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보물)이다. 별자리를 돌에 새겨 놓은 천문대로 조선 초 태조 때 제작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다시 돌에 새긴 것이다. 둥글게 그린 하늘 안에 1,467개의 별이 그려져 있고 아래에는 천문도를 만들게 된 경위와 명단이 적혀 이다. 전체적인 구성의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태조 때 새긴 천문도와 완전히 같고 권근이 작성한 설명문이 그대로 적혀 있다. 대리석에 다시 새긴 것으로 원본의 크기와 형태, 새김 기법을 충실히 재현하여 제작되었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새겨져 있는 글씨와 별이 대부분 판독 가능하다. 이 천문도를 만든 경위 등은 <증보문헌비고>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윗부분에는 별자리와 관련된 각종 설명 등이 새겨져 있다. 제목이 위로 올라간 점이 바뀐 부분이다.


가운데 둥근 그림에는 24절기마다 저녁과 새벽에 남중하는 별자라기 기록되었다고 한다.

A1, A2에는 천구를 1개로 나눈 12차(次)와 이에 대응하는 지상의 지역인 12분야를 기록했다. B는 일수(日宿), 해의 궤도 운행을 설명하고 있다. C는 월수(月宿), 달의 궤도 운행과 황도와 적도가 만나는 설명을 하고 있다. D1, D2, D3, D4는 북.서.남.동의 순서로 각 방위의 칠수(七宿)에 해당하는 별의 숫자와 도수의 합이 새겨졌다.


가운데 원형 천문도에는 총 1,467개의 별이 새겨져 있다. 북극을 중심으로 육안으로 관측 가능한 별자리들이 정교하게 배치되었다. 별의 크기를 다르게 하여 밝기(심도)를 표현했는데, 이는 현대의 등급 개념과 유사하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나의 원에 별자리를 담았다. 왼쪽 가운데서 두 개의 줄기로 시작하여 중간에 합류하여 아래로 내려오는 선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은하수로 예전에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큰 강이라고하여 천한天漢이라고 불렀다.
원 안에는 커다란 두 개의 고리가 보인다. 천문도의 큰 원과 중심이 같은 원은 적도赤道이며 적도와 달리 왼쪽 위로 비스듬히 올라가 있는 원은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黃道이다.
하늘의 중앙은 삼원三垣(세 개의 울타리)으로 구분하였다. 자미원은 군주가 거처하는 궁궐로 북두칠성이 있는 구역이고, 태미원은 관아가 있는 구역으로 삼태성이 있으며, 천시원은 하늘의 시장으로 백성들의 거처이다. 이곳의 별들은 하늘 중앙에 있어 계절에 관계없이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북두칠성은 밝은 별로 이루어져 있어 쉽게 발견할 수 있고 국자 모양으로 생겨 손잡이 방향을 보고 천체의 운행을 가늠할 수 있어 옛날부터 중요한 별자리로 여겼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테두리를 보면 큰 원을 열두 구획으로 나눈 것을 볼 수 있다. 구획마다 중간에는 방향을 나타내는 십이지를 원 안에 써넣고, 그 양쪽으로 한쪽에는 황도십이궁과 십이차에 대응하는 땅의 지명을 기록하였다. 황도십이궁은 그리스 천문학에 기원한 12개의 주요 별자리로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 위에 위치한다. 동아시아에서는 황도십이궁이 별자리 자체보다는 별자리의 위치와 방향을 의미한다. 십이차는 전통적으로 하늘의 구역을 구분하던 방법으로, 이데 대응하는 땅의 명칭은 모두 중국의 지명이다.
365 1/4 천문도를 구획하는 큰 원의 안쪽으로 작은 눈금이 있다. 작은 눈금은 원으 로 365와 1/4로 나눈다. 하나의 눈금은 하루 동안 천체가 이동하는 도수이며 전체 365 1/4일은 태양의 1년 주기가 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아래쪽에는 ‘논천(論天)이라는 제목으로 하늘과 땅의 관계, 하늘의 생김사가 설명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 권근이 짓고 설경수가 쓴 천문도의 유래와 제작 과정, 의의가 기록되어 있다. 서운관의 관리들과 천문도를 만든 시기가 새겨져 있다.


천문도지, 권근
앞의 돌에 새긴 천문도는 옛날 평양성에 있던 것이나 전쟁과 혼란으로 강에 가라앉아 잃어버렸고 오랜 세월이 흐른 까닭에 인본도 종적을 감춰버렸다. 우리 전하께서 천명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이가 인본 1부를 바쳤다. 전하는 이를 매우 소중히 여겨 서운관에 명하여 돌에 다시 새기라 하셨다. (중략) 진실로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에 힘쓰는 일은 긴장을 늦출수 없도다. 삼가 전하께서는 성스러운 무공과 자비로운 통찰력으로 왕위를 물려받아 나라를 만드셨다. 안팎이 평한하고 태평을 구가하게 된 것은 요임금이나 순임금의 덕이며 먼저 천문을 살피고 중성을 바로 잡는 것은 요순의 정치라 하겠다. 그러나 하늘을 살피고 제도를 만들었던 요순의 마음은 찾아보면 그 근본은 공경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가 전하께서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위로는 하늘의 시간을 받들고 아래로는 백성의 일을 부지런히 살피시어 신성한 업적이 창대하거늘 이 천문도를 옥돌에 새기시니 영원히 자손만세의 보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천상분야열차지도각석>(국보)는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제작된 석각 천문도이다. 태조는 권근을 비롯한 11명의 천문학자들에게 조선의 개국이 하늘의 뜻임을 알리고자 제작하였다. 고구려가 만들었던 천문지도를 바탕으로 조선시대에 변화된 내용을 반영하여 새긴 것이다.

<출처>
-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 ‘보물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 국가문화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년
-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4.30 확인)
- OpenAI, <ChatGPT (GPT-5)>의 답변, 2026년 4월 30일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