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고창읍성(사적)이다. 조선시대 고창현 읍치였던 곳으로 모양성이라고도 불렸다. 조선 전기 지방 행정 중심지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곽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대표적 읍성이다. 조선 단종 때(1453년)에 외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힘을 합쳐 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을 사용해 쌓았으며, 성벽의 높이는 약 4~6m, 둘레는 약 1,684m에 달한다. 고창읍성은 성벽을 유지보수하기 위해 실시했던 ‘답성놀이(성밟기)’ 풍습으로 유명하다.

당시 왜구에 대응해 쌓은 읍성들은 읍치 중심 평지에 쌓은 경우가 많은데 반해 고창읍성은 작은 산을 중심으로 산성처럼 쌓았다. 공주 공산성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최근 보수공사를 하여 원형에 가깝도록 복구하였다. 동·서·북문과 옹성이 3개소, 치성 6개소와 해자들로 된 전략적 요충시설이 갖춰져 있다.

북문(공북루)
공북루는 고창읍성의 북문 위에 세워진 문루로, 고창읍성의 정문 역할을 하는 대표 건축물이다. 성문 위에 세운 2층 누각 형식이다. 일반적인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과 달리, 수평 부재를 건너질러 통로를 만든 평거식 또는 그에 준하는 사각형 형태의 통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성문 바깥쪽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반원형 또는 ㄷ자형으로 둘러쌓은 옹성이 연결되어 있어 방어력을 높인 구조이다. 옹성은 주로 조선후기 성곽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이 성은 조선시대의 읍성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주초와 문짝을 달던 홈이 파인 누문(樓門)을 가지고 있다. 바깥에 옹성이 있어 문루는 홍예가 없는 평거식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공북루, 拱北樓,
이 건물은 낮은 기단위에 전면에는 자연석 주춧돌을 사용하고 배면은 화강석 돌기둥 위에 둥근기둥을 세워 만든 2층 문루이다. 고창읍성에는 정문인 공북루(북문)와 등양루(동문), 진서루(서문)등 3개소의 성문이 있는데 성문앞에는 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옹성을 둘러쌓고 그 위에 여장을 쌓아 성안에서 밖을 살필 수 있는 현안과 총을 쏠 수 있는 총안(근총살, 원총안)을 만들어 놓았다. 공북루 전후 사적기와 상량문에는 순치 3년 (인조 24년, 1646) 12월에 공북루를 소건하고 그 후 3회에 걸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안내문, 고창군청, 2026년)
동쪽 성벽
성벽은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을 주로 사용하였다. 성벽을 보면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돌들을 맞물려 쌓아 투박하면서도 견고한 느낌을 준다. 평지에 쌓는 일반적인 읍성과 달리 산을 끼고 쌓은 평산성(平山城) 형태로, 지형에 맞춰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축조되었다. 성벽 곳곳에는 이 성을 쌓는 데 참여한 고을의 이름(예: 전라도 제고을)이 새겨져 있는 각자성석이 발견되고 있다.

성벽 바깥쪽으로는 적의 접근을 1차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도랑인 해자를 두어 방어력을 극대화했다. 지금은 바깥쪽 해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북문 공북루에서 동문 등양루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성곽 전체 중에서도 비교적 잘 보존된 구간이다. 인위적으로 직선을 고집하지 않고 지형의 높낮이에 맞게 성벽이 구불구불하게 휘어지는 곡선미를 보여주고 있다.



성벽은 가공된 돌보다는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살짝만 다듬어 쌓았다. 큰 돌을 아래에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에 작은 돌(쐐기돌)을 박아 넣어 틈을 메우는 방식을 사용해 매우 견고하다.

북문과 동문 사이 구간에는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만든 치성인 ‘동북치’가 배치되어 있다. 치성은 성벽에 바짝 붙은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기 위한 시설이다.

동북치에서 동문까지는 경사가 없이 비슷한 높이로 성벽이 이어진다.




고창읍성은 조선 세종 32년(1450)에 전라우도인 고창, 무장, 흥덕, 옥구(군산), 용안(익산), 김제, 정읍, 고부, 태인, 영광, 장성, 진원(장성), 함평, 제주와 전라좌도인 용담(진안), 임실, 순창, 담양, 능성(화순) 등 19개 군현이 참여하여 3년만인 단종 원년(1453)에 완공하였다. 축성당시 각 고을에서 성 쌓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쌓은 구간과 고을 이름을 성벽에 새겨두고 갔었는데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일부가 훼손되어 잘 보이지 않으므로 각종 문헌(文獻)과 현장조사 자료를 참고하여 1997년에 고을 표석을 만들어 축성구간을 찾아 성외곽에 세워 놓았다. (안내문, 고창군청, 2026년)
동문은 성곽의 주요 출입구 중 하나로, 공식 명칭은 등양루(登陽樓)이다. 다른 성문 마찬가지로 동문 옹성 구조를 하고 있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규모 팔작지붕 건물이다. 성문 하단은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을 견고하게 쌓아 올렸다.

동문 동쪽으로는 경사진 지형을 따라 치성인 ‘동치’까지 성벽이 이어진다. ‘동치’에서 방향을 바꾸어 남쪽으로 성벽이 이어진다. 남쪽 성벽에는 2개의 치성인 ‘남치’와 ‘동남치’가 있다.


서쪽 성벽
북문에서 서문으로 가는 구간은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성벽이 이어지는데, 인위적으로 직선을 고집하지 않고 지형의 높낮이에 맞추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축조되었다. 북문과 서문 사이에는 방어를 보완하기 위해 ‘서북치’가 설치되어 있다.







고창읍성의 서문은 공식 명칭으로 진서루(鎭西樓)라 불린다. 서문은 북문, 동문과 마찬가지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서문 근처의 성벽은 지형이 급격히 낮아지거나 높아지는 구간과 연결되어 있다. 지형의 고도 차이에 따라 성벽의 높이를 조절하여 쌓았으며, 서문 주변에서는 성벽 외부의 경사가 가팔라 외부에서의 접근이 쉽지 않다. 서문 양쪽에 ‘서북치’와 ‘서남치’가 배치되어 방어를 강화하고 있다.

고창 읍치
관아 건물들은 읍성 내부의 중심축에 배치되어 읍성과 함께 방어와 행정을 겸했다. 성문과 연결된 도로망을 따라 객사와 동헌이 배치되는 전형적인 조선 지방관아 구조를 따르고 있다. 옛 건물들은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지만, 발굴조사를 통해 옛모습을 복원해 놓고 있다.

원래 읍치는 주민들이 살았던 공간인데 지금은 관아건물들만 복원해 놓고 있다.




읍성내 아래쪽에는 작청이나 관청같은 아전들이 근무했던 건물들이 있었다. 성안 높은 곳에 객사와 동헌같은 중요 관아 건물들이 있었다.


향청은 지방의 수령을 자문 보좌하던 자치기구로서 조선 초기에는 유향소(留鄕所)라고 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부터 향청이라고 불리워졌다. 공북문 오른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내아 아래에는 지방 군현을 지키는 속오군에 속했던 현감과 병방(兵房) · 군교(軍校)들이 군무(軍務)를 보던 청사인 장청이 자리잡고 있다.

내아는 수령과 그 가족들이 생활하던 살림집이다. 동헌 왼쪽편에 있으며 큰 마루가 있는 ‘ㄱ’자형 건물을 하고 있다. 내와와 동헌을 분리하는 담장이나 행각 등은 복원하지 않았다.

동헌은 수령이 공식 업무를 보던 중심 건물로 행정 집무와 재판 장소였다. 백성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고을을 평안하게 잘 다스린다는 뜻의 평근당(平近堂)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고창현 객사는 모양지관(牟陽之館)이라 불렀다. 현재 복원된 건물이 있는 가운데 정청으로 중심으로 양쪽에 좌.우익랑을 두고 있다.


고창읍성, 사적,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왜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 고도 하는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로 만들어진 읍성이다. 1965년 4월 1일 사적 제145호로 지정되었으며 이성의 둘레는 1,684m, 높이4~6m, 면적은 165,858㎡로 동, 서, 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소의 치성을 비롯하여 성밖의 해자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헌, 객사등 22동의 조선시대 관아건물이 있었으나 병화 등으로 소진된 것을 1976년부터 복원해 오고있다. 윤달에는 돌을 머리에 이고 성곽을 3회 돌면 무병장수하고 극락승천 한다는 전설이 있어 지금도 부녀자들의 답성 풍속이 남아있다. (안내문, 고창군청, 2026년)
<출처>
- 안내문, 고창군청, 2026년
- ‘사적 고창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년
-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5.13 확인)
- OpenAI, <ChatGPT (GPT-5)>의 답변, 2026년 5월 13일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