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전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창 고인돌 유적’이 잘 알려져 있다. 강화, 화순의 고인돌유적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청동기문화로 손꼽힌다. 청동기시대 이전 구석기시대부터 많은 유적들이 전북 각지에 분포하고 있다. 임실을 중심으로 한 섬진강 일대와 군사, 고창 등 서해안 지역에서 구석기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신석기시대는 다양안 먹거리를 얻기 위한 토기와 낚시바들, 갈돌과 갈판 등이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었다. 고창 지역 고인돌에서는 청동기 문화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간돌검, 붉은간토기 등이 확인되었다.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없지만 여러시대, 다양한 유물을 통해 전북지역에서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구석기시대 석기는 하천에서 구하기 쉬운 주먹크기의 강돌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돌을 깨뜨려 날을 예리하게 세운 떤석기를 제작하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주먹도끼는 돌이 뾰족하고, 하단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를 지닌 뗀석기로 구석기시대 전기와 중기에 유행한 석기이다.


구석기시대, 수렵과 채집의 시작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도구를 만들고 불을 이용하면서 시작되었다. 구석기인들은 먹거리가 풍부한 곳을 찾아다니며 이동생활을 하였고 사냥이나 채집으로 식량을 구했다. 이 시기에는 다양한 석기들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석기들은 사용 목적과 만든 시기에 따라 만드는 방법, 형태가 각기 다르다. 전북 지역에서도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들은 강가나 동굴에 머무르면서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전시된 유물을 통해 섬진강 상류인 임실과 장수, 진안 지역과 서해안가 가까운 고창 완주 등에서 구석기시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돌날과 작은 돌날
후기 구석기시대가 되면 하나의 돌에서 여러 개의 석기를 만들수 있는 기술이 발전한다. 이 시기에는 큰 돌의 표면을 정리하고 세로로 긴 돌날을 여러 개 떼어내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돌날을 다듬어 석기를 만들었다. 이후에는 이러한 돌날을 만드는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작은 돌날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돌날 그 자체로서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작은 돌날은 크기가 작아 다른 도구의 부속구가 되거나 여러 개를 결합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석기
구석기시대에는 전기부터 후기까지 큰 돌에서 일부분만 깨뜨려 만든 석기가 사용되었는데, 주먹도끼와 찍개, 여러면석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석기는 여러 가지 기능으로 이용되었다. 주먹도끼는 사용흔을 분석한 결과 사냥이나 골수 채취. 도살. 나무나 가죽을 가공하는데 사용되었고, 여러면석기는 팔매돌이나 망치돌 등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석기들은 전.중기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것들인데 전북지역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에서도 확인된다는 특징이 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전문적인 기능을 가진 석기, 구석기시대
후기 구석기시대에는 석기를 만드는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크고 거친 형태에서 보다 작고 정교한 석기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석기들은 하나의 석기가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던 대형 석기와는 달리 하나의 석기가 한가지 용도로만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이 시기에는 주로 돌날을 사용하여 밀개와 뚜르개.홈날.새기개.슴베찌르개.톱니날석기 등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긴 나무와 돌날을 연결하여 사냥에 사용한 슴베찌르개는 전북지역의 대표적인 후기 구석기시대 석기이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5년)
신석기시대에는 돌을 떼거나 갈아서 석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다. 간석기로는 도끼, 자귀, 반달돌탈, 별도끼 등이 발견된다. 집터에서 출토되는 갈돌과 갈판은 도토리 등 자연 열매를 가공하는 데 쓰였던 것이다. 물고기를 잡기 위한 도구로 낚시바늘과 작살, 그물추 등이 있다.



신석기인들의 생활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후빙기에 들어선 기원전 6,000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신석기인들은 구석기시대와는 달리 수렵.채집.어로 활동을 하며 먹거리를 구하였다. 신석기시대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기원전 4,000년 무렵에 따비형석기와 곰배괭이 등을 이용하여 조와 기장을 재배하는 초기 농경이 시작되었는데, 이렇게 재배한 곡식은 갈돌과 갈판, 돌공이와 돌절구 등으로 갈아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빗살무늬토기는 곧은 입술에 그릇 밑이 도토리나 달걀처럼 뾰족하거나 둥근 모양이다. 따라서 주로 강가나 바닷가에 살았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모래 위에 놓고 사용했다. 토기의 겉면에 나무 뼈연장 등으로 그릇 바깥 면에 짤막한 줄이 배게 누르거나 그어서 빗살무늬를 새긴다. 한반도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 형태이다.







토기의 등장
전북 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토기가 등장하였으며, 신석기시대 중기인 기원전 3,500년 무렵에는 바닥이 뾰족한 빗살무늬토기가 사용되었다. 한편, 금강을 통하여 남부 내륙 지역과 중부 지역의 문화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 전북 동부 내륙 지역에는 다양한 신석기 문화가 공존하였고, 마름모무늬토기와 같은 독창적인 토기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반달돌칼은 곡식을 수확하는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반달돌칼은 신석기시대 말기에 등장하여 청동기시대에는 벼농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농경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힌다.


붉은간토기는 고인돌과 돌널무덤 등 주로 무덤에서 발견되어 부장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평안도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본격적인 농경의 시작
청동기시대에는 벼농사가 본격화되면서 각종 농기구가 만들어지고 농경이 생업의 기반을 이루었다. 전북 지역에는 청동기시대 중기에 송국리문화가 전해지면서 농경문화가 더욱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 무렵 촌락을 둘러싸는 도랑인 환호와 목재로 만든 담인 목책이 있는 마으리 등장하게 된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낮은 구릉이나 평지에 마을을 이루고 벼, 조, 수수, 콩, 보리 등을 주로 재배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수렵이나 어로, 채집 활동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전북지역에는 고인돌이 1만기 이상 분포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창지역과 용담댐이 있는 산간지역인 진안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 무덤에서는 간돌검과 돌화살촉, 붉은간토기, 달도끼, 돌칼 등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간돌검은 무기로 사용된 청동시대 석기이다. 간돌검은 고인돌이나 돌널무덤 등에서 출토된 예가 많지만 집터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늦은 시기 무덤에서 출토되는 석검은 날이 길거나 손잡이를 크게 만드는 등 의례용 특징을 보여준다. 한반도에서 많이 출토되는 특징이 있다.





민무늬토기는 노천에서 낮은 온도로 구워졌기 때문에 적갈색을 띠고 있다. 대부분 납작바닥이며 큰 것은 곡물 등을 보관하는 용도로, 작은 것은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다.



고인돌의 축조와 위세품의 부장
전북지역에는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인 고인돌이 1만기 이상 분포하고 있으며, 서부 평야의 고창과 동부 산간이 진안 지역에서 주로 확인된다. 진안 용담댐의 여의곡 유적에서는 고인들의 덮개돌을 옮긴 운반로가 확인되어 고인돌이 제작되어 운반된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 시기의 무덤에는 간돌과 돌화살촉, 붉은간토기 등을 넣었는데 실제로 사용하던 것을 넣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덤에 넣기 위해 만든 것들이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전북 선사 문화의 시작
전북 지역에 거주하던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다양한 석기를 만들어 수렵과 채집을 하였다. 후빙기 이후의 신석기시대에는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농경이나 어로활동이 가능해지면서 더 다양한 삶의 방식이 등장하였다. 또한 기원전 1,500년을 전후한 시점에 시작된 청동기시대에는 본격적으로 농경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농경 활동을 바탕으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며 그 과정에서 부나 지위에서 차이가 생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이후에 전북 지역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밑바탕이 되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출처>
- 안내문, 전주박물관, 2023년
- 안내문, 대구박물관, 2013년/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