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에는 벼농사가 확산되고 정착생활이 이루어면서 큰 규모의 마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한 집단내에서는 사회적, 계급적으로 분화가 일어났다. 청동기시대는 청동기를 만들어 사용했던 시기를 말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주로 민무늬토기, 간석기, 목기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 청동기는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나 제사의식에 사용되는 의기로서 지배계층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대구.경북지역에는 평안도나 한반도 서.남해안과는 달리 고인돌은 많지 않지만 다양한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에 사용되었던 간석기와 토기 등 생활도구와 청동으로 만든 의기 등이 골고루 출토되고 있다.







꺾창은 긴 자루를 창몸과 직각이 되도록 옆으로 끼워 사용하는 무기이다. 찍거나 베어 당기는데 쓰이며, 중국에서는 전차에 대응하는 무기로 사용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전차가 실제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동물형 띠고리는 북방계 청동기 문화의 영향을 받은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중국 한나라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허리에 차는 일종의 장식물로 한쪽에는 동물모양이, 반대편에는 가죽띠와 연결시기 위한 꼭지가 붙어 있다.


‘경산 신대리 1호 목관묘 출토 청동호랑이모양 띠고리 (보물)’는 ‘호형대구(虎形帶鉤)’로 잘 알려져 있는 원삼국시대 유물이다. 청동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지배층의 위세품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허리띠 고리는 가죽이나 직물로 된 허리띠 한쪽 끝에 다는 버클을 말한다. 호랑이의 엉덩이 뒷면에는 허리띠에 고정하는 꼭지가 있고, 가슴에서 길게 뻗어 나온 갈고리로 바대쪽을 걸어 엮는다. 갈고리는 허리띠에 뚫은 구멍이나 별도로 만든 원형의 청동제 고리에 걸었다. 잘록한 허리와 앞발, 뒷발, 그리고 엉덩이까지 호랑이 몸통의 양감을 잘 표현했다. 꼬리는 끝을 감아올린 고사리 모양으로 조형미가 돋보인다. 호랑이 머리.목.허리에는 짧은 직선을 조합한 무늬를 새겼다. 신대리 1호 널무덤은 함께 부장된 각종 토기와 철기유물로 보아 1세기 중엽에 축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반도에서는 서기전 1세기부터 호랑이와 말을 모티프로 한 청동제 허리띠 고리를 만들었다. 신대리 1호 널무덤 출토품은 호랑이 신체 각 부위의 비율이 균형을 이루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아울러 발굴조사로 출토 위치와 함께 묻힌 부장품을 알 수 있기에 학술 가치도 매우 높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청동거울은 청동기시대부터 사용되어온 것으로 전국의 주요 박물관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전시되어 있다. 청동거울에는 주술적의미나 장식적인 목적으로 다양한 그림이나 글자를 새겨 놓고 있으며, 조형미가 우수하며, 보존상태가 좋은 유물들이 많은 편이다.





청동기, 새로운 힘을 상징하는 물건
청동기는 금속기의 출현을 알리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초기철기시대 금호강 물길을 따라 새로이 이주해 온 사람들은 새로운 도구, 청동기를 대구.경북 지역에 들여왔습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종류의 청동기와 철기 가공 기술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우두머리 수장은 청동기와 철기를 자신의 경제력과 권력을 확대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유력한 지배자가 출현하였고, 사회 문화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출처>
- 안내문, 대구박물관, 2013년/2023년
- ‘보물 경산 신대리 1호 목관묘 출토 청동호랑이모양 띠고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