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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교동마을, 밀성손씨 집성촌

경남 밀양시 교동에 있는 교동마을이다. 밀양향교 아래 밀성손씨가 모여사는 집성촌이다. 마을은 입구에서 향교까지 이어지는 길 주위로 10채 정도의 손씨 가옥이 남아 있다. 종가는 99칸 규모의 만석군이 살았던 대저택이며, 나머지도 대부분 1900년 전후에 지어진 큰 규모의 저택들이다. 내부 구조에도 실용적인 일본 건축 양식과 붉은 벽돌, 화강석을 이용한 중국 건축 방식이 동시에 반영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대지주 계층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밀양 교동마을>
<마을 서쪽>
<밀양 교동마을>

마을 입구에 있는 <교동 손대식 고가>는 19세기 초 조성된 조선 후기 전통 한옥이다. 안채·사랑채를 중심으로 광채·문간채 등이 확장되었다. 안마당·사랑마당·행랑마당이 뚜렷하게 구분된 ‘ㅈ자형’ 배치 구조를 갖추고 있다.

<교동 손대식 고가 문간채>
<문간채 안쪽 사랑채 마당>
<사랑채와 문간채>
<큰길에서 보이는 안채>

밀양 교동 손대식 고가
교동 손대식 고가는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간직한 전통 한옥으로, 19세기 초반 안채와 사랑채를 건립한 후 집안 살림이 번창하면서 광채와 문간채 등이 잇달아 들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집은 안마당, 사랑마당, 행랑마당의 구분이 명확한 ”자형 배치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안채는 정면 6칸 반,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부엌을 확장하면서 부섭지붕*을 붙였으며, 외부에서 안채로 드나들 수 있는 중문을 별도로 마련하였다. 사랑채는 본래 4칸 규모였으나 일제 강점기 말 ‘T’자형 겹집으로 증축하였다. 부엌과 정지방이 달려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조선 시대 남부 지방의 대표적인 건축 양식을 잘 간직해온 밀양 지방의 건축물은 경부선 철도 부설 사업 등으로 일본과 중국 기술자들이 들어오면서 변화를 겪었다. 손대식 고가의 내부 구조에도 실용적인 일본 건축 양식과 붉은 벽돌, 화강석을 이용한 중국 건축 방식이 동시에 반영되어 있다. 우리나라 전통 한옥이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가 치있는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안내문, 밀양시청, 2025년)

<손대식 고가> 옆에 있는 고택은 <밀양 교동 손씨 고가>이다. 밀성 손씨 교동파 종택으로 1910년 경에 지어진 집이라고 한다. 담장 안쪽으로 집 내부를 볼 수 없게 만든 구조를 하고 있다.

<밀양 교동 밀성 손씨 고가>

밀양 교동 밀성 손씨 고가
교동 밀성 손씨 고가는 밀성 손씨 교동파 종택으로 1910년경 조성된 근대 한옥으로 안채, 중사랑채, 아래채,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ㄱ’자를 좌우로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정면 7칸, 측면 1칸 반 규모에 왼쪽은 팔작지붕, 오른쪽은 맞배지붕을 얹었다. 건넌방에서 아래채로 이어지는 부분에는 마루방을 누다락처럼 높게 두고 그 밑에는 부엌을 두었다. 중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크기인데, 남쪽은 팔작지붕을, 북쪽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을 때 초가지붕이었던 대문채는 그 뒤 일본식 기와지붕으로 바뀌었다. 아래채와 중사랑채를 나란히 배치한 점, 지붕틀에 덧서까래를 사용한 점 등은 근대 한옥 연구에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 지역 주요 성씨인 밀성 손 씨가 대대로 모여 살아온 밀양향교 주변에는 이 고가 말고도 밀성 손씨가 지은 전통 한옥이 많이 남아 있다. (안내문, 밀양시청, 2025년)

<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
<안쪽에서 본 모습>

마을 중간쯤에는 한옥을 리모델링해 만든 카페인 <복합문화공간 볕뉘>가 있고, 맞은편에 새로 지은 큰 한옥이 있다. 그 안쪽에 <밀양 교동 손병순씨 고가>가 있다.

<복합문화공간 볕뉘>
<맞은편 새로 지은 한옥>
<큰 길>

<밀양 교동 손병순씨 고가>은 1900년 이이 지어진 고택이다. 서울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도시형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밀양 교동 손병순씨 고가>
<사랑채>

밀양 교동 손병순씨 고가
밀양 교동 손병순씨의 고가는 남부지방의 전통 한옥 양식에 따라 1900년 전후에 지어진 고택이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자재나 구조 등이 일본 및 중국식 건축의 영향을 받았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좁은 주택지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의 특성을 보여준다. 안채는 부엌이 확장되면서 사랑채와 연결되었지만 안마당과 사랑마당 은 구분되어 있다. 안마당에 있던 곳간채 자리에는 최근 부속채가 들어섰다. 안채는 뒷툇간이 발달한 겹집으로 정면 여섯 칸, 측면 세 칸의 맞배지붕 건물에 앞뒤 간이 있다. 세 칸 규모의 사랑채는 다섯 칸 크기의 중문채와 한 몸체를 이루고 있다. (안내문, 밀양시창, 2025년)

마을 안쪽에는 종택이라 할 수 있는 <밀양 교동 손씨 고가>와 <밀양 교동 근대 한옥>이 있다. <밀양 교동 손씨 고가>는 17세기 손성증이 지은 99칸 규모의 대저택으로, 마당을 중심으로 사랑채·안채·창고 등이 ‘□’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또한 내화벽돌, 누마루, 유리창 등 일제강점기 근대 한옥의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조상을 모신 가묘와 넓은 정원, 장독대 등이 있어 조선 후기 양반가의 삶과 전통을 잘 보여주는 고택이다.

<밀양 교동 손씨 고가>
<바깥에서 보이는 안채>
<누마루가 있는 사랑채>
<뒤에서 본 모습>

밀양 교동 손씨 고가
밀양 교동 손씨의 고가는 조선 숙종 때인 17세기 손성증이 처음 지은 것으로, 밀성 손씨 고택 가운데 가장 큰 만석꾼 집으로 불렸다. 고택 99칸 규모를 자랑하며 3300㎡가 넘는 터에 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어 한때 대문이 12개나 됐다. 구조를 보면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등 생활공간을 구분해 지었다. 솟을대문을 지나 오른쪽 문으로 들어서면 누마루가 달린 큰 사랑채가 있는데, 이때 누마루는 1900년경 내화벽돌로 만들었다. 넓은 사랑마당을 지나 안채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문을 지나면 넓은 안뜰이 나온다. 안뜰 북쪽에 있는 안채를 중심으로 창고, 행랑방 등이 ‘□’자 형태로 지었다. 안채와 사랑채 뒤로는 조상을 모시는 가묘가 있다. 가옥은 남향집으로 지었으며 안채를 가사 생활의 중심에 자리하도록 두었고 여러 곳에 마련된 넓은 정원, 안채 뒤뜰에 있는 장독대 등은 넉넉한 살림살이 규모를 말해 준다. 고택 뒤로는 밀양향교가 있다. (안내문, 밀양시청, 2025년)

<밀양 교동 근대 한옥>
<큰 길>
<고택 뒷편에 위치한 향교>
<향교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밀양향교>

교동 밀성손씨 고가 집성촌
밀양시 교동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밀성손씨들의 고가는 남부지방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웅장한 멋과 건물의 구조와 배치에다 여유를 한껏 부린 전통한옥의 형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선 시대 남부 지방의 대표적인 건축 양식을 잘 간직해온 밀양 지방의 건축물은 경부선 철도 부설 사업 등으로 일본과 중국 기술자들이 들어오면서 변화를 겪었다. 이들 고가의 내부 구조에도 실용적인 일본 건축 양식과 붉은 벽돌, 화강석을 이용한 중국 건축 방식이 동시에 반영되어 있다. 우리나라 전통 한옥이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가치 있는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안내문, 밀양시청, 2025년)

<출처>

  1. 안내문, 밀양시청,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