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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팔공산 은해사

경북 영천시 청통면에 있는 사찰인 은해사銀海寺이다. 팔공산 동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화사와 함께 팔공산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다. 통일신라 때 혜철이 해안사로 창건하였다. 조선중기 명종 때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인종의 태실을 봉하고 은해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왕실과 관련된 사찰로 지역 중심 사찰 역할을 했다. 갓바위로 유명산 선본사,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영산선(국보)이 있는 거조사 등을 말사로 거느리고 있다. 팔공산 자락에 부속 암자인 백흥암, 운부암 등이 자리잡고 있다.

<영천 팔공산 은해사>

은해사는 팔공산 동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갓바위가 있는 팔공산 동쪽 등산로가 있어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다.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계곡을 따라서 산길을 조금 걸으면 사찰 경내를 찾아갈 수 있다.

<천왕문>
<사천왕상>
<사천왕상>
<숲길>
<은해사 들어가는 길>

은해사는 큰 산에 위치한 사찰답게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을 주불전으로 하고 있으며, 동쪽에 지장전, 서쪽에 조사전이 배치되어 있다. 공간을 넓게 사용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사찰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은해사 가람배치>
<보화루>

주불전이 있는 영역은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마당 양쪽에 요사채가 배치되어 있다. 동쪽 요사채가 주 생활공간으로 보인다.

<주불전이 있는 중심영역>

주불전인 극락보전은 조선후기에 중건된 건물이다. 앞면 3칸 규모로, 팔작지붕과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원래 극락보전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쓴 것이라고 하며 현재는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극락보전>
<현판과 지붕을 받치는 공포>
<극락보전 내부>

은해사 대웅전
은해사는 원래 해안사로, 신라 헌덕왕 1년(809)에 혜철국사가 운부암 아래 해안평에 지었다. 그러나 인종 1년(1544)에 큰 불이 나서 사라졌다가 명종 1년(1545)에 천교화상이 현재 위치로 옮겨 다시 세웠다. <은해사중건기>에 따르면 헌종 13년(1847)에도 큰 화재로 극락전을 제외한 천여 칸의 건물이 모두 불에 탔다. 지금의 대웅전은 이를 안타까워한 스님과 군수, 신도들의 기부금을 모아 그해에 새로이 다시 지은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식 팔작지붕이다. 대웅전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지금은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안내문, 영천 은해사, 2025년)

<단루각 單樓閣>
<단루각 내부>
<마당 동쪽 요사채>
<뒤에서 본 모습>
<마당 서쪽 요사채>
<뒤에서 본 모습>

동쪽에는 지장전과 요사채, 성보박물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지장전>
<지장전 동쪽 요사채>
<요사채>
<동쪽 마당>

마당 서쪽에는 조사전과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큰 규모의 건물이 있다.

<조사전>
<조사전 내부>
<요사채 앞 마당>
<요사채 건물>
<범종각>

은해사 銀海寺, 경북 영천시 청통로
신라 헌덕왕 원년(809)에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해안사를 조선조 명종 원년(1546)에 천교화상이 지금의 터로 옮겨 은해사라 이름을 바꿨다. 그 후 선조 22년(1589)에 법영, 의인, 광심대사 등이 다시 중창하였고, 1919년에 대본산 사찰이 되었으며 현재 대한 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이다. 은해사에는 천년이 넘는 거조암을 비롯하여 백흥암, 운부암, 백련암, 묘봉암, 중앙암, 기기암, 서운암 등 8개의 암자가 있다. 특히 거조암의 영산전은 고려 우왕 원년(1375)에 건립된 목조 건물로서 국보로 지정되었다. 또한 보물 백흥암 극락전과 안에 있는 보물 수미단, 보물 운부암 금동보살좌상, 보물 은해사 괘불탱 등 많은 국가 및 도 지정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중앙암 주의의 극락굴, 건들바위, 만년송, 장군수 및 기기암 안흥폭포 등이 있어 명승지로도 유명하다. (안내문, 영천 은해사, 2025년)

<출처>

  1. 안내문, 영천 은해사, 2025년
  2. 팔공산 은해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5년
  3. 은해사, 위키백과,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