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밀양관아지密陽官衙址>이다. 조선시대 밀양도호부 관아가 있었던 자리이다. 옛 기록에 따르면 밀양읍성이 축조될 당시 백여간의 관아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관아 건물들은 모두 불타버리고 광해군 때 원래의 자리에 관아 건물들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동헌, 정청, 매죽당, 북별실, 내삼문 이외에도 연훈당, 전월당, 신당 등 부속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1895년 갑오개혁 때 군청으로 바뀌면서 옛 건물들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다가 없어졌다. 2010년 4월에 관아를 복원하였다.


관아의 중심 건물인 동헌은 부사가 행정을 처리하던 곳으로 근민헌近民軒이라 불렀다. 동헌을 중심으로 양쪽에 책방인 매죽당, 살림집처럼 보이는 북별실이 복원되어 있다. 이외에 여러 건물들이 있었지만 그 위치와 규모를 알 수 없어 복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는 조선 전기 경남 밀양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이다. 교통의 중심지로 많은 인구와 세력을 가진 큰 고을이었다. 안동, 경주, 상주와 함께 경상도 지역의 행정, 문화의 중심지 역할를 했다. 밀양읍치에는 영남루(국보), 밀양향교와 같은 당시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동헌이 있는 곳에서 300m 정도 떨어진 밀양강변 언덕에 객사 부속건물이었던 천진궁와 관아에서 사용했던 큰 누각 건물인 영남루(국보)가 자리잡고 있다.



천진궁天眞宮은 밀양도호부 객사에 딸린 부속 건물로 지어졌다. 구한말에는 전패殿牌를 모신 객사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단군 및 삼국의 시조,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으로 바뀌었다.



밀양 영남루(국보)는 객사에 속한 부속 건물로 밀양 시내를 관통하는 밀양강 옆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는 큰 누각이다. 영남루에 올라서면 옛 영남루의 풍취와 풍류를 즐겼던 조선시대 누각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진주 촉석루·평양 부벽루와 함께 3대 명루로 손꼽혔다.




밀양관아지
밀양 관아지는 조선시대 나랏일을 처리하던 밀양 관아가 있던 자리이다. 향토지 《밀주구지密州舊誌》에, 1479년 밀양읍성을 지을 때 관아 건물 100여 칸이 마련되었다고 나와있다. 본래 건물은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버렸고, 광해군 때 밀양 부사 원유남이 관아가 있던 원래 자리에 새로 지었다. 수령이 업무를 보던 중심 건물인 동헌은 근민헌이라 불렀고, 부속 건물로 서헌과 별실이 있었지만 자세한 용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밀주징신록에 ‘내동헌과 외서헌이 별도로 있는데, 내동헌은 부사 부인이 거처하던 곳’이라고 기록된 점으로 미뤄 부사의 내실이나 별실 등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이 밖에도 연훈당, 전월당, 신당 등의 부속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나 규모를 알 수는 없다. 밀양 관아지는 1895년 지방관제가 개편되면서 명칭이 군청으로 바뀌었다. 1927년 삼문동에 밀양군청이 새로 지어지면서 밀양읍사무소, 밀양시청, 내일동사무소 등으로 이용되다가 2010년에 옛 관아로 복원되었다. (안내문, 밀양시청, 2025년)
<출처>
- 안내문, 밀양시청, 2025년
- ‘밀양 관아지’,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