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은 전통적으로 초원, 사막, 삼림, 북극권 등 다양한 자연환경에서 살아왔다. 19세기 후반~20세기에 들어 원주민들은 강제 이주와 보호구역 정책으로 원래 살던 곳에서 밀려났다. 이로 인해 본래 환경과 다른 척박한 땅에서 살아야 했고, 자금자족의 생계 기반이 무너졌다. 20세기 초에는 대부분 임금 노동이나 농업 보조금, 수공예품 판매에 의존했으며 점차 광업, 벌목, 군 목무, 도시노동에 참여하면서 도시로 이주했다. 20세기 중후반 이후 원주민의 문화와 권리를 되찾기 위한 활동이 전개되었으며 전통 의례, 춤, 예술, 언어 복원 운동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전시 마지막 부분은 원주민들이 정체성을 찾고 전통 예술 등을 찾아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존 모이어스는 미국 카우보이 예술가회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서부의 삶을 진정성 있게 표현해왔습니다. 그는 북미 원주민, 카우보이, 뉴멕시코주를 주제로 일상이나 주변 풍경을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는 북미 원주민이 대평원에서 많은 말을 기르며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조지프 H. 샤프는 대평원의 풍경과 북미 원주민 문화에 매료되어 1902년 대평원 원주민이 사는 몬태나주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몇 년 동안 블랙풋족, 압사로가족, 다코타족, 네즈퍼스족 등 대평원의 원주민 부족들을 그렸습니다. 1912년 뉴멕시코주로 이주한 뒤로는 푸에블로족의 삶을 그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 그림은 그가 푸에블로족의 삶을 기록한 수천 점의 그림 중 하나입니다. 그림에 표현된 푸에블로족 남성은 북과 딸랑이를 들고 있어 작가가 목격한 공동체 춤이나 의식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1900년대 초 서부 지역에 정착한 이주민 예술가들은 북미 원주민이 만든 직물과 도자기는 물론 그들의 삶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림 속 소녀는 작가가 자주 그린 북미 원주민의 딸이었을 수 있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습니다. 덮개에 초점이 맞추었고 소녀는 표정이 없습니다. 이주민 예술가는 원주민을 움직이지 않고, 조용하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원주민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원주민이 늘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림들은 미국 서부로 땅을 넓히려는 사람들에게 보내져 원주민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계속 퍼지게 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주민들이 원주민을 조용하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원주민을 살던 곳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미국 오하이오주 제인즈빌에서 태어난 화가 리처드 탤런트는 주로 혼자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을 그렸습니다. 미국 서부의 다양한 풍경을 그렸는데 1887년에는 뉴멕시코주의 풍경과 그곳에 사는 푸에블로족 원주민들을 그렸습니다. 1598년 스페인 사람들이 뉴멕시코에 정작하면서 이 지역에 말이 들어왔습니다. 1689년 스페인 사람들이 뉴멕시코를 포기하고 떠나면서 이 지역에 수많은 가축과 말이 남았습니다. 정착생활을 하는 푸에블로족은 말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기에 유목생활을 하는 북쪽 평원 원주민들과 말을 거래했습니다. 이후 말은 대평원지역에 빠르게 퍼져나가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을 크게 바꿨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어니스트 마틴 헤닝스는 독일에서 유럽 스타일의 미술을 배웠지만 미국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작가는 <지나가는 인디언들>을 주제로 한 그림을 자주 그렸습니다. 주변 풍경은 크게, 사람들은 작게 그려서 미국 남서부의 넓은 공간과 뉴멕시코주의 독특한 분위기를 드러냈습니다. 미국 동부에 사는 사람들은 서부 개척 시기에 동부에서 열린 전시회와 철도 회사 건물에서 이런 그림들을 자주 보고 남서부의 자연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당시 철도 회사는 매표소에 걸어둘 그림을 뉴멕시코에 사는 예술가들에게 의뢰했습니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들은 남서부 여행을 장려할 목적으로 기차표와 다른 홍보물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낯선 사람들의 시선
16세기 이후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온 이주민들은 북미 대륙 여러 곳에 정착촌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날 미국을 만든 초기 이주민들은 동쪽 바닷가에 ‘제임스타운’과 ‘플리머스’라는 마을을 만들어 살았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유럽인들은 춥고 배고프게 생활했지만, 북미 원주민들에게 집을 짓는 법, 옥수수와 콩을 기르는 법 등을 배워 북미 땅에서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이주민들은 처음 보는 원주민의 외모, 옷, 생활 방식에 관심을 가졌고, 그 모습을 그림과 사진에 담았습니다. 이주민의 그림에 담긴 북미 원주민의 모습은 대체로 낭만적이고 평화롭습니다. 당시 그림은 미국의 서쪽으로의 확장을 장려할 목적으로도 그려졌습니다. 이주민들에게 자연이란 미국이라는 나라의 가능성과 발전을 상징하며 새로 정착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곳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미국의 골드러시는 금광 발견 소식이 퍼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금을 찾아 몰려든 현상을 말한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지자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로 몰려 들었다. 불과 몇년만에 인구는 급증했으며 샌프란시스코는 항구도시로 급성장했다. 이때 캘리포니아 원주민은 토지를 빼앗기고 강제 노동·학살을 겪으며 인구가 급감했다.

딘 콘월은 미국의 삽화가이자 벽화 작가입니다. 그의 그림은 유명 잡지와 서적의 삽화나 광고, 전쟁 홍보 포스터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1848년 캘리포니아주에서 금이 발견되자 많은 이주민이 금을 찾아 서부로 이주했습니다. 당시 캘리포니아 지역에는 원주민 약 30만 명이 곳곳에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금광이 발견되면서 원주민들은 강제 이주되었으며 이주민들에게서 옮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림은 이러한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를 시굴자, 개척자, 사업가의 집단 이주로 묘사합니다. 그림의 오른쪽에서 사낭꾼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군중은 서부 지역에 사는 소수의 북미 원주민들을 곧 추월할 것처럼 표현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미국 대평원의 역마차는 철도가 완전히 놓이기 전 장거리 운송과 통신의 역할을 했다. 광할한 초원의 척박한 자연환경, 강도와 도적의 습겨, 원주민과 충돌 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 유지되었으며 서부 개척 정식과 몸의 상징으로 남았다.

19세기 서비 지역 전경을 담은 그림은 미국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을 담은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 받습니다 . 이 그림은 서부 개척에 나선 이주민들이 지붕이 있는 마차를 타고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평원을 약속의 땅으로 표현한 이런 그림은 이주민들의 서부 확장과 정복을 자연스러운 일로 여기게끔 하여 서부 개척을 장려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이 그림은 고전 서부 장르 영화 <역마차>(1939)를 1966년에 리메이크한 작품을 광고하는 일러스트입니다. 역마차>(1966)는 1880년 역마차 운전사 두 명이 애리조나주에서 뉴멕시코주로 이동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북미 원주민은 영화 내내 아무 이유 없이 정착민을 공격하는 ‘극단적이고 단순한 야만인’으로 묘사됩니다. 이런 이미지는 서부 개척을 장려하고 그곳에 사는 원주민을 쫒아내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용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미국 개척시대(19세기) 광산은 골드러시와 서부 확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었다. 골드러시로 대표되는 금만이 아니라 은·구리·석탄 등 다양한 광물을 캐내며 경제·사회·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초기 광산촌은 급조된 천막·통나무 오두막이 많았고, 인구 유입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광부 외에도 장사꾼, 술집 주인, 도박사, 매춘업 등이 모여 혼돈스러운 사회 형성했으며 미국 서부의 무법지대 이미지는 이때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 배틀산에 위치한 아이언마스크 광산의 풍경입니다. 1850년대에 광산에서 금속을 캐려는 수천 명의 이주민들이 콜로라도주로 몰려와 광산 근처에서 마을을 만들어 모여 살았습니다. 1879년, 배틀산에서는 은광이 처음으로 발견됐습니다. 그 후에는 은이나 금보다 아연을 대규모로 생산하지만 1980년 중반에 문을 닫았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대평원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의 장면을 티피와 개인 물건에 그림으로 기록했습니다. 주로 가죽에 그렸지만, 이 그림은 모슬린 천에 그렸습니다. 1800년대 후반, 미국 정부는 원주민에게 이주를 명령했습니다. 원주민들이 새롭게 살게 된 지역에서는 동물 가죽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가죽보다 구하기 쉬운 천을 사용해 중요한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이 그림은 압사로가족인 화이트 스완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묘사한 것입니다. 그는 1876년 6월 미국 육군과 북미 원주민 사이에 벌어진 ‘리틀 빅혼 전투’라는 중요한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원주민들은 미국 군대를 이겼습니다. 화이트 스완은 당시 미 육군 제7기병연대가 라코타족, 샤이엔족, 아라파호족 캠프로 자신들을 안내하도록 고용한 정찰병이었습니다. 그는 전투 상황을 여러 장면으로 나누어 그렸습니다. 그림 오른쪽 위, 화이트 스완이 주변을 살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아래에는 나팔수가 다친 화이트 스완을 구하고, 그 아래는 화이트 스완이 적을 공격하는 모습입니다. 왼쪽 위는 그가 적에게 둘러싸여 적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왼쪽 아래에는 그가 말을 탄 적을 죽이는 모습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운디드니 학살은 1890년, 인디언 보호구역의 운디드니 크릭(Wounded Knee Creek) 근처에서 발생한 원주민집단학살사건이다. 인디언 전쟁의 종말을 상징하는 동시에 원주민 억압의 상징적인 비극이다.

이 그림은 미국 사우스다코다주의 ‘운디드니’라는 원주민 보호 구역에서 있었던 슬픈 사건을 보여 줍니다. 1890년 12월 29일, 미국 육군 제7기병대 소속 군인들이 운디드니에서 남성, 여성, 어린이 등 약 300명을 학살했습니다. 이 사건은 ‘유령춤’이라는 종교 운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원주민들은 대대로 살던 땅에서 쫓아내는 사람들에게 항의하고, 자신들의 땅을 되찾기 위해 모였는데 미군이 이를 막으려 하면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눈 덮인 무덤을 표현한 그림은 많은 슬픔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 프리츠 숄더는 1890년의 운디드니 사건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라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긍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예술가의 역할은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진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위험한 고비
북미 원주민들에게 자연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지만, 이주민들에게 북미 대륙은 기회이자 풍요의 땅이었습니다. 이주민들은 처음에는 동쪽 바닷가에 자리 잡았다가 1783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점점 더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서부 개척을 ‘명백한 운명’이라고 본 이주민들과 삶의 터전을 지키고 있었던 원주민들 간의 갈등과 충돌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골드러시’는 북미 원주민과 이주민 간에 일어난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금을 찾기 위해 서부로 몰려들었습니다. 북미 원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살던 곳에서 보호구역으로 이주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원주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890년에 일어난 운디드니 사건이 그중 하나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대륙횡단철도와 들소
미국 서부 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 서부까지 물건과 사람들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열차가 꼭 필요했습니다. 1865년에 열차가 지나다닐 수 있게 길을 만드는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1869년에 처음으로 동쪽 땅과 서쪽 땅을 잇는 철도가 완성됐습니다. 대륙횡단철도는 북미 원주민의 삶에 큰 어려움을 가져왔습니다. 서부 땅을 개발하려고 찾아온 사람들은 열차가 지나다니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들판에서 뛰어놀던 들소들을 마구 잡아갔습니다. 광활한 대지와 그 대지를 뛰놀던 들소는 대평원 부족의 정체성과 존재의 기반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성한 땅에 철도가 가로지르고 들소가 사라지고, 그 땅에 울타리가 만들어지면서 원주민들은 예전처럼 살 수 없게 됐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아직도 비원주민 예술가들은 원주민을 ‘사라져 가는’ 또는 ‘사라진’ 인종으로 표현하거나 이들을 ‘사라진 존재’로 연출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원주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신들이 생각하는 모습으로 바라봅니다. 화면 속 젊은 남성은 호저 가시와 새 깃털 장식으로 몸을 치장하고 나바호 직물을 얹은 말 위에 앉아 있습니다. 이 그림은 1980년에 완성되었습니다. 당시 원주민은 더 이상 화면 속 원주민처럼 옷을 입지 않았고, 창과 방패를 들고 말을 탄 채 평원을 돌아다니지도 않았습니다. 원주민은 언제나 그랬듯이 모든 순간 동시대인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웬디 레드 스타는 원주민 예술가로, 자신의 공동체인 압사로가족과 더 많은 대중에게 원주민의 역사를 알리려고 박물관의 소장품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작품은 그가 덴버박물관의 소장품 카드를 조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몬태나에서 해마다 열리는 유명한 원주민 축제인 크로 페어와 관련된 오래된 카드를 주목했습니다. 크로 페어에서는 전통적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말을 타고 퍼레이드를 하는데 그는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을 촬영했습니다. 이후 촬영한 사진에서 배경을 없애고 소장품 카드를 배경으로 하여 퍼레이드에 참석한 사람들을 합성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레드 스타는 오래전부터 있던 역사적 물건들을 현대의 행사와 연결하는 방법으로 옛 물건들이 동시대 원주민들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오지브와(치파와)족 예술가인 데이비드 브래들리는 뉴멕시코 샌타페이의 남서부 도시에 거주하며 활동했습니다. 그는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익숙하게 떠올리는 북미 원주민의 모습이 어떠한지, 원주민의 예술이 미국 문화에 어떻게 사용됐는지 이야기합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뉴멕시코의 풍경을 담은 그림으로 유명한 예술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를 그렸습니다. 오키프는 호피족 카치나에 매력을 느껴 이를 소재로 한 일련의 작품도 그렸습니다. 브래들리는 샌타페이에서 흑백 의상을 입은 오키프를 보고 <휘슬러의 어머니>로 더 잘 알려진 제임스 맥닐 휘슬러(1834-1903)의 유명한 그림, <회색과 검은색의 배열 제1호〉와 비슷한 구도로 그녀를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에서 오키프는 휘슬러 스타일의 구도로 그려졌지만 그녀가 머무는 곳의 창밖에는 샌타페이의 풍경이 보입니다 그녀가 이젤에서 그리고 있는 그림의 주제도 카치나입니다. 이 작품에서 브래들리는 오키프가 자신의 예술을 위해 원주민 문화의 예술성을 빌렸다고 이야기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원주민들은 강제 이주와 보호구역 정책으로 인해 오랫동안 빈곤, 실업, 낮은 교육 수준에 시달렸다. 보호구역은 연방정부와 조약으로 일정한 자치권을 가진 지역인데, 주정부의 직접 통제와는 다른 법적 지위를 가지며 대법원에서 이를 인정하는 판결을 하면서 카지노사업이 본격화되었다. 미국 원주민과 카지노는 경제적 생존 수단이자 자치권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지만, 동시에 사회적 갈등과 불평등을 남긴 양면성을 가진 현상이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원주민 예술가 주디스 로우리는 오랜 세월 부족이 모여 사는 땅에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원주민 공동체가 겪은 폐해를 체험했습니다. 그녀는 카지노가 원주민 공동체에 가져온 탐욕과 부패를 표현하고, 카지노 비리를 폭로하려다 죽임을 당한 사촌을 추모하려고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디에고 로메로는 코치티족 도예가입니다. 그는 점토와 천연 안료를 사용해 전통적인 코일링 기법으로 그릇을 만든 후 동시대 문제를 표현해 왔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원주민 공동체의 알코올 중독을 다뤘습니다. 그림 속 두 남자는 푸에블로족 남성의 전통적인 머리스타일을 했지만,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가 묘사하는 인물은 현재를 사는 원주민의 어려움에 대한 은유입니다. 그들은 미국 스포츠를 시청하지만, 원주민 사회의 춤과 의식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많은 원주민들은 ‘두 세계에 사는 것’의 압박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술을 이용한 도피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작가 제임스 루나는 재능이 많은 예술가입니다. 그는 공연, 사진, 그림 등 다양한 형태의 예술로 자기 생각을 표현합니다. 재밌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즐겁고 편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는 원주민이자 멕시코 사람으로서 차별을 겪은 경험을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세 장의 사진은 콧수염과 장신구, 머리 길이에 따라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 사람들의 생각은 어떻게 변하는지를 물어봅니다. 작가는 누군가를 그가 가진 특징에 따라 평가하는 일이 좋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미국 사람들이 북미 원주민과 멕시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기를 제안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카라 로메로는 체메우에비족 출신의 사진작가입니다. 극적인 색채가 가미된 연극적 구성과 디지털 기능을 결합한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작업 초기에는 영화의 정규 교육에 집중했고 그 결과 이와 같은 사랑스러운 초상화가 탄생했습니다. <크리켓>은 작가가 자신의 딸을 전통적인 기법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인생의 특정 시기에 도달한 소녀와 사진을 보는 사람의 직접적 · 감정적 연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크리켓>의 힘은 진정성과 카메라를 응시하는 소녀의 열린 시선에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원주민 출신인 작가 그레그 딜은 미국 국기를 배경으로 원주민 복장을 한 남자와 양복을 입은 남자를 그렸습니다. 그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백인과 함께 있는 원주민 남자>라는 제목의 역사적 사진을 참조했는데, 성조기의 별 무늬는 작가가 속한 부족의 바구니 무늬로 바꿔 표현했습니다. 여기 두 남자는 조지 키케하키(왼쪽)와 그의 아들 윌리엄 폴락(오른쪽)으로 모두 포니족 출신입니다. 미국 정부는 원주민을 미국 사회에 강제로 동화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은 정체성 혼란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원주민을 보는 고정관념의 위험성과 원주민으로 ‘보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나바호족은 성조기처럼 미국 문화에서 인기 있는 상징을 작품에 묘사해 왔습니다. 관광객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국기를 소재로 한 깔개는 1800년대 후반에 만들어져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별의 개수를 달리하거나 별을 꽃이나 닻으로 바꾸는 등 국기의 형태나 무늬를 변형하기도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루이세뇨족 출신인 작가 프리츠 숄더는 북미 원주민의 낭만적 이미지와 고정관념에 대항해 대안적 현실을 제시하는 작품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런 경향은 비원주민 화가인 조지 캐틀린, 프레더릭 레밍턴 그리고 사진가 에드워드 커티스가 초연한 표정의 ‘고상한 야만인’이나, ‘전쟁을 좋아하는 부족’과 같은 잘못된 원주민 신화를 만들어 온 것에 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로 그려진 원주민은 사실 그들의 땅에서 쫓겨나 보호구역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원주민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소총을 든 원주민은 고독한 공격자의 이미지이지만, 프리츠 숄더는 스스로와 가족, 공동체를 지키는 보호자의 이미지로 재구성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1960년대 앤디 워홀의 <캠벨수프 캔>, <브릴로 상자>, <매릴린 먼로>, <마오쩌둥> 등 다양한 이미지는 예술의 개념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미국 건국 200주년이 되던 1976년에 앤디 워홀은 북미 원주민 운동가이자 지도자인 러셀 민스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러셀 민스는 오글라라 라코타 출신으로 북미 원주민의 권리를 위해 일하는 정치 활동가이자 배우, 음악가, 작가였습니다. 북미 원주민 운동은 원주민에 대한 빈곤, 차별, 경찰 폭력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어났습니다. 러셀 민스는 원주민들의 권리를 향상하고자 중남미 지역 단체, 유엔과 협력하는 등 원주민 관련 국제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러셀 민스는 미국 문화에서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지배적 문화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워홀은 민스가 누구인지 잘 몰랐고, 그가 원주민 정치계에서 지위가 높았다는 사실보다 그의 외모에 끌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프리츠 숄더는 현대 원주민 문제에 관심을 갖고 원주민 시리즈를 제작했습니다. <인디언의 힘>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육상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받은 후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 올리는 장면과 비슷합니다. 이 ‘블랙 파워’의 상징은 흑인 공동체를 넘어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작품은 1970년대에 널리 복제되었습니다. 미국 전역 원주민들의 집과 사무실에서 찾아볼 수 있었으며, 원주민의 자결권과 행동주의의 시각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이후 행방이 알려지지 않다가 덴버 시내의 한 갤러리 앞에서 발견되어 덴버박물관의 후원자가 구입해 기증했습니다. 말을 탄 채 주먹을 힘껏 들어올린 그림 속 주인공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갈등과 위기를 넘어
북미 원주민들은 여러 갈등과 위기를 겪으면서도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불가피하지만, 전통 문화를 지키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북미 원주민들은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이나 조각 · 회화 · 사진과 같은 예술품으로 전통적인 주제를 표현하거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기도 합니다.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원주민에 대한 잘못된 생각, 원주민이 겪는 차별을 바로잡기 위해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한 사람들
1492년 콜럼버스가 도착한 이래 유럽인들이 북미 대륙으로 건너오면서 원주민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 만남은 낯설었지만 대체로 평화로웠습니다. 원주민들은 낯선 땅에 정착한 이주민들을 도와주며 나눔과 배려, 조화와 공존의 삶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주민이 옮긴 전염병은 많은 원주민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세계관이 충돌하면서 원주민들은 오래도록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북미 원주민들은 전통적인 생활 방식과 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북미 원주민들에게 전통을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이 전통을 계승하는 방식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과거의 가치를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재창조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원주민 예술가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고, 그 고민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