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 지방 아를(Arles)에 있는 <아를 원형경기장(Arènes d’Arles)>이다. 구도심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이 원형경기장는 검투경기나 맹수와 사람과의 싸움들을 제공하는 장소였다. 서기 90년경, 로마 제국의 도시에 훌륭한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로마 콜로세움을 본따 건축되었다.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장축이 136m에 이르는 타원형태의 경기장이다. 중세시대에는 요새나 주거지역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1883년경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복원하면서 많은 곳을 수리한 것으로 보이며, 로마의 콜로세움과는 달리 경기장 전체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구도심 주택가에서 약간 높은 언덕에 세워져 있다. 아를역에서 약 1km 정도(약 10~15분) 떨어져 있으며 구도심의 있는 여러 명소들과 함께 도보로 찾아갈 수 있다.

장축 136m, 단축 107m, 높이 21m 크기의 타원형 구조물이다. 건물 외곽은 1층 도리아식, 2층 코린트식 기둥으로 지지되는 60개의 아치형 아케이드으로 정교하게 감싸여 있다. 로마 콜로세움을 모방하여 건립되었으나, 규모를 약간 줄이고 외부 복도를 단일 회랑 구조로 단순화하였다.



1층과 2층 각 60개씩, 총 120개의 아치형 아케이드가 외벽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1층은 장식이 배제되어 견고하고 투박한 도리아 양식(Doric) 기둥을 하고 있다.




2층은 아칸서스 잎 장식이 섬세하게 조각된 코린트 양식(Corinthian) 기둥이다.




내부는 볼미토리움(Vomitorium)이라 하여 환상형(원형) 통로와 방사형 계단이 층층이 망처럼 연결되어 있다. 약 2만 명의 관중이 신분별 계단식 좌석(카베아)으로 혼잡 없이 빠르게 입장하거나 퇴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늘날 축구경기장과 거의 비슷하다.

외부의 60개 아케이드를 통해 들어온 관객들이 좌석 구역(귀족/평민 등)에 따라 통로를 통해 내부 계단으로 신속하게 갈라져 들어갈 수 있다. 중세 시절에는 외부 침략을 막기 위해 1층 회랑의 오픈된 아치 구멍들을 돌과 벽돌로 메워 요새의 외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아를 원형경기장 2층의 내부 회랑이다. 1층 내부 복도보다 빛이 훨씬 더 잘 들어오며, 외벽 쪽 아치를 통해 외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곡선형 복도이다.





내부 관객석(Cavea)은 로마 제국의 철저한 신분제와 고도의 건축 공학이 반영된 공간이다. 경기장 중앙의 무대(Arena)를 사방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360도 타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뒤쪽 좌석으로 갈수록 높이가 급격히 높아지는 계단식 경사를 적용해, 어느 자리에 앉아도 앞사람에게 시야가 가리지 않고 무대가 잘 보이도록 설계되었다.


하단석 (Podium & Ima Cavea)은 원로원 의원, 귀족, 고위 관료 등 최상류층 전용 공간으로, 석조 의자가 더 넓고 쾌적하게 조성되었다. 중단석 (Media Cavea)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평민 남성들이 주로 이용했다.

좌석은 대형 석회암 블록을 깎아 만든 단단한 석조 구조였다. 중세 요새화 시절 관람석 석재 다수가 건물 재료로 헐려 나갔다. 19세기 이후 철저한 복원 작업을 거쳐 현재는 스페인/프랑스식 투우 경기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현대식 좌석 및 안전 장치가 함께 정비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좌석을 볼 수 있다.


상단석 (Summa Cavea)은 가장 높고 먼 입석 및 계단형 좌석 구역이다. 여성, 노예, 가난한 민중,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나 최하위 계층이 이용했다.


서기 5세기 로마 제국 멸망 후에는 외세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원형경기장 전체가 요새화되었다. 이때 경기장 내부에 200여 가구의 집과 교회, 중앙 광장이 들어섰고, 외벽에는 감시용 탑이 세워졌다. 지금도 경기장 상부에 남아있는 돌탑들은 이 중세 요새 시절의 흔적이다.


<출처>
- ‘Arles Amphitheatre’, wikipedia, 2026년
-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7.22 확인)
- OpenAI, <ChatGPT (GPT-5.3)>의 답변, 2026년 7월 22일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