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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특별전] 천년을 흘러온 시간, 일본의 궁정문화

국립고궁박물관은 2026년 겨울 도쿄국립박물관의 협력으로 일본 궁정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일본의 궁정 문화는 주로 교토를 중심으로 천년 넘게 이어져 온 귀족과 황실의 독자적인 생활 양식을 의미한다. 특히 헤이안 시대에 그 정점을 찍었으며, 우아함과 격식, 그리고 고도의 예술적 감수성을 특징을로 한다. 궁정문화의 핵심 정서는 ‘미야비(雅)’라고 하며, 는 ‘도회적이고 세련된 우아함’을 뜻하며, 시골스럽거나 거친 것을 멀리하고 극도의 정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정신이다. 이런 궁정 문화가 현대 교토 사람들의 기질과 생활 방식에 깊게 투영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회화·의례·복식·공예·음악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일본 궁정문화의 흐름과 특징을 조명한다.

<고궁박물관 특별전, 천년을 흘러온 시간>

겐조노쇼지(賢聖障子)는 일본 교토 고쇼(御所) 정전인 시신덴(紫宸殿)에 설치된 매우 특별한 장지문이다. 중국 고대의 덕망 높은 명신(名臣)과 현인 32명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천황이 공식 의례를 집행하는 자신전 북쪽 정면, 천황의 옥좌(어좌) 바로 뒷면에 배치되어 있다. 소재는 중국의 인물이지만, 화풍은 일본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한 야마토에 방식으로 그려졌다. 각 인물의 머리 위에는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찬문(시)이 적혀 있어, 문학(서예)과 미술이 결합된 형태를 보여준다..

<궁정 정전을 장식한 장지문의 그림을 그린 병풍, 賢聖障子, 스미요시 히로유키, 에도시대 18세기>
<중산보(仲山甫), 제나라 내란을 평정한 서주 선왕(宣王) 때의 관료><태공망(太公望),
무왕武王을 도와 주나라 건립을 도왔던 정치가>
<부열(傅說), 상나라의 정치><이윤(伊尹), 상 왕조 건립을 도왔던 하나라 말기부터 상나라 초기의 정치가>
<소하(蕭何),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했던 한 고조 시기의 관료><공손교(公孫僑), 춘추 시대의 명재상>
<등우(鄧禹), 광무제를 도와 후한을 건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공신
관중(管仲)><개혁을 추진해 나라를 부강하게 했던 춘추시대 제나라 정치가>
<궁정 정전을 장식한 장지문의 그림을 그린 병풍, 賢聖障子, 스미요시 히로유키, 에도시대 18세기>
<제오륜(第五倫), 공평 · 청렴한 후한 시기 정치가><장량(張良), 천하통일에 기여한 한 고조 유방의 책사>
<거백옥(遽伯玉), 고정된 가치관에 머무르지 않는 유연한 태도와 처세술을 가진 춘추시대 위나라의 현인><제갈량(諸葛亮), 유비劉備를 도와 촉한을 건국하고 재상이 된 삼국시대 유비의 신하>
<위징(魏徴), 황제에게 엄격히 간언했던 당 태종의 신하><두여회(杜如晦), 정치 ·제도를 개혁한 당 태종의 신하>
<방현령(房玄齢), 당 율령을 제정한 태종 시기의 신하><마주(馬周), 평민이었으나 능력을 인정받아 등용된 당 태종 시기의 신하>

일본 궁정에서 덴노가 거주하면서 정무를 보거나 국가적 행사를 여는 공간을 다이리라고 하며, 그 정전이 시신덴(紫宸殿)이다. 시신덴의 어좌 뒤에는 벽에 끼워 넣는 형태의 장지문을 설치하고 중국 고대 성현 32인을 그려 넣었는데, 이것을 겐조노쇼지(賢聖障子)라고 한다. 겐조노쇼지는 다이리가 재건될 때마다 계속 제작되었는데 이 병풍은 1792년 때 제작된 여러 복본 중 하나로 추정된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궁정의 장지문과 병풍: 겐조노쇼지(賢聖障子)
궁정의 중심 공간인 다이리内裏는 일본 고유의 신덴즈쿠리((寝殿造)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신덴즈쿠리 양식의 건축물은 내부가 텅 빈 공간으로, 벽을 치지 않고 장지문(障子)이나 병풍을 사용해 공간을 구분하였습니다. 장지문, 즉 쇼지(障子)는 용도에 따라 옮길 수 있는 쓰이타테쇼지(衝立障子), 끼워 넣는 방식의 오시쇼지(押障子), 개폐식의 후스마쇼지(襖障子)로 나뉩니다. 쇼지나 병풍은 그림의 소재에 따라 당나라 화풍의 그림인 가라에(唐絵)나 일본 화풍의 그림인 야마토에(大和絵)로 꾸며졌으며 그 위에 시를 적은 네모난 종이인 시키시가타(色紙形)를 붙였습니다. 다이리의 정전인 시신덴(紫宸殿)은 신덴즈쿠리 건물로, 중심부 공간인 모야(母屋)의 주위에 히사시(廂)가 연결된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시신덴의 모야 중앙에는 덴노의 어좌인 미초다이(御帳台)를 놓고 북쪽에 중국 성현을 그린 겐조노쇼지(賢聖障子)를 세웠습니다. 겐조노쇼지 중앙에는 신성한 거북인 후분키(負文亀), 악령을 쫓는 사자인 시시(獅子)와 고마이누(狛犬)를 그리고 오른쪽 네 칸과 왼쪽 네 칸에는 각 칸마다 4인씩 총 32인의 성현 초상을 그린 뒤 각자의 덕을 적은 종이를 붙였습니다. 중국 상, 주 시대부터 당까지의 성현을 망라하여 그렸는데, 중국에서 공신을 그린 그림으로 궁을 장식한 사례를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다이죠사이(大嘗祭)는 새로운 천황이 즉위한 후 처음으로 거행하는 가장 중요하고 성스러운 햇곡식 제사이다. 일본 황실의 수많은 의례 중에서도 ‘일생에 단 한 번’ 열리는 궁정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이 의식은 그해 수확한 햇곡식을 천조대신(아마테라스 오미카미)과 천지신명에게 바치고, 천황 자신이 직접 그 제물을 함께 먹음으로써 신의 영력을 물려받고 국가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수확 의례에 사용한 와카 병풍, 大嘗会和歌御屏風, 에도시대 1764년>
<수확 의례에 사용한 와카 병풍, 大嘗会和歌御屏風, 에도시대 1764년>

1764년 고사쿠라마치(後桜町, 1740~1813) 덴노가 즉위한 후 거행한 다이조사이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이조사이 병풍이다. 이때 유키코쿠(悠紀国)에는 오미노쿠니(近江, 현 시가현), 스키코쿠(主基国에는 단바노쿠니(丹波国, 현 교토, 효고, 오사카 북부에 걸친 지역)가 선정되었다. 한 개의 병풍에 두 달분의 경치를 그렸는데 오른쪽은 정월, 2월, 왼쪽은 3, 4월 풍경을 그린 것이다. 각 병풍의 두 폭마다 위쪽에 해당 지역을 주제로 한 와카를 적은 종이 시키시가타(色紙形)를 붙였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즉위 후 처음 거행하는 수확 의례, 大嘗祭
궁정에서 매년 수확한 햇곡식을 신들에게 바치고 덴노가 직접 그 곡식을 먹는 제사를 니이나메사이(新嘗祭)라고 한다. 덴노가 즉위한 후 최초로 거행하는 의례는 특별히 다이조사이(大嘗祭)라 했다. 이를 위해 동부의 신성한 곳인 유키코쿠(悠紀国), 서부의 신성한 곳인 스키코쿠(主基国)가 지정되어 곡물과 다양한 공물을 조달했다. <수확 의례에 사용한 와카 병풍>도 그중 하나로, 유키코쿠와 스키코쿠의 풍경을 읊은 와카(和歌)를 바탕으로 그렸다. 한 개의 병풍에 두 달분의 경치를 그려 총 6개에 1년의 경치를 표현했으며 유키코쿠와 스키코쿠에서 각각 한 세트씩 만들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일본 궁정 복식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옷이 아니라, 신분, 계절감, 그리고 예술적 감수성을 표현하는 정교한 상징 체계였다. 궁정 복식은 최고급 실크를 사용하며, 빛의 방향에 따라 문양이 나타나는 유직문양(有職文様)이 특징이다. 여성 귀족은 얼굴을 직접 보여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편백나무로 만든 부채(히오기)로 얼굴을 가렸다. 궁정 복식의 복잡한 예법과 색 조합은 현대 교토 사람들의 ‘보여지는 격식’에 대한 집착에도 잘 남아 있다

<궁정 남성 복식: 소쿠타이(束带)>
<궁정 여성의 복식: 주니히토에(十二単)>

일본 궁정의 복식은 황족 또는 5위 이상의 관리가 가장 격이 높은 제사인 대사(大祀)나 정월 초하루에 입는 예복, 황족이나 직위가 있는 관리가 조정에 출사할 때 입는 조복(朝服), 직위가 없는 사람이 조정에 출사할 때 입는 제복(制服)으로 구분됩니다. 본래 중국 당 궁정 복식의 영향을 받은 형태였으나 헤이안 천도 후 점차 일본 고유의 신덴즈쿠리 양식 건물에서 활동하기 적합한 형태로 변했습니다. 남성 조복인 소쿠타이는 대표적인 궁정 복식으로, 제일 위에 입는 호(袍)의 색으로 직위를 나타냈습니다. 4위 이상은 검정, 5위는 주홍, 6위 이하는 남색을 사용했으며, 5위 이상의 관직은 무늬를 넣은 비단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소쿠타이의 등장 이후 남성 복식 체계는 점차 더 복잡해져 지위 외에도 행사의 종류, 가문의 격, 나이, 계절 등에 따라 각기 다른 복장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여성 궁정 복식인 주니히토에(十二単)는 여러 겹의 옷을 덧입고 조끼 형태의 가라기누(唐衣)와 뒤에 걸치는 치마 모(裳)를 입는 옷입니다. 겉옷 아래에 여러 벌을 겹쳐 입었는데 후대에는 다섯 겹을 입는 이쓰쓰기누(五衣)로 정착되었습니다. 궁정 여성의 옷차림은 남성의 복장만큼 엄격한 규정이 없어 비교적 자율성이 있었습니다. 겹쳐진 옷의 색 배합인 이로메(色目)가 발달해 계절감을 살린 색 조합과 그에 어울리는 무늬를 사용했습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소쿠타이(束帯)는 일본의 천황을 비롯한 공경(귀족)들이 조정의 중요한 의식이나 행사에 참석할 때 착용했던 가장 격조 높은 남성용 정장이다. 중국의 관복 영향을 받았으나, 시간이 흐르며 일본 고유의 기후와 미의식에 맞춰 거대하고 빳빳한 형태로 진화했다. 사무라이들이 입었던 복식과는 달리 중국이나 조선의 관복과 비슷한 점도 많아 보인다.

<일본 궁정 남성 복식의 구성>
<일본 궁정 남성 복식의 구성>
<관>
<일본 궁정의 남성 정복, 소쿠타이(束带), 20세기>
<금속, 마키에, 나전 기법으로 장식된 검, 에도시대 19세기>

일본 궁정에서 열리는 의식이나 연회 때 착용한 장식용 검 가자리타치(飾劍)이다. 고위 직급의 공가(公家, 조정을 섬기는 집안)에서 사용한 것으로, 이러한 장식 형태는 헤이안 시대에 정착되어 에도 시대까지 이어졌다. 이 가자리타치는 저울추 모양의 칼 코등이가 있고 칼집은 매우 정교하게 조각한 금속으로 장식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허리띠, 세키타이(石帶)>
<가죽 신발, 가노쿠쓰(靴沓)>
<샤쿠(笏, 홀)><히오우기(檜扇, 부채)>

궁정에서 남성이 갖춰 입는 정복으로, 여러 겹의 옷을 겹쳐 입고 세키타이(石帯)로 묶기 때문에 소쿠타이(束帯)라 부른다. 가장 바깥에 걸치는 호(袍)의 색으로 직위를 나타냈는데 4위 이상의 직급만 검정색을 착용할 수 있었다. 호 아래는 히토에(単), 아코메(相), 시타가사네(下襲) 등을 겹쳐 입었다. 하의는 붉은 속 하카마(袴, 바지) 위에 겉 하카마를 입었다. 머리에는 검은 비단으로 만든 간무리(冠)를 쓰고 손에는 샤쿠(笏, 홀)를 들었으며 품에는 히오우기(檜扇, 부채)를 넣었다. 신발은 발목 부분을 붉은 비단으로 덧댄 가노쿠쓰(靴沓)를 신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5년)

주니히토에(十二単)는 일본 헤이안 시대에 완성된 여성 귀족들의 최상위 정장이다. 옷을 여러 겹 겹쳐 입는 화려한 모습 때문에 ’12겹의 옷’이라는 뜻의 별칭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봄에는 매화, 여름에는 꽃창포, 가을에는 단풍 등 자연의 변화를 옷의 겹침 색상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색의 조합은 여성의 미적 감각과 지적 수준을 나타냈다. 엄청난 무게 때문에 여인들은 일어설 때 무릎을 이용해 천천히 움직여야 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지극히 절제되고 우아한 거동을 만들어냈다. 조선 왕실의 궁중 예복과 성격과 특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 궁정의 여성 정복, 女房装束(十二単), 에도 시대 19세기>
,허리 뒤쪽으로 걸치는 치마, 모(裳)>
<금속판으로 만든 머리장식, 히라비타이(平額)><히라비타이 밑에 꽂는 빗, 구시(櫛)>
<가발, 가모지(辑)>
<가슴에 넣어 휴대하는 종이, 다토(帖紙)>
<궁정 여성이 사용한 부채, 大翳, 에도시대 19세기>

궁정에서 뇨보(女房)가 사용한 부채로, 히노키 판으로 만들어져 일반적으로는 히오우기(槍扇)라고 한다. 궁정 여성이 얼굴을 가리는 데 사용했기 때문에 오카자시(大扇)라고도 했다. 에도 시대부터 앞면에는 금과 은으로 칠한 구름 사이에 매화와 대나무를, 뒷면에는 새와 나비를 그렸다. 매화나 소나무 장식품을 실로 만들고, 오색 끈을 고둥 모양으로 엮은 후 남은 끈을 길게 늘어뜨렸다. 손잡이 부분에도 새와 나비 모양의 금속 장식을 붙여 화려하게 꾸몄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신분이 높은 궁녀인 뇨보女房 중에서 이들을 총괄하던 고위 직급인 나이시노스케(典侍)의 정복이다. 흔히 주니히토에(十二単)라고 하는데, 정식 명칭은 뇨보쇼조쿠(女房裝束)이다. 붉은색 나가바카마(長袴)를 입고 히토에(単), 이쓰쓰기누(五衣), 우치기누(打衣), 우와기(表着)를 입은 뒤 가라기누(唐衣)와 모(裳)를 걸치기 때문에 가라기누모(唐衣裳)라고도 불렸다. 머리는 가발을 덧대 더 길게 연장하기도 하고 정수리에 둥근 금속판으로 된 히라비타이平額를 꽃은 뒤 그 아래 빗을 꽂아 장식했다. 손에는 히오우기(槍扇, 부채)를 들고 얼굴을 가릴 때 사용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일본 귀족 저택의 실내 가구 배치도, 에도시대, 1787년>
<일본 귀족 저택의 실내 가구 배치도, 에도시대, 1787년>

일본 고유의 신덴즈쿠리(寝殿造) 양식 가옥 실내에서 사용된 가구의 형태와 배치를 나타낸 그림이다. 헤이안 시대의 궁정 의식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 《루이주자쓰요쇼(類聚雑要抄)》를 바탕으로 조정의 신하였던 다카하시 무네쓰네 등이 조사하여 제작했다. 나무 바닥의 실내에 조다이(帳台)라는 침대를 중심에 두고 병풍이나 이동식 장막인 기초(几帳)로 공간을 나누거나 수납장, 선반을 두고 다다미를 깔아 놓은 모습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바닥에 앉을 때 팔을 받치는 도구, 脇息, 에도시대 19세기>

바닥에 앉을 때 팔꿈치를 얹어 몸을 기대는 용도로 사용한 교소쿠이다. 손을 씻을 때도 교소쿠에 소매를 걸치고 두 손을 내밀어 따뜻한 물이나 찬물을 뿌리곤 했다. 자단나무로 만들었으며 상판의 양쪽 가장자리에 은 상감 기법으로 네모 모양을 장식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소나무잎을 문 학무늬를 마키에와 나전기법으로 표현한 2단 선반, 다나(松喰鶴蒔絵螺鈿二階棚), 히교샤에서 사용하던 가구, 飛香舎調度, 에도시대 19세기>
향로, 히토리(火取)
<머리 손질용 물을 담은 금속완, 유스루쓰키(泔坏)>
<침을 뱉는 항아리, 다코(唾壺)>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도구를 넣는 상자, 우치미다레바코(打乱箱)>

다이리(内裹)에 있는 후비(后妃)들의 궁전인 히교샤(飛香舍)에서 사용한 가구이다. 2단 선반 형태의 가구 다나(棚)에 다양한 실내 용구를 올렸다. 다나는 나시지 바탕에 마키에, 나전기법으로 소나무 잎을 문 학(松喰鶴) 무늬를 장식했다. 다나의 윗면에는 향을 피우는 도구 히토리(火取)와 머리를 빗을 때 바르는 쌀뜨물을 보관한 유스루쓰키(泔坏)를 두고 아랫면에는 침을 뱉는 항아리인 다코(唾壺)와 빗 등의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도구를 넣는 상자 우치미다레바코(打乱箱)를 두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소나무 잎을 문 학 무늬 거울함, 에도시대, 19세기>
<원앙과 당초를 장식한 꽃잎 모양 거울, 에도시대, 19세기>
<경대, 에도시대, 19세기>

거울과 거울함, 거울을 거는 경대이다. 백동으로 만든 여덟 장의 꽃잎 모양 거울 뒷면에는 원앙과 당초 넝쿨을 표현했다. 거울 형태에 맞춰 만들어진 거울함과 경대에는 나시지(梨子地) 표면에 마키에와 나전 기법으로 소나무 잎을 문 학 무늬를 장식했다. 경대의 지지대 위쪽에는 좌우로 펼쳐진 우와테(上手)가 있는데 우와테에 장식을 위한 천과 거울의 각도를 맞추는 도구를 설치한 후에 거울을 걸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소나무잎을 문 학무늬를 마키에와 나전기법으로 표현한 2단 수납장, 즈시(厨子), 히교샤에서 사용하던 가구, 飛香舎調度, 에도시대 19세기>
<후비가 궁에서 사용한 베개 진마쿠라(沈枕)>
<국화무늬를 나전기법으로 표현한 베개함>

다이리(内裹)에 있는 후비(后妃)들의 궁전인 히교샤(飛香舍)에서 사용한 가구이다. 문이 달린 수납장인 즈시(厨子)의 위쪽에 선반을 만들어 실내 용품을 올렸다. 즈시에는 나시지(梨子地, 배 껍질처럼 작은 점이 은은히 빛나는 표면)에 마키에와 나전 기법으로 소나무 잎을 문 학 무늬를 장식했다. 선반 위에 후비가 궁에서 사용하는 향목제 베개인 진마쿠라(沈枕)를 한 쌍 두고 그 위에 화려한 비단으로 만든 덮개를 씌웠다. 베개를 넣는 함에는 나시지 바탕에 나전 기법으로 국화를 표현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공간을 나누거나 장식할 때 사용한 이동식 장막, 美麗几帳, 에도시대 19세기>

실내 공간을 분리하거나 가릴 때 사용하는 이동식 장막 기초(几帳)이다. 기초는 지지대 위에 기둥을 세우고 가로로 나무를 건 뒤, 장막을 드리우는 구조이다. 여기에 끈을 달아 장막을 감아올릴 때 고정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장식적으로 화려하게 꾸민 기초를 특히 비레이노기초(美麗几帳)라 하는데, 이 기초는 장막 겉면에 국화 무늬를 짜 넣고 휘장대에 소나무 가지 무늬를 마키에 기법으로 표현해 화려함을 자아낸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일본 교토에 있는 어소(御所)는 간무 천황이 교토로 수도로 옮긴 헤이안 천도(794년) 이래 메이지 유신으로 1869년 천황이 도쿄로 옮기기 전까지 정궁(正宮)이었던 곳이다. 원래는 당나라 장안을 모방하여 교토를 건설하면서 현위치 서쪽 1.7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막부시대에 천황이 실권을 잃으면서 14세기 천왕이 현위치로 궁궐을 옮기면서 19세기까지 정궁 역할을 했던 곳이다. 

<에도시대 말기의 궁정>
<1. 시신덴(紫宸殿)>

궁정의 정전으로, 덴노의 즉위식 등 중요한 조정 의식을 했던 건물이다. 남향이며 그 앞에는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다. 정면 계단 동쪽에는 벚나무, 서쪽에는 다치바나[귤의 일종] 나무를 심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2. 세이로덴(清涼殿), 사진출처: wikipedia>

9세기 말 이후 덴노의 거처가 된 건물이다. 신덴즈쿠리 양식의 생활공간을 잘 보여 준다. 16세기 말 덴노의 새로운 거처로 오쓰네고텐(御常御殿)이 마련되면서 세이료덴은 의식을 위한 건물이 되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3. 쇼다이부노마(諸大夫間)>

궁정에 방문한 사람들이 대기하던 공간으로, 신분에 따라 방이 구분되어 있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4. 나이시도코로(内侍所), 춘흥전春興殿>

황위를 상징하던 성스러운 거울(神鏡)을 모신 건물이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5. 오쓰네고탠(御常御殿)>

16세기 말 덴노의 거처로 지어진 건물이다. 외관은 헤이안 시대 귀족의 저택에 주로 사용된 신덴즈쿠리 양식이지만 실내는 무로마치 시대 무사 계층을 중심으로 발달한 쇼인즈쿠리(書院造) 양식으로 꾸며져 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6. 고고쇼(小御所)>

덴노가 막부의 사신과 만날 때 사용한 건물이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7. 오가쿠몬조(御学問所)>

문예 의식에 사용한 건물이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8. 오미마(御三間)>

칠석七夕 등의 사적인 의식 때 사용한 건물이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17~19세기의 궁정 행사를 그린 그림, 가노 쇼센인 외 모사, 에도시대 19세기>

시호우하이(四方拝)는 매년 1월 1일 새벽, 일본의 천황이 거행하는 가장 중요한 첫 의례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방의 신들에게 절을 하며 국가와 백성의 안녕, 그리고 풍요를 기원하는 신도(神道)적 성격이 강한 의식이다. 황거 내의 신덴(神殿) 앞뜰, 과거 교토 고쇼 시절에는 세이로덴(清涼殿) 동쪽 뜰에서 거행되었다.

<시호우하이(四方拝)>

고초바이(小朝拝)는 궁정에서 매년 1월 1일 아침, 시호우하이(四方拝)가 끝난 직후에 거행되었던 정례적인 새해 하례 의식이다. 주로 세이로덴(清涼殿) 동쪽 뜰에서 거행되었다. 황태자를 비롯한 황족들과 고위 관직을 가진 귀족들이 참여했다.

<고초바이(小朝拝)>

간지쓰노세치에(元日節会)는 일본 궁정에서 새해 첫날(1월 1일)에 열렸던 가장 성대한 공식 국가 연회이다. 종교적이고 형식적인 의미가 강했던 시호우하이(四方拝)나 고초바이(小朝拝)와는 달리 실질적인 신년 연회였다. 주로 궁궐 내 가장 규모가 큰 전각에서 열렸다. 연회 도중에는 궁정 음악인 가가쿠 연주와 함께 화려한 춤인 부학(舞楽)이 펼쳐졌다.

<간지쓰노세치에(元日節会)>
<간지쓰노세치에(元日節会)>

17~19세기 궁정 행사를 기록한 그림으로, 시호우하이(四方拝), 고초바이(小朝拝), 간지쓰노세치에(元日節会) 행사를 묘사하고 있다. 시호우하이는 한 해의 첫 행사로, 정월 초하루의 이른 아침에 덴노가 하늘과 땅, 동서남북 사방, 산릉(山陵)을 향해 절하며 일 년의 악재를 막고 나라가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고초바이는 같은 날 덴노가조정의 신하들과 대면하는 의식이며 이후 열리는 연회가 간지쓰노 세치에이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17~19세기의 궁정 행사를 그린 그림, 에도시대 19세기>

마이고란(舞御覧)은 ‘춤을 관람한다’는 뜻으로, 일본 궁정에서 천황이나 황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행되었던 공식적인 무용 관람 의식을 의미한다. 마이고란에서 공연되는 춤은 주로 가가쿠(雅楽)에 맞춘 부학(舞楽)였다. 화려한 복식을 갖춘 무희들이 궁궐의 붉은 회랑과 푸른 마당(뜰) 사이에서 춤추는 모습은 당시 귀족들에게 최고의 시각적 유희였다. 이때 궁정의 문을 개방해서 서민들도 관람할 수 있게 했다.

<마이고란(舞御覧)>
<마이고란(舞御覧)>

온가쿠하지메(御楽始)는 일본 궁정에서 새해를 맞아 거행하는 첫 공식 가가쿠(雅楽) 연주회를 의미한다. 새해의 시작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열어, 그해 국가의 조화(和)와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온가쿠하지메(御楽始)>

일본 궁정문화에서 도리나베(鬪鷄)는 단순히 닭싸움을 즐기는 오락을 넘어, 계절의 변화를 축하하고 귀족들의 세력을 과시하는 공식적인 연례 행사였다. 닭의 싸움 실력뿐만 아니라, 닭을 담아오는 바구니의 장식, 닭의 깃털 색깔, 그리고 주인이 읊는 시(와카)의 수준까지 모두가 경쟁의 대상이었다.

<투계(鬪鷄) 행사>

17~19세기의 궁정 행사 중 마이고란(舞御覧), 온가쿠하지메(御楽始), 투계(鬪鷄) 행사를 그린 그림이다. 마이고란은 정월 19일에 덴노가 시신덴(紫宸殿)의 앞뜰에서 궁정 무용을 감상하는 것인데, 이때 궁정의 문을 개방해서 서민들도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온가쿠하지메는 일 년 중 최초로 궁정에서 개최하는 관현악 유희로, 2월이나 3월에 열렸다. 두 마리의 수탉을 서로 싸우게 하는 놀이인 투계는 3월 3일에 열렸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가모신사에서 행해지는 참배 의식은 일본 궁정 문화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종교 행사였다. 특히 헤이안 시대에는 황실의 수호신으로 추대되어 천황이 직접 관여하는 ‘칙제(勅祭)’로서의 권위를 가졌다.

<궁정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화첩 중 <가모신사에서의 참배 의식> 장면, 후지시마 스케노부, 메이지시대 19세기>
<참배의식>
<글>
<참배 장면>
<참배 장면>

18~19세기의 궁정 행사를 기록한 화첩으로, 교토에 있는 가모신사(賀茂社)에서 모시는 신에게 참배하는 의식을 묘사했다. 가모신은 본래 가모씨(賀茂氏) 가문에서 숭배하던 신으로, 조정이 교토로 천도하면서 함께 모시게 되었다. 제례 당일에는 덴노가 파견한 칙사들이 행렬을 지어 가모신사에 참배하며 신들에게 공물을 바쳤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니이나메사이(新嘗祭)는 매년 11월 23일, 천황이 그해 수확한 햇곡식을 천지신명에게 바치고 스스로도 그것을 먹으며 감사를 표하는 일본 황실의 가장 중요한 추수 감사 의례이다. 다이죠사이가 천황 즉위 후 ‘단 한 번’ 열리는 특별 의식이라면, 니이나메사이는 매년 행해지는 정기 의식이다.

<궁정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화첩 중 <니이나메사이> 장면, 후지시마 스케노부, 메이지시대, 19세기>
<오른쪽 1번째>
<2번째>
<3번째>
<4번째>

18~19세기 궁정 행사를 기록한 화첩으로, 니이나메사이(新嘗祭) 의식을 묘사하고 있다. 니이나메사이는 덴노가 직접 그 해에 수확한 곡식을 신에게 바치고 본인도 그것을 먹는 제사이다. 11월의 두 번째 묘일(卯日)에 행했다. 궁정의 수많은 연중행사 중에서 의식의 내용에 오래된 요소가 있으며, 그 원형을 지켜 의식에 사용되는 제복(祭服)이나 제기가 소박하고 원시적인 형태이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궁정의 의례: 연중행사
궁정의 의례는 해마다 시행하는 연중행사와 즉위나 혼례 같이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행하는 임시행사로 나뉩니다. 특히 매해 치러지는 연중 행사는 일본 궁정문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입니다. 정월 초하루 덴노 앞에 신하들이 도열해 경하하며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인 조하(朝賀), 11월 곡물 수확을 감사하는 니이나메사이(新嘗祭) 등 한 해 동안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습니다. 일본 궁정의 의례는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일본의 풍토나 계절에 맞게 변형되고 민간 행사나 풍습을 접목하면서 점차 일본인의 생활과 어우러지는 방향으로 정립되었습니다 덴노의 처소 가까이에 연중행사를 열거한 장지문障을 설치할 정도로 연중행사의 중요도 역시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12세기 말 막부 정권이 들어서고 전란이 이어지면서 많은 궁정 행사가 폐지되었습니다. 17세기 에도 막부가 들어서면서 의례 공간이었던 다이리(内裹)의 복원과 함께 중단되었던 궁정의 의례가 점차 재개되었습니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궁정이 교토를 떠나 도쿄로 이동했고 그때까지의 궁정 의례를 자세히 기록하여 지금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출처>

  1. 안내문, 고궁박물관 특별전, 2026년
  2.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4.18 확인)
  3. OpenAI, <ChatGPT (GPT-5)>의 답변, 2026년 4월 1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