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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박물관] 전북지방 불교미술

전북 지방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중심지 중 하나로 여러 고찰과 문화재, 불교유산 등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 백제 불교 유적으로는 익산 미륵사지, 제석사지 등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 때 불교 법상종法相宗이자, 미륵신앙의 중심사찰인 금산사가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전북 서해안에는 조선시대 왕실 등의 후원을 받아 번창했던 고창 선운사, 부안 내소사가 있다. 대표적인 불교문화재로 미륵사지 석탑(국보), 금산사 미륵전(국보) 등이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전북 지방 절터 등에서 출토된 불교 유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불교에서의 사경寫經은 경전을 손으로 직접 베껴 쓰는 수행법이다. 단순한 필사가 아니라 수행, 공덕, 마음 수양을 위한 깊은 의미를 지닌 행위이다. 팔만대장경이 조성되었던 고려시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왕실이나 호족세력의 후원을 받아 사경 작업이 이루어졌다. 지금도 뛰어난 작품들이 전해오고 있다.

<묘법연화경, 조선 15세기>
<반대편에서 본 모습>

<묘법연화경>은 천태종의 근본 경전으로 화엄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삼국시대 이래 가장 많이 유통된 경전이다. 연꽃과 같이 미묘한 부처님의 교리는 하나밖에 없으며 누구나 이 교리에 기초하여 불도를 닦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사경으로 쌓은 공덕
사경은 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을 손으로 직접 베껴 써서 만든 책입니다. 사경을 만드는 일은 불교 교리를 널리 알리고 착한 덕을 쌓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보통 사경 첫머리에는 부처의 말씀과 경전의 세부 내용을 압축한 장면을 그립니다. 사경은 짙은 남색이나 갈색, 흰색 종이 위에 금이나 은, 먹으로 경전의 내용을 그리고 적어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소탑小塔은 문자 그대로 작은 탑이라는 뜻이다. 통일신라 이후 탑을 조성할 때 석가모니 사리를 대신하여 부처님의 말씀인 불경과 함께 모셔졌다. 이를 법사리法舍利라고 한다. 대표적인 경전으로 <법화경>, <반야심경>, <금강경> 등이 있다.

<소탑, 고려시대>
<소탑, 고려시대>
<소탑, 고려시대>
<소탑, 고려시대>
<소탑, 고려시대>
<소탑, 고려시대>

불교에서 소탑은 석가모니 부처의 사리를 상징한다. 흙으로 만든 소탑은 단층 기단과 상륜부를 갖춘 삼층석탑 모양의 틀에 찍어서 구워 만든다. 부처의 유해인 사리는 그의 가르침에 대한 물질적 증거로서 불교가 전파되는 곳에 항상 동반했다. 6세기 전반 삼국에 불교가 전해질 때도 사리가 함께 전해졌다. 이후 사리에 대한 신앙은 점차 확장하여, 부처의 몸을 물질적으로 상징하는 신사리에서 부처의 말씀과 가르침을 상징하는 법사리 개념이 발전했다. 법사리 안치 방식 중 가장 유행한 것은 탑 안에 소탑을 안치하는 것이다. 경전에는 무수한 숫자를 상징하는 99개의 다라니를 99기의 소탑 안에 넣아 만든 법사리를 탑 안에 봉안하면 그동안 지은 죄를 씻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99기의 소탑이 모두 남아 있는 예는 매우 적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용무늬 대야, 고려 12~13세기>
<용무늬가 새겨진 부분>

고려시대 12~13세기에 만들어진 이 커다란 대야는 왕실이나 사찰에서 관불의식에 쓰던 대야로 짐작된다. 대야에까지 고려시대 금속공예의 은입사 기법이 사용되어 당시 귀족사회의 풍요로운 일면을 엿보게 한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정병淨甁은 부처에게 바치는 깨끗한 물을 담는 병으로, 승려가 지녀야 하는 18가지 필수품의 하나였다. 일찍이 통일신라 석굴암의 범천상에 보이며 고려시대에 유행하여 청동과 청자로 많이 제작되었다.

<정병, 고려시대>
<정병, 고려시대>

정병은 고대 인도의 수행자들이 지니던 물병이 관세음보살의 상징이 되면서, 부처에게 정수를 바칠 때 쓰는 공양구로 쓰임새가 바뀌었다. 정병의 형태는 주구나 뚜껑이 없는 간단한 것에서부터, 몸체에 주구가 달리고 긴 목 위에 첨대가 붙은 뚜껑이 놓인 것 등 몇가지 형태가 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향로香爐는 고대 인도지방에서는 고온다습하여 생긴 악취를 없애고 해충을 쫓기 위해 향을 사용하였다. 향을 공양하는 것을 최고의 대접으로 여겼으며 잡귀나 잡념을 제거한다고 하여 불교 의식과 여러 의례에 사용하였다. 그릇 모양의 몸체에 나팔 모양의 높은 받침대가 있는 향로를 특별히 향완이라고 하며,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다.

<향로와 향완, 고려시대>
<향로와 향완, 고려시대>
<향로와 향완, 고려시대>

향은 본래 악취를 없애고 해충을 쫓는 데 썼다. 하지만 잡귀나 잡념을 없애 준다고 믿어 사찰에서는 일상생활이나 의식을 치를 때 두루 사용 했다. 향을 피울 때 쓰는 그릇이 향로이다. 고려시대에 만든 테두리가 넓은 그릇에 나팔 모양 받침이 있는 향로를 향완이라고 한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관세음보살상, 고려 13세기>

통통하게 살이 붙은 둥근 얼굴에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아 깊은 명상에 잠긴 평화로운 표정의 보살상이다. 머리에는 포은 상투를 틀었고, 이마 위에 보관을 올려놓기 위한 턱이 있다. 두 손의 수인으로 보아 관세음보살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부처의 세계로 인도하다
사찰에서는 심오한 불교 교리를 대중에게 쉽게 알리고 성스러운 부처의 세계로 대중을 인도하고자 사찰과 불상 주위를 아름답고 엄숙하게 장식하고 다양한 불교 의례를 열었습니다. 부처를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음식을 올릴 때 사용한 물병이나 향로는 대표적인 불교 의식에 쓰이는 도구입니다. 사찰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은 사찰을 꾸미고, 불교 교리를 대중에게 쉽게 전하는 역할ㅇ르 했으며, 불교 의례에서는 예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범종, 향완, 쇠북, 고려 12~13세기, 전북 부안 남포리>
<용뉴와 용통, 고려 12~13세기, 전북 부안 남포리>

전라북도 부안 남포리에서 출토된 불교구이다. 불가에서는 대중에게 심오한 교리를 쉽게 이해시키거나 깨달음을 주기 위해 다양한 불교 의식이 행해졌다. 불교 의식에서는 사람을 불러 모으거나 제도하기 위한 범종, 법고 등의 범음구가 쓰였다. 공양을 위해서는 정병이나 향로 같은 다양한 불교 의식구가 사용되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전라북도 완주 대성리 화엄사지 출토 유물, 고려 13세기>
<전라북도 완주 대성리 화엄사지 출토 유물, 고려 13세기>
<전라북도 완주 대성리 화엄사지 출토 유물, 고려 13세기>
<전라북도 완주 대성리 화엄사지 출토 유물, 고려 13세기>

범음구梵音具는 불교공예에서 범음을 만들어 내는 도구이다. 범음은 부처의 말씀이자. 부처와 보살에게 바치는 모든 소리를 뜻한다. 대표적인 범은구로는 큰 종인 범종, 큰 북인 법고,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목어, 구름 모양의 판인 은판이 있으며 이들 네 가지 범음구를 불교사물佛敎四物이라 한다. 범음구 중 금속을 이용해서 만든 것으로는 사찰에 걸려 있던 범종과 쇠북을 있다. 

<전라북도 완주 대성리 화엄사지 출토 유물, 고려 13세기>
<전라북도 완주 대성리 화엄사지 출토 유물, 고려 13세기>
<전라북도 완주 대성리 화엄사지 출토 유물, 고려 13세기>

지금은 폐사된 옛 절터 완주 화엄사지에서 1967년경 주민이 큰솥을 발견하게 된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향완, 청동북, 47여개의 소형 접시 등 많은 고려시대 불교 공양구들이 들어 있었다. 금고 측면에는 ‘을유년(1225) 5월 전주 화엄사에서 대덕이라는 장인이 만든 것으로 무게 13근”이라는 내용의 음각 명문이 새겨져 있어 제작연도와 제작한 사람의 이름, 제작연도, 무게 등을 알 수 있어 중요한 가치가 있는 유물이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전 낙수정 동종, 고려 10~11세기, 보물>

불교에서 범종 소리는 ‘부처님의 소리’를 의미합니다. 지금의 전주 교통에 있던 낙수정이라는 정자를 수리하다가 발견한 이 종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보내졌다가, 1999년 일본인 타카하라 히미코가 기증을 하면서 70년 만에 고향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중심으로 네 명의 비천상이 구름 위에 앉아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있는 아름다운 종입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범음구, 진리를 전하는 고요한 소리
부처가 전하는 맑고 깨끗한 깨달음의 말씀을 범음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그 의미가 넓어져 부처와 보살들에게 올리는 모든 음악과 소리까지 범음으로 여깁니다. 범음구는 범음을 만들어 내는 불교용구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울리는 범종소리, 북소리, 목탁 두드리는 소리, 운판 치는 소리는 모든 중생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진리의 소리입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삼국시대에는 불상들이 많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지만, 황룡사 장륙전같은 금당에 모셔졌던 거대 불상들은 지금은 많이 남아 있지 않는 반면에 개인들이 소장했던 작은 금동불상들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그 중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반가사유상(국보)이 삼국시대 금동불상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삼국시대 금동불상들은 크기는 작지만 그 만든 수법의 섬세함이나 뛰어난 조형미 등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아고 있으며, 대부분 국립박물관이나 민간이 운영하는 대형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청동불좌대, 고려시대>
<은제도금사리함, 수정소호, 고려시대>
<금동약사여래입상, 신라>
<금동석가여래좌상, 신라>
<부처, 조선시대>
<전라북도 김제에서 출토된 부처, 삼국시대 백제 7세기, 김제 대목리>
<전라북도 김제에서 출토된 부처, 삼국시대 백제 7세기, 김제 대목리>
<전라북도 김제에서 출토된 부처, 삼국시대 백제 7세기, 김제 대목리>
<전라북도 김제에서 출토된 부처, 삼국시대 백제 7세기, 김제 대목리>

이 판불은 여래좌상과 반가사유상을 각각 본존으로 한 삼존상 2점, 사존상 1점, 승려상 1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래 삼존상은 부처상은 물론이고 양 옆의 협시 보살상까지 모두 앉아 있는 자세로 표현한 매우 드문 사례이다. 부처상과 보살상의 얼굴 모습 등 표현양식으로 볼 때 백제 말기인 7세기 중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석가여래입상, 삼국시대>
<금동비로자나불입상, 신라시대>
<전라북도에서 출토된 부처, 통일신라 말 ~ 고려 초, 완주 대성리.운주면 산북리>
<전라북도에서 출토된 부처, 통일신라 말 ~ 고려 초, 완주 대성리.운주면 산북리>
<전라북도에서 출토된 부처, 통일신라 말 ~ 고려 초, 완주 대성리.운주면 산북리>
<전라북도에서 출토된 부처, 통일신라 말 ~ 고려 초, 완주 대성리.운주면 산북리>

불교 조각의 근본적인 목적은 불교 제자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불교가 삼국시대에 처음 전래된 이래 불상이 제작되었지만, 전라북도에서 발굴된 대부분의 조각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에 나타난 토착 양식이나 지역적 양식을 보여준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사리갖춤, 통일신라 8~9세기, 전 전라북도 남원>

남원 부근의 탑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는 이 사리갖춤은 연꽃대좌 위에 방형투조함을 얹은 형태이다. 사각형의 사리갖춤 주위에는 연꽃받침 아래에서 함의 모서리 방향으로 굽어 올라간 연꽃 줄기 위에 창과 검을 들고 가부좌를 한 신장상이 1구씩 놓여 있다. 함 내부에는 녹유사리병이 안치되었다. 투조, 선조, 주조 등 다양한 공예기술을 활용하여 만들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전라북도에서 출토된 부처, 통일신라 말 ~ 고려 초, 완주 대성리.운주면 산북리>
<전라북도에서 출토된 부처, 통일신라 말 ~ 고려 초, 완주 대성리.운주면 산북리>
<전라북도에서 출토된 부처, 통일신라 말 ~ 고려 초, 완주 대성리.운주면 산북리>
<전라북도에서 출토된 부처, 통일신라 말 ~ 고려 초, 완주 대성리.운주면 산북리>

부처
불상은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든 부처의 형상이다. 부처의 종류에는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불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부터 불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고려 전기에는 불교가 경주 주변에서 벗어나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지역마다 다른 불상이 만들어졌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탄생불, 고려시대>

석가는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은 뒤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아래로 하여 땅을 가리키면서 큰 소리로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존귀하도가”라고 외치며 부처가 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선언했다고 전해진다. 그때 사천왕과 범천, 제석천이 나타나 석가의 탄생을 축하했고 하늘에서는 아홉마리의 용이 따뜻한 물과 찬물로 뒨 두 종류의 깨끗한 물을 석가의 몸에 뿌리고, 천룡팔부가 음악을 연주하고 향을 피워 축복했다는 내용이 옛 경전에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태어난 석가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탄생불이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부처, 진리를 깨달은 자
불상은 부처, 곧 ‘깨달은 자’를 형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고 불상은 완전한 인격체인 부처의 모습을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불교에서는 대중이 불교의 가르침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불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불상이 처음으로 소개된 시기는 불교가 전해진 4세기 후반이며, 6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중국 불상을 모방했으나, 점차 우리 민족 특유의 표정과 정서가 담긴 불상을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불교미술, 진리를 담다
불교는 이 세상의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통해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로, 기원전 6세기 무렵 인도 석가모니의 가르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불교미술에는 불교를 널리 알리고 여러 부처를 기리고자 만든 회화, 조각, 건축, 공예품 등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우리나라는 중국 불교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한국적으로 변회시켰으며, 우리의 미의식을 담은 예술품을 만들어 불심을 표현했습니다. 예배 대상이자 예불 도구로 쓰였던 불교 미술품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의식을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출처>

  1. 안내문, 전주박물관, 2023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