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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수도원(Cloisters)과 부속건물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클로이스터(Cloisters, 회랑)는 수백 년의 역사와 고딕 양식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원 내에서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공간이다. 중세 수도원으로 회랑으로,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의 일상생활 중심지였다. 수도사들은 사방이 막힌 조용한 회랑을 걸으며 성경을 읽고 명상을 했다. 북쪽 회랑에서는 수도사들이 모여 글을 쓰거나 필사를 했고, 서쪽 회랑에서는 신참 수도사들을 교육했다. 또한 교회 본당, 수도사들의 숙소, 식당, 그리고 회의실(Chapter House)을 모두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현재 남아 있는 회랑은 주로 13~15세기에 건설된 것이다.

 <대회랑 (Great Cloister) 정원, 동쪽에서 본 모습>
<서쪽에서 본 모습>
<남쪽에서 본 모습>

북쪽 회랑(North Cloister)

북쪽 회랑은 사각형 회랑 중 북쪽에 위치한 통로이다. 중세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의 독서와 학습 공간이었습니다. 사원 회랑 가운데에서도 가장 조용한 장소로, 수도사들이 개인 묵상과 공부를 하던 곳으로 사용되었다.

<북쪽 회랑(North Cloister)>
<서쪽에서 본 모습>

서쪽 회랑(West Cloister)

서회랑(West Cloister)은 중세 수도원 시절 수도원의 행정 책임자인 ‘수도원장(Abbot)’의 개인적 영역이자 어린 초심자(Novices)들을 교육하던 배움의 공간이다. 엄격하고 조용히 학문에 집중하던 북쪽 회랑과 달리, 아이들이 모여 공부를 하거나 휴식 시간에 체스나 주사위 같은 간단한 게임을 즐기던 활기찬 공간이었다.

<서쪽 회랑(West Cloister)>

수도원장은 이 서회랑을 통해 자신의 처소에서 대성당 내부나 회랑의 다른 구역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네이브 남측 통로에서 서회랑(West Cloister)을 출입하는 문>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마당>

이곳에는 사원의 관리인(Vergers), 석공, 장인 등 사원 운영에 참여한 인물들과 그 일가족의 묘비가 바닥과 벽면에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정교한 대형 대리석 기념비는 17세기 인물이자 재무장관의 비서를 지낸 존 로렌스(John Laurence, 1619~1684)를 기리는 기념비이다. 바닥 묘비는 18세기에 살았던 도커스 스프링(Dorcas Spring)과 그녀의 남편 윌리엄 스프링(William Spring) 등 그 일가가 잠들어 있는 바닥 묘비이다. 원래 남쪽 회랑에 있었다고 한다.

<존 로렌스의 기념비, 스피링 부부의 바닥묘비>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석공 장인이었던 토마스 가이페어(Thomas Gayfere)의 아내 프란시스 가이페어(Frances Gayfere, 1770년 사망)의 묘비가 있다.

<토마스 가이페어와 그의 아내, 딸이 묻힌 곳>

이 벽면은 특히 의학과 문학 역사에서 의미 있는 인물들의 기념비가 모여 있는 곳이다. 윌리엄 버컨 박사 (William Buchan, M.D.) 기념비 (우측), 프랜시스 루이자 파넬 (Frances Louisa Parnell) 기념비 (좌측)가 있다. 바닥 검은 석판에는 로버트 웨스턴 (Robert Weston)과 그의 아내인 루이자 웨스턴 (Louisa Weston)의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윌리엄 버컨 박사 기념비 (우측), 프랜시스 루이자 파넬 기념비 (좌측)>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들과 영국의 인도 통치기 행정관 등 역사적 군사·정치 인물들을 기리는 기념비들이 있다. 리엄 말콤 헤일리 남작 (William Malcolm Hailey, Lord Hailey) 기념비 (중앙), ‘올드 컨템프터블스’ (The Old Contemptibles) 기념비 (우측), 이언 프레이저 남작 (Ian Fraser, Lord Fraser of Lonsdale) 기념비 (좌측)가 있다.

<리엄 말콤 헤일리 남작 기념비 (중앙), ‘올드 컨템프터블스’ 기념비 (우측), 이언 프레이저 남작 기념비 (좌측)>

이곳은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국가를 위해 헌신한 특별한 부대들을 기리는 잠수함 전몰장병 및 코만도·공수부대 기념비가 있는 매우 상징적인 공간이다. 왼쪽은 2차대전 떄 희상된 잠수함 승조원 (Submariner)을, 중앙은 특수부대인 ‘코만도’ 대원의 모습을, 오른쪽은 공수부대원을 표현하고 있다. 하단의 분홍빛 대리석 판은 1940년부터 1945년까지 활약한 특별작전집행부를 기리는 기념비이다. 청동상 위쪽 벽면에는 18~19세기에 사원과 관련된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설치된 오래된 석조 기념비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잠수함 전몰장병 및 코만도·공수부대 기념비>

남쪽 회랑(South Cloister)

남쪽 회랑 (South Cloister)은 수도사들의 식당인 식당(Refectory) 으로 이어지는 통로 역할을 했다. 회랑의 바닥과 벽면에는 사원의 역사와 관련된 수많은 수도원장, 고위 성직자, 그리고 사원 관계자들의 평평한 묘비(Floor slabs)가 깔려 있다. 안뜰 너머로 사원의 웅장한 외벽과 정교한 고딕풍 창문이 보인다.

<남쪽 회랑 (South Cloister)>

대영제국 시절 식민지에서 헌신한 이들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해상 영공을 지킨 공군 부대를 기리는 뜻깊은 기념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식민지 영토 복무자 기념비 (상단)와 왕립 공군 해안사령부 기념비(하단)가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바다와 영공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영국 왕립 공군 해안사령부(RAF Coastal Command) 소속 장병들과 연합군을 추모하는 기념비이다. 거친 바다 위를 날아오르는 새(갈매기 혹은 알바트로스)의 모습이 정교하게 음각되어 있다.

<식민지 복무자 및 공군 해안사령부 기념비>

이 구역은 인류 역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영국의 위대한 남극 탐험가들을 기리는 특별한 기념비가 모여 있는 곳이다. 위대한 남극 탐험가 어니스트 새클턴 경 (Sir Ernest Shackleton) 기념비 (좌측 하단), 남극 탐험가 공동 기념비 (중앙 하단)가 있다. 그 위쪽 벽면에는 18세기에 만들어진 화려한 바로크 및 로코코 양식의 대리석 기념비 세 개가 나란히 걸려 있다.

<남극 탐험가들을 기리는 특별한 기념비>

이 구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에서 희생된 영국의 남녀 군인 및 보조 부대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매우 뜻깊은 공간이다. 벽면 중앙에 현대적인 서체로 글씨를 정교하게 파내어 새긴 독특한 형태의 추모비가 눈에 띈다. 추모 명문 위쪽에는 18세기에 제작된 항아리(Urn) 조각과 문장이 특징인 고전 양식의 대리석 기념비가 설치되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전몰장병 추모비 (중앙 벽면)>

이 구역은 핼리 혜성의 발견자로 우리에게 매우 잘 알려진 영국의 위대한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에드먼드 핼리 경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벽면 중앙에는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혜성의 꼬리를 형상화한 독특하고 현대적인 청동·석조 기념비가 설치되어 있다. 핼리 경 기념비 위쪽에는 페디먼트(삼각 지붕 모양) 구조와 항아리 장식이 돋보이는 18세기의 고전적인 대리석 기념비가 있다.

<에드먼드 핼리 경을 기리는 기념비>

이 구역은 국가를 위해 복무하다 폭력과 테러 등으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현대적인 기념비와 오랜 역사를 지닌 고전 명판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간이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짙은 색의 사각형 금속 명판은 폭력과 분쟁 희생자 추모비이다. 벽면 맨 아래 석조 벤치 밑을 보시면 완만한 아치형으로 푹 파인 공간이 있다. 초기 수도원장(Abbot)들의 벽면 무덤 흔적이거나 수도원의 고대 건축 구조가 그대로 보존된 것이다.

<폭력과 분쟁 희생자 추모비 (우측 하단)>

이곳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역사적 건축과 정비에 크게 기여한 장인, 에드워드 터프넬(Edward Tufnell, 1678~1719)을 기리는 대형 바로크 양식의 기념비가 있는 자리이다. 18세기 초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수석 석공 장인이자 건축가였다. 그는 사원의 대대적인 보수 및 증축 공사를 담당하며 평생을 사원의 석조 건물을 돌보는 데 바쳤다.

<에드워드 터프넬을 기리는 대형 바로크 양식의 기념비>

남쪽 회랑(South Cloister)의 동쪽 끝 구역이다. 이곳은 영국의 정치가이자 하원의원이었던 대니얼 풀트니(Daniel Pulteney, 1684~1731)를 기리는 웅장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매우 중요한 길목이다. 작은 회랑(안뜰)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

<대니얼 풀트니 기념비>

동쪽 회랑(East Cloister)

동쪽 회랑은 수도원의 회의실인 챕터하우스(Chapter House), 보물창고였던 픽스 챔버(Pyx Chamber)와 수도사 숙소 및 도서관으로 연결된다. 또한 성주간 목요일에 수도원장이 가난한 이들의 발을 씻겨주는 ‘먼디(Maundy) 의식’이 열리던 장소였다. 중앙의 네모난 잔디밭 정원인 ‘클로이스터 가스(Cloister Garth)’를 사방의 긴 복도가 둘러싸고 있다.

<동쪽 회랑(East Cloister)>

동쪽 회랑의 바닥과 벽면에는 사원을 초기부터 이끌었던 노르만 시대의 수도원장(Abbots)들과 사원 초기 관계자들의 무덤이 집중되어 있다. 동쪽 회랑의 북쪽 끝으로 가면 사원 본당 내부(남측 성가대 통로)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수도사들의 문(Monks’ Door)’이 있다.

<수도사들의 문(Monks’ Door)’>
<본당 남측 성가대 통로(South Choir Aisle)와 동쪽 회랑 출입문(화살표 방향)>
<챕터하우스로 연결되는 통로 출입문>

동쪽 회랑에서 챕터하우스와 픽스 챔버(Pyx Chamber)를 출입하는 문이다. 오른쪽에 열려 있는 격자 모양의 두꺼운 문이 ‘픽스 챔버’ 출입문이고, 왼쪽은 챕터 하우스 및 사원 도서관 방면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통로 중 하나이다.

<챕터하우스와 픽스 챔버(Pyx Chamber)를 출입하는 문>

‘픽스 챔버(Pyx Chamber)’는 11세기 에드워드 참회왕 시절에 만들어진 사원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 중 하나로, 과거 왕실의 보물과 동전의 순도를 시험하는 표준 화폐 보관함(Pyx)을 보관하던 금고실이었다. 화폐의 순도와 무게가 기준에 맞는지 엄격하게 검사하는 국가 의례인 ‘픽스 재판(Trial of the Pyx)’을 이 방에서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픽스 챔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픽스 챔버(Pyx Chamber)>

방 내부를 보면 천장이 둥근 곡선을 그리는 교차 궁륭(Groin Vault) 구조로 되어 있다. 11세기 노르만인들이 영국을 정복했을 당시 들여온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장식이 거의 없고 벽돌과 돌을 거칠게 쌓아 올려 묵직하고 요새 같은 느낌을 줍니다. 방 바닥에는 11세기 픽스 챔버가 처음 지어질 당시 깔렸던 중세 타일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11세기 노르만 영국의 건축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내부 공간>

챕터 하우스(Chapter House)

챕터 하우스(Chapter House)는 1250년경 헨리 3세에 의해 지어졌으며, 당시 승려들이 매일 모여 성경을 읽고 회의를 하던 장소였다. 1257년 국왕 헨리 3세가 이곳에서 대자문회(Great Council)를 소집했는데, 이는 사실상 영국 의회의 시초가 되었다. 14세기에는 평민 의원들이 모이는 하원의 초기 회의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중앙의 기둥 열을 기준으로 통로가 자연스럽게 두 개의 열(Bay)로 나뉘며, 정면에는 계단과 함께 또 다른 아치형 문이 배치되어 있다. 벽면은 오랜 세월 동안 마모되고 변색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깊은 역사성을 풍깁니다. 바닥은 크고 불규칙한 형태의 돌판(Flagstone)들로 덮여 있다.

<동쪽 회랑에서 챕터하우스로 연결되는 통로>
<입구 앞 계단>

이 출입문은 13세기 영국 ‘성기 고딕(High Gothic)’ 양식의 화려함과 종교적 상징성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첨두아치 틀 안에 두 개의 작은 아치문이 대칭으로 들어선 이중 구조를 취하고 있다. 아치 윗부분의 삼각형 공간(팀파눔) 중심에는 왕좌에 앉아 축복을 내리는 예수 그리스도(Majesty of Christ)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챕터하우스 출입문>

챕터하우스는 기둥 하나로 버티는 팔각형(Octagon) 방이다. 퍼벡 대리석(Purbeck Marble)으로 만들어진 이 중앙 기둥에서 아치형 갈빗대(늑재)들이 마치 우산살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 천장을 받치는 구조를 하고 있다. 벽면 대부분이 거대한 고딕 양식의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어,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챕터하우스 내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이곳을 ‘빛나는 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창문 윗부분은 기하학적인 원형과 네잎클로버 모양(Trifoil) 트레이서리(돌 창살 장식)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우산처럼 생긴 천정과 스테인드글라스>

문장학적(Heraldic) 스테인드글라스로, 이곳의 역사적 기원과 설립자, 후원자들의 가문을 표현하고 있다. 창면 전체에 격자 모양으로 배열된 화려한 도안들은 모두 중세 영국 및 유럽의 왕실, 귀족, 후원 가문들의 고유 문장(Coat of Arms)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런던 공습 폭발 충격으로 산산조각난 파편들을 모아서 재배치한 것이라 한다.

<문장학적(Heraldic) 스테인드글라스>

챕터 하우스가 가졌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구체적인 그림(서사화)으로 표현하고 있다. 초기 하원 의회(House of Commons)의 모습, 수도사들의 매일 회의,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 등이 표현되어 있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그린 그림>

챕터 하우스의 완성과 역사에 기여한 추가적인 왕실 가문들과 고위 성직자들의 방패 문장을 표현하고 있다.

< 왕실 가문들과 고위 성직자들의 방패 문장>

챕터 하우스의 역사 중에서도 수도원의 해산과 그 이후 국가 기록 보관소로 사용되었던 시기의 역사적 전환점을 서사적인 그림과 기록으로 표현하고 있다.

<국가 기록 보관소로 사용되었던 시기를 표현한 그림과 기록>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파괴와, 전쟁 직후 이루어진 위대한 복원의 역사를 기록하고 표현하고 있다. 영국왕실의 고유문장과 이 창문을 새로 디자인하고 조립한 예술가 조안 하우슨(Joan Howson)을 비롯해, 전후 복원 사업에 막대한 재정을 지원한 현대의 후원자 및 재단들의 문장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원을 기록한 내용>

팔각형 벽면을 따라 둥글게 석조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승려들이 서열에 따라 앉았던 자리인데, 이 의자 뒷벽에는 14세기 후반에 그려진 ‘요한계시록(Book of Revelation)’ 주제의 희귀한 중세 벽화들이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흐릿해졌지만 최후의 심판과 독특한 중세풍의 괴수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Book of Revelation)’ 연작 벽화이다. 14세기 후반(1375~1404년경) 베네딕토회 수도사였던 존 오브 노샘프턴(John of Northampton)의 기부로 그려진 이 벽화는, 신약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인류의 종말과 구원, 그리고 환상적인 예언들을 정교한 칸 만화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석조벤치와 벽화>

도입부로, ‘사도 요한의 생애와 수난(Scenes from the Life of St John the Divine)’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언자 요한이 묵시록 환상을 보기 전 도미티아누스 로마 황제에게 박해를 받고 밧모 섬으로 유배를 떠나는 성경 외적 전승과 요한계시록 1장의 배경 스토리를 담고 있다.

<사도 요한의 생애와 수난>

두 번째 칸으로, 사도 요한이 본격적으로 환상을 보기 시작하는 요한계시록 1장의 핵심 장면들(The Revelation to St John the Divine)을 표현하고 있다. 사도 요한이 입에서 칼이 나오는 그리스도와 일곱 촛대의 환상을 목격하고, 하늘 문이 열려 천상의 보좌에서 펼쳐지는 장엄한 예배를 계시받는 요한계시록의 본격적인 시작을 담고 있다.

<요한계시록 1장의 핵심 장면들>

이 칸은 요한계시록 5장과 6장 서두에 해당하는 장면으로, ‘봉인된 두루마리와 어린 양(The Sealed Scroll and the Lamb)’, 그리고 ‘첫 번째 인(Seal)이 열리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본격적인 종말의 재앙이 시작되는 매우 극적인 전환점이다.

<봉인된 두루마리와 어린 양>

요한계시록 벽화 시리즈의 네 번째 칸이다. 요한계시록 6장에 등장하는 세상을 심판하는 기사들, 즉 그 유명한 ‘묵시록의 네 말탄 자(The 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가 지상으로 출격하여 재앙을 일으키는 장면들을 본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현재은 왼쪽 일부만 남아 있다.

<묵시록의 네 말탄 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언들과 ‘최후의 심판’의 장면들을 표현하고 있다. 아치 내부에는 중앙에 왕좌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그 주변을 둘러싼 천사 및 성인들의 형상을 확인할 수 있다. 14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영국에 남아있는 중세 벽화 중 규모가 크고 보존 상태가 좋은 유산으로 손꼽힌다.

<‘최후의 심판’ 장면을 그린 벽화>

요한계시록에서 심판 후 구원받아 하느님의 보좌 앞에 모인 흰 옷을 입은 거대한 무리를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재앙, 대천사 미카엘의 전투, 혹은 요한이 환상을 보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다.

<구원받은 무리들의 행렬>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괴수)’이나 ‘붉은 용’, 혹은 묵시록의 재앙을 지상에 쏟아붓는 천사들의 서사를 담고 있고 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등 재앙을 그린 그림>

요한계시록의 초반부와 중반부에 등장하는 환상들을 위아래 칸으로 나누어 묘사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환상들을 그린 그림>

요한계시록의 초반부와 중반부에 등장하는 환상들을 위아래 칸으로 나누어 묘사하고 있다. 상단은 붉은 날개를 활짝 편 천사가 정중앙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아래로 시온산 위의 어린양(THE LAMB ON MOUNT SION), 보좌 앞에 있는 찬양대(THE SINGERS BEFORE THE THRONE), 동정을 지킨 자들과 거짓이 없는 사람들(THE VIRGINS AND MEN WITHOUT GUILE), 경배하라고 외치는 천사(THE ANGEL CALLING TO WORSHIP)를 표현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초반부와 중반부에 등장하는 환상들>

챕터 하우스의 천장은 영국 고딕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천장 전체가 거대한 우산 살이나 펼쳐진 부채처럼 보인다. 거대하고 무거운 돌 천장을 받치고 있는 것은 방 한가운데에 당당하게 서 있는 단 하나의 중앙 기둥이다. 천장 역시 중앙 기둥을 기점으로 정확히 8등분되어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중앙 기둥 하나로 천장의 무게를 분산시키는 건축적 혁신 덕분에, 벽면에 두꺼운 기둥이나 대형 벽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챕터 하우스의 천장>

기하학적이고 화려한 문양의 타일들은 1250년대 헨리 3세 시대에 깔린 오리지널 바닥이다. 보존 상태가 뛰어나고 규모가 큰 중세 상감 타일(Encaustic tiles) 바닥으로 알려져 있다. 타일 위에는 영국의 왕실 문장인 사자 문양, 장미, 방패, 그리고 당시 왕과 왕비의 형상 등 다양한 문양이 섬세하게 구워져 들어가 있다. 기둥을 중심으로 타일이 깔린 구역 자체가 완벽한 팔각형태로 마감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짙은 색 기둥의 밑동이 바로 천장의 그 장엄한 부채꼴 줄눈들을 지탱하는 퍼벡 대리석(Purbeck Marble) 기둥의 시작점이다.

<챕터 하우스의 정중앙 바닥>

리틀 클로이스터(Little Cloisters)

사원의 더 깊은 남동쪽 구역으로 이어지는 ‘리틀 클로이스터(Little Cloister)’ 진입로 입구이다. 리틀 클로이스터(Little Cloister)는 이름 그대로 ‘작은 회랑(안뜰)’이다. 중세 베네딕토회 수도원 시절, 이 구역에는 아픈 수도사들을 치료하는 병원과 요양원, 그리고 노령의 수도사들이 머무는 처소가 있었다.

<동회랑에서 리틀 클로이스터로 연결되는 통로>

바닥에 세워진 중세의 석관 뚜껑(Coffin Lids)들은 이 근처 바닥이나 옛 수도원 묘지 구역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굴된 것들로, 통로를 지나가는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벽면에 나란히 보존해 둔 것이다.

<바닥에 세워진 중세의 석관 뚜껑(Coffin Lids)들>

대회랑에서 리틀 클로이스터(Little Cloisters)로 완전히 진입하기 직전의 마지막 연결 통로이자 중정(Courtyard) 구역이다. 격자 모양의 오픈형 천장 구조로 되어 있어 자연광이 부드럽게 쏟아진다. 정면 돌 아치와 그 너머의 또 다른 아치, 그리고 철문 사이로 리틀 클로이스터 중앙 정원의 분수대 실루엣이 액자 속 그림처럼 아련하게 보인다.

<리틀 클로이스터(Little Cloisters)>

리틀 클로이스터는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가진 독립된 구역이다. 공간의 한가운데에는 푸른 잔디와 정성스럽게 가꾸어진 꽃들로 채워진 사각형의 정원이 자리 잡고 있다. 중세 시대에는 약초나 허브를 심어 아픈 수도사들을 치료하는 ‘약초원(Physic Garden)’ 역할을 했다. 정원의 정중앙에는 작고 우아한 석조 분수대가 위치해 있다.

<회랑에서 보이는 중앙 정원>

정원의 정중앙에는 작고 우아한 석조 분수대가 위치해 있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1865년경) 정원이 새롭게 단장되면서 설치되었다.

<중앙의 사각형 정원과 분수>
<반대쪽에서 본 모습>
<정원 식물>

정원의 네 면은 지붕이 있는 통로인 회랑(Cloister)이 감싸고 있다. 현재의 회랑은 1640년대 영국 내전 당시 파괴되었다가 1660년대에 재건된 것이다. 투박한 중세 고딕 양식의 대회랑과 달리, 조금 더 낮고 단정하며 따뜻한 느낌을 주는 후기 르네상스·바로크풍의 아치가 특징이다.

<회랑(Cloister)>
<회랑(Cloister)>

아치형 회랑 통로와 사원 관계자들의 거주 구역(사택 외벽)이다. 현재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고위 성직자(Canons)나 사원 고위 관계자가 실제로 거주하는 실제 주거지의 주소(7 Little Cloister)를 보려주고 있다.

<사원 관계자들의 거주 구역(사택 외벽)>
<칼리지 가든(College Garden)으로 나가는 출입문>
<컬리지 가든으로 연결되는 통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딸린 아주 유서 깊고 드넓은 정원인 ‘칼리지 가든(College Garden)’이다. 탁 트인 잔디밭과 거대한 고목들이 어우러진 대형 정원이다. 무려 9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영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속적으로 가꾸어진 정원 중 하나로 손꼽힌다. 수도원 공동체가 먹을 과일, 채소, 보리 등을 재배하는 텃밭으로 사용했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한 다양한 약초(Medicinal herbs)를 기르는 생산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칼리지 가든(College Garden)>
<컬리지가든 바깥 담장>

정원 오른편에 있는 명문 사립학교, 웨스트민스터 스쿨(Westminster School)의 기숙사 및 교사 건물(College Dormitory)이다.

<웨스트민스터 스쿨(Westminster School)>

칼리지 가든(College Garden)의 끝자락과 맞닿아 있는 매우 특별한 유적인 ‘수도원 옛 병원 홀의 폐허(Ruins of the Monastic Infirmary Hall)’ 구역이다. 오른편에 보이는 투박하고 거친 돌벽이 바로 12세기에 지어진 병원 대강당의 오리지널 외벽이다. 왼쪽의 단정하고 클래식한 붉은 벽돌 건물은 병원이 폐쇄된 이후(주로 17세기 후반) 사원 성직자들의 주거용 사택으로 새롭게 지어진 것이다.

<‘수도원 옛 병원 홀의 폐허(Ruins of the Monastic Infirmary Hall)’ 구역>

웨스트민스터 사원 북쪽 출입구 앞에 있는 성 마가렛 교회 (St Margaret’s Church)이다. 12세기에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이 사원 내부가 너무 혼잡해지자 일반 평신도들이 따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세운 교구 교회이다.

<성 마가렛 교회 (St Margaret’s Church)>
<뒤에서 본 모습>

<출처>

  1. ‘Westminster Abbey, wikipedia, 2026년
  2.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6.22 확인)
  3. OpenAI, <ChatGPT (GPT-5.3)>의 답변, 2026년 6월 2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