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오봉산에 있는 <청평사 고려선원>(명승)이다. 아늑한 분지형을 이룬 입지환경 속에 사찰, 계곡, 연못, 기암괴석, 폭포 등이 어우러져 정원을 형성하고 있다. 도교적인 정원과 수양을 강조하는 불교의 선禪 사상이 어우러진 곳으로 고려시대 이자현, 원진국사, 나옹선사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김시습, 보우, 환적당 등 많은 인사들이 수행을 하면서 자연과 문화를 노래했다.

청평사는 원래 소양강 부근 사람의 왕래가 많은 교통로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소양강댐이 건설되면서 주변지역이 수몰되어 배를 타고 들어가는데 일반적이다. 아니면 오봉산 뒷편으로 자동차를 이용해서 찾아갈 수 있다.




입구에서 연못까지는 폭포, 기암괴석, 계곡 등이 있고, 연못주변에는 도교적인 분위기의 정자, 연못, 선방 등이 자리잡고 있다. 계곡 중간쯤 분지를 형성하고 있는 곳에 청평사가, 능선 언덕 주변 경치가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천단 등이 자리잡고 있다.


입구에서 인공연못이 있는 곳까지는 좁은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폭포와 기암괴석 등 빼어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계곡에는 공주설화를 비롯하여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공주가 계곡에서 목욕을 하면서 수행하여 상사뱀이 윤회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이곳에 동상이 세워져 있는 이곳이 ‘공주탕’인 것으로 보인다.

공주설화
청평사에는 당나라 공주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중국 당나라 태종의 딸 평양공주를 사랑한 청년이 있었다. 태종이 청년을 죽이자 청년은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붙어서 살았다. 당나라 궁궐에서는 상사뱀을 떼어 내려고 여러 치료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공주는 궁궐을 나와서 방랑을 하다가 한국의 청평사에 이르게 되었다. 공주굴에서 하룻밤을 자고 공주탕에서 몸을 깨끗이 씻은 공주는 스님의 옷인 가사를 만들어 올렸다. 그 공덕으로 상사뱀은 공주와 인연을 끊고 해탈하였다. 이에 공주는 당나라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청평사를 고쳐짓고 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 때 세운 탑을 공주탑이라고 하고 공주가 목욕한 곳을 공주탕이라고 하며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난 곳을 회전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안내문, 춘천시청, 2025년)


원래 청평사 들어가는 길은 오솔길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최근에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계곡을 따라 길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계곡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거북이가 계곡 반대방향을 보고 있는 거북바위를 볼 수 있다. 설화가 전해오는 기암괴석 중 하나이다.

거북바위
거북바위는 자연 암석으로 예전부터 거북이가 물을 바라보게 되면 청평사가 크게 융성할 것이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바위의 아래에 신구선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 사람은 1915년에 청평사를 정비하고 청평사의 역시책인 청평사지를 편찬하도록 한 사람이다. (안내문, 춘천시청, 2025년)

고려선원 계곡에서도 경치가 제일 빼어난 구송폭포이다. 위쪽 폭포가 비교적 높고 폭포 아래 소沼도 넓은 편이다. 폭포 옆에 상사뱀 설화에 등장하는 공주가 머물렀다는 공주굴이 있다.


폭포 옆에 상사뱀 설화에 등장하는 공주가 머물렀다는 공주굴이 있다.



구송폭포
구송폭포는 주변에 소나무 아홉 그루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폭포 위쪽에 사람이 쉴 수 있는 구송대가 있다. 구송폭포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아홉 가지 폭포 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구상 폭포라고도 불린다. 이 푹포에서는 일년 내내 많은 앙의 물이 쏟아져 내린다. 특기 폭포의 양쪽에 수직으로 펼쳐진 절벽은 단정한 모습의 선비처럼 아름답다. 구송폭포는 춘천 서면 삼악산의 등선폭도, 남산면 문비마을의 구공폭포와 함께 춘천의 3대 폭포로 꼽힌다. (안내문, 춘천시청, 2025년)

다른 계곡과 마찬가지로 폭포를 지나면 계곡의 경사가 심하지 않고 약간의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곳에 이자헌은 인공적인 정원을 조성했다. 인공연못인 영지影池를 비롯하여 정자, 선방禪房 등이 들어서 있었다.




선방 위쪽에는 이자현 부도가 있다. 원래 있던 것은 아니고 후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진락공 이자현 부도
진락공은 이자현이 죽은 후 임금이 내려준 이자헌의 시호이다. 이 부도는 청사를 세 번째로 중창한 고려시대 이자현의 부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만들어진 양식으로 볼 때 1700년대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자현의 생존시기와 600년의 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다른 스님의 부도라는 설도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자현의 유골은 질그릇으로 만든 함에 넣어서 청평사 북쪽의 청평석암 바위 틈에 안치했다고 한다. (안내문, 춘천시청, 2025년)
영지影池는 도교의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 사상을 반영하여 사각형 연못에 둥근 섬이 있다. 연못을 중심으로 도교적인 분위기를 주는 공간이다. 조성연대가 가장 오래된 연못 중 하나이다.

영지 影池
이 연못은 고려시대 이자현이 조성한 것으로 조선 초기 김시습의 한시에도 언급되어 있다. 영지는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의 연못으로, 부용봉에 있던 견성암이 연못에 비친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지금도 연못에 줄결이 일지 않으면 부용봉이 물속에 그림자처럼 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장마가 지거나 가뭄이 들어도 물이 늘거나 줄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정원의 일부처럼 만든 연못을 연지連池라고 하는데 사찰이나 궁궐에 이런 연못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내문, 춘천시청, 2025년)
영지 명문바위 윗면에 한문으로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




징검다리를 건녀면 삼층석탑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 있다. 원래 청평사를 들어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오솔길 옆 언덕에 청평사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원래 석탑은 대웅전 앞 마당에 세워진 신앙의 중심이 되는 대상이었으나 고려시대에는 형식적 대상으로 바뀌면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길 옆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초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일명 공주탑이라고도 불린다.






춘천 청평사 고려선원春川 清平寺 高麗禪園, 명승
청평사는 973년에 백암선원白巖禪院으로 창건되어 1,000년 이상을 이어 온 선원이다. 고려시대에는 진락공 이자현, 원진국사 승형, 문하시중 이암, 나옹왕사 혜근 등이, 조선시대에는 설잠 김시습, 허응당 보우, 환적당 의천, 환성당 지안 등이 이 곳에 머물렀다. 고려선원에 머문 당대 최고의 고승과 학자들은 학문과 사상을 전파하였고 뛰어난 문인들은 시문詩文으로 이 곳의 자연과 문화를 노래했다. 청평사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 시문과 설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고려시대
이자현은 37년간 청평사에 머물면서 청평사 주변 계곡에 암자와 정자, 연못 등을 조성하였는데 이렇게 조성된 고려선원은 자연과 인문학적 의미가 매우 크다. 구송폭포를 비롯한 많은 폭포들이 계곡을 수놓고 있으며, 자연 그대로 보존된 선동仙洞과 서천西川계곡, 이들을 에워싼 부용봉의 거대한 바위들이 청평사 주변을 아우르고 있다. 또한 고려 초기에 건립된 삼층석탑, 이자현이 조성한 영지影池, 한국 서예사에 빛나는 대감국사 탄연과 행촌 이암이 쓴 문수원기 비文殊院記碑와 시장경비施藏經碑, 사찰 주변의 노란 매화 군락지, 조선시대 스님들의 사리舍利를 안치한 부도, 비를 기원하던 기우단 터, 하늘에 제사 지내던 천단과 제석단터, 공주설화 유래가 전해지는 회전문 등은 고려선원의 풍부한 인문자원이다. 이러한 자연유산과 인문유산의 가치가 인정되어 청평사 권역이 2010년에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춘천시청, 2025년)
<출처>
- 안내문, 춘천시청, 2025년
- ‘명승 춘천 청평사 고려선’,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