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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박물관, 대구 경북의 고대문화] 석기, 토기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수십만년 전으로, 그들은 식량이 풍부한 곳을 찾아 옮겨 다니면서 동굴이나 강가에서 살았다. 낙동강 중.상류지역에 해당되는 경북지역에서는 대구 월성동, 상주 신상리 등 낙동강 주변에서 구석기 유적지들이 발견되고 있다.

<구석기시대의 뗀석기>

구석기시대의 뗀석기
구석기시대 석기는 하천에서 구하기 쉬운 주먹크기의 강돌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돌을 깨뜨려 날을 예리하게 세운 떤석기를 제작하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주먹도끼는 돌이 뾰족하고, 하단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를 지닌 뗀석기로 구석기시대 전기와 중기에 유행한 석기이다. 후기에는 들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을 사용하여 뚜르개 또는 새기개 등 다양한 용도의 석기를 제작하였다. 화산 활동의 부산물인 흑요석을 이용한 도구도 등장한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구석기시대의 뗀석기><흑요석>

흑요석
흑요석은 화산지대에서 주로 생성되는 검은 돌이다. 이 암석은 각기 고유의 산지가 있지만 밝혀진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월성동 유적 출토 흑요석 357점 중 100점을 성분 분석한 결과, 백두산 흑요석임이 밝혀졌다. 백두산에서 월성동 유적까지의 거리는 700~800km이다. 그동안 강원, 충청, 전라 지역의 흑요석이 백두산에서 온 것임이 밝혀진 적은 있으나 영남지역 출토품으로서는 월성동유적의 것이 최초이다. 월성동 구석기 유적의 흑요석 원산지가 백두산으로 밝혀짐으로써 한반도 내 흑요석 네트워크를 통한 후기 구석기 시대 인류의 이동범위와 경로를 파악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신석기인들은 토기를 만들어 곡식을 저장.운반하고 간석기를 이용해서 사냥,농경을 시작했다. 실제로는 농경보다는 강가 또는 해안 습지 등에서 사냥과 고기잡이를 많이 했던 것으로 보이며, 식량은 산에서 채집한 도토리를 저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북지역 신석기 유물들은 대구를 비롯하여 낙동강변이나 동해안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1 돌화살촉>

신석기시대에는 돌을 떼거나 갈아서 석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다. 간석기로는 도끼, 자귀, 반달돌탈, 별도끼 등이 발견된다. 집터에서 출토되는 갈돌과 갈판은 도토리 등 자연 열매를 가공하는 데 쓰였던 것이다. 물고기를 잡기 위한 도구로 낚시바늘과 작살, 그물추 등이 있다.

<2 돌도끼>
<3 갈판.갈돌><4 돌보습><5 돌도끼>
<3 갈판.갈돌><6 그물추><7 발화석>

반달돌칼은 곡식을 수확하는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석기의 모양은 이름 그대로 반달모양인 것이 많다. 돌칼의 형태는 다르더라도 모두 손걸이 끈을 끼우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반달돌칼은 신석기시대 말기에 등장하여 청동기시대에는 벼농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농경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힌다.

<8 갈판.갈돌><11 반달돌칼><12 미완성석기.뚜르개>
<9 돌괭이><10 돌도끼><13 돌낫><14 숫돌><15 돌끌><16 돌창><17 발화추>

신석기시대 뗀석기와 간석기
1만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와 환경이 지금과 비슷해지면서 신석기시대가 시작된다. 신석기시대의 가장 큰 변화는 한 곳에 머무는 생활과 돌을 다듬고 갈아 만든 간석기의 등장이다. 곡물생산 활동을 위해 땅을 파는 도구가 만들어졌고, 수확한 곡물을 갈기 위하여 갈판과 갈돌이 등장한다. 고기잡이를 위한 그물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한 화살촉도 신석기시대에 등장한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간돌검은 무기로 사용된 청동시대 석기이다. 검의 형태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며 밑동에 슴베가 달려 있는 것도 있지만, 손잡이가 달린 것이 많다. 간돌검은 고인돌이나 돌널무덤 등에서 출토된 예가 많지만 집터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늦은 시기 무덤에서 출토되는 석검은 날이 길거나 손잡이를 크게 만드는 등 의례용 특징을 보여준다. 한반도에서 많이 출토되는 특징이 있다.

<1 간돌검>
<2 곱은옥.대롱옥 목걸이><3 대롱옥목걸이><4 활석목걸이>
<5 돌화살촉>
<6 달도끼><7 톱니날도끼><8 돌도끼>

청동기시대 간석기
청동기시대에는 계급이 발생하고, 마을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무기의 생산도 많앚진다. 본격적인 농경생활이 확대되면서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들도 다양해진다. 특히 이 시기에는 땅을 파거나 곡물을 수확하는 용도의 석기들이 증가한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석기, 돌로 만든 도구
돌은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한 도구의 소재였습니다. 석기는 인류가 발명한 최초의 도구이자 가장 오랫동안 이용한 도구입니다. 돌은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재료입니다. 구석기시대에는 돌을 떼어 내면서 만든 뗀석기를 썼고, 신석기시대에는 돌을 갈아서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청동기시대의 석기는 제작 기술이 전문화되면서 형태가 정교해졌고, 기능도 전문화됩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빗살무늬토기는 곧은 입술에 그릇 밑이 도토리나 달걀처럼 뾰족하거나 둥근 모양이다. 따라서 주로 강가나 바닷가에 살았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모래 위에 놓고 사용했다. 토기의 겉면에 나무 뼈연장 등으로 그릇 바깥 면에 짤막한 줄이 배게 누르거나 그어서 빗살무늬를 새긴다. 한반도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 형태이다.

<빗살무늬 토기, 김천 송죽리><김천 지좌리><김천 송죽리><김천 지좌리>
<빗살무늬토기, 대구 서변동><김천 지좌리>
<빗살무늬토기, 대구 서변동>
<빗살무늬토기, 김천 송죽리><대구 유천동>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약 4천년 전부터 1천년 사이의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사용한 그릇이다. 특징은 점토띠를 하나씩 차례로 쌓아 올려 모양을 만들고 겉면에 기하학적인 무늬를 새겨 넣은 것이다. 그릇이 뽀족한 이유는 강가와 바닷가 모래에 세우기 편리하게 하거나 움집 바닥에 반쯤 묻어 놓고 먹거리를 저장하기 위함이다.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며 지역과 제작시기에 따라 형태가 다른다. 그 가운데 남부지방의 빗살무늬토기는 길이가 짧고 아가리가 옆으로 넓은 포탄형이 많다. 무늬는 선이 굴고 구획된 선 안에 빗금을 채워 넣은 점선문이 많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붉은간토기는 고인돌과 돌널무덤 등 주로 무덤에서 발견되어 부장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평안도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1 붉은간토기 단지, 대구 대천동><2 붉은간토기 바리, 대구 대천동><대구 상동><대구 동천동>
<1 붉은간토기 단지, 대구 상동><대구 동천동><대구 대천동><민무늬토기, 대구 동천동><대구 삼안동>

붉은간토기
붉은간토기는 철 성분이 들어있는 고운 진흙으로 그릇을 빚은 다음 그 겉면에 산화철을 발라 문지른 뒤 구워 붉게 만든 토기이다. 이 토기는 평안도 지역을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남한에서는 주로 고인돌이나 돌널무덤에서 많이 발견되 껴묻거리 같은 특수한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다고 생각되었으나 여주 혼암리.부여 송국리 및 김천 송죽리의 접터에서도 여러 형태의 붉은 간토기가 나와 실생활에서도 사용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덤에서 출토되는 토기의 모양은 대체로 짧은 목을 가진 단지이나 집터에서는 단지 이외에도 자리.잔.항아리 등 실용토기들이 다양하게 출토되고 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민무늬토기는 노천에서 낮은 온도로 구워졌기 때문에 적갈색을 띠고 있다. 대부분 납작바닥이며 큰 것은 곡물 등을 보관하는 용도로, 작은 것은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다.

<민무늬토기, 대구 서변동><영주 가흥동>
<민무늬토기, 대구 대천동, 안동 저전리>

민무늬토기
민무늬토기란 무늬가 없는 그릇을 말한다. 토기는 굵은 모래나 돌가루를 섞은 진흙으로 빚었다. 특징은 대체로 기벽이 두꺼우며, 노천에서 낮은 온도로 구워졌기 때문에 적갈색을 띠고 있다. 그릇의 바닥은 대체로 납작하다. 종류는 바리와 접시, 항아리 등이 다수이다. 대형의 것은 곡물 등을 보관하는 용도이며, 소형은 조리용으로 사용되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1 검은간토기, 대구 팔달동><2 뚜껑있는 항아리, 대구 팔달동><상주 예산리><3 원형 덧띠 토기, 상주 병성동><4 삼각형 덧띠 토기, 대구 팔달동>

영남지역의 초기철기시대 토기
기원전 1세기경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토기 제작 기술이 도입되면서 민무늬토기 제작 기법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물레가 사용되기 시작하여 그릇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된다. 지붕이 있는 가마에서 토기를 굽는 온도가 높아지면서 토기의 색과 강도가 변화된다. 영남지역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로는 덧띠토기와 긴목검은간토기가 있다. 이 가운데 덧띠토기는 토기의 아가리 부분에 점토 띠를 덧붙인 것으로 한반도 중남부 이남 지역 철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다. 그 형태는 점토 띠의 단면이 원형에서 삼각형으로 변화한다. 이 밖에 굽다리 접시와 시루도 제작 사용되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5 쇠뿔 모양 손잡이 항아리, 대구 팔달동><상주 예산리>
<5 쇠뿔 모양 손잡이 항아리, 상주 예산리><대구 팔달동><경산 신대리>
<6 굽다리 긴목 항아리, 대구 팔달동><7 뚜껑있는 굽다리 긴목 항아리, 경산 임당동>
<8 굽다리접시, 상주 예산리><대구 팔달동>
<8 굽다리접시, 대구 팔달동><9 뚜껑있는 굽다리접시, 상주 예산리><10 주머니형 항아리, 상주 예산리><원형 덧띠 토기, 상주 예산리><11 짧은목 항아리, 상주 예산리>

영남지역의 원삼국 토기
원삼국시대의 영남지역 토기는 와질토기로 대표된다. 와질토기는 회색이 기본이나 회흑색, 흑색 등의 색조도 띠며 단단하기가 기와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회청색의 경질 토기보다는 굽는 온도가 낮아 덜 단단하고 흡수성이 강하다. 바탕흙으로는 매우 고운 진흙을 사용하였다. 와질토기의 형태는 초기 검은간토기와 비슷한 긴목항아리가 주류를 이룬다. 그릇의 형태는 아가리가 나팔모양으로 바라진 둥근 바닥에 쇠뿔 모양 손잡이가 달린 토기와 주머니 모양 항아리로 대표된다. 늦은 시기에는 그릇 형태가 더욱 다양해지면서 새로이 화로모양토기.굽다리접시 등이 등장하게 된다. 와질토기는 주로 널무덤이나 덧널무덤 등 무덤유적에서 출토되어 있어 껴묻거리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토기, 흙을 빚어 만든 그릇
흙은 자연이 내어준 또 다른 선물입니다. 흙을 구워서 만든 토기는 신석기시대에 처음 등장합니다. 토기는 여러 가지 음식물을 담거나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토기는 굽는 온도에 따라 색깔과 단단함이 달라집니다. 토기 형태와 종류는 물레를 이용하면서부터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토기에 새겨진 여러 무늬는 한국적 문양과 독특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문화 원형이었습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대구 볼로동 고분군 출토품, 1 뚜껑있는 굽다리접시><2 굽다리접시><3 짧은목 항아리><4 뚜껑있는 세 귀 달린 항아리>
<5 굽다리 긴목 항아리>
<6 큰항아리><7 바리모양 그릇받침><8 뚜껑있는 접시><9 바닥이 뾰족한 독>
<대구 구암동 고분군 출토품, 1 뚜껑있는 굽다리접시><2 세 귀 달린 곧은목 항아리>
<3 굽다리 긴목 항아리><4 짧은목 항아리>
<5 긴목 항아리><6 바리모양 그릇받침><7 잔><8 굽다리 구때항아리><9 바리>
<대구 달성 고분군 출토품, 1 바리><2 굽다리접시><3 굽다리 긴목 항아리><4 굽다리 곧은목 항아리>
<5 뚜껑있는 귀 달린 항아리>
<6 큰항아리><7 이형토기><8 원통모양 그릇받침><9 시루><10 뚜껑있는 굽다리접시><11 굽다리접시>
<대구 성산 고분군 출토품, 1 뚜껑있는 굽다리접시><2 뚜껑있는 귀달린 항아리>
<3 병><4 굽다리긴목항아리>
<5 바리모양 그릇받침><6 원통모양 그릇받침><7 뚜껑있는 굽다리접시>
<대구 문산.죽곡 고분군 출토품, 1 뚜껑있는 네 귀 달린 항아리><2 곧은목 항아리>
<3 뚜껑있는 항아리>
<4 뚜껑있는 긴목 항아리><5 긴목 항아리><6 바리모양 그릇받침><7 원통모양 그릇받침><8 굽다리접시><9 소리나는 잔><10 잔><11 이형토기>
<고령 지산동 고분군 출토품, 1 뚜껑있는 굽다리접시><2 긴목 항아리>
<3 뚜껑있는 짧은목 항아리>
<4 원통모양 그릇받침><5 바리모양 그릇받침><6 뚜껑있는 손잡이를 단 굽다리바리><7 손잡이를 단 바리><8 손잡이를 단 굽다리바리><9 뚜껑있는 접시>

신라와 가야토기
대구와 고령지역은 무덤에 넣는 토기 모양이 다양합니다. 낙동강 동쪽에 위치한 대구지역 고분에서는 신라 수도인 경주에서 만들었거나 엇갈리게 뚫은 굽구멍을 지닌 굽다리 접시가 사용됩니다. 양쪽에 귀가 달린 항아리도 이 지역의 독특한 토기입니다. 반면, 낙동강 서쪽에 위치한 대가야 고분에서는 다양한 높낮이의 그릇 받침과 물결무늬가 새겨진 긴 목 항아리가 쓰였습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거북모양 토기, 대구 달성토성, 삼국시대>

거북이 모양으로 만든 토기로 액체를 담아서 따르는 주전자이다. 거북이 등의 바둑판무늬 안에는 원무늬가 찍혀 있다. 꼬리 부분에는 액체를 부을 수 있는 깔대기형의 주입구가 있다. 머리에는 눈, 코, 입이 뚫려 있으며 입은 액체가 흘러나오는 구멍이다. 바닥에는 굽다리를 부착하였던 흔적이 남아 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마형토기, 달구 문양리, 삼국시대>

안장을 얹은 말의 모습을 나타낸 토기이다. 쫑긋하게 새운 귀와 길게 늘어진 갈기는 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토기를 굽는 과정에서 등 부분이 갈라졌으며 꼬리는 결실되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말머리장식굽다리접시, 경산 임당동, 삼국시대>

굽다리접시 윗부분에 3개의 말머리를 균등한 간격으로 붙여 손잡이처럼 장식하였다. 긴 타원형의 말머리에는 두 개의 귀만 붙여 놓았을 뿐 눈, 코, 입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굽다리는 2단으로 장방형 투창이 서로 엇갈리게 뚫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오리모양 주전자, 김천 삼성리, 삼국시대>

오리를 본떠서 만든 주전자로 등에는 액체를 담을 수 있는 주입구가 있고, 꼬리 부분에는 액체를 따를 수 있는 출수구가 있다. 내부는 비어 있어 주전자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대구.경북의 고대문화
대구.경북 지역의 곳곳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이어진 선사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 지역의 큰 강줄기인 낙동강과 금호강은 삶의 젖줄이자 새로운 문화 유입의 창구였습니다. 대구.경북에서는 신라와 가야의 문화가 발전하였고, 그 번영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 곳곳에는 지금도 수많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 토기, 청동기, 철기 등으로 만들어진 많은 유물은 고대와 현재를 이어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출처>

  1. 안내문, 대구박물관, 2013년/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