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가와현 다카마쓰시에 있는 다카마쓰성高松城이다. 에도시대 시코쿠섬 사누키 지역을 통치했던 다카마쓰번高松藩 관청이 있었던 곳이다. 임진왜란 직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시코쿠를 제압한 후 이지역을 하사받은 이코마 치카마사에 의해 축성되었다. 항만에 바닷물을 끌여들여 해자를 조성하고 성을 쌓은 대표적인 해성海城이다. 시코쿠와 혼슈섬 사이의 세토내해瀬戸内海 물류 거점에 세워진 성으로 울산의 울산왜성과 비슷한 형태와 기능을 하고 있다. 에도 시대에는 내해자, 중해자, 외해자의 3중 해자를 갖추고 있었다. 메이지유신이후 천수각이 해체되었으며 주변 지역이 매립되어 시가지로 바뀌었다. 현재는 혼마루를 중심으로 원래 면적의 일부만 남아 있다.

혼마루本丸
혼마루는 성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며, 주위가 내해자内堀로 둘러싸여 있어 다른 구역들과는 완전히 독립된 공간배치이다. 해자 위에 놓인 목조 다리를 통해 혼마루를 출입할 수 있으며, 다리를 끊으면 외부로부터의 침입 경로를 차단할 수 있었다. 해자는 바닷물로 채워졌으며 비상시 배를 타고 해자를 통해 바다로 빠져 나갈 수 있었다.


혼마루와 니노마루를 잇는 다리를 나무바시鞘橋라 한다. 지붕과 측벽이 있는 복도 구조를 하고 있어 칼집같이 생겼다 하겨 붙여진 이름이다.


니노마루二の丸
다카마쓰성 니노마루는 혼마루를 둘러싸며 외부로부터 혼마루를 방어하는 공간이다. 혼마루와는 해자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니노마루는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 수상교통과 방어를 겸한 구조를 하고 있다. 니노마루터에는 건물 등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니노마루 성벽 바깥 해자는 매립되어 공원으로 바뀌었으며, 철도역이 자리잡고 있다.





산노마루三の丸
산노마루三の丸에서 니노마루로 들어가는 문으로 철문鉄門이 있었다. 이 문은, 위에 길게 이어진 망루가 있는 야구라몬櫓門 형태였다


산노마루三丸에는 지역을 통치했던 마쓰다이라松平郷松平 집안이 살았던 피운각披雲閣이 있었다. 지금의 2배 규모였는데 메이지유신 때 파괴된 후 1917년에 현재의 규모로 재건되었다. 천왕을 비롯하여 이 지방을 찾는 귀빈이 묵는 숙소로 사용되었다.







사쿠라 마당桜の馬場
사쿠라 마당桜の馬場은 일본 성곽이나 신사 등에서 벛꽃이 많은 넓은 마당을 말한다. 군사훈련장으로 사용되었던 넓은 공간이다.




우시토라야구라艮櫓는 원래 히가시노마루東の丸 북동쪽 모퉁이에 세워진 망루이다. 1677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1965년 원래 건물을 해체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겨 중건하였다.


동문 바깥에 중간 해자(中堀)를 건너는 다리가 있다.

키타노마루北の丸
키타노마루北の丸는 1671년 어전御殿을 산노마루로 옮길 때 방어를 보완하기 위해 증설된 구역이다. 북쪽은 바다를 향하고 있는 곳으로 해성(海城) 특유의 구조물인 미즈노테고몬水手御門, 와타리야구라渡櫓, 시카야구라鹿櫓 등이 세워져 있다.



사적 다카마쓰성터
다카마쓰성은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사누키 전역을 하사받은 이코마 치카마사生駒親正에 의해, 이듬해인 1588년에 축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성의 설계는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 구로다 요시타카黒田孝高, 호소카와 타다오키細川忠興 등 여러 설이 존재합니다. 이코마 가문은 4대, 54년간 성을 다스렸지만, 1640년에 데와국 야시마의 1만 석 영지로 옮겨졌습니다. 그 후, 1642년에는 마쓰다이라 요리시게松平頼重이 히가시 사누키 12만 석을 하사받아 다카마쓰성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869년의 판적봉환까지 11대, 228년간 마쓰다이라 가문의 거성居城으로 위용을 자랑하였습니다. 요리시게는 1644년부터 다카마쓰성의 개수를 시작했고, 1670년에는 천수를 개축했으며, 1671년부터는 히가시노마루와 기타노마루의 신축을 진행하여, 2대 마쓰다이라 요리쓰네頼常가 완성시켰습니다. 이러한 공사에 따라, 성의 정문인 오테大手를 남쪽에서 남동쪽으로 이전하고, 번주의 거처와 정무를 보는 정청을 통합한 고텐御殿을 산노마루에 건설하는 일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내해자, 중해자, 외해자의 3중 해자를 갖추었으며, 전체 면적은 약 66만 m²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메이지 초기, 외해자가 메워지고, 점차 중해자의 일부도 매립되어 시가지화가 진행되면서, 현재는 약 8만 m²만이 성터로 남아 있습니다. 1954년에 다카마쓰시 소유가 되었고, 1955년에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안내문, 다카마쓰시, 2019년)
<출처>
- 안내문, 다카마쓰시, 2019년
- 高松城 (讃岐国), wikipedia,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