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회화는 다양한 스타일을 포괄하며 17세기초부터 18세기 전반에 유행했던 회화를 말한다. 바로크 회화는 다양흔 스타일을 포함하며 위대한 드라마, 풍부하고 깊은 색상, 강렬한 빛과 어두운 그림자가 특징이다. 다만 푸셍과 같은 픙스의 바로크 화가나 네덜란드의 고전주의도 바로크회화에 포함된다. 바로크 회화의 창시자로는 이탈리아의 카르바조를 꼽고 있는데 어두운 배경이 극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혁신적인 표현방식을 보여주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는 네덜란드의 루베스, 렘브란트, 스페인의 벨라스케스 수르바란 등이 있다. 전시에서는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는 이탈리아의 화가로,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나 1610년 포르토 에르콜레에서 사망했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명암의 강한 사용으로 17세기 회화에 혁신적은 변화를 주었으며 당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한 소년이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을 도마뱀에게 물린 아픔에 깜짝 놀라 움츠리고 있습니다. 이는 짧은 감각적 쾌락 뒤에 숨어 있는 예상치 못한 고통을 은유한 것으로, 소년의 귀에 꽂힌 장미와 꽃병의 꽃 역시 곧 시들어 사라질 덧없음을 보여줍니다. 카라바조는 ‘정물을 그리는 일은 인물을 그리는 일만큼 예술적 재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을 직접 관찰하여 그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점은 그의 혁신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초기에는 이 그림처럼 정물화나 일상생활의 장면을 그렸지만 곧 감정적이고 극적인 종교화들을 전문적으로 그리게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카라바조에서 온 미켈란젤로, 천재이자 문제아
카라바조의 원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입니다. 그의 이탈리아 고향 마을 이름인 ‘카라바조’를 따라서 카라바조라고 불렸습니다. 카라바조는 그림 실력은 뛰어났지만, 성격이 나쁘고 거칠어서 이곳저곳에서 싸움을 일으키고 다녔습니다. 결국 카라바조는 칼 싸움 끝에 사람을 죽이고 원래 살던 로마를 떠나 여러 곳으로 도망 다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죄를 용서받고 로마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다시 문제를 일으켜 감옥에 갇힙니다. 카라바조는 결국 로마에 돌아가지 못하고 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분열된 교회, 서로 다른 길
1571년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유럽교회는 중세 기독교 전통을 수호하는 가톨릭과 변화를 원하는 프로테스탄트로 나뉩니다. 여전히 신의 섭리가 중요한 시대, 교회의 입장이 나뉘면서 화가의 시선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합니다. 17세기에 이르면 분열된 교회의 서로 다른 입장이 미술에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의 가톨릭 국가에서는 교회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바로크 미술은 절대주의 왕과 귀족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도 활용되었습니다. 반면, 프로테스탄트 중심의 북유럽에서는 그림 속 이미지가 신처럼 숭배되는 것을 걱정해서 종교 미술을 거부했고, 화가들은 자연스럽게 사람과 그 주변 이야기에 집중하게 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디에고 벨라스케스(스페인어: 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1599 ~ 1660년)는 펠리페4세 궁정을 주도했던 스페인의 화가로 초상화에 뛰어났다. 19세기 초반 그의 작품은 인상주의와 사실주의 화가들의 귀감이 되어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 <직녀들> <주정뱅이들>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 <블레더의 개성(開城)> 등이 있다.

스페인의 벨라스케스는 1623년 펠리페 4세의 마음에 들어 궁정화가가 되었습니다. 그와 친분을 쌓은 플랑드르의 루벤스처럼 궁정인으로서도 높은 관리가 되었으며, 그가 그린 초상화는 왕과 귀족들의 권위를 강화하는데 활용되었습니다. 그림의 주인공 페르난도 데 발데스 이야노스는 1633년 그라나다의 대주교와 카스티야 공의회 의장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이 작품은 원래 전신 초상화로 그려진 작품에서 일부가 잘려 나간 것인데, 벨라스케스의 서명이 있는 종이를 든 성직자의 손(마드리드 왕궁 소장)을 이 초상화의 나머지 부분으로 추정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 ~ 1669년)은 바로크 회화를 대표하는 네덜란드 화가이다. “빛의 화가”라고도 불리는 그는 유럽 미술사에서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 중 한 사람이자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힌다. <63세의 자화상 Self-Portrait at the Age of 63>은 네덜란드 예술가 렘브란트의 자화상이다. 1669년 사망하기 몇 달 전에 그린 약 80점의 자화상 중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이다. 그가 말년에 겪었던 재정적인 어려움이 느껴지는 자화상이다.

렘브란트는 프로테스탄트 국가였던 네덜란드에서 활동했습니다. 직접 이탈라아에 가본 적은 없지만 판화나 다른 동료로부터 이탈리아 미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640년대 암스테르담 최고의 인기 화가였으나 이 자화상을 그릴 때는 이미 파산한 상태였습니다. 렘브란트가 죽기 몇 달 전 그린 자호상입니다. 나이 들어가는 얼굴에 집중해 물감을 두껍게 발라 얼룩덜룩한 피부, 숱이 적어진 눈썹 등을 그렸습니다. 옷과 배경은 얇게 재빨리 칠해서 밝은 빛을 받은 섬세한 얼굴 표정에 주목하게 합니다. 자화상으로 자신을 성찰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노인 초상화를 그리기 위한 회화 기술을 연습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 ~ 1665년)은 프랑스 바로크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로마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고전주의적인 주제들을 많이 그렸다 한다. 그의 작품은 명확성, 논리성, 질서가 특징이며 색보다 선을 선호했다. 20세기까지 고전주의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푸생은 17세기 프랑스의 고전주의를 이끈 화가로,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나 일생의 대부분을 로마에서 보냈습니다. 푸생은 고대의 문화를 바탕으로 현실보다 완벽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술의 신이자 주피터의 아들인 바커스가 이모인 이노의 보살핌을 받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림에서 바커스는 이노의 남편 아타마스에게 의지해 은그릇에 짜놓은 포도즙을 마십니다. 서로 끌어안고 있는 두 아기는 이노의 아들들입니다. 주피터의 아내 주노는 이노가 바커스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질투해 이노와 마타마스를 미치광이로 만들었고, 아마타스는 자기 아들 중 한 명을 죽이고 맙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기도하는 성모 The Virgin in Prayer>는 이탈리아 화가 조반티 바티스타 살비 사소페라토가 1640년 경에 그린 작품이다. 성모는 밝게 빛나고 그녀이 흠잡을 데 없는 도자기 같은 피부는 보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16세기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개혁 방안으로 권장된 개인적인 예배를 위한 작품이다.

화가의 별명 사소페라토는 화가의 고향 이름입니다. 그는 개인의 기도를 들어줄 듯한 ‘혼자 기도하는 성모’를 주제로 한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이 도상은 가톨릭 개혁의 원칙들을 결정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 이 그림은 사실적이면서도 단순한 구도와 색채로 감동을 줍니다. 값비싼 울트라마린을 사용한 파란색과 빨간색, 흰색 물감만으로 그려진 성모는 강한 빛을 받으며 존재감을 드러냅신다. 조각 같은 얼굴과 우하한 색채는 르네상스 시대 라파엘로의 화풍과 비슷하지만 극적인 강렬한 빛은 바로크 회화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귀도 레니 (Guido Reni, 1575 – 1642년)는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이다. 그는 주로 종교 작품을 많이 그렸으며 신화적이고 우화적인 주제도 그렸다. 동시대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화가였으며 많은 제자들을 통해 후기 바로크 회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성 마리아 막달레나는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한 명입니다. 서유럽 회화에서 대부분 쾌락을 거부하고 참회하며 그리스도를 섬기기로 결심한 여성으로 그려집니다.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17세기에 자주 그려진 주제인데, 이는 가톨릭 개혁 시기 교회에서 참회를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가톨릭 교회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주제로 감동적인 종교화를 그려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향하려는 사람들이 마음을 되돌리고자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성스러운 그림을 그린 세속적인 이유
귀도 레니와 그의 제작들은 성 마리아 막달레나를 주제로 한 그림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도박에 빠져 빛이 점점 늘어난 귀도 레니는 빚을 갚기 위해 빠르고 쉽게 그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그림 중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로 작은 크기의 그림을 여러 개 그려서 판 것입니다. <성 마리아 막달레나> 같은 성스러운 그림을 그린 이유가 도박 빚을 갚기 위해서라니 참 놀랍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종교개혁과 가톨릭 교회의 변화
종교개혁은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며 발표한 ’91개조 반박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루터는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오직 산앙과 은총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설파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츠빙글리와 칼뱅에게 이어졌습니다. 위협을 느낀 가톨릭 교회는 개혁과 변화의 길을 찾았으며, 미술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신앙심을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전달하려는 내용이 확실하고, 사실적이며, 감정에 호소하는 설득력 있는 그림을 선호했습니다. 특히, 참회 의식인 고해성사나 명상 등 개인적인 종교 활동을 권장했기에 기도하는 성모나 참회하는 성인을 많이 그렸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요하힘 베케라르(Joachim Beuckelaer, 1534 ~ 1574년)은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발전에 큰 역활을 했으며, 풍속화 및 정물화를 많이 그린 화가이다. 주로 종교적인 주제와 결합된 시장이나 주방 장면을 많이 그렸다. <4원소 The Four Elements>는 그 대표작으로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가 주장한 불, 물, 공기, 흙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에 표현죈 물건들은 인위적으로 모아 놓은 것으로 실제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북유럽 안트베르펜 출신 화가인 베케라르는 일상적인 장면에 종교적 주제를 담은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이 방에는 4원소인 불, 물, 공기, 흙을 주제로 한 4점 연작 중 <불>과 <물>이 전시 중입니다. 각 그림에는 주제가 되는 원소와 관련된 생산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불>에는 그림 속 여성들은 불에 구울 고기를 손질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먼 배경에는 자매인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마르타는 그리스도에게 동생 마리아가 자기의 음식 준비를 돕도록 얘기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물>에 그려진 16세기 아트베르펜의 시장에는 온갖 종류의 물고기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림 속 먹거리는 각각 가장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각도로 배치된 것입니다. 그림의 풍족한 음식들은 실제 관찰을 통해 세심하고 정확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베케라느는 빠르고 간략하지만 효과적인 붓질로 그림을 그려 화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잘 보여줍니다. 먼 배경에 어부가 그물을 끌어올리는 모습은 부활한 그리스도가 사도들 앞에 나타나 많은 물고기를 잡도록 해주었다는 풍어의 기적을 그린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Albrecht Altdorfer , 1480 ~ 1538년)는 바이에른주 레겐스부르크에서 활동한 독일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이다. 다뉴브 학파의 대표자로 여겨지며, 표현력이 풍부한 색상의 풍경 배경에 성서적이고 역사적인 주제를 표현했다. 그는 풍경을 독립적인 주제로 관심을 가진 최초의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독일 화가 알트로르퍼가 사람없이 풍경만을 그린 작품입니다. 다른 주제의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풍경 그 자체를 독립된 주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16세기 초 풍경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반영합니다. 숲속 바위에서 강을 가로질러 요새의 성문으로 보이는 곳까지 높은 다리가 뻗어 있습니다. 다리 끝이 건물에 닿지 않기에 문으로 들어가려면 성에서 다리를 내려 주어야합니다. 알트도르퍼는 자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자세하게 묘사하고자 했으며, 종교화에도 역시 자연 속 풍경을 포함시켜 자신의 관심사를 드러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마인데르트 호베마(Meindert Lubbertszoon Hobbema, 1638 ~ 1709년)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예술적 황금기를 이끈 풍경화가 중 한명이다. 전원적인 풍경을 주로 화폭에 담았다. 길과 연못이 있는 햇살 가득한 숲 풍경, 흩어진 나무들이 있는 들판, 물레방아 등을 많이 그렸다.

수레바퀴 자국이 있는 길 위에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가 햇살을 받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멀리 개와 산책하는 한 남자와 들판을 걷는 남녀가 보이고, 한 여성이 오른쪽 시골집 문 앞에 서서 밖을 바라봅니다. 호베만의 고향 암스테르담 근처 할렘 주변의 숲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실제 풍경을 보고 그린 것 같지만 사실은 그가 즐겨 사용한 소재들을 모아 이상적인 전원 모습을 그린 상상의 풍경화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프로테스탄트 국가였던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일상의 풍경과 사람들이 중요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림 속 인물들의 등 뒤에서 시작한 우리의 시선은 소몰이꾼의 눈을 따라 풍경을 바라보게 됩니다. 같은 시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프랑스 화가 클로드 로랭의 고전적 풍경화를 떠올리게 하는 황금빛 햇살이 네덜란드 시골 일상의 한 장면을 비춥니다. 금빛 햇살은 코이프 작품의 특징으로,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이탈리아 풍경화 양식을 반영한 이런 유형의 풍경화가 널리 유행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빌럼 판 데 벨데 (Willem van de Velde the Younger, 1633~1707년)는 17세기 네덜란드 전성기 때 활동한 화가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네덜란드 선박이 있는 해안의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섬세하고 활기차며 선박과 조작 장치 등의 묘사가 정확하여 17세기 선박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좋은 자료가 되기도 한다.

빌럼 판 더 펠더는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에서 바다 풍경화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배를 정확하게 그린 그의 그림은 당시 배 모습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흰 돛을 날리는 군함의 큰 돛대에는 네덜란드 국기가 달려 있고 고물에는 홀란트주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 앞쪽의 배에 달린 깃발에 화가의 서명이 있습니다. 빌럼 판 더 펠더는 정교한 배를 그린 흑백 드롱이으로 유명한 아버지 빌럼 판 더 펠더에게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판 더 펠더 가족은 1672년, 프랑스의 침략으로 암스테르담에 경제 위기가 오자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18세기 영국에서 바다 풍경화가 발달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피터 헨드릭스 드 호흐 (Pieter Hendricksz. de Hooch, 1629 ~ 1683년)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이다. 조용한 가정 풍경을 많이 그렸다.

피터르 더 호흐는 중산층 여성과 아이들의 가정 생활을 그린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후기에는 이 그림처럼 암스테르담의 상류층 모습을 많이 그렸습니다. 안뜰에 있는 테이블을 덮은 터키산 카펫과 테이블 위의 이국적인 과일 오렌지는 그림 속 인물들의 재력을 보여줍니다. 세련된 차림의 여성이 들고 있는 잔과 은제 젓개가 섬세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다른 여성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데, 이 시기 미술에서 음악 연주는 성적 관계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치문에 선 남성은 건너편 운하 옆길을 바라봅니다. 그늘진 안뜰 풍경 대신 밝은 바깥 배경에 시선이 모아집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얀 스테인(Jan Havickszoon Steen, 1626~ 1679년)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이다. 그의 작품은 심리적 통찰력, 유머 감각, 풍부한 색상으로 유명하다.

얀 스테인은 고향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여관을 운영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술자리 모습에 풍자를 담아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주었으므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술에 취해 여관 주인의 치마를 붙들고 있는 남성은 얀 스테인 자신입니다. 그림 속에는 성적 암시들이 반복됩니다. 빨간 모자를 쓴 남성은 담배를 다져 넣으려 파이프에 손가락을 집어넣었으며, 그 옆 남성은 여관 주인에게 은근한 시선을 던집빈다. 바닥에는 정력제로 유명한 홈합 껍데기와 잃어버린 순결을 상징하는 깨진 달걀이 흩어져 있으며, 열린 와인 통과 막대기, 프라이팬 손잡이 역시 의미심장합니다.배경에서는 한 소년이 몰래 그릇에 손가락을 넣고 있습니다. 얀 스테인은 어린이가 어른의 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말을 자주 그림의 주제로 활용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신앙심 깊은 중산층 가정의벽에 걸려 교훈을 핑계로 즐거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일상의 풍경과 사람들
해상 무역을 주도하며 성장한 네덜란드는 16세기 말 종교적.정치적 자유을 얻고자 7개 주 연합공화국을 세웠으며,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 독립했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칼뱅 교도가 많았던 네덜란드에서 중산층의 집을 꾸미는 데 좋은 초상화나 풍경화, 이상생활을 그린 그림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러한 주제는 북유럽에서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어진 전통이지만, 17세기에는 더 본격적으로 일상의 풍경과 사람들이 그림의 독립적인 주제가 되었습니다. 화가의 시선이 사람 뿐 아니라 사람 주변으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바로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빛
바로크 회화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역동적인 구성, 선명한 색채, 강렬한 감정 표현이 특징입니다. 이탈리아의 카라바조는 평범한 인물이 밝은 빛을 받아 존재감을 드러내는 새로운 양식을 발달시켰습니다. 내용을 쉽고 단순하게 전달하는 ‘카라바조 양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17세기 이탈리아에는 유럽 전역에서 화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주로 활동한 프랑스 화가 푸생과 클로드 로랭은 고전적이고 이상화된 풍경화를 그렸는데, 같은 시기 북유럽에서는 사실적이고 일상적인 풍경화가 유행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 “Baroque painting”, wikipedia, 2025년
- “Boy Bitten by a Lizard”, wikipedia, 2025년
- “Diego Velázquez”, wikipedia, 2025년
- “Self-Portrait at the Age of 63”, wikipedia, 2025년
- “Nicolas Poussin”, wikipedia, 2025년
- “The Virgin in Prayer”, wikipedia, 2025년
- “Guido Reni”, wikipedia, 2025년
- “De vier elementen van Joachim Beuckelaer”, wikipedia, 2025년
- “Albrecht Altdorfer”, wikipedia, 2025년
- “Meindert Lubbertszoon Hobbema”, wikipedia, 2025년
- “Willem van de Velde the Younger”, wikipedia, 2025년
- “Pieter de Hooch”, wikipedia, 2025년
- “Jan Steen”, wikipedia,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