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 지방에 있는 도시 아를(Arles)이다. 론 강(Rhône) 하류에 자리한 로마시대 유적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도시이다.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정착했으며, 기원전 46년 로마 식민도시로 재건되어 갈리아 지방의 중요한 행정·상업 중심지로 발전했다. 원형경기장과 극장, 공중목욕탕, 포럼 등 대규모 도시 시설이 건설되었다. 고대 로마 시절에는 지중해와 내륙을 잇는 거대한 항구 도시 역할을 했다. 중세 이후에는 항구도시의 기능을 상실하면 쇠퇴하였다. 현재는 인구 5만의 작은 소도시가 되었다. 19세기 파블로 피카소 , 폴 고갱 , 자크 레아튀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이 지역에서 거주하며 활동했으며, 1888년부터 약 15개월 동안 아를에 머문 반 고흐는 이곳에서 〈해바라기〉, 〈밤의 카페〉, 〈아를의 침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등 300점이 넘는 작품을 제작했다.

아를은 파리, 마르세유, 님(Nîmes), 아비뇽(Avignon) 등 주변 주요 도시에서 철도망이 잘 연결되어 있어 대중교통으로 방문하기 매우 편리하다. 파리 리옹역에서 약 4시간 정도 소용된다. 아비뇽에서 20분 정도, 마르세유나 몽펠리에에서 TER열차로50분 정도 소요된다. 원형경기장이 있는 도심은 아를역에서 10~20정도 걸어면 도착할 수있다.

기차역에서 도심으로 가는 길은 론강을 따라서 이어진다. 길에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장하는 장면을 마주할 수 있다. 아를을 관통하는 론강(Le Rhône)은 아를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공간이다. 고흐는 1888년 9월, 아를 구시가지 강변에서 강물에 일렁이는 가스등 불빛과 밤하늘의 북두칠성을 화폭에 담았다.


아를은 론강이 지중해로 흘러들어가기 전 두 줄기(그랑 론, 쁘띠 론)로 갈라지는 삼각주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강과 바다를 있는 환적 항구로 크게 번성했다. 중세 이후에는 론(Rhône)강에 떠내려온 막대한 양의 흙과 모래가 퇴적되면서 항구도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구도심(Centre-ville) 입구에 있는 라마르틴 광장(Place Lamartine)은 빈센트 반 고흐가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머물렀던 유명한 ‘노란 집(The Yellow House)’이 있던 자리이다.

아를의 구도심(Centre-ville)은 고대 로마 유적과 중세 골목, 그리고 남프랑스 특유의 프로방스 감성이 집약된 역사적 공간이다. 기차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어면 도심을 둘러쌌었던 성벽과 성문터를 볼 수 있다.

구도심 북쪽 입구에 위치한 ‘카발러리 문(Porte de la Cavalerie)’이다. 중세 시대(13세기)에 처음 건립되어 16세기에 재건된 성문으로, 아늘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과 관문 중 하나이다. 아른역에서 구도심 내부로 들어가는 북쪽 관문 역할을 한다.

성문 망루는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에 람과 물자의 출입을 통제하고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다. 망루 상단과 측면에 방어시설인 총안(Canonnière)을 볼 수 있다.



카발러리 문을 지나 아를 구도심 내부로 들어서면 펼쳐지는 카발러리 거리(Rue de la Cavalerie)이다. 아를 구도심에 중심부와 원형경기장을 돌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길이다. 아를의 좁은 중세 골목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도로 폭이 넓고 현대적인 ~5층 규모의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1944년 폭격으로 주변 지역이 파괴된 후 재건한 곳이다.

카발러리 거리(Rue de la Cavalerie)와 아메데 피쇼 거리(Rue Amédée Pichot)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아메데 피쇼 분수(Fontaine Amédée Pichot)’이다. 아를 출신의 문학가이자 번역가였던 아메데 피쇼(Amédée Pichot, 1795~1877)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이 건립하였다.


볼테르 광장(Place Voltaire)은 아를 구도심 북쪽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이자 소박한 남프랑스의 정취를 간직한 광장이다.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2~3분 거리에 있으며, 아를역에서 구도심으로 진입할 때 통과하는 길목이다.


‘아를 원형경기장(Arènes d’Arles)’은 검투경기나 맹수와 사람과의 싸움들을 제공하는 장소였다. 서기 90년경, 로마 제국의 도시에 훌륭한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로마 콜로세움을 본따 건축되었다.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장축이 136m에 이르는 타원형태의 경기장이다. 중세시대에는 요새나 주거지역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1883년경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층과 2층 각 60개씩, 총 120개의 아치형 아케이드가 외벽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내부는 볼미토리움(Vomitorium)이라 하여 환상형(원형) 통로와 방사형 계단이 층층이 망처럼 연결되어 있다. 약 2만 명의 관중이 신분별 계단식 좌석(카베아)으로 혼잡 없이 빠르게 입장하거나 퇴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늘날 축구경기장과 거의 비슷하다.

내부 관객석(Cavea)은 로마 제국의 철저한 신분제와 고도의 건축 공학이 반영된 공간이다. 경기장 중앙의 무대(Arena)를 사방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360도 타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로마극장과 원형경기장 사이 높은 곳에 위치한 노트르담 드 라 마쥬르 성당 (Église Notre-Dame-de-la-Major)이다. 로마시대에 신전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건물은 주로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시작해 여러 차례 증개축을 거쳤다.

로마원형경기장을 지나 언덕을 넘으면 로마극장과 생트로핌 성당(Église Saint-Trophime) 등을 볼 수 있다.

‘아를 로마 극장(Théâtre antique d’Arles)’은 기원전 12년경,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통치 기간에 완성된 극장이다. 반원형 관람석(Caves) 구조로, 당대 약 10,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화려했던 무대 배경 벽은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두 개의 코린트식 대리석 기둥이 우뚝 남아 있다.

중앙의 현대식 무대 데크 아래를 보면 석조 기초와 함께 움푹 파인 구조가 보이다. 고대 로마 극장은 무대 앞쪽에 무대 커튼(Aulaeum)을 아래로 내려서 저장하는 깊은 홈(Slot) 장치가 있었는데, 그 유적이 잘 남아있는 형태이다.

네모난 석조 탑은 롤랑 탑(Tour de Roland)으로, 아를 로마 극장의 역사적 변화를 보여주는 핵심 구조물이다. , 6~8세기 중세 시대에 주민들이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로마 극장의 외벽 구조 일부를 강화하여 방어용 탑으로 건립했다.

아를 원형경기장 바로 북서쪽 뒤편에서 이어지는 역사 깊은 골목길인 뤼 드 레스칼라두(Rue de l’Escaladeu)이다. 구도심 상부 지대인 오트뇌르(Hauture) 지구와 원형경기장 주위를 잇는 골목으로, 고대 로마 시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아를 시민들이 매일 오르내리던 생활의 터전이었다.




아를 구도심에서도 가장 지대가 높은 언덕 동네로, 아기자기한 남프랑스풍 건물과 석조 외벽이 줄지어 있다.



구도심 남쪽에 위치한 공원인 여름 정원(Jardin d’Été)의 이중 계단(Escalier double rampes) 및 그 주변 산책로이다. 공원 내부 지대의 높낮이를 연결하는 아치형 부채꼴 계단으로, 19세기 중반 고대 극장 방향을 연결하도록 조성되었다. 고흐가 아를에 머물던 시기 이 정원과 입구를 배경으로 <아를의 공원 입구(Entrance to the Public Park in Arles)>, <시인의 정원(The Poet’s Garden)> 등 여러 명작을 그렸다.



여름 정원의 남쪽 출구이자, ‘전몰자 추모비 (Monument aux Morts d’Arles) 광장’이다. 아를 출신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1925년에 세워진 전몰자 추모 기념비이다.

아를의 고대 로마 방어 성벽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된 성문 타워인 ‘무르그 타워(Tour des Mourgues)’이다. 여름 정원(Jardin d’Été) 동쪽 끝부분 길목에 위치해 있다.


구도심 중심인 공화국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 부근에서 남쪽 대로와 연결되는 거리인 ‘뤼 드 레스플라나드(Rue de l’Esplanade)이다.

아를 구도심의 행정·문화적 중심지인 공화국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이다. 광장 중앙에 높게 솟아 있는 오벨리스크는 4세기 전차 경주장(Cirque romain)을 장식하기 위해 세워졌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정면에 보이는 시계탑이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이 17세기에 건립된 아를 시청사이다. 오른쪽에 생 트로핌 성당 (Église Saint-Trophime)이, 왼쪽에 성 아나스타샤 전 성당 (Ancienne église Sainte-Anne)이 있다.



‘에스파스 반 고흐(Espace Van Gogh)>는 16~17세기에 건립된 옛 아를 병원(Hôtel-Dieu d’Arles) 건물로 빈센트 반 고흐가 귀를 자른 사건 이후 치료를 받았던 병원으로 유명하다. 병원은 1573년부터 건립되어 수 세기에 걸쳐 확장되었으며, 20세기 후반 새로운 병원으로 이전되었다. 현재는 반 고흐의 작품 〈아를 병원의 정원(Le Jardin de la Maison de Santé à Arles)〉에 그려진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복원되어 있다.


‘아를의 랑그루아 다리’와 ‘아를의 다리와 빨래하는 여인들’의 되는 아를의 랑그루아 다리(Ponte de Langlois)는 도심 남쪽편 평야지대를 가로지르는 운하에 놓여진 목재로 만든 작은 개폐교이다. 실제로 본 아를의 다리는 고흐의 작품에서 보이는 노란색의 이미지는 없고 다리와 운하를 배경으로 한 푸른 프로방스 지방의 하늘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아를(Arles) 지방에 있던 많은 개폐식 다리들은 거의 없어지고 다리를 높게 쌓아 배가 항상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출처>
- ‘Hospital in Arles’, wikipedia, 2026년
- ‘Arles Amphitheatre’, wikipedia, 2026년
- ‘Théâtre antique d’Arles’, wikipedia, 2026년
-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7.30 확인)
- OpenAI, <ChatGPT (GPT-5.3)>의 답변, 2026년 7월 30일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