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시 본성도에 있는 진주 촉석루矗石樓이다. 평양 부벽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으로 손꼽혔던 곳이다. 남강 의암 뒷편 바위 절벽 위에 장엄하게 솟아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경상우병영 주둔지로 호남지역으로 통하는 교통로를 위치한 진주성에서 군사를 지휘하는 장대역할을 하는 곳으로 남장대라고도 한다. 국보로 지정되었던 원래 건물은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렸으며, 1960년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촉석루 아래 남강에는 논개가 빠진 의암 바위가 있다.

촉석루는 경상우병영이 있었던 진주성에서 군사를 지휘하는 남장대 역할을 하는 누각이지만, 관아에서 연회를 베풀기 위해 그 규모를 크게 하였다. 경상우병영과 행정조직인 진주목이 별도로 설치된 군사조직으로 관아의 규모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평양과 함께 기생들이 유명했으며, 기생들에 의해 공연되었던 진주검무가 지금까지 남아 있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 촉석루에서 펼쳐진 연회에서 공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상당히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촉석루는 원래 진주성내 군사를 지휘하던 남장대였지만, 임진왜란 이후 경상우병영이나 진주목에서 손님을 접대할 수 있는 누각으로 크게 지었다. 내부는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남장대’라는 현판을 비롯하여 시인묵객들이 쓴 글들이 걸려 있다. 촉석루에서 남강과 주변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촉석루 아래로 의기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빠졌던 의암바위가 있다. 출입문을 통해 촉석루와 연결되어 있다.









촉석루矗石楼
촉석루는 진주의 상징으로 영남 제일의 명승으로 꼽힌다. 이곳은 고려 고종 28년(1241) 진주 목사 김지대가 창건한 이후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쳐 지었다. 전쟁 때는 장수의 지휘소로 쓰였고, 평상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명소였다. 촉석루는 강가에 바위가 우뚝우뚝 솟아 있다고 하는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일명 남장대 또는 장원루라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10년(1618) 병사 남이흥이 전보다 웅장한 건물로 고쳐 지어 1948년에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1950년에 6 · 25 전쟁으로 불탔다. 지금의 건물은 1960년에 진주고적보존회가 국비, 도비, 시비와 시민의 성금으로 고쳐 지은 것으로 건물의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형태로 되어 있다. 예로부터 남으로는 진주 촉석루, 북으로는 평양 부벽루라 할 만큼 풍광이 아름다워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글과 그림이 전해져 오고 있다. 현재 촉석루에는 하의 <촉석루기矗石樓記>를 비롯한 많은 글이 걸려 있다. (안내문, 진주시청, 2013년)
<출처>
- 안내문, 진주시청, 2013년
- ‘진주 촉석루’, 위키백과,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