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아Maurya 왕조(기원전 322년 ~ 기원전 185년)는 고대 인도에서 처음으로 거의 전 인도 아대륙을 통일한 강력한 제국이다. 인도 마가다 지역(오늘날 비하르 주)을 기반으로 성장했고, 정치적 통일, 행정 제도, 불교의 확산에 큰 기여를 했다.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처음 건국했고, 예전에는 굽타왕조로 배웠다. 왕조의 전성기는 3대 아소카 대왕 재위 기간이다. 아소카왕은 불교에 귀의 한 후 국내외로 불교를 전파했다. 이때 불교와 함께 전해진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많은 탑이 세워졌다.







여러 나라와 교류했던 마우리아 왕조
기원전 3세기, 인도 전역에 불교를 전한 아소카왕은 마우리아 왕조의 3대 왕이었습니다. 마우리아 왕조의 수도는 갠지스강 남쪽, 파탈리푸트라였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인물상이나 작은 원반형 돌은 외부 문화에 개방적인 마우리아 왕조의 활발한 국제 교류상을 보여줍니다. 진흙으로 빚은 여인상은 원시적이지만 서아시아의 영향이 짙게 나타납니다. 파탈리푸트라 장인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원반형 돌은 북쪽으로 히말라야를 넘어 파키스탄에서, 남쪽으로는 바다 건너 동남아시아에서도 발견됩니다. 마우리아 왕조가 인도 대륙 전역으로 세력을 넓히고, 다른 나라와 활발히 교역을 이어갔던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유물들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아소카 대왕(재위: 기원전 268년 ~ 기원전 232년)은 인도 마우리아 왕조 제3대 군주로, 인도에서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칼링가 전쟁의 참을 목격한 후 회한을 느끼고 불교에 귀의 했다. 불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았으며,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헬레니즘 세계에 불교 전파를 시도했다. 아소카칙령은 바위나 기둥에 새긴 통치철학과 불교사상을 담고 있는 칙령들이다. 아쇼카의 사자기둥, 차크라(법륜) 등은 지금도 국장과 국기 등에 사용하고 있다.
아소카왕 석주는 높이 12~15m 정도 크기이다. 칙력이 새겨진 기둥 몸체에 사자, 소, 꼬끼리 등 동물 조각이 있는 머리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날개가 달린 사자가 앞발을 들고 있습니다. 날개 달린 모습이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닮았지만 스핑크스의 얼굴은 사람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인도는 다른 나라들고 서로의 문화를 나누며 다양한 사자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거기에 인도인들의 상상력이 더해져, 사자는 여러 동물의 특징을 가진 새로운 상상의 동물로 탄생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사자의 다리는 크고 튼튼해 보이지만, 발은 새발처럼 보입니다. 또한 새의 부리와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이 동물은 사자와 새의 모습이 섞여 있습니다. 머리, 앞발, 날개는 독수리이고, 몸통과 뒷발은 사자인 상상 속의 동물인 ‘그리핀’과 닮았습니다. 서아시아와 유럽의 그리핀은 힘이 세고 사납습니다. 하지만 인도의 그리핀은 귀여운 눈매에 뭔가 살짝 억울해 보이네요. 전설 속 동물의 이야기가 인도로 오자, 인도의 사자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매끄러운 돌에 사자의 머리를 조각했습니다.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이 인도 여러 곳에 스투파와 돌로 만든 기둥을 세울 때도 이런 매끄러운 돌을 사용했습니다. 기둥을 장식했을 이 사자는 가지런히 빗질한 듯한 수염과 큰 눈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 사자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아소카와으이 사자와 다르고, 오히려 서아시아 페르시아에서 가져온 뿔잔의 사자 머리와 비슷해 보입니다.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상징이었던 사자가 불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마우리아 왕조의 전륜성왕, 아소카왕
네마리 말이 끄는 수레 위에서 활을 쏘는 태양의 신 수리야처럼 표현된 용맹한 통치자, 아소카왕은 인도 전역에 스투파와 함께 여러 동물 장식을 올린 돌기둥을 세웠습니다. 아소카왕의 석주 위에 있었던 황소나 사자 등은 왕실을 뜻하는 귀중한 동물로 훗날에도 소중히 여겨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기원전 6세기 말,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1세는 인더스강을 차지하고 인도 북서부 지역에 페르시아의 문명을 알렸습니다. 이 잔은 기원전 5세기에 페르시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뿔잔을 장식하는 전설 속 동물의 특징은 인도의 조각상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의 문명이 인도에 널리 퍼졌다는 증거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인도와 서아시아
석가모니의 설법은 사자의 울부짖음을 뜻하는 사자후에 비유됩니다. 이처럼 사자는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동물입니다. 동물의 왕 사자는 불교를 넘어 서아시아와 그리스 등 다른 문화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사자를 표현한 작품들을 보면 당시 인도가 주변국과 활발히 교류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사타바하나 왕조(기원전 1세기~기원후 3세기)는 남인도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왕조로, 불교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주요 유적으로는 아잔타 석굴, 카를라 석굴, 바지 석굴 등이 있다. 석굴사원은 암반을 깎아 만들었는데 우리나라 석굴암에서 그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 이 시기 인도는 촘촘한 교역망으로 서로 연결되었다. 동쪽으로는 동남아시아, 서쪽으로는 서아시아를 건너 유럽까지 국제 무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국제 교역망을 통해 불교가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다.




종교가 처음 시작된 곳이다, 중요한 일이 일어난 곳을 ‘성지’라고 합니다. 이 초상은 불교의 성지 중 하나인 사르나트에서 발견된 남자의 얼굴입니다. 초상을 만들때는 보통 석가모니, 수호신, 왕의 얼굴을 조각합니다. 그런데 이 초상은 석가모니도, 왕도 아닌 순례객의 얼굴이라니 참 신기합니다. 일반인의 초상을 만드는 전통은 서아시아와 유럽에서 시작됐습니다. 초상을 만드는 것은 돈이 많이 듭니다. 새로운 종교인 불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비싼 초상을 만들 정도로 부유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귀걸이는 인도의 초상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금으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던 사람 중에는 불교를 후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금이 무척 비싸고 귀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없습니다. 금으로 만든 유물을 비싸게 팔거나 녹여서 다른 데에 썼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모양의 금 귀걸이를 동남아시아에서도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사타바하나 왕조 시기의 인도가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교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유럽에 볼 수 있는 헬레니즘 스타일의 메달입니다. 아마 유럽에서 사와서 옷의 단추처럼 사용하던 값비싼 장식품입니다. 원래는 금으로 만든 메달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귀걸이와 마찬가지로 비싸고 귀한 금으로 만든 것은 대부분 사리지고, 구리로 만든 것만 남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풍족한 남인도의 불교 후원자들
기원전 2세기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 마우리아가 무너지고 남인도에 사타바하나 왕조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이 무렵 인도 전역은 촘촘한 교역망으로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동쪽으로는 동남아시아, 서쪽으로는 서아시아를 건너 유럽까지 국제 무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불교가 빠른 속도로 인도 대륙 남쪽으로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교역 덕분에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았던 남인도인들의 후원 덕분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마하라슈트라 콜라푸르Maharashtra Kolhapur는 인도 서부에 위치한 도시 콜라푸르Kolhapu를 말한다. 마라타 제국과 관련된 유서깊은 도시로 왕궁과 박물관이 유명하다. 1945년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사타바하나 시대의 예술성과 국제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포세이돈을 형상화한 청동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유럽에서 인도로
1945년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 콜라푸르에서 작은 청동 조각 37개가 한꺼번에 발견되었습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인도에서 만들어 졌지만, 1세기 무렵 이탈리아 로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포세이돈 상, 큐피드가 새겨진 손잡이 그리고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을 장식한 원반 등도 있었습니다. 기원전부터 홍해를 건너 이루어진 인도와 유럽의 엄청난 무역량을 생각해 보면 그리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19세기 영국인들은 인도 전역에 흩어져 있는 고대 불교 유적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석가모니가 태어나고 자란 갠지스강 유역 성지와 서인도에 집중된 불교 석굴사원을 탐험하는데 열을 올렸습니다. 이 그림도 1850년 서인도 칼리 석굴을 방문한 영국인이 그렸습니다. 화려하게 치장한 인물들이 커다란 코끼리를 타고 있는데, 아마 석굴을 만드는데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불교 후원자들일 것입니다. 기원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칼리석굴은 인도의 교역품이 유럽으로 건너가는 길목에 위치한 불교 석굴입니다. 유럽과의 교역으로 경제적 부를 쌓은 불교도들의 후원이 많이 모이던 곳이기도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풍족한 남인도의 불교 후원자들
기원전 2세기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 마우리아가 무너지고 남인도에 사타바하나 왕조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이 무렵 인도 전역은 촘촘한 교역망으로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동쪽으로는 동남아시아, 서쪽으로는 서아시아를 건너 유럽까지 국제 무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불교가 빠른 속도로 인도 대륙 남쪽으로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교역 덕분에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았던 남인도인들의 후원 덕분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지금은 아프가니스탄인 베그람에서 프랑스 고고학조사단이 인도이 불교 사원지를 발굴했습니다.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렸던 파리 기메박물관 포스터입니다. 다른 나라의 물건을 구경하고 있는 사타바하나 왕조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녀는 남인도에서 만들어져 이탈리아 폼페이에서 발견된 상아 조각 약시상을 모델로 했습니다. 배경에는 풍요의 항아리도 그려져 있습니다. 남인도 미술은 100년 전의 프랑스 파리에서도 좋은 전시 주제였나 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