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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박물관] 고려시대의 강원

고려시대 강원도는 산이 많고 농토가 넓지 않아 인구는 적고 생산이 풍부하지 않은 지역이었다. 한강수운을 비롯하여 주요 교통로나 경치가 빼어난 곳에 숙박기능을 갖춘 원(院)이나 큰 사찰이 발달하였다. 또한 금강산을 비롯하여 유명한 산이 많아 경제력에 비해서는 큰 사찰들이 수행공간으로 그 역할을 이어왔다. 금강산의 장안사, 유점사, 건봉사를 비롯하여 설악산의 신흥사, 백담사, 오대산의 상원사, 동해안의 낙산사, 홍천 수타사, 춘천 청량사 등이 있고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는 곳으로는 양양 진전사와 선림원, 강릉 굴산사, 원주의 흥법사, 거돈사, 법천사, 강릉의 굴산사 등이 있다.

<수막새, 영월 흥령선원 터><글자를 새긴 기와, 영월 흥령선원 터>
<글자를 새긴 기와, 영월 흥령선원 터>
<영월 흥령선원 절터>

국사: 영월 사자산문 흥녕선원 징효대사(826~900년)
국사로 책봉된 기록은 없지만 이 시기에 국사로 활동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신라 헌강왕과 진성여왕의 예우를 받았습니다. 흥녕선원은 지금의 영월 법흥사입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연꽃 넝쿨무늬대접, 영월 흥령선원 터, 고려>

흥령선원은 징효대사가 사자산문을 일으킨 곳으로, 통일신라 891년 전쟁으로 불에 타 소실된 것을 고려 혜종1년(944) 경 중창하였다. 흥령선원 터에서 출토된 이 대접은 상감기법을 이용하여 무늬를 표현하였다. 고려 공민왕의 비, 노국대장공주묘인 정릉이 새겨진 연꽃 넝쿨무늬 청자 대접 등 14세기 말 상감청자와 비슷한 양식을 보인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수막새, 강릉 임영관 터><암막새, 강릉 임영관 터><짐승얼굴무늬 암막새, 강릉 임영관 터><수막새, 강릉 임영관 터>
<태자사 낭공대사 비석, 고려 954년, 행서 김생 글씨 집자, 보물>

국사: 강릉 사굴산문, 낭공대사와 낭원대사
두 스님은 사굴산문을 개창한 범일의 문하로, 낭공대사는 효공왕 때 국사가 되어 신덕왕 때까지 두 왕조의 국사를 지냈습니다. 낭원대사는 지장선원(지금의 강릉 보현사)를 창건하여 사굴산문의 법을 이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암막새, 강릉 임영관 터, 원주 흥법사 터>
<수막새. 원주 흥법사 터><글자를 새긴 기와, 원주 흥법사 터><암막새, 원주 흥법사 터>
<고려 흥법사 진공대사비 탑본첩, 고려 940년>
<원주 흥법사지 절터>

왕사: 봉림산문 흥법사 진공대사
921년 왕사로 임명되어 원주 흥법사에 머물렀습니다. 고려 태조는 직접 진공대사의 비문을 찬술하였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치미 조각, 원주 흥법사 터, 고려>
<말, 원주 흥법사터, 고려><명문기와, 원주 법천사터, 고려>
<정병, 원주 거돈사 터>
<말, 원주 거돈사 터>
<원주 거돈사지 절터>

왕사, 국사: 법안종 거돈사 원공국사
1013년 84세로 왕사에 책봉되었고, 1018년 원주 현계산 거돈사에서 입적하였습니다. 이후 국사로 추증되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용 머리 장식, 원주 흥법사 터, 고려>
<치미, 원주 법천사 터, 고려>
<원주 법천사지 절터>

치미는 지붕 용마루 양쪽 끝머리에 높게 얹는 기와로, 하단부와 연결되는 반원형 홈이 있어 고정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지광국사 해린이 왕사, 국사로 활약하던 시기인 10~11세기경은 법천사가 가장 융성한 시기로, 끝부부에 나카로운 깃이 곧추선 모습은 이 시기 법천사의 위상을 짐작해 보게 한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수키와, 양양 진전사터><글자를 새긴 기와, 양양 진전사 터><글자를 새긴 기와, 양양 진전사 터><짐승 얼굴무늬 기와, 양양 진전사 터><물고기무늬 암키와, 양양 진전사 터>
<물고기무늬 돌 장식, 양양 진전사 터>
<양야야 진전사지 절터>

국사: 가지산문 설악산 진전사 보각국존
일연은 설악산 진전사로 출가하여 대웅 장로의 제자로 가지산문의 문도가 되었습니다. 1283년에 왕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국존이 되었습니다. 고려 후기에는 국사를 국존이나 국통으로 불렀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왕사: 사굴산문과 임제종 선각왕사 나옹 혜근
사굴산문 출신으로 공민왕의 예우를 받았습니다. 1376년 5월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는데 다비 후 무수히 많은 사리가 수습되어 나옹에 대한 숭배 열기가 일어났으며, 스승 지공과 제자 무학대사와 함께 삼화상으로 추앙받았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탑지석>
<원통모양 사리기><육각모양 사리기>
<접시><구슬, 동전, 향목>
<합>
<발우>
<사리 항아리, 보제존자 사리구, 원주 영전사 동.서탑, 고려 1388년>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보물)>

고려 왕사와 국사
불교 국가였던 고려에서는 임금의 스승, 나라의 스승인 왕사와 국사를 두어 임금도 제자의 예를 다하여 나랏일들을 자문하였습니다. 국사는 신라 신문왕 때부터 등장하며, 왕사는 고려 태조 때 처음 두었습니다. 강원 지역에서 개창한 사굴산문과 가지산문, 사자산문의 선종 승려들을 비롯하여 원주 거돈사의 원공국사 등 유력한 불교 종파 승려들을 왕실에서 주목하여 왕사와 국사로 추대하였고 국가 통합을 도모하는 상징 존재로 삼았습니다. 승려의 장례 때 시호를 추증하고 승탑과 탑비를 내려준 사례를 통해 당시 왕사와 국사의 사회적 영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부처와 탑이 새겨진 거울, 출토지 모름>
<용머리 모양 장식, 출토지 모름>
<금강저, 강릉 산계 3리>
<종, 원주 궁촌리, 고려 1191년>

사각형의 구획 안에 명창 2년(1191) 흥법사 용으로 만들었다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고려 후기 12세기 후반에 제작된 편년 자료로서 중요한 작품이며 이후 만들어지는 13세기 종은 횡성 읍상리에서 발견된 종처럼 상대 위로 입상화문대라는 돌출 장식이 새로이 첨가된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청동 종, 횡성 읍상리>

고려시대 범종
고려시대 범종은 종의 몸체 아랫부분이 점차 밖으로 벌어지며,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 대신 연꽃 위에 앉은 불상이나 보살상을 새겨 넣었습니다. 용뉴에서 용의 머리가 종 윗면인 천판과 분리되고 시선은 앞을 바라보는 것도 고려시대 범종의 특징입니다. 고려 후기에는 중국 종 양식이 전해져 용뉴의 용이 두 마리로 변하고, 종의 몸체 중 윗부분에는 범자가 장식됩니다. 몸체 중간에는 중국 종에서 볼 수 있는 두세 줄의 융기선 장식이 돌려지고, 음통과 연판 장식을 둘러싸던 연곽, 당좌 등이 사라집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촛대 부속구, 고려 1188년>

자장율사의 흔적이 어린 평창 수다사
신라 불교를 대표하던 대국통 자장은 말년에 경주를 떠나 문수보살을 만나고자 명주 수다사에 머물렀습니다. 문수보살이 늙은 거사로 변하여 그의 앞에 나타났으나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합니다. ‘태백곡수다사’라고 새겨진 기와와 촛대 부속구 등이 발견되어 이 절이 수다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발우, 평창 수다사 터>
<거는 향로, 원주 법천사 터, 고려>
<쇠북, 평창 수다사터>

평창 수다사 터 쇠북(금고)
주조 당시 실수로 구멍이 생겨 땜질해서 보완한 것이 관찰됩니다. 이런 주조 결함들은 오히려 당시의 제각 기법을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가 됩니다. 함께 발견된 촛대 받침에 기록된 연대와 뒷면 공명구가 작아지는 특징 등을 고려할 때 12세기 후반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향로, 횡성 읍상리>
<봉황 꼭지 주전자, 고려 10~11세기>
<주전자, 출토지 모름>
<쌍사자 촛대, 거창 거창면>
<촛대, 출토지 모름>
<‘경자’가새겨진 촛대, 출토지 모름>

고려 불교 의식구
불교 의식구는 세속을 부처와 보살의 이상 세계로 장엄하는 불교 미술품으로 수행용구와 헌공 용구로 구분됩니다. 중생이 부처를 만나고자 하면 참회와 꺠달음에 이르는 자신의 수행 의례를 기본으로 합니다. 금강저나 경상 등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추어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수행 용구입니다. 향과 소리, 빛으로 부처와 보살을 수행의 공간으로 모시고 공경과 찬탄을 바치며 간절한 바람과 소원을 발원하는 데 사용되는 범종과 북, 정병과 주전자, 등잔과 촛대 등은 헌공 용구들입니다. 의식구에는 시주자나 제작자 등의 이름과 제작 시기, 배경 등이 명문으로 남아 있어 사료적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닙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고려시대는 일상생활에서도 화려함과 세련된 문화를 향유한 사회였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화려한 색감과 형태의 고려청자를 비롯하여 물그릇으로 사용한 정병, 화려한 재질로 만들어진 생활용품 등이 남아 당시 지배층의 화려했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용무늬 거울, 영월 삼옥리>
<꽃과 새무늬 거울, 춘천 칠전동>
<꽃과 새무늬 거울, 이천 천암리><동물무늬 거울, 영월 신일리><칠보무늬 거울, 원주 법천리>
<‘거문고를 타고 노는 노인’이야기 거울, 양양 임천리><‘소를 키운 영척’ 이야기 거울, 홍천 연봉리><용 나무 전각무늬 거울, 춘천 장학리><황비창천이 새겨진 거울, 춘천 삼천동>
<십장생무늬 거울, 홍천>

청동거울
유리로 만든 거울이 보급되기 전 널리 사용되던 청동제 거울입니다. 고려 청동거울은 중국에서 수입한 동경을 본떠 만든 것도 있지만 ‘고려국조’ 이름이 새겨져 있거나 용과 나무, 집 모양 무늬 거울, ‘황비창천’이 새겨진 거울은 고려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정병, 동해 삼화동>
<잔받침, 동해 삼화동>
<연잎무늬 대접, 동해 삼화동>
<벼루, 동해 삼화동>
<항아리, 동해 삼화동><넝쿨무늬 매병, 동해 삼화동>
<접시, 동해 삼화동><대접, 동해 삼화동><넝쿨무늬 항아리, 동해 삼화동>

삼화동 고분 출토품
차 도구 중 하나인 타호는 중국에서 차 마시는 법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잔받침은 잔을 받친즌 부분이 잔처럼 올라와 있습니다. 청자 주전자와 백자 정병은 깨끗한 물을 담아 두는 용기로, <고려도경>에는 지체 높은 사람이 사용했던 것으로 전합니다. 삼화동 고분의 주인공은 고려 귀족으로 차를 즐겼던 듯 합니다. 향로에는 용이 머리를 돌려 몸 쪽을 바라보는 고룡문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고 고려 백자는 지역 생산품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연꽃무늬 원통모양 장식, 원주 법천사 터><>허리띠 꾸미개, 원주 법천사터
<부처와 보살, 영월 하송리><풍탁, 영월 하송리><표주박 모양 병, 영월 하송리>
<팔찌, 출토지 모름>
<용과 말 장식 발걸이, 가평 봉수리>
<풀꽃무니 접시, 중국 송 11~12세기, 동해 삼화동>
<당초무늬 접시, 동해 삼화동>
<접시, 영월 하송리>
<벼루, 영월 하송리>
<뚜껑, 영월 하송리><접시, 동해 이로동>
<사발, 평창 입탄리>
<표주박모양 병, 춘천 칠전동>
<매병, 영월 신원리><항아리, 강릉 보광리><주름무늬 병, 영월 삼옥리><병, 춘천 금산1리, 춘천 신매리>
<국화무늬 발, 영월 삼옥리><접시, 영월 삼옥리><잔, 월 삼옥리><향로, 천천 칠전동><국화무늬 잔과 잔받침, 정선 신월1리><국화무늬 완, 속초 교동><국화무늬 팔각접시, 영월 신일리><꽃모양 접시, 영월 삼옥리><구름 학무늬 표주박 모양 병, 철원 학사5리>

고려 귀족의 미의식
동해 삼화동 고려시대 돌방무덤에서 고려청자와 백자, 중국 송에서 수입된 청자가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무덤의 규모나 출토 유물의 수준으로 보아 상류 귀족층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고려청자 대부분 12~13세기 전라도 강진에서 제작된 최고급 청자입니다. 함께 나온 송나라 백자 역시 정요와 경덕진요 계통으로, 국내산 고급 자기와 수입 자기를 함께 사용했던 고려 귀족의 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편 왕실과 귀족들의 취향을 반영하여 세련된 의장과 문양의 청동거울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화려한 문양이 정교하게 장식된 은제팔찌와 말 발걸이 등에서는 고려 금속공예의 귀족적이고 우아한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고려시대에는 화려한 은제 공예품이 많이 만들어지는 한편, 민간에서 모두 청동 그릇을 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금속공예가 전성기를 이루었다. 불교에서는 향로, 촛대, 화병 등 금속 공양구를 사용하였는데 아름다우면서도 사용에 편리한 공예기법을 완성시켰다.

<동곳, 영월 삼옥리, 원주 안창리, 출토지 모름, 춘천 칠전동, 영월 삼옥리, 춘천 칠전동, 영월, 원주 월송리>
<족집게, 춘천 우두동, 춸원 대마리>
<가위, 원주 월송리, 영월 삼옥리, 춘천 칠전동>
<병, 정선 조동리>
<합, 출토지 모름>
<국자, 양양 도리>
<발우, 회양 장연리, 춘천 지촌리, 인제 귀둔리>
<젓가락, 정선 덕송리, 영월 삼옥리, 평창 하안미리>
<제비꼬리 모양 숟가락, 평창 하안미리, 정선 덕송리, 속초 교동, 영월 삼옥리>
<잔, 원주 수암리>
<잔, 춘천 지촌리, 정선 운치리, 원주 법천리>

마상배
기마 문화의 전통 아래 말 위에서 마시기 편하도록 만든 술잔입니다. 바닥이 뾰족한 팽이 모양인 것과, 굽이 높아 굽 부분을 손으로 쥐고 마실 수 있게 만든 것이 있습니다. 이런 잔은 고려시대에 들어와 청자로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발우, 회양 장연리><잔, 홍천 서광리>
<접시, 원주 흥업리, 회양 장연리>
<접시, 원주 수암리, 화촌 오음리,>
<접시, 원주 중앙동>

고려의 금속 그릇
동제 그릇은 모든 고려인이 일상생활 용구로 사용하였습니다. 고려는 동이 매우 풍부하고 동제품의 품질도 좋아서 ‘고려동’으로 불릴 만큼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최상급 청자나 금은기는 지배층 가운데서도 최상층만 사용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고려 금속 생활 용구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귀족 취향의 화려한 공예품과는 별도로 비교적 실용적인 금속제 생활 용구들도 생산되었습니다. 청동제 그릇은 대접과 하, 접시 등 종류가 다양하지만 형태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청동 숟가락은 중국의 영향으로 손잡이가 S자로 굽어 있고 끝부분이 제비 꼬리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반면 젓가락은 손잡이 쪽에 대나무 마디 모양 음각선이 단정하게 장식되었습니다. 이 밖에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는 동곳, 털을 뽑는 족집게, 가위와 국자 등도 고려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함께 했던 금속공예품들입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강원의 중세
고려, 역사의 중심에 선 고려시대의 강원
후삼국 시기 강원은 궁예와 양길 등의 호족들이 활동하던 역사의 중심무대였습니다. 왕건은 강원을 중심으로 한 궁예의 기반을 계승하여 고려를 세웠습니다. 수도 송악과 남한강 수로로 이어진 중세 강원에서는 물류가 활발하게 유통되었고, 영월 흥녕선원처럼 숙박 기능을 갖춘 원이 교통로를 따라 발달하였습니다. 또한 원주 법천사의 지광국사 같은 이름 높은 왕사와 국사가 중세 강원에서 꾸준하게 배출되었습니다. 고려의 귀족과 고위 관료들이 누렸던 세련되고 수준높은 문화는 당시 상류층 사람들의 일상과 미의식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출처>

  1. 안내문, 춘천박물관, 2012년/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