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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부일구(보물, 2022-1), 구한말 제작된 해시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앙부일구(보물, 2022-1)>이다. 뒷면에 새겨진 글씨를 통해 구한말인 1899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작자 강건은 구한말에 앙부일구를 여럿 제작했다고 한다.  2020년 미국에서 돌아온 문화유산이다.

<앙부일구, 대한제국, 1899년, 보물>
<왼쪽에서 본 모습>

1899년(광무 3) 제작된 앙부일구다. 뒷면에 새겨진 글씨를 통해 제작자와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다. 제작자 강건(1843~1909년)은 형 강윤(1830~1898년)과 함께 조선 말~대한제국 시기에 앙부일구를 여럿 제작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내면에는 가로세로의 격자선이 매우 정교하게 그어져 있다. 세로선은 묘(卯, 오전 5~7시)시부터 술(戌, 오후 7~9시)시까지 표시되어 있다. 각 시(時) 사이에는 8개의 눈금이 있어 15분 단위(1각)로 정밀하게 시간을 읽을 수 있다. 가로선은 총 13개의 선이 그어져 있다. 해의 고도가 가장 높은 하지에는 그림자가 가장 아래쪽 선에 머물고, 고도가 낮은 동지에는 가장 위쪽 선에 그림자가 맺힌다. 그림자를 만드는 바늘인 영침은 정확히 구의 중심을 지나도록 설계되어, 어느 계절 어느 시간대에도 오차가 거의 없습니다.

<내부 눈금>

조선시대에는 하루를 12시(時)로 나누었으며, 각 시는 오늘날의 약 2시간에 해당한다. 12시는 십이지로 표시했으며, 세분화할 때는 각(刻)이나 점(點)을 사용했다. 물의 흐름을 이용한 자격루(물시계)가 표준 역할을 했으며, 해시계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밤에는 별자리 위치를 참고하였다.

<조선시대 시간 체계>
<밤시간>

조선시대 시간 체계
조선시대에는 현재와는 다른 시간 체계를 썼습니다. 하루를 24시 대신 12시로 나누고, 매시를 다시 둘로 나눠 초初와 정正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밤 11시에서 1시는 자시子時에 해당하는데, 자시는 다시 자초(子初), 자정(子正)으로 나뉩니다. 시보다 더 작은 시간 단위는 각刻입니다. 조선전기에는 12시를 100각으로 나누었고, 시헌력을 적용하기 시작한 조선 후기에는 96각으로 나누었습니다. 낮과 밤 시간을 균일하게 파악하는 현재와 달리 조선시대에는 밤 시간을 파악하는 데 별도의 체계를 사용했습니다. 해가 질 때부터 다시 뜰 때까지의 밤 시간은 5경 5점으로 나누었는데, 계절마다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실제 밤의 길이를 반영해 경과 점의 길이가 절기마다 달라 졌습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출처>

  1.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2. ‘보물 앙부일구(2022-1)’, 국가문화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년
  3.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5.02 확인)
  4. OpenAI, <ChatGPT (GPT-5)>의 답변, 2026년 5월 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