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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박물관] 강원 지방의 불상

 강원도는 이름난 큰 산들이 많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발원하는 고장으로 삼국시대 이래로 이름난 사찰들이 많다.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등에는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사찰들이 주로 세워졌고, 한강수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원주 부근에는 고려시대 큰 사찰들이 들어섰다. 오대산 월정사, 상원사를 비롯하여 금강산의 고찰들은 조선시대에도 왕실과 관련되어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양양의 진전사와 선림원, 강릉의 굴산사와 한송사, 원주의 법천사, 흥법사 등 많은 사찰들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경제적, 사회적 요인 등으로 폐사되어 오늘날 그 절터만 남아 있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문화재 중 불상으로는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국보)을 비롯하여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국보) 등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다. 특히 철원의 도피안사와 원주 지역에서는 고려시대 호족세력의 문화를 대표하는 철불상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국보)은 강릉시 한송사 절터에 있던 불상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반환된 문화재이다. 잘려진 머리를 붙일 때 흔적과 이마 부분의 백호(白毫)가 떨어져 나간 것을 제외하면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국보, 강릉시 한송사지, 고려시대>

 2구의 철조 석가모니불 좌상은 일제강점기에 원주시 학성동에서 발견되었 다고 한다. 고려초 10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비슷한 양식과 형태의 철불이 남아 있다고 한다. 통일신라에서 고려초에 조성되었던 철조불상의 형태가 잘 반영되어 있다.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가여래를 표현하고 있다.

<석가모니불, 철조 석가보니불 좌상, 고려 10세기, 원주 학성동>

이 고려 철불은 1912년경 원주 학성동(읍옥평)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철불과 몸체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같은 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불상의 손모양은 항마촉지인으로, 2천5백년 전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온갖 번죄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은 그 위대한 순간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석가모니불, 철조 석가모니불 좌상, 고려 10세기, 원주 학성동>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는 중국으로부터 선종을 들여오고 지방 호족들이 각기 세력을 키우던 전환기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철로 만든 불상이 유행하는데, 주로 지방의 선종 사찰에서 모셔졌습니다. 통일신라 말 선종의 지증대사가 한계산 안락사(원주 거돈사)에 금을 입힌 거대한 철불을 모셨던 사실이 문경 봉암사에 있는 그의 비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아미타여래를 표현한 고려시대 철조불상으로 강원도 원주시 본저전동에서 발견되었다. 고려초기 호족세력 주도로 조성된 철조불상으로 보이며 토석적인 얼굴에서 동시대 불상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아미타불, 철조 아미타불 좌상, 원주 본저전동>

즐거움만 가득한 곳, 극락정토를 주관하는 아미타여래입니다. 두 손을 마주하여엄지와 검지를 맞댄 상품상생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원주 지역에서 출토된 다른 고려시대 철불에 비해 토속적인 얼굴 표현이 도드라집니다. 이 철불은 밀랍주조법으로 주조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목 주변에 분할주조선으로 추정되는 요철이 확인되기도 합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원주 영천사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고려시대 석조불상이다. 팔각의 연화대좌 위에 불상이 앉아 있는 통일신라 석조불상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정형화된 면을 보이는 불상으로 세부적인 조각수법은 투박한 지방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영천사는 원주 도심에 있는 고려말 나옹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깨어진 광배조각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불상은 영천사 창건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비로자나불,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고려 10세기 원주 영천사>

원주 영천사에 모셔졌던 이 불상은 원주 지역 다른 불상에서 흔히 보이는 것처럼 물결모양 옷주름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으며, 등 뒤에는 광배를 결합했던 구멍이 남아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은 불멸의 진리인 불법 자체를 부처의 몸으로 인식하는 법신불 개념이 등장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중생과 부처, 미혹과 깨달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왼손 검지를 오른손이 감싼 지권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0

원주시 호저면 본저전동(옛지명)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고려시대 석조불상이다. 팔각의 연화대좌 위에 불상이 앉아 있는 통일신라 석조불상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비로자나불,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고려 10세기, 원주 본저전동>

미소 띤 둥글넓적한 얼굴과 물결치듯 흘러내리는 옷주름, 악기를 연주하는 대좌의 천인상과 사자 등 고려 초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부처의 미간에는 광명을 비춘다고 알려진 백호를 꽂았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은 산스크리트어 Vairocana를 음차한 것으로 온누리에 가득한 태양빛을 의미합니다. 통일신라 8세기 중엽에 나타나 9세기에 화엄종, 선종, 법상종, 밀교 종파의 본존불로 크게 유행합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원주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 광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초에 제작되었다. 화강암을 재질로 하여 윗부분이 뾰족하게 솟아오른 보주형의 거신광이다. 두광 안에는 꽃술 장식이 표현된 화려한 연판을 두르고 그 주위에 화문과 바깥쪽에 유려한 불꽃무늬가 섬세하게 조각되었다.

<광배>

부처의 빛, 광배
광배는 부처의 몸에서 발산되는 빛을 조형화한 것입니다. 본래 부처의 모습을 설명한 32상 80종호 가운데 하나였으나 점차 여러 보살이나 제자들에게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광배에는 커다란 연꽃무늬를 중앙에 배치하고 그 주위로 당초무늬를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빛을 형상화한 불꽃무늬와 그 중간중간에 부처의 분신인 화불을 배치해서 부처의 위엄과 신통력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관음보살, 금동 관음보살좌상, 북강원도 회양 금강원리, 고려 13~14세기>

금강산 보살상
금강산은 <화엄경>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성스러울 정도로 빼어난 천혜의 자연 속에 담무갈보살이 상주하는 성지로 추앙되었습니다. 화려한 장신구와 보관, 커다란 원반형 귀걸이 등 티베트 불교미술의 요소가 다양하게 반영된 관음보살상은 고려 후기 원나라에서 유행했던 고려 금강산 신앙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부처, 금동 불좌상, 화천, 고려>
<보살, 금동 보살좌상, 고려>
<보살, 금동 보살좌상, 홍천 갈마곡2리, 고려>
<아미타불, 은제 아미타불좌상, 정선 송계리, 고려>

 한국전쟁 때 철원부근에서 미군에게 맡겼던 금동보살상이 미국을 반출되었다가 다시 환수되었다고 한다. 섬세한 표현, 화려한 장신구와 보관 등 티베트 불교미술의 영향을 받은 고려후기 관음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관음보살, 금동 관음보살좌상, 고려>
<관음보살, 금동 관음보살좌상, 북강원도 통천 화장사, 고려 13~14세기>

금강산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금동보살이다. 섬세한 표현, 화려한 장신구와 보관 등 티베트 불교미술의 영향을 받은 고려후기 관음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금강산은 <화엄경>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담무보살이 상주하는 성지로 추앙되었다. 동시대와 지역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불상이다.

<관음보살, 금동 관음보살좌상, 북강원도 회양 장연리, 고려 13~14세기, 보물>

고려 불보살의 아름다움
고려 태조가 자손에게 남긴 훈요십조는 ‘고려의 대업은 부처님의 호위에 힘입은 것이니 선종과 교종의 사원을 창건할 것’이라는 글로 시작합니다. 이처럼 고려는 불교를 중시하여 개경에 10대 사찰을 건립하는 등 많은 불교 문화재를 남겼습니다. 고려 초 불교조각에는 통일신라 전통과 지방 특색이 남아 있지만 11세기가 되면 화려한 보관을 쓴 유려하고 우아한 불상과 보살상이 등장하여 고려 귀족의 미감을 보여줍니다. 한편 금강산에서 출토된 보살상에서 볼 수 있듯이, 고려 후기가 되면 중국 원 황실의 금강산 신앙과 불사의 영향을 받아 원과 명나라 황실에서 유행하던 티베트 양식의 이국적인 금동불상들이 등장하여 조선 초기까지 이어집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부처, 횡성군 절터, 삼국시대 신라 7세기>

옷주름을 생략하여 신체 양감을 갖오하는 새로운 양식을 따라 장대하게 표현하였다. 등 뒤에는 흙을 파냈던 네모난 주조 구멍 가장자리에 턱을 마련하여 불상 내부의 흙을 긁어낸 후 다시 구멍을 막을 수 있도록 하였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부처, 원주 법천사 터, 삼국시대 7세기>

원주 법천사에서 출토된 긴 장방형 불상이다. 신체 뒷면에는 주조 구멍이 작고 단정하게 뚫려 있다. 이러한 주조 구멍은 속이 빈 중공식 불상의 추기 단게에서 나타나는 모양인데, 경북 구미에서 나온 금동불상(국보)과 경주 구황리 순금불상(692년 이전) 등 7~8세기 초 불상에서 발견된다. 왼쪽 손목에 걸쳐 내려진 대의 주름 모양이나 신체 비례, 주조 기법 등 삼국시대 불상으로 알려진 일본 호류지 헌납보물 금동삼존불상과 유사하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부처, 영궐군 구리2리 통일신라>
<부처, 정선군 고양리, 통일신라>
<부처, 원주 봉산동, 통일신라>
<보살, 화천 상리, 통일신라>
<보살, 인제 부평리, 통일신라>
<부처, 홍천 물걸리 절터, 통일신라>
<대좌, 홍천 물걸리 절터, 통일신라>
<삼척 소 도리 출토 불상, 통일신라, 1 약사불>
< 2 부처>
<3 보살>

태백산 망경대에서 발견된 금동약사불상은 통일신라 8세기 선진 문물이 교류하던 이곳의 문화 수준을 보여준다. 대좌와 불신의 자연스러운 비례와, 둥글고 세련된 얼굴, 약그릇을 들고 있는 단정한 자세와 신체에 밀착된 사실적인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8세기 이상적 사실주의 조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부처 강릉 한송사터 통일신라 8세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명주는 태종무열왕의 6대손인 김주원 세력의 막강한 후원 아래 경주 못지않은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당시 이 지역 문화를 대변하는 이 불상은 대의 끝자락이 아래쪽으로 날카롭게 마무리되는 등 통일신라 9세기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불상 뒷면은 전신에 걸쳐 주조 구멍이 크게 뚫려 있어 완전한 편불이 되기 전 단계의 모습이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부처, 강릉 홍제동, 통일신라 9세기>
<약사불, 양양 국유림, 통일신라>
<약사불, 양양 서림리, 통일신라>
<부처, 양양 약수리, 통일신라>

부처의 손갖춤 – 시무외 여원인
불상의 각각 다른 손 모양을 수인이라고 하는데, 부처의 일생에서 주요한 장면을 상징합니다. 시무외인은 부처의 자비와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는 수인입니다. 불교 경전인 <불본행경>에 의하면, 부처를 죽이려는 자들이 코끼리에게 독한 술을 먹여 부처에게 달려들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는 조용히 한 손만을 들어 자기를 해하려는 위험한 대상을 향해 자비와 위안의 마음을 열어 보였습니다. 여기서 비롯된 시무외인은 중생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의미의 여원인과 함께 우리나라 초기 불상과 보살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수인입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출처>

  1. 안내문, 춘천박물관, 2012년/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