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 있는 대표적인 고딕 양식의 교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이다. 1066년 윌리엄 정복왕 이래로, 현재 국왕인 찰스 3세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거의 모든 국왕들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올렸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결혼식 등 왕실의 주요행사가 개최된 곳이다. 사원 내부에는 영국의 국왕, 정치인, 문학가, 과학자 등 3,000명이 넘는 역사적 인물들이 묻혀 있거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건물은 13세기 헨리 3세에 의해 본격적으로 프랑스풍 고딕 양식으로 재건축되었으며,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천장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특징이다. 사원 바로 동쪽에는 영국의 국회의사당, 북쪽으로는 정부 청사들이 밀집한 화이트홀(Whitehall) 등과 함께 영국과 런던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사원은 전형적인 라틴 십자가형(Latin Cross Plan) 평면을 따르고 있다. 서쪽에 두개의 탑이 있는 전면부 파사드가 있다. 신랑 (Nave)은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주하는 높고 긴 중심 복도이다. 입구에 1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이름 없는 군인을 기리는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다. 중앙에 성가대석 (Choir)과 제단 (High Altar):에 있고 양쪽으로 익랑(Transept)이 있다. 뒷편에는 왕실의 성소인 참회왕 에드워드 예배당, 헨리 7세의 레이디 예배당이 배치되어 있다. 남쪽 바깥쪽에 수도원 해당하는 회랑 (Cloisters), 장체방 (Chapter House)이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영적·왕권적 권위가 높아지는 구조”를 가진다.

건축적 특징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프랑스 고딕 양식과 영국 전통 건축 기법이 절묘하게 결합된 영국 고딕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13세기 헨리 3세가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고딕 양식에 매료되어 대대적으로 재건축을 시작한 이래, 수세기에 걸쳐 완성되었다. 뾰족아치(Pointed Arch)를 사용하여 구조적 안정성과 높은 천장을 구현했다. 사원 내부 신랑(Nave) 복도의 높이는 약 31m에 달한다. 폭은 좁고 높이는 극단적으로 높은 이 비례감은 프랑스 대성당의 지리적·건축적 특징을 참조한 결과이다. 웅장한 수직 상승감을 통해 신에게 닿으려는 인간의 열망을 표현했다.

서쪽 파사드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공식 메인 출입구이자, 왕실 결혼식의 신부나 대관식을 치르는 국왕이 입장하는 ‘국가적 의례의 얼굴’과 같은 곳이다. 두 개의 탑은 정중앙에 있는 15세기의 거대한 ‘서쪽 창’을 좌우에서 호위하듯 완벽한 대칭 구조로 감싸고 있다. 중세 고딕의 장식미를 18세기의 기하학적 균형감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서쪽 정문 위에 자리 잡은 ’20세기 현대 순교자 10인의 석상’은 1998년이 되어서야 설치되었으며,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등 교파를 초월하여 인종, 국가, 성별에 상관없이 오직 신앙과 정의, 인권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현대의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전 세계에서 선정되다. .

그 위로 영국 국왕의 공식 문장인 영국 왕실 문장(Royal Coat of Arms of the United Kingdom)을 비롯하여 여러 문장들을 볼 수 있다. 문장의 중심에 있는 방패는 영국의 구성국들을 상징하며, 4개의 구역(Quarter)으로 나뉘어 있다. 방패를 받치고 있는 사자와 유니콘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결합을 상징한다. 방패 위에는 기사들이 쓰던 황금 투구와 국왕의 왕관이 놓여 있고, 그 맨 위에는 다시 왕관을 쓴 작은 사자가 서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멀리서 보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두 개의 거대한 탑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 탑들은 사원의 다른 부분과 달리 1745년에 완공되었다. 탑의 꼭대기마다 뾰족하게 솟은 작은 첨탑과 길고 좁은 아치형 창문들은 전형적인 중세 고딕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탑 중간 층에 있는 시계탑 주변의 몰딩(테두리 장식)이나 정교하게 계산된 벽면의 입체감은 바로크 건축의 기법이 스며들어 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북쪽 파사드는 실제 방문객들이 국회의사당이나 빅벤 쪽에서 걸어올 때 가장 먼저 마주하게 모습이자, 관람객들이 내부로 출입하는 문이다. 화려한 고딕 양식의 포치(Porch)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뾰족아치, 섬세한 조각 장식, 성인상(聖人像) 등이 배치되어 있다.거대한 3개의 아치형 문이 나란히 배치된 구조로 과거에는 ‘솔로몬의 문(Solomon’s Porch)’이라 부르기도 했다.


북쪽 파사드 상단 중심에는 지름이 10m가 넘는 거대한 장미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 창(Rose Window)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창은 13세기 헨리 3세 때 처음 만들어졌으나, 현재의 세련된 디자인은 18세기에 재건 및 수정된 것이다. 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사원 내부의 북쪽 익랑을 아름답게 밝혀준다.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 공중부벽) 는 고딕 성당에서 높은 벽과 천장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건물 바깥에 설치한 아치형 지지 구조물이다. 버트레스는 건물 외부에 세운 두꺼운 기둥이다. 벽이 바깥으로 밀려나는 힘을 받아낸다. 플라잉 아치(Flying Arch)는 성당 상부 벽과 부벽을 연결하는 반아치 형태의 구조이다. 천장과 지붕의 하중을 부벽으로 전달한다.

동쪽 끝에는 확장된 영역처럼 보이는 ‘헨리 7세 레이디 예배당(Henry VII Lady Chapel)’ 자리잡고 있다.영국 고딕 건축의 마지막 단계인 ‘수직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직선적인 격자무늬 창살과 수직으로 길게 뻗은 선들이 특징인데, 사원의 다른 공간보다 훨씬 더 장식적이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벽면의 거의 전체가 거대하고 높은 유리창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사방에서 햇빛이 들어갈 수 있게 하고 있다.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트궁과 거의 비슷하다. 19세기 웨스트민스터궁을 설계할 때 이 양식을 적용했다고 한다.


제단 뒷부분이 반원형으로 돌아가며 작은 예배당들이 방사형으로 튀어나와 있는 구조 역시 프랑스 고딕 성당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수도원 회의실(Chapter House)은 회랑 동쪽에 연결된 8각 모양의 방으로, 과거 수도승들의 회의 장소이자 초기 영국 의회(하원)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본당 신자석(Nave)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내부 공간은 단순히 예배를 드리는 종교적 장소를 넘어, 천 년에 걸친 영국의 역사, 왕실의 권위, 그리고 인류의 지성이 층층이 쌓여 있는공간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사원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무덤인 무명용사의 무덤(The Grave of the Unknown Warrior)’,리처드 2세 초상화, 멀리 뉴우튼의 무덤을 볼 수 있다.

신자석(Nave, 본당 회중석)은 서쪽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거대하고 웅장한 공간입니다. 공간의 천장 높이는 무려 31m이다, 폭은 약 11m로 다소 좁은 편이다. 좁은 폭에 비해 천장이 극단적으로 높게 설계되어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시선이 강제로 위를 향하게 만든다. 신성함을 극대화하는 프랑스 고딕 양식의 특징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서쪽 정문을 들어서면 볼 수 있는 ‘무명용사의 무덤’은 영국인들이 사원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이자, 국가적인 추모의 심장부이다.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여겨지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이름모를 영국군 유해 1구를 이곳에 안장했다. 사원 내부의 수많은 왕과 위인들의 바닥 묘비는 관람객들이 밟고 지나다닐 수 있지만, 이 무덤만 절대 밟아서는 안되며 붉은 양귀비꽃으로 둘러쳐 있다.

네이브석은 수직성을 강조하는 고딕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방문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하늘로 이끌어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천장에는 돌로 만든 갈비뼈 모양의 리브(rib)가 교차하는 고딕 리브 볼트가 적용되었다. 네이브 천장은 비교적 절제된 장식을 보인다. 대신 리브의 선들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패턴과 공간의 비례미가 돋보인다.

창이 여러 개의 가느다란 세로 구획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각 구획마다 성인이나 성경 인물이 배치되어 있어 높은 천장과 함께 상승감을 줍니다. 햇빛이 통과하면서 내부 공간을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이는데, 이는 고딕 성당 건축가들이 추구한 “신의 빛” 개념을 구현한 것이다.



정문 안쪽에서 들어서면 오른쪽 기둥에 있는 ‘리처드 2세의 대관식 초상화(Portrait of Richard II)’를 볼 수 있다. 약 1395년경에 제작된 작품으로 유럽 전체를 통틀어 현존하는 왕의 ‘실물 크기(Life-size)’ 독립 초상화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리처드 2세가 대관식 제복을 입고, 왕관을 쓴 채 어좌에 앉아 왕권의 상징인 홀(Sceptre)과 보주(Orb)를 들고 있는 정면 모습이다.

초상화 뒷편으로 대관식 의자(The Coronation Chair)를 보관하는 공간이 있다. 원래는 성 조지 예배당(St George’s Chapel)에 보관하고 있다고 하는데 현재는 입구에서 볼 수 있다.

이 의자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소장된 역사의 산증인이자, 영국 왕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징물 중 하나이다. 대관식 의자는 1296년,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1세의 명령으로 제작되었다. 스코틀랜드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빼앗아 온 ‘스콘의 돌(Stone of Scone)’을 보관하고 그 위에서 대관식을 치를 수 있도록 특별히 만든 의자가 바로 이 대관식 의자이다. 현재 스콘의 돌은 스코틀랜드에 반환되어 에든버러 성에 있으며, 대관식때만 잠시 빌려 사용한다고 한다.

대관식 의자를 오른쪽 벽면 옆으로는 ‘남서쪽 탑 아래 예배당’이자 문학가·학자들을 기리는 구역이다. 18세기 영국의 유명한 의사였던 존 프렌드 박사, 천재 극작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콩그리브 등의 기념비를 볼 수 있다. 오른쪽 검은 문은 종탑 윗마루나 상층부 갤러리로 이어지는 사원의 관리용 통로이다. 영국의 찬란한 의학과 문학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들이다.

중앙 아치문 위쪽으로 깃발, 대포,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인물과 침몰하는 군함이 입체적으로 조각된 거대한 기념비는 리처드 켐펜펠트 제독(1718~1782)의 기념비이다. 가운데 문은 오르간 로프트나 사원의 내부 관리 공간, 혹은 상부 갤러리로 이어지는 네이브 남측 벽면의 내부 통로 문이다.

맞은편에는 대영제국 시절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해군 영웅과 정치가들의 기념비’가 마주 보고 있다. 중앙의 하얀 대리석 전신상은 18세기 영국의 해군 영웅인 제임스 몬태규(James Montagu, 1752~1794) 함장의 기념비이다. 앞쪽 검은색 석묘는 19세기말 남아공에서 활약했던 폭스 주교의 기념비이다. 주변 벽면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하얀색 흉상들은 18~19세기 영국 정치를 이끌었던 주요 정치가들과 귀족들(특히 휘그당 계열의 인물들)의 기념비이다.


정교회 전통 화풍으로 그려진 이콘(Icon)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오른손으로는 축복의 손짓을 하고 계시고, 왼손에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율법이 담긴 두루마리를 쥐고 계신다. 이는 온 우주를 통치하는 ‘전능하신 그리스도’를 표현한 전형적인 기독교 미술 양식이다. 이 작품은 1994년 사원에 헌정된 비교적 현대의 작품입니다. 사원을 걷던 관람객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기도를 바치는 영성적인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내부 기둥(Pillars / Columns)은 중심에 두꺼운 원통형 기둥이 있고, 그 주변을 여러 개의 얇은 소기둥들이 다발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었어 다발 기둥(Bundled Shafts)이라 부른다. 기둥의 몸통이나 소기둥에는 영국 도싯(Dorset) 지역에서 나는 ‘퓨벡 대리석’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 석재는 진한 회색이나 녹청색을 띠며, 표면을 매끄럽게 닦으면 광택이 난다.



사원의 중심부인 네이브에서 ‘성가대 칸막이’와 그 너머의 제단 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위쪽을 보면 아치형의 늑재 볼트(Ribbed Vault) 천장이 길게 이어져 있다. 사진 정면에 보이는 황금빛의 화려한 구조물은 성가대 칸막이이다. 이 통로는 영국의 왕과 여왕이 대관식을 치르기 위해 입장할 때 걷는 신성한 길이다.

성가대 칸막이 바로 좌우와 그 앞쪽 바닥은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묻히거나 기념비가 세워진 곳이다. 뉴턴, 찰스 다윈, 스티븐호킹의 무덤과 기념비들을 볼 수 있다. 왼쪽 아치에서는 아이작뉴턴의 무덤과 기념비가, 오른쪽 아치에는 18세기 영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제임스 스탠호프백작의 기념비이다. 앞쪽에 네이브 제단과 황금십자가, 대형촛대 등이 자리잡고 있다.

네이브(Nave) 바닥에는 이곳에 묻힌 위인들의 묘비와 기념석들을 볼 수 있다.

성가대석(Choir)
성가대석은 사원의 중앙 교차점(Crossing)이자 대관식이 거행되는 ‘대관식 극장(Coronation Theatre)’ 바로 서쪽에 위치해 있다. 왕과 왕비의 대관식 행렬이 이 성가대석 사이의 중앙 통로를 지나 주 제단(High Altar)과 코스마티 보도(Cosmati Pavement)가 있는 중심 무대로 나아가게 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내부의 성가대원들의 출입문과 명단판이 있는 공간이다. 문 좌우에 걸린 커다란 황금빛 보드에는 역사적인 인물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가운데 문은 예배를 준비하는 사제나 오르간 연주자, 혹은 노래를 부르는 성가대원들이 대기하고 공간을 출입하는 통로이다.

목조 성가대석 아래를 받치고 있는 흑백 격자무늬 대리석 바닥은 1677년에 설치된 원형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짙은 색의 목재 좌석과 아름다운 시각적 대조를 이룬다.



성가대석의 화려하고 정교한 목조 좌석들은 1848년에 완성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중세 고딕 양식을 재해석한 ‘네오 고딕’ 스타일의 디테일이 돋보인다. 이곳은 성가대원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고, 성가대석의 각 자리에는 고유의 역할과 인물이 지정되어 있다. 국가적인 예배나 행사가 열릴 때는 영연방 국가들의 고등판무관이나 국가 고위 관료들이 지정된 성가대석에 앉게 된다.


성가대석의 북쪽 바깥통로 공간은 보통 ‘북측 성가대 통로(North Choir Aisle)’라고 부른다. 이 북쪽 통로는 영국의 전설적인 음악가와 작곡가들이 대거 묻히거나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별칭으로 ‘음악가의 통로’라고 불린다. 영국 바로크 음악의 거장 헨리 퍼셀 (Henry Purcell)의 무덤과 기념비가 바닥에 있다.

주 제단(High Altar)
대관식 극장(Coronation Theatre)은 사원 내부에서 영국의 국왕이 왕관을 쓰는 대관식 의식이 거행되는 ‘핵심 중심 공간’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성가대석(Choir)과 주 제단(High Altar), 그리고 양옆의 남북 트랜셉트(Transept)가 만나는 중앙교차점을 대관식 극장이라 부른다. 대관식이 열릴 때는 이 공간을 주변 바닥보다 높게 돋우고 화려한 천과 카펫을 깔아, 사원에 모인 귀족과 하객들이 국왕이 왕관을 쓰고 즉위하는 전 과정을 명확하게 지켜볼 수 있도록 한다. 대관식 극장의 바닥은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완벽한 예술품인 ‘코스마티 보도’로 이루어져 있다.



주 제단(High Altar)은 사원 전체에서 종교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장 중심이 되는 신성한 공간이다. 1066년 윌리엄 정복왕 이래로 수세기 동안 영국의 모든 국왕이 왕관을 쓴 대관식의 실제 무대이자 왕실 결혼과 국장이 진행된 곳이다. 주 제단의 나무 테이블과 그 뒤의 화려한 스크린은 19세기 영국 건축가 조지 길버트 스콧이 설계한 것이다. 유리로 정교하게 제작한 《최후의 만찬》 모자이크가 중앙에 있고 양 옆으로 모세, 성 베드로, 성 바오로, 다윗 왕의 대형 대리석 조각상이 호위하듯 서 있다.


주 제단 앞바닥은 ‘코스마티 모자이크 (Cosmati Pavement)’라 하며, 이곳에가 가장 가치있는 예술품 중 하나이다. 1268년 헨리 3세의 명으로 이탈리아 장인 ‘코스마티’ 가문이 파견되어 만든 기하학적 대리석 모자이크 바닥이다. 대관식의 가장 성스러운 순간인 ‘성유를 바르는 의식’이 바로 이 모자이크 바닥 위에서 행해진다.

주 제단(High Altar)의 북측은 ‘중세 귀족들의 고딕 양식 석묘’ 구역이다. 이 무덤는 국왕 헨리 3세의 차남이자 에드워드 1세의 친동생인 ‘에드먼드 크라우치백’의 무덤이다. 랭커스터 가문의 시조가 되는 인물로, 훗날 영국의 왕위 계승 전쟁인 ‘장미 전쟁’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는 명문가의 뿌리이다.


참회왕 에드워드 성소(Shrine of St Edward the Confessor)
‘참회왕 에드워드 성소(Shrine of St Edward the Confessor)’는 사원 전체에서 가장 신성하고 역사적인 깊이가 깊은 핵심 중의 핵심 공간이다. 주 제단(High Altar) 바로 뒷편에 독립된 예배당(St Edward’s Chapel)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에드워드 (Edward the Confessor)는 1066년 사망한 앵글로-색슨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처음으로 대규모 건축한 인물이다. 그는 검소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 사후 성인으로 추대되었으며 참회왕(Confessor)으로 불린다. 현재 성소는 1269년 헨리 3세 국왕이 에드워드 왕을 극진히 숭배하여 사원을 화려한 고딕 양식으로 재건축하면서 만든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보호 구역으로 옆쪽 통로(Ambulatory)를 통해서만 들여다볼 수 있으며, 일반적인 내부 입장은 엄격히 통제된다.

중세 영국의 군주들은 성인인 에드워드 왕의 영험한 기운을 받아 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고자 했다. 그래서 이 성소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자신들의 무덤을 배치했습니다. 스코틀랜드와 전쟁을 벌였던 스코트인의 망치 에드워드 1세, 사원을 고딕 양식으로 재건한 헨리 3세, 백년전쟁을 이끈 헨리 5세와 에드워드 3세, 리처드 2세의 무덤이 성소를 호위하듯 둘러져 있다.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오른편으로 중세 시대 왕들의 거대한 석묘가 병풍처럼 이어진다.

영화 《브레이브하트》로도 잘 알려진 에드워드 1세(재위 1272~1307)의 무덤이 북측 측랑에서 1번째로 볼 수 있다. 나무 계단 뒤쪽으로 보이는 길고 어두운 빛깔의 거대한 회색 대리석 상자가 바로 에드워드 1세의 무덤이다.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을 치열하게 이끌어 ‘스코틀랜드인의 망치(Hammer of the Scots)’라는 별명을 얻은 인물이다. 통로에서 뒷면을 볼 수 있다.

헨리 3세의 무덤은, 아들의 투박한 회색 돌상자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중세 고딕 예술과 이탈리아 장인 정신의 정수가 담긴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덤 본체인 석묘는 붉은색과 녹색의 대리석 위에 금빛 모자이크 기하학 무늬가 정교하게 박혀 있다. 석묘 위에 누워 있는 헨리 3세의 상은 영국 왕실 무덤 역사상 최초로 제작된 청동 도금 조각상 중 하나이다.
이곳은 본래 영국의 왕들이 즉위할 때 앉는 ‘대관식 의자’가 오랜 세월 동안 보관되고 놓여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현재은 정문 안쪽에 별도에 공간에서 전시하고 있다.

헨리 5세(Henry V, 재위 1413~1422)의 무덤은 ‘에드워드 참회왕 성소’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유언에 따라무덤 위쪽을 덮는 형태로 복층 구조의 ‘헨리 5세 예배당’이 만들어졌다. 무덤 위에는 누워 있는 헨리 5세의 나무 조각상(Effigy)이 있다. 원래 나무 본체 위에 순은으로 만든 판을 덧씌웠고, 화려하게 장식되었는데 도둑들이 은을 뜯어갔다고 한다.

에드워드 3세의 무덤은 남쪽 복도와 성소 경계선 사이에 있다. 무덤 위에는 에드워드 3세가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왕권을 상징하는 홀을 든 모습의 청동상이 누워있다. 무덤 위쪽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후기 고딕 양식의 나무 차양이 지붕처럼 덮여 있다.

리처드 2세와 보헤미아의 앤 왕비가 함께 잠들어 있는 부부의 무덤이다. 리처드 2세가 첫 번째 왕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녀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도금 청동상(Effigy)은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 오른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형태로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자리에 최초로 베드로 성당(성당의 전신인 수도원)을 세운 7세기초 동색슨 왕국 세버트왕의 무덤이라고 한다. 석조 구조물 위에 있는 뾰족한 고딕 프레임 안에 그려진 인물화 패널들이 보인다. 에드워드 참회왕, 헨리 3세 등 역사적 국왕들과 성인들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후진(Apse)
주회랑(Ambulatory)은 참회왕 성소를 중심으로 반원형의 복도가 둥글게 감싸고 돌도록 설계되었다. 당대 순례자들이 제단을 방해하지 않고 신당 주변을 돌며 참배할 수 있도록 동선을 분리했다. 방사형 예배당은 주회랑 바깥쪽으로는 반원형을 따라 여러 개의 작은 예배당(성 니콜라스, 성 폴, 성 요한 세례당 등)이 부채꼴 모양으로 배치되어,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북측 주랑 (North Ambulatory) 입구에 있는 성 이슬립 예배당 (Abbot Islip’s Chapel)이다. 16세기 초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대수도원장이었던 존 이슬립(John Islip)이 자신과 가문을 위해 조성한 2층 구조의 작은 고딕 양식 예배당이다. 정면에 보이는 거대한 조각상은 7년 전쟁 당시 퀘벡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영국의 군사 영웅, 제임스 울프 소장(1727~1759)의 기념비이다.

안쪽에 볼 수 있는 무덤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기사 중 한 명인 프란시스 비어 경의 기념비이다. 엘리자베스 1세 시기 네덜란드 독립 전쟁 등에서 활약한 명장 프란시스 비어 경이 수의를 입고 평온하게 누워 있다.

‘세례 요한 예배당’ 옆에 있는 ‘아워 레이디 오브 퓨 예배당 (Our Lady of Pew)’이다. 이 예배당은 원래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바치던 지극히 개인적이고 신성한 공간이었다. 화려한 붉은색과 금색의 직물 장식이 성모를 향한 공경과 중세풍의 아늑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례 요한 예배당은 북쪽 주회랑(North Ambulatory)에 위치한 방사형 예배당이다. 이 예배당은 중세 시대에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장(Abbots of Westminster)들의 무덤이 집중되어 있는 공간이다. 왕들의 무덤만큼 거대하진 않지만, 사원의 종교적 기틀을 다진 지도자들의 무덤인 만큼 정교한 고딕 석조 장식의 디테일이 뛰어나다. 수도원장들 외에도 튜더 및 스튜어트 왕조 시기의 강력한 귀족과 정치가들의 무덤들이 모여 있다.

과거 영국의 고위 귀족들과 정치가들이 묻힌 방으로, 내부가 화려한 대리석 기념비와 조각상들로 가득 차 있다. 예배당 중앙에는 1대 엑서터 백작 토마스 세실과 그의 첫 번째 아내의 대리석 누상 조각(Effigy)이 놓여 있습니다

‘성 바울 예배당(St Paul’s Chapel)’이다. 15세기 튜더 왕조 시절부터 17세기 스튜어트 왕조에 이르기까지 왕실의 총애를 받았던 최고위 귀족들과 군 사령관, 법관들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철창으로 둘러싸인 곳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정치가였던 자일스 도브니 경(1451~1508)과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의 무덤이다. 무덤 바로 뒤쪽 왼쪽 벽면에 보이는 대리석 흉상은 산업혁명을 이끈 영국의 위대한 엔지니어 제임스 와트(James Watt)의 기념비이다.

성 니콜라스 예배당(Chapel of St. Nicholas)은 남쪽 회랑 동쪽 끝에 위치한 유서 깊은 소예배당이다. 어린이, 항해사, 전당포업자 등의 수호성인인 성 니콜라스에게 헌정된 예배당이다. 주로 세이모어(Seymour), 세실(Cecil), 버클리(Berkeley) 등 영국 역사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린 명문 귀족 가문의 인물들이 안장되어 있다.

성 에드먼드 예배당(Chapel of St. Edmund)은 니콜라스 예배당 옆에 있는 6각형 모양의 예배당이다. 9세기 덴마크인들에게 순교당한 동앵글리아의 왕이자 영국의 주요 성인인 ‘순교왕 에드먼드(St. Edmund the Martyr)’에게 헌정된 공간이다.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성 에드워드 예배당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주로 왕실의 어린 자녀들이나 왕과 가까웠던 최고위급 귀족들이 이곳에 묻혔다.


헨리 7세 예배당(Henry VII Chapel)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동쪽 끝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거대하고 화려한 소예배당으로 정식 명칭은 ‘헨리 7세 레이디 예배당(Henry VII Lady Chapel)’이다. 튜더 왕조를 개창한 헨리 7세의 유언과 막대한 재정 지원에 따라 1503년에 착공하여, 1516년 헨리 8세 치세에 완공되었다. 이곳은 약 15명의 영국 왕과 왕비를 포함해 왕실 인물들이 집중적으로 안장된 핵심 묘역이다. 헨리 7세와 엘리자베스 오브 요크,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1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 등 무덤을 볼 수 있다.


1725년부터 이 예배당은 영국 최고 권위의 훈장 중 하나인 ‘바스 기사단(Order of the Bath)’의 공식 교회로 지정되었다. 예배당 벽면을 따라 기사단원들이 앉는 마호가니 마구간(Stalls) 자리가 배치되어 있으며, 그 위로는 기사단원들의 가문 깃발(Banners)들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수직 고딕 양식의 팬 볼트(Fan-vaulted) 천장이다. 돌을 마치 정교한 레이스나 부채처럼 깎아 맞춘 형태로, 천장 곳곳에 마치 공중에 매달려 있는 듯한 형상의 종유석 모양 드롭 장치가 늘어져 있다.


정면에 보이는 화려한 캐노피 구조물과 성모자상 그림이 있는 곳이 예배당의 메인 제단이다. 이 제단 바로 아래에는 헨리 8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6세가 묻혀 있다.

헨리 7세와 엘리자베스 오브 요크의 청동 무덤이다. 이탈리아의 유명 조각가 피에트로 토리지아노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제작한 화려한 도금 청동 조각상이 무덤 위를 장식하고 있다.

중앙 제단과 헨리 7세 부부의 무덤 뒤편으로 돌아가면, 동쪽 벽면을 따라 5개의 작은 예배당이 나란히 붙어 있다. 그 중 북쪽 소예배당에 위치한 제1대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George Villiers, 1st Duke of Buckingham, 1592~1628)와 그의 부인의 무덤이다.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한 ‘영국 공군 기념 예배당(Royal Air Force Chapel / RAF Chapel)’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 상공에서 벌어진 ‘영국 공중전(Battle of Britain)’에서 전사한 비행사들을 기리기 위해 1947년에 제작되었다.

헨리 7세 예배당의 북측 측랑(North Aisle) 가장 안쪽 끝에 위치한 소예배당 공간이다. 런던탑에서 삼촌 리처드 3세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어린 소년 왕 에드워드 5세와 그의 동생 요크 공작 리처드의 유골함이 안치된 화려한 흰 대리석 기념비가 이 북쪽 복도 끝에 자리하고 있다.

남측 측랑(South Aisle) 동쪽 끝과 바로 연결되는 ‘성 가브리엘 예배당(Chapel of St. Gabriel)’이다.

북측 측랑 (North Aisle)에는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1세의 소예배당과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무덤 위에는 엘리자베스 1세의 정교한 대리석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헨리 7세 예배당의 남측 측랑(South Aisle) 복도이다. 튜더 및 스튜어트 왕조 역사에서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의 거대한 무덤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ㄷ. 맨 앞의 무덤은 마거릿 더글러스 여백작의 무덤이다. 그 뒤로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Mary, Queen of Scots)의 무덤이 있다.

북측랑(N Transept)
북측랑(North Transept)은 교회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십자형 구조의 북쪽 날개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사원의 주요 출입구가 이곳에 있으며, 방문객이 처음 들어서는 장소이기도 하다. 13세기에 재건한 고딕 양식의 일부로, 높은 첨두 아치와 리브 볼트 천장,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갖추고 있다. 북문(North Entrance)은 오랫동안 일반 방문객들의 주출입구 역할을 해왔으며, 외부에는 그리스도와 사도들, 다양한 직업군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18세기 이후 영국의 총리와 정치가들의 묘비와 기념상이 집중적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정치인의 거리(Statesmen’s Aisle)” 라고 불린다.


북측랑 내부로 들어서면 18~19세기 대영제국 시절의 정치를 이끌었던 인물들의 기념비와 거대한 대리석 석상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 곳에 있는 두 명의 거물급 총리 석상이다. 오른쪽은 근대적인 경찰제도를 확립한 로버트 필 경 (Sir Robert Peel, 1788~1850)이다. 왼쪽은 4차례나 총리를 역임하면서 빅토리아 시대를 이끌었던 정치가인 윌리엄 글래드스턴 (William Ewart Gladstone, 1809~1898)이다.

남측랑(South Transept)
남측랑(South Transept)은 전 세계 문학도들과 예술 애호가들의 성지인 ‘시인의 코너(Poets’ Corner)’로 아주 유명하다. 이 공간에는 영국의 문학, 연극, 음악 등 문화 예술계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100명이 넘는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안장되어 있거나 기념비로 기려지고 있다. 이곳에 처음으로 묻힌 문인은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1400년 안장)이다. 이후 찰스 디킨스, 토머스 하디 등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가들이 이곳에 묻히거나 기념비가 모셔졌다.




시인의 코너(Poets’ Corner)’의 남쪽 벽면입니다. 후기 바로크 양식의 정교한 무덤과 역사적인 인물의 흔적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영국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매튜 프라이어(오른쪽), 극작가 존 게이(왼쪽)의 석상을 볼 수 있다. 그사이에 헨리 8세의 네 번째 왕비였던 클레브스의 앤의 무덤이 있다.

‘시인의 코너(Poets’ Corner)’의 서쪽 및 남쪽 벽면 공간이다. 《실낙원(Paradise Lost)》의 저자인 존 밀턴, 시인 토마스 그레이(Thomas Gray, 1716~1771)의 기념비, 스코틀랜드의 시인 토마스 캠벨(Thomas Campbell) 등의 흉상 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을 통해 ‘엘리자베스 갤러리(The Queen’s Diamond Jubilee Galleries)’로 들어갈 수 있다. 2018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하여 사원의 높은 천장 쪽 공간을 개조해 문을 열었다.

성 페이스 예배당(St Faith’s Chapel)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남측랑(South Transept, 시인의 코너) 바로 남쪽 벽 너머에 붙어 있는 유서 깊은 중세 소예배당이다. 중세 베네딕토회 수도원 시절, 사원의 가장 소중한 보물, 제기, 성가의(신부님이 미사 때 입는 옷) 등을 보관하고 사제가 미사 전에 의복을 갈아입던 성물 안치소(Sacristy 및 Vestry)였다.

대회랑(Cloisters)
‘남측 성가대 통로(South Choir Aisle)’는 주로 ‘국가적 영웅, 군인, 그리고 근현대 미디어·문화 예술인들’의 기념비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간이다. 17~18세기 영국의 전설적인 해군 제독 클라우디슬리 쇼벨 경 (Sir Clowdisley Shovell)의 기념비 등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수도원 대회랑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수도원 구역(Cloisters)은 대성당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과거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이 먹고, 자고, 일하던 생활 공간이 회랑(Cloister)을 중심으로 사각형 구조로 배치되어 있다. 동쪽회랑과는 챕터 하우스 (Chapter House), 파익스 체임버가 연결되어 있고 남회랑은 식당과, 서호ㅣ랑은 수련수도사 교육공간과 연결된다.

동회랑(East Cloister)은 13세기 헨리 3세 왕이 대성당을 재건축할 당시(1240년대) 가장 먼저 착공된 회랑으로, 수도사들의 행정, 신앙, 사후 안식과 관련된 핵심 시설들이 이 동회랑을 축으로 연결되어 있다. 챕터 하우스 입구 (Chapter House Entrance), 픽스 챔버 (Pyx Chamber), 수도원 박물관과 연결된다. 수도사들은 매일 아침 대성당에서 기도를 마친 뒤, 이 동회랑을 거쳐 챕터 하우스(회의실)로 엄숙하게 행진해 들어갔다.

정면에 보이는 출입문은 본당 남측 성가대통로로 연결되는 ‘수도사들의 문(Monks’ Door)’이다. 동회랑의 바닥과 벽면은 과거 사원을 거쳐 간 수많은 수도원장(Abbots)들과 초기 사원 관계자들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동회랑에서 ‘챕터 하우스(Chapter House, 수도원 회의실)’로 들어가는 진입 전실(Vestibule)이다. 낮게 설계된 정교한 13세기 고딕 양식의 교차 리브 둥근 천장과 대리석 기둥들이 숲처럼 늘어서 아늑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챕터 하우스(Chapter House)는 중세 수도원이나 대성당에서 수도사들이 공동체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종교적 의식을 치르던 행정 및 영적 중심 공간을 말한다. 1257년 국왕 헨리 3세가 이곳에서 대자문회(Great Council)를 소집했는데, 이는 사실상 영국 의회의 시초가 되었다. 14세기에는 평민 의원들이 모이는 하원의 초기 회의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챕터 하우스 벽화는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초반에 그려진 중세 예술 유산이다. 주로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의 예언과 ‘최후의 심판’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동회랑(East Cloister) 남쪽 끝자락에 있는 ‘픽스 챔버(Pyx Chamber)’ 입구이다. 픽스 챔버는 11세기 에드워드 참회왕 시절에 만들어진 사원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 중 하나로, 과거 왕실의 보물과 동전의 순도를 시험하는 표준 화폐 보관함(Pyx)을 보관하던 금고실이었다.


사원의 더 깊은 남동쪽 구역으로 이어지는 ‘리틀 클로이스터(Little Cloister)’ 진입로 입구이다. 리틀 클로이스터(Little Cloister)는 이름 그대로 ‘작은 회랑(안뜰)’이다. 중세 베네딕토회 수도원 시절, 이 구역에는 아픈 수도사들을 치료하는 병원과 요양원, 그리고 노령의 수도사들이 머무는 처소가 있었다.

아름다운 아치형 복도가 사방으로 작은 사각형 정원을 둘러싸고 있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분수대가 자리 잡고 있어, 잔잔한 물소리가 공간의 평온함을 더해준다. 사원에서 가장 평온한 공간이다.




남회랑(South Cloister)은 메인 사각형 회랑의 남쪽 복도로, 중세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의 ‘일상적인 식생활과 가사 공동체 생활’을 연결하던 핵심 축이었다. 남회랑의 남쪽 벽면 너머에는 과거 수도사들이 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하던 거대한 대식당이 있었다.

서회랑(West Cloister)은 중세 수도원 시절 수도원의 행정 책임자인 ‘수도원장(Abbot)’의 개인적 영역이자 어린 초심자(Novices)들을 교육하던 배움의 공간이다. 수도원장은 이 서회랑을 통해 자신의 처소에서 대성당 내부나 회랑의 다른 구역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수도원의 북쪽 회랑은 한때 수도사들이 개인 서재로 사용했던 곳이다.

네이브 남측 통로(South Nave Aisle) 벽면이며, 중앙의 문은 서회랑(West Cloister)을 출입하는 문이다. 문 위에 배치된 매우 역동적이고 거대한 기념비는 영국의 군사령관이었던 조지 웨이드 원수(George Wade, 1673~1748)의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북쪽 출입구 앞에 있는 성 마가렛 교회 (St Margaret’s Church)이다. 12세기에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이 사원 내부가 너무 혼잡해지자 일반 평신도들이 따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세운 교구 교회이다.

<출처>
- ‘Westminster Abbey, wikipedia, 2026년
-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6.20 확인)
- OpenAI, <ChatGPT (GPT-5.3)>의 답변, 2026년 6월 20일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