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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부일구(보물), 청동제 해시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앙부일구(보물)>이다. 조선후기(17~18세기)에 만들어진 2점의 청동제 유물이다. 검게 부식 처리된 청동 바탕에 가느다란 은실을 박아 넣어 선과 글자를 새겼다. 이는 기능적인 정확도는 물론이고, 왕실 유물로서의 높은 예술성을 보여준다. 앙부일구의 바늘(영침) 끝은 북극을 향하고 있는데, 이 각도는 당시 한양의 위도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는 조선의 독자적인 천문 관측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앙부일구와 앙부일구대, 조선>

앙부일구
해의 위치에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의 위치를 읽어 시각과 절기까지 알 수 있도록 만든 시계입니다. 세종 대에는 앙부일구를 오늘날 광화문과 종묘 인근 등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곳에 설치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또, 묘卯_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 등 시각의 이름을 글자가 아닌 각각이 상징하는 동물 모양(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으로 새겨 글을 모르는 백성도 쉽게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큰 것은 시계의 지름이 35.2㎝, 높이가 14㎝이고,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이다. 한양 북극고도가 37도 20분이라고 새겨져 있어 1713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앙부일구, 仰釜日晷, 조선 1654~1713년, 보물>
<왼쪽에서 본 모습>

내면에는 가로세로의 격자선이 매우 정교하게 그어져 있다. 세로선은 묘(卯, 오전 5~7시)시부터 술(戌, 오후 7~9시)시까지 표시되어 있다. 각 시(時) 사이에는 8개의 눈금이 있어 15분 단위(1각)로 정밀하게 시간을 읽을 수 있다. 가로선은 총 13개의 선이 그어져 있다. 해의 고도가 가장 높은 하지에는 그림자가 가장 아래쪽 선에 머물고, 고도가 낮은 동지에는 가장 위쪽 선에 그림자가 맺힌다. 그림자를 만드는 바늘인 영침은 정확히 구의 중심을 지나도록 설계되어, 어느 계절 어느 시간대에도 오차가 거의 없습니다.

<위에서 본 모습>
<왼쪽에서 본 모습>

청동으로 만들고 은으로 글씨를 새겨 넣은 앙부일구다. 시각 눈금은 1654년(효종 5) 이후 사용한 12시 96각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한양 북극고도가 37도 20분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1713년(숙종 39) 실측한 값인 37도 39분 15초와 차이가 있어, 1713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앙부일구대, 조선>

앙부일구를 올려놓았던 받침대이다. 상단 네 면에 홈을 파 앙부일구를 고정할 수 있게 하였다. 몸체에는 연잎, 구슬, 불수감佛手柑 등 다양한 무늬를 새겨 넣어 장식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작은 것은 시계의 지름이 24.3㎝이며 18세기 전반에 제작되었다. 2개의 해시계는 작고 오목한 가마솥 모양에 네발이 있는 우아한 모습을 가진 것으로 작풍과 제작기법이 같다.

<앙부일구, 조선 1713년 이후, 보물>
<위에서 본 모습>
<눈금>

조선 후기에 제작된 앙부일구다. 1713년(숙종 39) 실측된 한양의 북극고도 값인 37도 39분 15초가 새겨 있어, 1713년 이후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리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을 음각으로 새겼고, 다리와 시계판을 연결하는 부위에는 구름무늬를 새겼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조선시대에는 하루를 12시(時)로 나누었으며, 각 시는 오늘날의 약 2시간에 해당한다. 12시는 십이지로 표시했으며, 세분화할 때는 각(刻)이나 점(點)을 사용했다. 물의 흐름을 이용한 자격루(물시계)가 표준 역할을 했으며, 해시계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밤에는 별자리 위치를 참고하였다.

<조선시대 시간 체계>
<밤시간>

조선시대 시간 체계
조선시대에는 현재와는 다른 시간 체계를 썼습니다. 하루를 24시 대신 12시로 나누고, 매시를 다시 둘로 나눠 초初와 정正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밤 11시에서 1시는 자시子時에 해당하는데, 자시는 다시 자초(子初), 자정(子正)으로 나뉩니다. 시보다 더 작은 시간 단위는 각刻입니다. 조선전기에는 12시를 100각으로 나누었고, 시헌력을 적용하기 시작한 조선 후기에는 96각으로 나누었습니다. 낮과 밤 시간을 균일하게 파악하는 현재와 달리 조선시대에는 밤 시간을 파악하는 데 별도의 체계를 사용했습니다. 해가 질 때부터 다시 뜰 때까지의 밤 시간은 5경 5점으로 나누었는데, 계절마다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실제 밤의 길이를 반영해 경과 점의 길이가 절기마다 달라 졌습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출처>

  1.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2. ‘보물 앙부일구’, 국가문화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년
  3.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4.30 확인)
  4. OpenAI, <ChatGPT (GPT-5)>의 답변, 2026년 4월 3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