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도자기는 청자에서 분청사기로, 그리고 다시 백자로 변화하면서 도자기의 제작 기술, 형태, 색채, 미적 감각의 범위 등이 다양해졌습니다. 도자기는 각종 의례에서 일상생활까지, 상류층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었다.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터는 고려청자의 주요 생산지였으며 고창 도요지는 조선시대 백자와 분청사기의 제작지로 유명했다. 전주 덕진동 가마터는 조선시대 민간 생활용 도자기를 생산했던 곳이다.
비색청자로 불렸던 고려 청자는 은은한 녹색을 띠는 도자기로 우리나라을 대표하는 문화재이자 예술작품이다. 고려청자는 도자기 종주국인 송나라 사람들조차도 그 빛깔이 중국 청자보다 뛰어나다고 칭송하였다고 한다. 비색청자는 유약이 반투명하며 그릇표면에 금이 생기지 않고 광택이 은은한 것이 특징으로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에 절정기를 이루며 12세기에는 상감기법이 도입되어 그 빛깔과 함께 예술적 조형미까지 갖추게 되었다.

음각 청자는 조각칼 같은 도구로 무늬를 새기는 초보적이고 간단한 기법으로 만든 청자이다. 청자를 제작하기 시작한 뒤 얼마 동안은 무늬 없는 청자를 만들었으나 11세기 무렵부터는 그릇 표면에 음각기법으로 무늬를 새기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간단히 식물무늬를 표현했지만 이후 식물이나 동물, 물가풍경 같은 자연, 상상 속의 동식물 등 다채로운 소재를 썼다. 음각 기법은 가늘고 예리한 선에서 조각칼을 옆으로 뉘어 비스듬히 깎은 것까지 다양하게 응용되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상감은 그릇 표면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 종류의 흙을 매워 넣은 장식 기법이다. 서로 다른 재료를 사용하여 공예품을 장식하는 기법은 목공예품의 나전칠기나 금속 공예품의 입사 기법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고려 장인이 도자기에 적용한 것이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청자
청자는 철분이 약간 함유된 점토를 곱게 수비하여 빚은 후 굽고, 2~3%의 철분이 함유된 유약을 발라 일반적으로 1,250 ℃ 내외의 높은 온도에서 다시 구워낸 자기를 이른다. 그릇의 표면에 입혀진 유약의 푸른빛에 따라 청자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청자는 기본 재료인 점토와 유약의 성분, 가마에 불을 땔 당시 가마 안의 번조 온도, 특히 가마안의 산화, 환원의 번조 분위기에 따라 매우 다양한 색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청자 기술을 받아들여 고려 초부터 청자를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12세기에는 중국에서 감탄할 정도의 세련되 아름다운 비색청자를 완성하였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고려시대 귀족들은 아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누렸다. 풍류와 더불어 자연스러움을 좋아했던 취향이 세련된 청자 문화에 잘 드러난다. 청자병과 주자의 표면에 새겨진 시구는 술과 관련된 낭만과 서정을 노래한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무늬와 장식이 없는 꽃모양의 청자 접시이다. 그릇의 바닥면은 넓고 편평하며, 몸통이 12개의 면으로 나뉘어 전체가 활짝 핀 꽃잎처럼 보인다. 고려청자의 은은한 녹색은 흔히 비취색, 곧 비색에 비유된다. 비색청자 유약은 반투명하며, 그릇 표면에 갈라진 금이 생기기 않고 광택이 은은하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향긋한 차를 즐기다, 고려시대
신라 말에 유입된 차는 고려 초부터 국가 제례는 물론이고 왕의 하사품, 외교상의 예물, 사찰의 공헌 과정에서 폭넓게 이용되었다. 차 문화는 문무귀족, 승려 등 상류 계층 사람들이 즐기던 고급문화의 하나였다. 차를 마시며 품위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은 당시 개경 상류계층의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고려 왕실에서는 연등회, 팔관회,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를 비롯해 각종 행사마다 진다 의식을 함께 하였는데, 이를 위해 다방 이라는 관청을 두었다. 일반 백성들은 다점이라는 찻집에서 차를 즐겼다. 차문화의 확산과 함께 다도구가 발달하였으며, 차를 운치있고 정갈하게 마시는 데에는 청자가 제일 잘 어울렸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단아한 작은 맛
도자기는 정교한 기술과 예술성의 조화로 이루어진 예술품입니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운 색과 고려인의 마음을 담은 무늬, 분청사기의 정형화된 형식과 자유분방한 절제미, 백자에 담긴 고상한 품격 등을 감상하기기 바랍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고려 귀족의 생활 소품
청자는 고려 귀족들의 생활 속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화장품을 아름다운 청자 합과 유병에 보관했고, 글공부를 하는 이들은 청자 붓꽃이와 청자 연적을 사용했습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하늘을 품은 고려의 청자
고려청자는 귀족문화와 불교문화에서 출발하여, 중국과는 다른 고려만의 창조적이고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은 형태, 색, 문양 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흐르는 듯한 선의 유려함, 비취옥과 같은 푸른색인 비색 유약의 맑고 투명함이 구름과 학, 들꽃, 버드나무 등 자연을 담은 서정적인 문양과 잘어우러지면서 그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입니다. 고려청자의 문양에는 천년의 오랜 삶과 고고함을 상징하는 구름과 학, 한적한 물가의 풍경 등 고려 사람들이 동경했던 이상 세계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고려청자는 고려사람들의 수백 년 동안의 삶과 염원을 담았기에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백자연적, 선비의 멋을 담다
조선의 선비들은 세재를 가꾸어 속기 없는 정취를 완성하고자 했습니다. 생활의 여유를 즐기고 나아가 높은 정신 세계를 추구하고자 한 그들의 이상은 벼루나 연적 같은 문방구를 애장하는 고상한 취미로 발전했습니다. 우리가 백자 연적에서 만나는 그림은 항상 옆에 두고 보고 싶어 했던 선비의 마음입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분청사기는 외형상 고려청자에 비해서 제작수법이 쇠퇴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투박하면서도 서민적인 면모를 보이는 등 한국적인 미를 잘 담아내고 있다. 고려말 청자의 주요 생산지였던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의 가마들이 왜구의 침략으로 피폐화되면서 장인들이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항아리는 귀얄 기법으로 백토 분장 후 조화, 박지기법을 이용하여 무늬를 표현하였다. 어깨에는 연잎무늬와 다양한 형식의 당초무니가 있으며 몸체 둘레에는 네 마리의 음각 물고기가 있다. 분청사기에는 다양한 포즈의 물고기가 그려지는데 물고기의 표정과 모습이 해학적이면서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분청사기는 청자의 한 종류이다. 재료나 만드는 방식은 상감청자와 비슷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한꺼번에 많은 양이 만들어지다 보니 고려시대의 상감 청자에 비해 색이 고르지 않고 표면이 거칠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그릇을 빚은 다음 표면에 백토를 바르고 다양하고 해학적인 무늬를 그려 넣으면서 독특한 모습의 도자기가 탄생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분청사기 조화기법
조화기법은 백토 분장 위에 선각으로 무늬를 베푸는 기법이고 박지기법은 조화문에서 바탕의 백토를 긁어내는 기법으로 이 두 기법은 대체로 함께 사용한다. 조화기법은 백토 분장 뒤로 원하는 무늬를 선으로 조각하면 백색 바탕에 회색의 무늬가 새겨지는데 이때 무늬는 추상화가 된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는 예가 많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대발은 용산리 가마에서 출토된 대형 그릇 중 가장 많이 변조된 기종으로 그릇 외면이 곡선형으로 벌어져 올라가며 구현은 편형한 선 형성하고 있다. 귀얄로 백토 분장하고, 내면에는 모란문과 물고기무늬를 조화 기법으로 표현했으며 외면에는 몸체 전면에 걸쳐 당초문을 간략한 형식으로 장식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분청사기 박지기법,
박지기법은 백도로 분장한 뒤에 원하는 무늬를 그리고 무늬를 제외한 배경의 백토를 긁어내어 백색무늬와 회색의 배경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기법이다. 또 박지문에서 바탕흙이 드러난 곳에 철채를 한 박지철채 기법도 있다. 이 기법은 세종 때 활달하게 발전했으며 광주, 전남, 고흥, 전북 부안 등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많이 제작되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철화청자, 고려시대,
철화 청자는 물에 풀어낸 붉은 색의 산화철 안료를 붓에 묻혀 그릇의 표면에 그려서 무늬를 표현한다. 붉은색의 산화철 안료는 환원염으로 번조하여 완성품에서는 철 성분이 흑갈색 또는 흑색 계열로 색이 나타난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편병은 넓은 의미에서 몸체의 특정 면을 편평하게 만든 형태의 병이다. 제작 방법은 몸체가 풍만한 병을 성형한 후 동체를 두드리거나 눌러서 양쪽 면을 편평하게 제작하는 방식, 동체를 처음부터 납작하게 성형한 후 구연과 굽을 별도로 제작하여 만드는 방식, 동체의 양면을 따로 제작하여 서로 접합시키는 방식 등의 세가지 유형이 있다. 용산리 가마에서 제작된 편병들은 대부분 동체으 양쪽 면을 두드리거나 눌러서 편평하게 만든 뒤, 동체를 각지 면이 도드라지게 하기 위하여 살짝 깎거나 다듬어 제작하였다. 문양은 동체의 전면에는 주문양으로 조화 혹은 박지기법으로 모란당초문, 연화문, 어문 등이 시문되었으며, 양쪽 측면에는 상.하, 혹은 상.중.하로 문양대를 구분하여 사엽좌문, 파초문, 연판문, 집사선문 등을 시문하였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분청사기 철화 기법
철화기법은 백토 분장을 한 뒤 철분이 많은 안료를 사용하여 붓을 무늬를 그리는 기법이다. 무늬는 도식적인 것, 추상적인 것, 회화적인 것, 익살스러운 것 등 다양한 서민들의 생활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백토물에 그릇을 덤벙 담궈서 백토 분장하므로 덤벙 분청이라 불린다. 귀얄기법과 같은 붓의 자국이 없어 표면이 차분하다. 백토가 두껍게 씌워지면 표면이 거의 백자와 같이 되므로 이 기법의 그릇들은 분청사기 말기에 많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접이나 접시의 경우에는 손으로 굽을 잡아 그릇을 거꾸로 백토물에 담갔다가 꺼내므로 굽언저리에는 백토가 묻지 않고 흘러 내린 곳만 있게 되어 매우 재미있는 추상성을 보인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분청사기 귀얄 기법
귀얄이란 일종의 풀비와 유사한 것으로 이 도구에 백토를 묻혀 그릇 표면을 바른다. 회흑색의 기본 흙 위에 작은 빗자루나 거친 붓으로 힘있고 빠른 속도로 바르기 때문에 백토의 흔적과 태토색의 대비로 운동감을 주고 회화적인 무늬 효과까지 나타내므로 신선한 분위기를 보인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바다를 품은 분청사기
분청사기는 고려 상감청자의 뒤를 이어 조선 초 15~16세기까지 만들어진 도자기입니다. 바탕흙과 유약은 고려 말기에 제작된 청자와 비슷하지만, 그릇의 종류나 형태, 문양 구성 등은 확실히 다릅니다. 조선 초에는 분청사기가 왕실에서 일반 대중까지 폭넓게 사용되었습니다.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했던 분청사기는 정형화된 문양이 있으며, 관청 이름, 만든 사람 등 여러 정보가 쓰여 있습니다. 일상에서 사용한 분청사기는 자유분방하고 생동감 넘치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 백자를 점차 즐겨 사용하면서 분청사기는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조선시대에는 백자로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용기들을 만들었습니다. 도자기를 굽는 기술이 발달하고 한꺼번에 많이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더욱 많은 사람이 백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왕실과 양반은 물론 서민들의 집에서도 백자 사발을 볼 수 있을 만큼 백자가 널리 퍼졌습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묘지명은 죽은 이의 일생 중 중요한 사실을 기록한 글입니다. 변하지 않는 백자에 청화안료로 글씨를 써서 무덤에 함께 넣었습니다. 서문영은 전라도 광주의 경양도 찰방을 지낸 인물로, 고상하고 깨끗한 행동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명기는 사림이 죽은 후의 생활을 위해 무덤에 넣은 껴묻거리입니다. 조선시대에는 15세기 전반부터 왕실을 중심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성리학이 자리잡으며 15세기 후반부터 명기를 적극적으로 매장하기 시작하여, 16~19세기에 걸쳐 전국적으로 유행하였습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국가나 일반의 대.소연회나 제례, 길사 등에 사용되는 용기로 백자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제례는 조상을 받들어 추모하는 의식, 또는 신령에게 음식을 바치며 기원을 드리는 의식입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부계 중심의 친족제도가 정착하면서 부계 혈연 집단인 문중이 발달했습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백자는 다양한 형태와 무늬들이 있는데 그 중 순수한 흰색의 자기를 순백자(純白磁)라고 한다. 순백자에는 무늬가 없는 것을 비롯하여, 음각, 양각, 투가 등으로 장식한 백자들을 포함한다. 유교사회를 추구했던 조선사회에서는 순백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순백자는 검소와 절제를 중요시하는 사대부들의 취향과 맞아 떨어졌다.

백자는 도자기 중 가장 단단하면서도 빛깔이 희고 깨끗합니다. 고려백자는 형태, 장식 등이 고려청자와 거의 동일하며, 대부분 약간 엷은 녹색이 감도는 유백색을 띱니다. 조선 초에 백자 제작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백자는 곧 조선을 대표하는 도자기가 되었습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청화백자는 코발트가 주성분인 안료를 사용하여 푸른색 무늬를 그린 백자를 말한다. 17~18세 청화백자는 여백을 살리면서 간결하게 그린 산수, 사군자 등의 무늬가 유행하였다. 19세기에는 청화 백자가 더욱 대중화되어 새로운 그릇들이 제작되고 무늬도 다채로워졌다.




청화백자, 조선시대
순백의 바탕에 청화가 함유된 안료로 그림을 그려서 장식한 백자입니다. 18세기에는 문인 취향의 무늬를 담백하게 표현한 청화백자가 제작되었고 19세기에는 청화백자 안료의 색이 짙어지고 문양이 화려해지며 종류가 다양해졌습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자연물의 형태를 본떠서 만든 백자입니다. 고려청자에서 만들어진 상형청자만큼 다양하지는 않지만 자연물의 형태를 편안하고 해학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순백자보다는 청화백자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청화를 이용하면 어떤 부분적인 형태를 더욱 효과 있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조선 선비를 닮은 백자
백자는 조선의 기술력과 예술성을 두루 담아낸 도자기입니다. 조선 초부터 각종 의례 때 사용하는 도구를 비롯하여 접시, 항아리, 병 등의 생활 용기가 백자로 만들어져 조선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백자의 소박하면서도 깨끗한 기품은 성리학의 청렴하고 검소한 삶을 중요하게 여긴 가치와 꼭 들어 맞았습니다. 그래서 희고 꺠끗하며 단단한 조선의 백자는 당시 선비들이 선망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연적, 필통 등 각종 문구류와 제사 용기들이 만들어졌고, 민화가 유행하면서 백자에도 민화를 그려 넣었습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우리나라에서 청자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백자도 함께 제작되기 시작했다. 부안 유천리는 장식적이고 품위 있는 고려백자 명품의 산지이다. 청자와 동일한 그릇의 형태와 무늬가 백자로 표현되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백색 사이로 은은하게 음각된 연꽃무늬가 드러나는 아름다운 매병이다. 연꽃은 재생, 환생, 탄생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연꽃 속에서 화생’한다고 하며, 불교 문화의 상징적인 무늬로 사용되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자유로운 학과 구름의 사이에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을 표현했다. 부안 유천리 가마는 고려청자의 주요 생산지로서 궁중 전용으로 제작된 세련된 디자인의 고급 청자를 생산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용은 기린.거북.봉황과 더불어 신령한 동물로 여겨져 왔으며, 왕권이나 왕을 상징한다. 용과 구름을 다소 과장되게 묘사한 것이 유머러스한 느낌을 준다. 이 매병은 크기, 디자인, 구성, 양식으로 보아 부안 유천리 가마에서 제작되어 강화군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중앙에 커다란 고리무늬가 있는 청자로 만든 매우 입체적이고 화려한 의자이다. 청자로 가구를 만든 것은 고려 귀족들의 풍요로운 생활 방식을 보여준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조선의 대표적인 백자 항아리이다. 커다란 대접 두개를 잇대어 만들기 때문에 항아리의 선은 정형화된 원이 아니라 살짝 이지러져 달과 같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도자 – 생활과 어우러지다
도자기는 흙, 불,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만드는 예술품입니다. 우리나라의 도자기는 청자에서 분청사기로, 그리고 다시 백자로 변화하면서 도자기의 제작 기술, 형태, 색채, 미적 감각의 범위 등이 점점 넓어지고 다양해졌습니다. 도자기에는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신념, 취향, 예술 등이 녹아 있습니다. 고려의 단정한 순청자와 세련된 상감청자, 조선의 투박하지만 자유로운 조형미의 분청사기, 고상함과 함께 실용성을 담은 백자 등에서 시대와 사용 계층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도자기는 각종 의례에서 일상생활까지, 상류층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었습니다. 도자기에는 옛사람들의 생활방식과 미의식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안내문, 국립전주박물관, 2023년)
<출처>
- 안내문, 전주박물관, 2023년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