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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와대 둘러보기(2025년)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청와대靑瓦臺이다. 서울의 중심부인 경복궁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이었으며, 19세기 말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경무대景武臺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총독 관저가 있었으며 그 건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로 사용하면서 국가의 중심이 되었다. 1960년 청와대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91년에 본관을 지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최근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내부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청와대 본관>
<본관 잔디마당 앞>

본관은 대통령 집무 공간으로 1991년 9월에 신축되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으며 국무회의가 열리는 장소이다. 청기와를 하고 있는 2층 한옥 건물 형태를 하고 있으며 양쪽에 단층의 별채가 배치되어 있다. 본관 1층에는 영부인의 공간인 무궁화실, 행사를 위한 공간은 인왕실이 있다. 서쪽 별채 국무회의 등의 열리는 세종실이, 동쪽 별채에는 행사 공간인 충무실이 있다. 대통령 집무실과 접견실은 2층에 있다. 공간을 상당히 넓게 쓰고 있으며 의전을 위한 공간이라는 비판도 있다. 사실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본관>
<본관 입구 포치>
<포치 내부>
<동쪽 별채>
<중앙 로비>

청와대 본관 서쪽 별채에 위치한 세종실은 주로 국무회의가 열리는 공간이다. 외교 사절 접견보다는 국정 운영을 위한 내부 회의에 초점이 맞춰졌다. 복도에서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서쪽 별채 세종실로 이어지는 복도>
<복도에 걸린 역대 대통령 사진>
<국무회의가 열렸던 세종실>

무궁화실은 영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 기능을 겸하는 공간이다.접견실은 서양식으로 꾸몄으며, 집무실은 한국적인 분위기로 연출하였다.

<접견실>
<접견실>
<집무실>

인왕실은 본관 1층 동쪽에 위치하며, 소규모 오찬, 만찬이나 간담회, 외교 사절 환담 등 공식적인 행사에 사용된다. 외국 정상 방한 때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장소로도 활용한 공간이기도 하다.벽, 천장, 카펫 등에서 서구적인 중후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인왕실>
<인왕실 앞 복도>

동쪽 별채의 충무실은 간담회, 임명장·훈·포장 수여식, 공동성명 발표 등 거대한 공식 이벤트에 자주 활용되었던 공간이다. 인왕실과는 달리 한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충무실로 이어지는 복도>
<충무실 앞 대기 공간>
<충무실 내부>

본관 2층은 대통령 집무실과 접견실이 배치되어 있다. 접견실은 대통령과 외빈이 만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창문은 나무창틀과 문살 위에 한지를 마감하여 한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2층 로비>
<접견실>
<집무실>
<집무실 책상>

1991년에 지어진 본관은 노태우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31년간 국정 업무와 외빈 접견 시에 사용한 곳이다. 본관 외부에는 전통 건축양식의 팔작지붕에 15만 여장의 청기와를 올렸으며, 내부는 현대적인 건축양식과 시설을 갖추고 있다. 본관 중앙부에는 2층 한옥 양식의 본채를 두고, 그 좌우에는 단층 한옥 양식의 별채를 배치하였다. 본채 1층에는 소규모 만찬장으로 사용한 인왕실, 영부인의 공간인 집무실과 무궁화실이 있다. 2층에는 대통령 집무실, 접견실 및 집현실이 있다. 서쪽 별채인 세종실에서는 국무회의가 열렸고, 동쪽 별채인 충무실에서는 임명장 수여식 등이 진행되었다. (안내문, 청와대, 2025년)

청와대 잔디마당은 본관 앞 넓은 잔디밭으로, 주로 국빈 환영식, 육·해·공군 의장대 사열 등 공식 의전 행사가 치러지는 장소이다. 청와대 포토존 역할을 하며 상징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울창한 잔디밭 위로 본관의 청기와 지붕과 북악산 배경이 어우러져, 전통미와 자연미가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 잔디마당>
<안에서 본 모습>
<본관 앞 정원>
<잔디마당 정원>
<불이문>

청와대 옛 본관(경무대)이 있던 자리는 경복궁 북쪽 후원 지역으로, 왕궁을 지키는 군사 건물 수궁守宮이 있던 자리였다. 일제강점기에 총독 관사가 지어졌으며 그 건물을 미군정 사령관 숙소로 사용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로 사용되었다. 1993년 옛 중앙청 건물과 함께 총독부 관저였던 본관 건물은 철거되었다. 이곳에는 지붕에 사용되었던 절병통만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

<청와대 옛 본관(경무대) 터>

구 본관터(수궁터)
삼각산三角山의 정기를 이어받아 북악北岳을 거쳐 경복궁 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이 곳은 일찍이 명당으로 알려져 고려 숙종 9년1104년 왕실의 이궁체宫이 자리 잡았던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後苑으로 왕궁을 지키기 위한 수궁과 융문당, 융무당, 경농재, 벽화실, 오운각 등 총 232칸의 건물과 임금이 친히 논을 일궈 농사가 국사의 근본임을 일깨운 8배미의 논이 있었다. 이 가운데 용문당과 용무당이 있던 높은 터를 경무대라 블렀다. 예로부터 천하제일복라고 알려졌던 이곳 명당 터에 일제는 1939년 7월 총독관사를 건립하여 우리의 민족정기 단절을 획책함으로써 이 건물은 경복궁내의 조선총독부 청사와 더불어 외세 침탈의 상징이 되었다. 총독관사는 해방 후 1948년 3월까지 미군정 령관 숙소로 사용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들의 집무실 및 관저로 이용되었으나 1990녀 10월 관저를 건축했고 다음해 9월에는 본관 건물을 새로 지어 옮김에 따라 빈 집으로 남게 되었다. 1993년 11월 민족정기를 바로 잡고 국민들의 자궁심을 되살리기 의해 구 총독관사 건물을 철거한 후 옛 지형 그대로 복원해 원래 이 터의 이름을 따라 경무대 터라 하였다. (안내문, 청와대, 2025년)

<건물터>
<절병통>

절병통節餅桶
구 본관터에 놓여있는 절병통은 1983년 구 본판 남쪽에 현관을 지으면서 현관 와지봉에 올렸던 장식이다. 절병통은 한옥 지봉 중 모임지봉 중심에 놓는 호리병 모양의 장식을 말한다. 1993년 전물 철거 당시 구 본관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그 자리에 남겨둔 것이다. (안내문, 청와대, 2025년)

<옛 본관 모형>

청와대 구본관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노태우 대통령까지 43년 동안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한 곳이다. 1939년 조선총독 관저로 세워진 건물을 해방 후 미군정 사령관 숙소로 사용하다가 정부 수립 이후 인계받아 대통령 본관으로 사용하였다. 옛 지명에 따라 경무대로 부르다가 1961년 청와대로 이름을 고쳐 불렀다. 1969년에는 건물 동쪽면에 2동이 증축되었고, 1980년남쪽면에 새롭게 현관이 설치되었다. 1991년 본관의 신축으로 빈 건물로 남아 있다가 1993년 철거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구본관 모형이 제작되어 청와대 사랑채에 전시되기도 했다. (안내문, 청와대, 2025년)

<옛 본관 주변 정원>
<관저 아래 부속건물>
<본관에서 관저로 연결되는 동선에 있는 출입문>

청와대 관저는 대한민국 대통령 가족의 생활 공간으로, 경내 북서쪽에 있다. 한국 전통 한옥 기와지붕과 목조 구조를 기본으로 하되 내부는 현대식으로 되어 있다. 내부는 지금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마당에는 작은 별채 건물이 있으며, 출입문 앞에는 비교적 넓은 공간이 광장처럼 조성되어 있다. 사적 공간이기는 하지만 외빈 접대나 내부 회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뒷편 산책로를 따라가면 본관 마당으로 연결되기는 하지만 실제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뒷편 언덕에 작은 정자인 오운정五雲亭과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보물)’이 있다.

<관저 앞 광장>
<관저 출입문>
<관저 마당>
<관저 본채 건물>
<출입문>
<왼쪽에서 본 모습>
<관저 마당>
<작은 별채>
<출입문에서 본 광장>
<관저 출입문>
<관저 한쪽편에 있는 정원>
<오운정>
<산책로>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보물)>
<본관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본관 부근>
<바깥에서 본 관저 광장 출입문>
<춘추관으로 이어지는 길>

침류각枕流閣은 관저 출입문 바깥쪽 숲에 있는 한옥 건물이다. 원래 대통령 관저 부근에 있었는데 1989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위쪽에 작은 규모의 초가 지붕을 하고 있는 별채 건물이 있다.

<침류각>

청와대 녹지원綠芝園은 청와대 경내에 위치한 대표적인 정원으로, 대통령의 비공식 행사나 산책 공간, 또는 외빈 접견 장소로 사용되던 장소이다. 넓은 잔디밭과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 다양한 수목이 어우러진 조경 공간이다. 주요 외빈이나 내비과 격식없는 대화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가운데 아름다운 소나무인 반송盤松을 볼 수 있으며 그 뒷편으로 상춘재가 자리잡고 있다. 정원 앞에는 청와대 실무 공간인 여민관이 있다.

<청와대 녹지원綠芝園>
<반송盤松>

상춘재常春齋는 한옥 건물로, 청와대 경내에서 매우 중요한 외빈 접견 및 비공식 회의 장소이다. 녹지원 북쪽 가장자리에 자리해, 경내 숲과 정원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외부 시선을 최소화하고,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었다.

<상춘재常春齋>
<뒤에서 본 모습>

상춘재(常春齋)라는 이름은 ‘항상 봄이 머무는 집’ 이라는 뜻이다. 이 자리에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 상춘실(常春室) 이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1978년 서양식 목조건축으로 개축하고 상춘재라 명명했다. 궁궐 건축양식 한옥으로,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 회의 장소로 이용된다. 1982년 11월 기존 건물을 헐고 연면적 418m2 크기의 목조 한옥을 착공하여, 1년 반 만인 1983년 4월 완공했다. (안내문, 청와대, 2025년)

<상춘재 옆 계곡>
<춘추관에서 녹지원과 관저를 출입하는 문>

춘추관은 대통령의 기자회견장과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들의 프레스센터로 사용된 건물이다.기자 브리핑, 대통령 기자회견, 언론 기사 송고 등 보도 활동의 중심지였다. 예전엔 기자 70~80여 명이 상주하며 활동했다.

<춘추관>
<잔디마당>
<춘추관 앞 광장>
<청와대 관람을 출발하는 1층 광장>

국내 외 언론사 기자 300여 명이 출입하는 청와대 프레스센터이다. 맞배지붕에 기와를 얹고, 솟을대문과 고각을 세워 전통 건축양식을 부각시켰다. 1층에는 기자실과 작은 브리핑 룸, 2층에는 대형 브리핑 룸이 있다. 춘추관이라는 명칭은 고려와 조선시대 시정(時政) 기록을 맡아 보던 관청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자유언론’ 의 정신을 담고 있다. (안내문, 청와대, 2025년)

<춘추문>
<춘추문 앞 큰 길, 본관 방향>
<삼청동 방향>
<대로에서 보이는 춘추관>
<공개되기 전 본관 앞 모습(2010년)>

<출처>

  1. 안내문, 청와대, 2025
  2. ‘청와대’, 위키백과,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