까지 진출하여 결국 삼국을 통일합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계란 모양 토기, 강릉 병산동 강릉 방내동, 강릉 초당동, 강릉 강문동><손잡이 달린 항아리, 강릉 초당동><짧은목 항아리, 강릉 강문동>
<손잡이 달린 항아리, 강릉 초당동, 강릉 강문동><두귀달린 항아리, 강릉 안현동>
<항아리, 강릉 강문동, 강릉 초당동>
<용이 그려진 항아리, 삼국시대 신라, 동해 북평동><손잡이 달린 항아리, 동해 북평동>
<손잡이 달린 항아리, 강릉 초당동><뚜껑, 강릉 안현동><항아리, 강릉 강문동><굽다리잔, 동해 구호동><소형토기, 강릉 영진리, 동해 북평동, 홍천 역내리, 강릉 병산동>
<손잡이 잔, 강릉 안현동, 강릉 병산동, 원주 법천리, 강릉 방내리>
<굽다리 긴목항아리, 동해 구호동, 강릉 초당동, 강릉 병산동, 강릉 학산리, 강릉 안현동, 강릉 영진리>
<굽다리 긴목항아리, 동해 구호동, 강릉 초당동, 강릉 병산동, 강릉 학산리, 강릉 안현동, 강릉 영진리>
<손잡이잔, 강릉 안현동, 강릉 초당동 동해 구호동>
<손잡이잔, 강릉 안현동, 강릉 병산동, 원주 법천리, 강릉 방내리, 동해 구호동><굽다리 바리, 강릉 병산동, 동해 북평동, 강릉 초당동, 강릉 학산리>
<굽다리 접시, 강령 병산동, 강릉 안현동, 강릉 초당동>
<뚜껑있는 굽다리 접시, 강릉 영진리><뚜껑 있는 굽다리 항아리, 강릉 초당동, 삼척 성북동>
<굽다리 바리, 강릉 안현동><뚜껑, 강릉 병산동, 강릉 영진리><뚜껑있는 굽다리 접시, 홍천 역내리, 강릉 초당동>
<굽다리 긴목항아리, 동해 구호동, 강릉 초당동, 강릉 병산동, 강릉 학산리, 강릉 안현동, 강릉 영진리><뚜껑있는 긴목 항아리, 강릉 초당동>
<굽다리 긴목항아리, 강릉 병산동><항아리, 강릉 병산동, 강릉 안인리>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 강릉 초당동>
<토기, 춘천 근화동, 강릉 강문동>
<항아리, 강릉 안현동, 강릉 병산동, 동해 북평동>
<굽다리 긴목 항아리, 강릉 안현동><뚜껑 있는 굽다리접시, 강릉 초당동><귀달린 항아리, 동해 구호동, 강릉 방내리>
<항아리, 강릉 병산동, 강릉 초당동, 강릉 송정동, 동해 구호동, 강릉 학산리, 강릉 방내리><뚜껑 있는 손잡이 항아리, 강릉 병산동>
<항아리, 강릉 안현동, 강릉 병산동, 강릉 초당동>

강원의 신라 토기
신라 사람들이 만들어 사용한 토기는 주로 1,000℃ 이상에서 구운 단단한 토기들입니다. 그릇 바닥에 높은 다리를 붙인 굽다리 접시나 항아리 등을 올려놓을 수 있는 대형 그릇받침을 만들고, 그 표면에 삼각형이나 원 등의 기하무늬를 새겨 넣었습니다. 영동 지역의 신라 토기 중에는 주로 경주에서 출토되는 고리가 달리거나 토우가 장식된 고급 토기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토기들은 강릉 초당동 출토 금동관과 함께 영동 지역이 신라의 중요한 영토였음을 보여 주는 자료입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뚜껑 있는 손잡이 항아리, 강릉 병산동><손잡이 달린 항아리, 동해 북평동><굽다리 바리, 동해 북평동><굽다리 잔, 동해 북평동><뚜껑있는 항아리, 동해 북평동>

강원 지역의 가야인들
동해 추암동 유적에서는 뚜껑과 그릇이 납작하고 굽다리 구멍이 긴 직사각형이 특징인 대가야 양식 토기들이 발견됩니다. 신라가 562년에 대가야를 멸망시킨 후 가야 지역 사람들을 여러 곳에 분산시키는 정책을 폄에 따라 동해안으로 이주했던 가야인들이 남겨 놓은 토기입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출처>

  1. 안내문, 춘천박물관, 2012년/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