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삼국 중 늦은 시기인 5세기 눌지왕때 고구려에 의해서 전파되었다.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되기 이전부터 경북지역에서는 불교가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이른 시기에 사찰들이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가 먼저 전파된 경북지역에는 이른시기부터 불상이 만들어졌으며, 영주, 봉화, 안동, 군위 등 여러지역에 삼국시대 금동불과 마애석불 등이 남아 있다. 대구박물관에서는 3점의 국보급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데, 구미 선산읍 봉한동에서 출토된 금동불입상 1점과, 금동관음보살입상 2점이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전성기때 만들어진 불상들로 그 조각수법이 사실적이며 매우 섬세하게 만들어졌다.

의성 관덕리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 기단 모서리에 올려져 있는 석상이다. 암수 1마리씩 두쌍이 있었는데 현재는 1쌍만 남아 있다. 조각수법을 알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닳아 있다. 암사는 앞발을 곧게 세우고 뒷발을 구부린채 앉아 있는데 그 아래 새끼 사자가 젖을 빨고 있다. 삼층석탑이 조성되었던 9세기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힘찬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보물) 기단 네 모서리를 지키던 석상이다. 사자는 불법을 지키는 수호상으로 불상의 대좌나 탑, 석등, 승탑 등 불교와 관련된 석조물에 많이 표현된다. 돌사자는 마치 불국사 다보탑의 사자상을 연상하게 하지만, 배 밑에 새끼 사자가 있고 그중 한 마리는 어미젖을 빨고 있어 매우 희귀한 모습이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용은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바라보며 여의주를 물고 있다. 목은 비늘과 갈기를 선명하게 표현하였다. 사찰에서 사용한 용두보당의 예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통일신라 전성기의 금속공예 기술을 잘 발휘한 걸작이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이 불상은 1976년 경북 선산읍 봉한동에서 공사를 하던 중 금동여래입상(국보)과 함께 출토된 2점의 금동보살입상 중 하나이다. 보살상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 위에 무릅을 약간 구부린 채 서 있는 자세이다. 신체는 날씬한 편으로 균형이 잘 맞으며, 옷은 몸에 얇게 밀착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사실적이며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몸은 날씬하게 균형이 잘 맞으며, 옷은 몸에 얇게 밀착되어 있다. 얼굴은 눈.코.입을 분명하게 표현하였으며, 미소를 머급고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있고 조각수법이 뛰어나 삼국시대 후기 금동보살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보살상은 머리에 꽃으로 장식된 관을 쓰고 있다. 조각수법이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편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은 복잡하고 화려한 장신구의 표현이 특이한 보살상으로 삼국시대인 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근엄하고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중국적인 요소가 강한 편이어서 복잡하고 화려하게 장신구를 표현한 것이 매우 특징적이며, 이 시기 금동보살상으로서는 유례가 드문 작품이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왼손과 왼발 일부가 없어지고 약간의 녹이 있으나 도금 상태는 좋은 편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모양의 머리칼을 붙였으며, 그 위에 상투모양의 머리를 올려놓고 있다. 양감 있는 얼굴에 예리한 선으로 눈.코.입을 표현하였다. 몸의 형태나 세부 표현이 부드럽고 단순하면서도 단정한 인상을 주고 있다.

몸의 형태와 세부 표현이 부드럽고 단순하며, 옷주름이 정리되어 단아한 느낌이다.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양 어꺠를 모두 덮은 가사는 몸에 밀착되어 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초기의 불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통일신라시대에 대승불교가 전래되면서 보살이 등장했다. 보살은 온전한 깨달음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며 수행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위로는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고자 하며, 아래로는 중생을 바른길로 이끈다. 보살상은 보통의 불상과 달리 보관, 목걸이, 팔찌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관음보살은 부처의 자비심을 나타내며, 관세음보살의 줄임말이다. 삼국시대는 주로 화불化佛이 있는 보관을 쓰고, 정병을 든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중국 원나라 티베트 불상 양식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부처는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를 체험한 사람과 열반에 다다른 사람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석가모니를 가리키는데, 진리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래如來라고도 한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1910년 조사 당시 칠곡 가산성의 천주사에 있었다고 하며, 1912년 4월 이왕가박물관이 일본인으로부터 구입하여 소장하였다. 불상의 복장 기록에 따르면(현재는 전해지지 않음), 1482년 다밀지의 정수사에서 삼존(아미타불, 관음보살, 지장보살)으로 제작하였다. 1792년 경상좌도 칠곡도호부 북면의 팔공산 대장사 운수암에서 중수하였으며, 어느 때인가 천주사로 옮겼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나무를 깎고 덧대어 모양을 만들고, 표면에 옻칠과 금박가루를 발랐다. 제작 연대가 확실하여 조선 전기 불상 연구에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비로자나불은 태양의 빛처럼 불교의 진리가 우주 가득히 비추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비로자자불상은 <화엄경>에 의거하여 제작하여, 지권인의 손갖춤을 한 부처의 모습이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나한은 아라한을 줄인 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성자를 가리킨다. 소승불교에서는 수행자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성자를 나타내는 말로 쓴다. 나한은 인간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 하여 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고려시대에 나한재가 국가행사로 치러지면서 서민들에게 친숙해졌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이 상은 낮은 보관을 쓰고 있으며, 머리 뒤에는 광배를 끼우는 촉이 있다. 손가락은 모두 뺨에 대고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있다. 옷주름은 같은 형태를 의자의 뒷면까지 반복적으로 표현하였다. 발받침은 밑부분에서 솟아 나온 연잎모양이다. 고구려와 백제의 반가사유상에 비해 모양이 조금 다로고 단수화한 면이 있다. 주성분은 구리이며, 이 외에 주석과 납 등이 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반가사유상은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 하나의 보살상으로 확립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6~7세기에 유행하였다. 이 상은 얼굴에 표정이 없고 몸체에 비해 머리와 보관이 큰 편이다. 옷주름은 도식적으로 표현하였고, 작고 야윈 손가락을 뺨에 대고 있는 사유의 자세는 약간 어색한 편이다. 주요 성분은 구리이며, 이 외에 주석과 납 등이 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요발’, ‘동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양 악기 심벌즈와 유사한 모양으로 두 발을 부딪혀 소리를 낸다. 주로 범패와 같은 불교 의식에 사용한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쇠북은 공양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을 때 사용한다. 쇠북 뒷면에 새긴 명문에는 1351년에 왜구가 감은사에 침입하여 반자와 소종, 금구 등을 훔치는 바람에 다시 제작하였다고 한다. 1351년에 제작한 쇠북임이 밝혀지면서 고려 말까지 감은사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북을 치는 곳은 꽃잎과 자방을 돌출되게 새겨 넣었고, 가장자리는 구름의 기운을 형상화한 무늬를 장식하였다. 옆면에는 종을 걸기 위한 고리 2개가 있고, 쇠북을 만든 정황을 알 수 있는 내용을 음각으로 새겨 넣었다. 새긴 글씨의 내용은 1143년에 덕산사에 걸어 놓았다는 사실과 구체적인 무게에 대한 것이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범종은 절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을 때 또는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한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와 보살상이 새겨진 부분 사이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새긴 글에서 보주甫州는 현재 예천의 고려시대 지명이다. 시완사는 종을 사용한 절의 이름으로 보인다. 기축은 종의 제작 시점이 1169년 혹은 1229년임을 나타낸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금강령은 법회에서 의식을 행할 때 흔들어 소리를 내는 도구이다. 고려 후기 원나라에서 유입된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아 제작하였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금강저는 고대 인도의 무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번뇌를 깨뜨린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얇은 청동 판에 부처나 보살, 호법신 등을 표현한 것을 경상鏡像이라고 한다. 이 거울은 휴대하기도 하고, 예배나 장식용으로 사용하였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고려시대 불교 의례
불교 의례는 불교 교리에 따라 치르는 행사이다. 의례는 크게 불교 신앙에서 생긴 것과 민간 신앙에서 생긴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불교 신앙 의례는 자신을 깨끗이 하고 닦는 것이며, 민간 신앙 의례는 세시풍속과 같은 고유의 풍속과 연계하여 치르는 행사이다. 고려시대에는 선종과 교종이 융성함에 따라 다양한 의례라 크게 유행했다. 그중에서 연등회와 팔관회는 고려 태조가 <훈요십조>에 언급할 만큼 중요한 국가적 불교 의례였다. 연등회는 정월 대보름에 불을 켜고 부처에게 복을 비는 행사이고, 팔관회는 전쟁에서 죽은 장수의 명복을 비는 호국 의례의 성격이 강한 행사였다. 불교 의례에는 종, 쇠북, 바라, 목탁, 요령, 금강저 등 여러 공예품을 사용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정병은 인도에서 승려가 여행할 때 지니던 물병에서 유래하였으며, 부처님 앞에 맑은 물을 담아 올리는 공양구였다. 고려시대에는 향로와 함께 중요한 불교 공양구 중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향완은 그릇 모양의 몸체에 나팔 모양의 높은 받침대가 있는 향로로,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다. 악취나 해충을 쫓아내는 향은 고대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지니던 필수품이었다. 향완은 불전에서 향을 피우는 공양구로 많이 사용하였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정병과 향완
정병과 향완은 고려시대에 불교가 융성하면서 절에서 사용된 공양구이다. 정병은 부처에게 깨끗한 물을 바칠 때 사용하는 병이고, 향완은 향을 피울 때 사용하는 사발이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종파에 관계없이 크게 유행하여 정병이나 향완과 같은 공양구가 많이 만들어졌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부처의 사리는 불상이 신앙이 중심이 되었던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었기때문에 사리를 담는 그릇과 공양물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정성이 들어간 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최근까지 석탑의 해체.보수과정에서 많은 사리갖춤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감은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갖춤을 비롯하여,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된 불국사석가탑사리장엄구 등 많은 걸작 유물들이 남아 있다.

2층 탑신 지붕에서는 통일신라 때 넣은 사리갖춤이 발견되었다.통일신라 금속공예의 걸작으로 궁궐 정전이나 불전에서 볼 수 있는 장엄함을 표현하는 닫집 형태를 하고 있다. 그 안에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사리를 모시고 있다. 격식을 제대로 갖춘 정통 사리갖춤이라 할 수 있다.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중 2층 탑신에 있던 거북모양 돌함 안에서 나왔다. 바깥 함은 전각형(집모양)이며, 금판을 오려 만든 섬세한 장식물을 붙였다. 함 안에는 녹색의 유리 잔과 병을 넣고 사리를 담았다. 이 사리함은 유리잔과 유리병에 넣은 유일한 사례이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1959년 송림사 오층전탑을 해체할 때 발견하였다. 2층 탑신의 거북모양 석함 안에서 사리기와 여러 공양물, 5층 옥개석 윗면에서 상감청자합이 나왔다. 화려한 전각모양 사리기는 신라 고유의 금속공예 기술과 서역에서 유입된 유리 제작 기술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동.서삼층석탑에서 모두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사리장엄구는 동으로 만든 항아리에 사리병을 담아 놓고 있다. 이전의 집모양 사리갖춤과는 달리 항아리 형태의 외함 안에 정병 모양의 금속제 병을 사리병으로 사용하고 있다.


758년 언적법사, 조문황태후와 누이는 갈항사에 두 개의 탑을 세우고 자신의 바람을 담은 사리갖춤을 만들어 동탑과 서탑에 봉안하였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후 누이의 아들은 원성왕이 된다. 갈항사지 동.서삼층석탑은 1916년 2월 12일 도굴범들이 탑의 일부를 무너뜨리는 바람에 그 해 6월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겼다. 사리갖춤은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견하였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사리갖춤은 금동제 사방불판을 연결하여 제작한 금속제 함이다. 각 면에는 가운데 부처를 두고 양쪽에 보살을 배치한 형식이다. 동쪽에 약사여래, 서쪽에 아미타여래, 남쪽에 석가여래, 북쪽에 비로나자불을 배치하였다.

신라 민애왕을 추모하여 건립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에 봉안한 사리갖춤이다. 금동제 사방불판은 중앙의 여래를 중심에 두고 양 옆에 합장한 보살을 배치한 형식이다. 여래는 동쪽에 약사불, 서쪽에 아미타불, 남쪽에 석가불, 북쪽에 비로자나불을 배치하였다. 금동판의 양 옆에 각각 4개의 구멍을 뚫은 뒤 연결하여 함으로 제작하였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사리갖춤
사리는 열반에 든 부처에게서 나온 구슬 모양의 유골이다. 사리갖춤은 사리를 보호하거나 장엄하는 데 쓰는 그릇을 말한다. 통일신라시대는 난간이 있는 집모양의 사리갖춤이 많이 만들어지다가 점차 간략하고 소박해져 곱돌로 만든 사리갖춤이 유행했다. 이때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따라 99개 또는 77개의 작은 탑을 만들어 사리갖춤과 함께 모시시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사리갖춤의 모양이 원통형이나 팔각형 등으로 바뀌면서 도자기를 사용하기도 했고, 조선시대에는 형태가 더욱 단순해져 뚜껑이 있는 원형 그릇을 많이 사용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卍’은 범어로 길상과 행복을 의미한다. 삼국시대 이후 사찰과 불상 등에는 ‘卍’자를 새긴 경우가 종종 있다. ‘卍’자는 사찰과 부처를 나타내는 표식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솥의 크기가 작은 점에서 볼 때 실생활에서 사용했다기 보다는 부처에게 공양할 때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귀한 곡물을 부처에게 바치면서 소원성취를 염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촛대는 촛불을 받치는 도구이다. 촛불을 받치는 부분의 측면에는 촛대를 만든 사람과 목적이 명확하게 적혀 있다. 제작 시점인 병오년은 1126년 혹은 1186년으로 보고 있다. 이 촛대는 사용한 절과 제작 시점을 알 수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향완은 사찰에서 향을 피울 수 있게 만든 공예품이다. 향은 부처에게 공양을 하는 사찰의 내부를 성스러운 공간으로 만든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경자는 불교에서 경전을 읽거나 의식을 치를 때 사용하는 범음구이다. 경자에서 나오는 맑은 소리는 모든 중생의 불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경상은 거울 표면 또는 거울 형태를 한 동판에 불상 등을 선으로 새긴 것이다. 관음보살의 얼굴은 풍만하며 머리에 쓴 보관에는 화불을 표현하였다. 구름 위에 핀 연꽃 위에 앉아 오른손으로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있다. 머리에 쓴 보관과 가슴에 화려한 장신구를 걸치고 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영주 금강사
금강사는 영주댐을 건설하다 절터가 발견되어 세상에 처음으로 드러난 고려시대 절이다. 절 아나에는 건물이 10여채가 있었으며, 우물, 보행자 도로, 계단, 배수로, 담장 등도 있었다. 금강사 우물에서 발견한 촛대와 향완 등은 고려시대 금강사라는 절에서 사용한 물건이라는 점이 명화해 학술적 가치가 크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숙수사 절터는 순흥지역에서도 경치가 좋고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의 요지로 인근 부석사 못지않게 큰 절이 있었다. 유물들은 부근 소수중학교 건립공사 중에 발견되었는데 모두 25구의 불상들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로서 볼 때 삼국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고려시대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과 그의 아들, 손자까지 숙수사에서 공부하였다는 것으로 볼 때 조선초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숙수사, 사원에서 서원으로
영주 숙수사는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는 중세 문화의 전환기를 간직한 절이다. 통일신라 때 세워진 이 절은 고려시대까지 유지되다가 조선시대에 문을 다았다. 1543년에 주세붕이 숙수사가 있던 자리에 백운동서원을 세웠고, 1550년에는 풍기 군수 이황이 서원이 이름을 내려 줄 것을 임금에게 청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593년 소수중학교 운동장을 만들다가 청동 불상 25구를 발견하면서 숙수사가 통일신라시대 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원에 있는 당간지주와 여러 석주물로 미루어 볼 때 절의 규모가 꽤 컸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대구.경북의 불교문화
527년에 불교가 공인된 이후, 대구.경북은 불교문화를 널리 알리는 통로가 되었다. 신라에서 조선에 이르는 불교 조각의 전통이 대구.경북의 영주, 봉화, 안동, 군위, 구미 등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구미에서 발견된 보살상(국보)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절 잡혀 있을 뿐만 아니라 조각 솜씨가 뛰어나 삼국시대 후기 보살상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과 김천 갈항사터 삼층석탑 등 통일신라시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갖춤은 당시 불교 공예품의 뛰어난 수준을 보여 준다. 대구.경북에는 뛰어난 불교 문화재를 간직한 절이 많다. 영주 부석사와 안동 봉정사는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유서 깊은 절로서, 201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구 팔공산은 경주의 남산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보물 창고이다. 동화사는 고려시대에 정례결사운동을 전개한 보조국사 지눌이 머물렀던 절이며, 부인사는 고려 최초의 대장경인 초조대장경을 보관했던 절이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23년)
<출처>
- 안내문, 대구박물관, 2013년/2023년
- ‘보물 의성 관덕동 석사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4년
- ‘국보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4년
- ‘국보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4년
- ‘국보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4년
- ‘보물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엄구’,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4년
- ‘보물 금동 당간 용두’,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