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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 금속공예, 권위와 신앙

삼성미술관 리움 1층은 <권위와 신앙, 화려함의 세계>란 주제로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금속공예품과 불교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금속공예품이자 불교미술품으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금동 대탑>을 볼 수 있다. 삼국시대 금제귀걸이, 가야 도기 유물 등 수준 높은 다양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국보)>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꾸민 불경인 사경寫經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1383년에 제작된 불상으로 제작연대와 시주자, 제작 배경이 적혀있는 발원문이 함께 발견되었다. 본존인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둔 삼존 형식이다.

<은제 아미타여래삼존 좌상, 고려 1383년>

발원문에 1383년에 제작되었다는 내용과 시주자 약 500~600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

<발원문>

탄생불이란 석가모니가 태어난 직후, 한 손은 하늘을, 한 손은 땅을 향해 내밀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선언한 장면을 형상화한 불상이다.

<금동 탄생불 입상, 삼국시대 7세기>
<금동 여래 입상, 통일신라 8세기>
<금동 관음보살 입상, 통일신라 8세기>
<은제 관음보살 좌상, 고려 14세기>
<금동 아미타여래삼존 좌상, 고려 말 ~ 조선 초 14~15세기>
<금동 여래삼존 좌상, 조선 15세기>
<금동 관음.지장보살 좌상, 조선 15세기>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국보)>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꾸민 불경인 사경寫經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신라 경덕왕 때 연기법사가 간행하여 755년에 완성되었다. 사경에 참여한 사람, 제작방법과 의식절차를 적은 간행기록 잘 남아 있다. 통일신라 불경에 대한 신앙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며, 이두식 표현을 찾아볼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불경을 요약해서 그린 변상도가 남아 있는데 통일신라시대 유일한 회화작품으로 볼 수 있다.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통일신라 754 ~ 755년, 국보>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통일신라 754 ~ 755년, 국보>
<아미타여래삼존도, 고려 14세기>

 <지장도(보물)>는 중생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해 준다는 지장보살을 그린 그림이다. 지장을 본존으로 삼고 좌우 대칭으로 호법신이 심판관들을 그렸다. 이 불화는 본존보다 작은 8구의 인물을 아래에 배치한 전형적인 고려시대 2단 구조를 보인다. 전체적으로 다소 무겁지만 섬세한 필치와 정교한 채색으로 고려 불화의 뛰어난 기법을 보여준다.

<지장보살도, 고려 14세기, 보물>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조선 1415년>

탑형 사리기는 실제 불탑을 축소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섬세한 금도금과 조각기법을 보여준다. 14세기는 사리 신앙과 탑숭배가 결합하여 휴대가 가능한 금동 사리기 제작이 활발했다. 이 유물은 종모양을 하고 있는 사리탑을 모방하고 있다.

<금동 탑형 사리기 일괄, 고려 14세기>
<은제 사리기, 고려 11~12세기>

금강저는 불교 밀교에서 쓰이는 의식구이다. 무지와 번뇌를 끊는 지혜, 부처의 굳건한 힘을 상징한다. 오고령은 다섯갈래의 방울이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소리로 깨달음을 상징한다.

<금동 금강저.청동오고령, 고려 10~14세기>

향완에 무늬를 새기고 은실을 박아 장식한 은입사기법을 사용하였다. 높이 30.4㎝, 입지름 27.5㎝, 밑지름 22.3㎝이다. 향로 몸체에는 포류수금문과 위패형 장식 안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받침대 연꽃무늬, 덩굴무늬,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청동은입사 포류수금문 향완, 고려 12세기, 보물>

정병은 불교의식에서 사용되는 병 형태의 의례용구로, 맑은 물을 담는 그릇이다. 단순한 물병이 아니라 부정을 씻고 청정함을 상징하는 신성한 도구이다. 이 유믈 정병의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으며 특별한 장식은 없다.

<청동 정병, 고려 12세기>
<청동 범종, 고려 13세기>
<금동 소탑, 고려 13~14세기>
<청동 풍탁, 고려 12~13세기>

<금동탑>(국보)은 높이 155cm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현존 최대 규모의 금동탑이다. 원래 7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5층까지만 남아 있다. 목조건축을 모방한 공예탑으로, 고려시대 금속공예 기술을 높은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전 내 모셔진 사리탑 기능의 공예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동 대탑, 고려 10~11세기, 국보>

청동 동자유희문 거울은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새겨진 청동거울이다. 고려청자에 상감기법으로 많이 새겨진 문양이다.

<청동 동자유희문 거울, 고려 12~13세기>
<금동 손잡이향로, 통일신라 8~10세기>
<금동 용두장식 자물쇠, 고려 14세기>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금동 빗장 1점과, 금동 문고리 1점, 금동 못 2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동 빗장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도금도 잘 남아있다. 통일신라 석탑과 부도 등에서 볼 수 있는 문짝 장식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고리 전면에 장식된 무늬는 매우 섬세하여 뛰어난 통일신라의 공예 기술을 보여 주고 있다. 통일신라 때 실제 건물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금동 빗장 일괄, 통일신라 8~10세기, 보물>
<금동 문고리, 금동 못, 금동 빗장 일괄, 통일신라 8~10세기, 보물>
<금은장 쌍록문 장식조개, 통일신라 8~10세기>

통일신라 시대의 화려한 공예기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이 빗은 머리에 꽂아 장식하는 장식용 빗이다. 대모(玳瑁)는 열대 바다에 서식하는 바다거불의 일종으로 최고급 공예 재료로 사용되었다.

<대모 감장 화문 빗, 통일신라 8~10세기>
<대모 감장 화문 빗, 통일신라 8~10세기>
<금제 팔찌.반지, 가야 5~6세기>
<유리 주옥, 삼국시대 5~6세기>
<금제 귀걸이, 삼국시대 5~6세기>
<금제 귀걸이, 삼국시대 5~6세기>

출토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경주에서 출토된 5세기경에 만들어진 금귀걸이와 비슷한 형태와 제작기법을 보여준다. 큰 고리는 금실로 모양을 구획한 뒤 쌀알같은 금립을 붙인 누금세공으로 장식하고 있다. 가우넫 원형 장식과 나뭇잎 모양 금립을 배치했으며, 중간 고리에도 음각 무늬가 새겨져 있다. 신라 전성기 금귀걸이는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왕권과 귀족의 위세, 그리고 예술성과 기술력을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금제 귀걸이, 삼국시대 5~6세기, 보물>
<금제 용문장식 대도 편, 삼국시대 5~6세기>
<은제 삼엽문 환두대도.환두대도편, 삼국시대 5세기>
<청동 세형 검, 삼한시대 기원전 2세기 ~ 기원후 1세기>
<청동 호형 대구, 삼한시대 2~3세기>
<가까이 본 모습>
<금동투조 용문 재갈, 삼국시대 5~6세기>
<은제 과대, 삼국시대 5~6세기>

 <도기 신발모양 명기>(보물)는 출토지를 알 수 없으나 5~6세기에 작품으로 추정된다. 앞이 뾰하고, 뒤가 낮은 신발 형태를 하고 있다 굽, 바닥, 발등 부분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금속제 신발과는 달리 실제 사용했던 신발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죽은 이가 사후 세계를 걷기 위한 신발로 해석된다.

<신발모양 토기, 가야 4~5세기, 보물>

<도기 배모양 명기>(보물)는 출토지를 알 수 없으나 5~6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된다. 배 모양을 본 뜬 토기로 바닥이 수평이며 길게 만들어졌다. 배의 양쪽 끝 부분이 높게 들려서 반원형을 이루고 있다. 배 끝부분에는 노를 걸었던 꼭지가 여러 개 달려 있다. 배모양 토기는 삼국시대 고구려, 신라, 가야의 고분에서 겨묻거리로 출토되고 있다. 그리스 신화 등에 나오는 저승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배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역의 사후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배모양 토기, 가야 4~5세기, 보물>
<집모양 토기, 가야 4~5세기>
<청동은입사 용문 향완, 고려 14세기>

향완은 고려시대에 발전한 우리나라 특유의 불교 공양구입니다. 향을 살라 불전에 공양을 올리고 예를 표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향완은 주로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표면에는 고려시대에 발전한 은입사기법을 활용하여 다양한 문양을 새겨 아름답게 장엄하였습니다. (안내문, 삼성미술관 리움, 2025년)

<신룡2년명 사리장엄구 일괄, 통일신라 706년>

불교에서는 화장 후 잿더미 속에서 수습한 유골이나 구슬 모양의 결정체를 사리라고 부릅니다. 사리는 곧 부처로 생각됐기에 사리를 담은 그릇인 사리장엄구는 매우 귀한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다양한 기형과 섬세한 문양 표현이 돋보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제작 연대가 명확한 희소한 사리장엄구로서 가치가 높습니다. (안내문, 삼성미술관 리움, 2025년)

<휴대용 앙부일구, 강건, 조선 1875년>

권위와 신앙, 화려함의 세계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는 삼국시대인 4세기에 중국을 거쳐 이 땅에 처음 전래되었다.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불교는 오랫동안 한국 문화와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신앙의 대상으로서 만들어진 불상에서는 인체를 통해 신성(神性)을 표현해낸 뛰어난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불화는 동시기 중국이나 일본의 불화와 뚜렷이 구별되는데, 섬세한 표현과 독자적인 미감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공덕을 쌓기 위해 불교 경전을 손으로 베껴 쓴 사경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간절한 발원과 깊은 신앙심을 느낄 수 있다. 함께 전시된 현대 조각은 인간 세계의 번민에서 벗어나 숭고함에 도달하고자 하는 불교미술의 주제와 어우러진다. 불교미술이 화려하게 꽃필 수 있었던 배경으로, 불교 전래 이전부터 발전했던 쇠를 다루는 야금(冶숲)의 전통이 있었다.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현세의 삶이 내세로 이어진다고 믿었기에, 무기와 금관을 비롯해 각종 금속제 장식품과 토기들을 무덤 속에 함께 묻었다. 화려하게 장식한 큰 칼과 금으로 만든 다양한 장신구들은 당시 지배 세력의 미적 취향과 권위를 잘 보여준다. 한편,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일상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공예품에서는 다채로운 장식 기법과 정성이 돋보이는 세밀한 표현을 만나볼 수 있다. (안내문, 삼성미술관 리움, 2025년)

<출처>

  1. 안내문, 삼성미술관 리움, 2025년
  2. ‘국보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국가문화유산포탈, 국가유산청, 2025년
  3. ‘국보 금동탑’, 국가문화유산포탈, 국가유산청, 2025년
  4. ‘보물 청동은입사 포류수금문 향완’, 국가문화유산포탈, 국가유산청, 2025년
  5. ‘보물 청동은입사 포류수금문 향완’, 국가문화유산포탈, 국가유산청, 2025년
  6. ‘보물 금귀걸이’’, 국가문화유산포탈, 국가유산청, 2025년
  7. ‘보물 도기 배모양 명기’, 국가문화유산포탈, 국가유산청, 2025년
  8. ‘보물 도기 신발모양 명기’, 국가문화유산포탈, 국가유산청, 2025년
  9. OpenAI, <ChatGPT (GPT-5)>의 답변, 2025년 11월 2일 작성.
  10. “본문의 초안 작성에 Google Gemini (2025년 11월 2일 버전)의 도움을 받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