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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황지(黃池)연못, 낙동강 1300리 발원지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에 있는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黃池)연못이다. 태백시 도심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연못으로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등 주요 문헌에 낙동강의 발원지라 기록되어 있다. 실제 낙동강의 발원지는 함백산 계곡의 너덜샘과 용소(龍沼), 태백산 장군봉 아래 용정(龍井)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태백시에서는 문헌자료를 근거로 황지연못만 낙동강의 발원지로 주장하고 있다. 함백산 너덜샘에서 발원하여 태백시내를 관통하는 황지천이 있기는 하지만, 황지연못에서 워낙 많은 물이 솟아오르기때문에 낙동강의 발원지로 사실상 인정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황지연못 표지석>

낙동강 1,300리 물길이 이곳에서 시작됨을 알려주는 황지연못 표지석. 태백시는 이 연못을 중심으로 도심이 형성되어 있으며, 황지연못은 도심공원이 되었다.

<도심공원 역할을 하고 있는 황지연못>

황지연못은 상지,중지,하지 3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지 남쪽에 깊은 수굴에서 엄청난 수량의 샘이 솟아나고 있는데, 가뭄에도 하루 약 5,000t 이상의 물이 솟아나고 있다고 한다. 태백시를 둘러싸고 있는 태백산, 함백산, 백병산, 매봉산에서 땅으로 스며들었던 빗물이 이곳에서 솟아올라 연못을 이룬다. 1989년 광동댐이 건설되기전까지 태백시 주민들의 상수원으로 이용되었으며, 지금도 가뭄때는 이곳에서 솟는 물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황지연못은 황씨 성을 가진 사람과 관련된 전설이 전하며, 조선시대에는 관아에서 제를 올렸다고 한다.

<3개의 연못 중 제일 안쪽에 위치한 상지>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연못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수량의 물이 솟아오른 큰 샘이다.

<가운데 위치한 중지>

<아래쪽에 위치한 하지>

<연못에서 샘이 솟아오르는 모습>

<낙동강이 되어 흐르는 개울>

3개의 연못에서 솟아오른 물이 모여 낙동강 1,300리 길을 떠난다.

<개울>

연못에서 솟아오른 샘물이 개천이 되어 흐른다. 가뭄이 심했던 시기였지만 엄청난 수량의 물이 개천을 이루면서 흘러간다.

<황부자전설을 설명해 주는 석상>

<황지연못 앞 광장>

<이곳이 해발 680m 고원지대임을 알려주는 표지석>

<황지연못 앞을 지나는 도로>

태백시 중심부를 관통하는 옛도로이다.

<황지연못 앞 시장>

황지(黃池)못의 전설
황지3동 시가 중심부에 위치하며 둘레가 100m인 상지(上池), 50m인 중지(中池), 30m인 하지(下池)로 된 3개 못으로 나뉘며 상지 남측에 깊이를 잴수 없는 수굴(水窟)이 있어 수원이 된다. 수량은 가문에도 장마에도 변함없이 1일 약 500톤이 용출되며 수온 또한 상온 15℃를 유지하는 해발 700m 이 지역 주민들의 상수도 취수장으로 전국 최적의 오염되지 않은 상수원이다. 고지도를 비롯한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등 옛 문헌에 의하면 낙동강의 발원지로 옛 신라와 가야의 번영을 이룩하며 한민족과 숨결을 같이 한 1300리의 낙동강을 오늘도 쉼없이 흘려 보내는 것이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낙동강의 근원으로 관아에서 제전을 두어 가물때는 기우제를 올렸다.”고 기록된 이 못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못엔 원래 황씨 성을 가진 황씨가의 옛터로서 주인황씨는 많은 재산에 풍족하게 살았으나 돈에 인색하기 짝이 없는 수전노 노랭이였다. 어느봄날 황부자는 외양간에서 쇠똥을 쳐내고 있었는데 옷차림이 남루한 노승이 시주를 청했다. 황부자는시주하기를 거절했으나 노승은 물러나지 않고 거듭 염불을 외며 시주를 청했다. 이에 그만 화가치민 황부자는 쇠똥을 한가래 퍼서 시주바랑에 넣어주며 “이거나 받아가라”고 하였다. 노승은 조금도 노하지 않고 공손히 인사하고 돌아가는데 마침 아기를 업고 방아를 찧던 며느리가 이를보고 부끄러이 여겨 시아버지 몰래 자기가 찧은 쌀한바가지를 퍼내어 노승에게 시주를 올리며 시아버지의 죄를 용서 빌었으나 노승은 며느리에게 말하기를 “이집은 이미 운이 다하였으니 아기를 업고 속히 소승의 뒤를 따라오시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절대뒤를 돌아보지 마시오”고 일러 주었다. 이에 며느리는 곧 집을 나서 송이재를 넘어 구사리(지금의 도계읍) 산마루에 이르렀을떄 뇌성벽력과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에 깜짝 놀라 노승의 당부를 잊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 버렸고 황부자의 집은 땅밑으로 꺼져 내려가 간곳없고 집터는 큰 연못으로 변하였다.

지금도 삼척군 도계읍 구사리 산마루에는 황지쪽을 뒤돌아 보며 아기를 업은채 서 있는 돌미륵이 있어 보는 이로하여금 가슴을 아프게 하며 함꼐 따라간 강아지도 돌이되어 그 앞에 있다. 또한 그때 집터는 지금의 상지이고 방아간 자리가 중지, 변소터 자리가 하지로 변했다고 하며 뇌성벽력과 함께 변해버린 연못(집터)에서 유래된 지명이 황지(黃池)인 것이다. <출처:태백시청>


<참고문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