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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특별전, 고려 상형청자] 신앙으로 확장된 세상

청자는 고려인들의 불교적 세계관을 담는 의례 도구이자, 도교·민간 신앙의 길상과 기원의 상징물, 그리고 사후 세계를 염원하는 장례용 기물까지 신앙적 바람을 표현하는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의례용 기물과 종교적 소재의 그릇이 제작되었고, 불상에도 적용되기도 했다. 특히 상형청자는 공예적 기능을 넘어 종교적 상징과 시각적 경험을 전달하며, 고려인의 창의성과 청자의 표현력을 잘 보여준다. 전시에는 <청자 사라모양 주자(국보)>, <청자 나한상(국보)> 등 고려 상형청자를 대표하는 걸작들과 해외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도 같이 볼 수 있었다.

머리에 관을 쓰고 복숭아를 담은 바구니를 받쳐 든 인물을 표현한 상형청자이다. 높이는 28.0cm, 밑지름은 11.6cm인 주전자이다. 모자 앞부분에 구멍을 뚫어 물을 넣을 수 있게 했으며 복숭아 앞에 있는 구멍으로 물을 따를 수 있다. 등뒤에는 손잡이를 붙여놓았다. 맑고 광택이 나는 녹색 청자 유약을 두껍게 발랐다. 

<청자 사람모양 주자, 고려 13세기, 대구 달성군 내동,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정수리에 뚫린 구멍이 입수구이고 손에 든 복숭아의 앞부분이 출수구입니다.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이 인물은 머리에 보관을 썼고 물고기 지느러미같은 소매가 달린 옷을 걸쳤으며 손에는 7개의 복숭아를 받쳐 들었습니다. 곤륜산에 살면서 불로장생의 복숭아인 선도를 준다는 서왕모 또는 서왕모와 관련된 인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새를 탄 사람모양 주자는 단순한 생활 기물이 아니라 도교적인 상징을 담고 있다. 고려 상형청자의 창의성과 신앙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기물로, 새와 인물의 결합을 통해 극락왕생·불로장생 등 종교적 바람을 표현하고 있다.

<청자 새를 탄 사람모양 주자, 고려 12~13세기,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뒤에서 본 모습>

도교의 인물이 새를 타고 무언가를 바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주자입니다. 이 인물이 손에 든 그릇 구멍에 액체를 넣고 앞쪽의 새 입으로 따르는 구조입니다. 새는 풍선처럼 부폰 몸과 머리 위의 볏 그리고 긴 꼬리가 특징입니다. 이 새를 봉황 또는 난 새로 보기도 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고려시대의 소전색燒錢色은 도교 제사를 담당하던 관청으로, 복원궁, 태청관과 같은 도교 사원과 함께 운영되었다. 전시된 그릇들은 이 관청에서 사용된 제기로 추정되고 있다. 도교 관련 기관들은 조선 건국과 함께 모두 폐지되었다.

<청자 상감 ‘천황전배’명 참외모양 병, 고려 13세기, 고려청자박물관>
<청자 명문 접시와 잔, 고려 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명문 접시와 잔, 고려 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도교 의례와 청자
<청자 참외모양 병에 상감된 ‘天皇前排’의 천황은 도교 신인 천황대제입니다. 접시에 상감된 ‘七元前排’의 ‘칠원’은 북두칠성을, ‘十一曜前排’의 ‘십일요’는 수 · 금 · 화 · 목 · 토성 등 11개의 별자리 신을 뜻합니다. 잔에 쓰인 ‘燒錢’은 도교 의식을 담당했던 관청인 소전색입니다. 모두 도교 의례에 사용된 청자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하지장賀知章은 당나라 현종 때 활동한 유명한 시인이자 서예가, 그리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던 인물이다. 해서와 초서에 능했으며 초서 4대로 손꼽힌다. 당나라 현종 시대 문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문인이다.

<청자 상감 시명 조롱박모양 병, 고려 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병의 몸체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습니다. “푸른 옥병에 금색 꽃 가늘게 아로새기니/ 만약 권세있는 집이라면 이 병을 좋아했을 것이라네/모름지기 하로가 이 병을 알았더라면 맑은 흥이 일어/ 짙은 술 향기에 안겨 경호에서 흠뻑 취했으리라(細鏤金花碧玉壺/豪家應是喜提壺/須知賀老乘清興/抱向春深醉鏡湖)”여기서 ‘하로’는 도교에 심취했던 당나라 시인 하지장입니다. 신선 세계에 대한 동경과 함께 이 병이 술병임을 알려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사람모양 연적은 고려 상형청자 가운데 하나로, 단순히 물을 담는 도구를 넘어 조형성과 신앙·풍속적 의미를 담은 기물이다. 인물을 입체적으로 형상한 것으로 서있는 모습, 앉은 모습 등으로 표현된다. 고려인의 생활 속 학문 숭상, 불교적 청저, 풍속적 해학 등을 동시에 보여준다.

<청자 사람모양 연적, 고려 12~13세기, 경기도 개성 부근,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사람모양 연적, 고려 12~13세기, 이건희 기증,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사람모양 연적>은 손에 깨끗한 물을 담는 정병을 들고 있습니다. 깃털 옷인 우의를 입었고, 그 위로 팔뚝 중간에 물고기 지느러미모양의 짧은 장식 소매가 달린 여성용 옷을 걸쳤습니다. 다른 조각들도 이와 비슷한 인물상의 일부입니다. 이 상들은 도교의 도사파나 도관에서 일하는 인물을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사람모양 조각, 고려 12~13세기, 강화 옥림리/보령 원산도, 국립중앙박물관/강화역사박물관/국립해양연구소>

청자 새모양 주자는 고려 상형청자의 한 유형으로,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도교적 상징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다. 도교에서는 새가 하늘과 인간세계를 오가는 존재로 여겨졌다. 학, 봉황 등은 신선이 타고 다니며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새이다.

<청자 새모양 주자, 고려 12~13세기, 경기도 개성 부근, 국립중앙박물관>

풍만한 몸체와 머리 위의 큰 볏, 크고 긴 꼬리를 지닌 새모양 주자입니다. 등 위의 표주박모양 입수구에 액체를 넣어 새 부리로 따라내는 구조입니다. 이 새는 신선이 탄다고 믿었던 길조인 봉황 또는 난鸞 새를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새모양 주자, 고려 12~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

길고 넓적한 꼬리와 새 머리가 맞닿아 생긴 부분이 손잡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옆에 전시된 새모양 주자처럼 풍만한 몸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새인지 명확하진 않으나, 도교 인물상이 탄 새와 비슷한 점으로 보아 도교적 내용을 배경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도교적 세계관과 염원
고려는 유교와 불교, 도교가 평화롭게 공존한 나라였습니다. 그중 도교는 현세에서 장수와 복을 누리려는 마음과 재난을 피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채워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도교는 비록 하나의 교단으로 완전히 정착하지는 못했으나, 고려 사회에서 광범위한 종교적 기능을 수행하면서 청자 문화와 접점을 형성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상형청자로는 도교신인 천황 등의 이름을 새긴 병과 같이 의례용으로 추정되는 그릇들이 있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서왕모 신앙을 배경으로 인물의 형상을 담은 기물도 만들어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고려는 사회 모든 계층이 불교를 믿는 불교 국가로, 청자는 승려의 생활과 의례에 필요한 그릇과 불구 제작에 폭넓게 활용되었다. 특히 상형청자를 포함한 여래상, 보살상, 나한상 등 존상도 청자로 제작되었다.

<청자 나한상 조각, 고려 12~13세기, 경기 용인 보정리 가마터,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보살상 조각, 고려 12~13세기, 경기 용인 보정리 가마터,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나한상 조각, 고려 12~13세기, 경기 용인 보정리 가마터,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나한상 조각, 고려 12~13세기, 경기 용인 보정리 가마터, 국립중앙박물관>

보정리 가마터에서는 100여 점의 청자 불상이 나왔습니다. 이 보살상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합장했습니다. 현재 높이 40cm로 다른 청자 보살상보다 큰 것이 특징입니다. 나한상은 다양한 자세를 하고 있는데 속이 비어있고 정수리와 귀에 구명이 있습니다. 가마에서 구울 때 터짐을 막기 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상들은 청자 불상 중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인 12~13세기로 편년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음각 모란.연꽃무늬 참외모양 정병, 고려 12~13세기, 개성 부근,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상감 승려무늬 조각, 청자 종 조각, 고려 12~13세기, 전남 강진 사당리 가마터,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터, 국립광주박물관/부안청자박물관>

〈청자 참외모양 정병〉은 몸체에 세로로 골을 낸 〈청자 참외모양 병>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한편, 불교의 소재를 청자 기물에 표현한 예도 있습니다. 승려들의 모습이 상감된 판 조각은 장식용 건축 부재로 추정됩니다. <청자 종 조각>은 여래좌상과 종을 치는 당좌를 새겼습니다. 작은 크기로 보아 실제 종이 아니라 불교의식 때 설치한 상징적 기물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여래상 조각, 고려 13세기, 동국대박물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에서 나왔다고 전하는 청자 여래상 조각입니다. 머리는 여래의 나발, 표현이 뚜렷합니다. 상체와 무릎 일부 조각, 결가부좌한 하체 조각 모두 뛰어난 기법을 보여줍니다. 하체 조각에 장식된 작은 국화무늬는 1236년에 조성된 원종의 비 순경태후의 가릉 출토 <청자 철백화 국화무늬 접시 조각>과 비슷하여 제작시기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나한상 조각, 고려 13세기, 동국대 박물관>

울퉁불퉁한 청자 조각은 나한상이 앉았던 바위대좌입니다. 철화로 작은 점무늬들을 표현한 청자 조각은 나한상 옷의 일부로 추정됩니다. 이와 비슷한 점무늬 옷을 입은 나한이 고려 1235년 무렵에 그려진 오백나한도 제15 아대다존자(또는 아시다존자)에도 나옵니다. 비슷한 도상이 서로 다른 재질의 미술로 표현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보살상 조각, 고려 13~14세기/고려 12~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부안청자박물관>

머리에 보관을 쓴 청자 보살상 얼굴 조각입니다. 이 중에서 얼굴 윗부분만 남은 조각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의 절터 출토품으로 전하여 제작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마 가운데에 도드라진 점은 불보살의 미간에 있는 흰 털인 백호터을를 표현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보살상 조각, 고려 14세기, 경남 합천 무학대사 유허지, 국립진주박물관>

보살좌상의 왼쪽 상체와 오른쪽 하체 일부입니다. 무릎 위에 오른손을 댄 자세로 보아 본래 항마촉지인 같은 손갖춤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몸에는 가사를 입었고, 가슴, 손목, 무릎에 구슬 줄 장식을 둘렀습니다. 이러한 구슬 줄 장식은 고려 13~14세기의 보살상에서 유행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사자상 조각, 청자 인물상 조각, 고려 13세기, 전남 강진 용혈암지>

머리에 낮은 관모를 쓰고 소매가 늘어진 옷과 함께 장화를 신은 인물상 조각입니다. 이들은 여래-보살-나한보다 격이 낮은 사자입니다. 이밖에 두 손을 모은 자세의 작은 인물상 조각도 1점 나왔는데, 동자 또는 공양자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소조 나한상 조각, 고려 13세기, 전남 강진 용혈암지>

용혈암 유적에서는 청자 불상 조각과 함께 소조 불상 조각도 수습되었습니다. 이 소조 나한상 조각들은 눈썹, 눈의 윤곽선, 눈동자를 검은색으로 칠해 청자 나한상보다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나한상 조각, 고려 12~13세기, 부안 청자박물관><청자 나한상 조각, 고려 13세기, 전남 강진 용혈암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의 절터 출토품으로 알려진긴 청자 나한상 얼굴의 부분입니다. 크기는 작지만 음각으로 개긴 요려한 눈씹과 눈 철화기법으로 넣은 눈동자, 입체적인 귀와 코의. 표현이 사질적인 느낌을 줍니다. 인근의 부안 청자 가마터에지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나한상 조각, 고려 13세기, 전남 강진 용혈암지>

용혈암 출토 청자 나한상 조각들은 본래 16나한 같은 군집상의 일부였습니다. 얼굴 조각들은 이목구비 표현이 자연스럽고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몸체 조각은 대부분 앉은 자세입니다. 머리 아래쪽에 길게 낸 촉을 목에 낸 구멍에 꽂아 결합하였습니다. 손은 합장하거나 잔받침, 금강령 등 을 들고 있어서 다양한 나한 도상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보살상 조각, 고려 13세기, 전남 강진 용혈암지>

머리에 보관을 쓴 보살상의 얼굴 편들입니다. 이 중에서 보관이 잘 남아있는 편을 보면, 보관의 식물무니와 양쪽에 달린 관대의 표현이 유려하고 입체적입니다. 정수리에 있는 구멍에는 따로 만든 상투를 꽂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여래상 조각, 고려 13세기, 전남 강진 용혈암지>

용혈암 유적에서 2개체의 여래상 머리 편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얼굴 아래쪽 편의 높이가 9cm여서 이 불상이 좌상이었다면 완형의 높이는 30cm가 넘었을 것입니다. 조각 수법이 부드럽고 자연스럽습니다. 제작시기는 13세기 무렵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강진 용혈암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석문리의 덕룡산에 있는 용혈암 유적입니다. 이 유적은 내부길이 15.6m, 높이 2.0~2.5m의 자연동굴과 그 앞의 건물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용혈암은 강진 백련사에 소속되었던 암자로, 원묘국사 요세를 비롯한 고려 13세기 천태종 승려들의 수행처였습니다. 이곳에서 여래, 보살, 나한 등이 한 조를 이루는 청자 불상 조각이 다량 발견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나한상 조각, 고려 12~13세기, 이홍근 기증, 국립중앙박물관>

활짝 웃는 얼굴 표정과 긴 눈썹 표현이 인상적인 나한상입니다. 지금은 두 팔과 아래쪽 부분이 없습니다. 고려시대 청자 나한상은 불에 구울 때 터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대부분 속을 비우는 방식으로 제작했습니다. 이 상은 이례적으로 밑면을 보면 속을 꽉 채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나한상, 고려 13~14세기, 도쿄국립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머리와 몸에 비해 팔과 다리가 작고 빈약하여 사실성이 떨어집니다. 유약은 광택이 있으나 고르게 시유되지 않아 거친 느낌을 줍니다. 내부 벽에는 반복적인 횡선의 흔적이 있어서 물레로 성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멍을 뚫고 따로 만든 머리와 두 팔을 각각 끼워 결합했습니다. 개별 상의 완성도보다는 여러 구를 비슷하게 만들어 함께 모시는 집합체의 효과를 내려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청자 나한상 조각, 고려 13~14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얼굴이 울퉁불퉁하게 생긴 나한상 눈동자는 철화로, 주변의 흰자는 백토로 색을 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것이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도 있습니다. 머리 없는 청자 나한상 몸체는 왼쪽 다리는 무릎을 꿇고 오른꼭 다리를 세운 자세입니다. 안쪽 면에는 흙을 금어낸 후 기벽을 두드리거나 누른 흔적이 있습니다. 흙 한 덩어리를 다듬어 만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4년)

나한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얼굴은 눈썹과 눈이 수려하고 코는 오똑하다. 옷의 주름에 백토를 사용하여 점을 찍어 퇴화점문 나한좌상이라 부른다.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 상형청자로 고려청자 중 걸작으로 손꼽힌다.

<청자 나한상, 고려 13세기, 강화 국화리, 국보, 개인소장>

바위 위에 오른쪽 무료을 세우고 비스듬히 앉아 있는 나한상입니다. 팔을 옷소매에 집어넣고 경상행床에 기댄 자세를 하였습니다. 주름진 얼굴에 진지한 표정, 정면을 응시하는 눈매에서 수행자의 면모가 느껴집니다. 이 상의 출토지가 강화도인 점으로 미루어, 고려 조정이 몽골의 침략에 맞서 강화로 수도를 옮겼던 1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불교 신앙과 수행
고려는 불교 국가로 널리 알려질 만큼 사회 거의 모든 계층이 불교를 믿으면서 청자 또한 불교의 신앙생활에 폭넓게 활용되었습니다. 승려의 생활과 수행에 필요한 그릇과 각종 의례용 불구가 청자로 만들어졌으며, 그중에 상형청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래상 보살상, 나한상 등 예경이나 의식에 필요한 존상도 청자로 만들었습니다. 여러 구가 한 벌을 이루는 나한상이 가장 많이 전합니다. 청자로 만든 불상은 표면에 금을 씌우지 않아도 되므로 금속으로 만든 상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청자의 푸른색은 예부터 귀하게 여겼던 옥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 낸다는 점에서 옥으로 만든 불상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신앙으로 확장된 세상
고려시대에 청자는 실용과 예술의 범주를 넘어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거나 신앙적 바람을 표현하는 영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러한 확장성은 표현 매체로서 청자가 지닌 위력과 고려 사람들의 창의성을 잘 보여줍니다. 도교와 불교는 고려 사람들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이들의 삶에서 청자가 애호되었고 청자 제작 기술이 뛰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려 사람들의 종교 문화에 청자가 포함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교와 불교 의례에 사용되는 기물이 청자로 만들어졌고, 종교적 소재를 담은 청자 그릇도 제작되었습니다. 나아가 주로 다른 재료로 만들던 불상도 청자 기술을 적용해 만들었습니다. 종교적 용도로 만들어진 상형청자는 공예와는 또 다른 차원의 시각적 경혐과 의미를 전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