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번 전시실은 〈플랑드르에 대한 또 다른 시각(A Different View of Flanders)〉을 주제로 17세기 전반 플랑드르 회화를 소개하고 있다. 당시 플랑드르는 북부 네덜란드와의 전쟁으로 무역이 위축되고 정치·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스페인 총독들의 궁정 문화와 국내외 미술 시장의 높은 수요를 바탕으로 예술이 발전했다. 안트베르펜에 자리한 루벤스의 화실은 여러 플랑드르 화가를 양성하는 중심지 역할을 했다. 플랑드르 초상화의 생동감과 우아함은 북부 네덜란드에도 영향을 미쳐 세련된 초상화에 대한 수요를 높였다. 이 전시실에는 루벤스의 제자와 동료,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화가들이 그린 다양한 종교화와 신화화, 역사화가 전시되어 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양치기와 양 떼가 있는 풍경(A Landscape with a Shepherd and his Flock, 1638)>이다. 오른쪽에 양 떼를 보살피는 양치기를 배치하고, 강과 도로, 구름의 라인 및 햇살을 강렬한 대각선 구도로 연결하여 시선을 자연스럽게 깊은 공간 속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석양이 숲과 개울, 구름을 물들이는 순간을 대담한 붓터치와 따뜻한 색조로 포착했다. 바위 위에 누워 피리를 부는 양치기와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 떼는 목가적인 풍경을 연상시킨다.

석양이 풍경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가운데, 양치기가 피리를 불며 양 떼를 돌보고 있다. 루벤스는 말년을 보낸 전원 저택 헤트 스테인(Het Steen) 주변의 시골 풍경에서 영감을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작품을 비롯한 루벤스의 풍경화는 특정 장소의 모습을 담는 동시에 전원생활의 행복을 찬미한 문학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고대의 작가들은 목가적인 자연 속에서 가축을 돌보며 누리는 평화로운 삶을 묘사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이른 아침의 헷 스텐 성 풍경(A View of Het Steen in the Early Morning, 1636)>이다. 가을 아침 햇살이 성의 창문과 흐르는 개울물을 황금빛으로 반짝이게 하고 있다. 들판의 풀잎에는 이슬이 맺혀 있고, 노을빛이 살짝 감도는 맑고 차가운 공기감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원근법과 빛의 극적인 대비, 자연의 호흡을 대담한 필치로 담아낸 이 작품은 후대 풍경화가들에게 거대한 영감을 주었다.

이상화된 전원 풍경 속 왼쪽에는 루벤스의 전원 저택인 헤트 스테인(Het Steen)이 보인다.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서늘한 아침 햇살이 저택의 들판과 숲을 비춘다. 이 작품은 헤트 스테인에서 제작되어 그곳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의 목재 패널은 21개의 참나무 조각을 복잡하게 이어 붙여 만든 것으로, 제작 과정에서 패널의 크기가 확장되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루벤스의 풍경화
루벤스는 종교화와 신화화, 고전적 주제를 다룬 작품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생애 말년에는 많은 풍경화를 그렸다. 그는 1636년 전원 저택인 헤트 스테인(Het Steen)을 구입한 뒤, 164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름철을 이곳에서 보냈다. 이 풍경화들은 대부분 루벤스가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 그린 것으로, 생전에는 자신의 저택에 걸어 두었다. 그의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작품들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상당수 작품이 영국으로 건너갔으며, 토머스 게인즈버러(1727~1788)와 존 컨스터블(1776~1837) 같은 화가들에게 큰 찬사를 받았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개울을 건너는 수레(A Wagon fording a Stream, 1625~1640)>이다. 마부가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와 깊어 보이는 개울로 막 진입하는 생생하고 역동적인 순간을 담고 있다. 해질녘의 햇살과 짙은 숲 그늘이 대비를 이루며, 맑으면서도 극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루벤스의 풍경 스케치와 자연 묘사는 영국 풍경화의 거장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수레 한 대가 가파른 강둑을 따라 내려오고 있으며, 기수의 붉은 재킷이 눈길을 끈다. 이 유화 습작에서는 루벤스가 사용한 검은색 초크 드로잉의 흔적과 그림에 따뜻한 색조를 더하는 적갈색 종이의 바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화가는 녹색과 갈색으로 풍경의 기본 색조를 잡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도 부분적으로 표현했다. 이 습작은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에 소장된 대형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서 그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숲속 풍경 속 양치기와 양 떼(A Shepherd with his Flock in a Woody Landscape, 1615~1622)>이다. 높은 시선에서 바위투성이 언덕과 주변을 내려다보는 구도를 취하고 있다. 양치기와 그 곁에서 노니는 양 떼의 모습은 고전적이고 목가적인 전원생활의 평화로움을 전달하고 있다. 17세기 플랑드르 풍경화 전통에 루벤스의 풍부한 빛 효과와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정서를 잘 융합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실제 풍경을 정확하게 재현한 그림이라기보다 목가적인 환상에 가깝다. 루벤스는 자연을 관찰한 경험을 바탕으로 했지만, 풍성하고 아름다운 이 장면은 화실에서 구성했다. 강가에서는 양치기가 지팡이에 기대어 쉬고 있다. 까치들이 나무에서 날아오르고, 백조들은 반짝이는 물 위를 미끄러지듯 헤엄친다. 루벤스는 이 구도를 인근에 전시된 작품인 《물 마시는 곳(The Watering Place)》의 중앙 부분에도 다시 활용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물가에 있는 가축과 농부들(Peasants with Cattle by a Stream in a Woody Landscape, ‘The Watering Place’, 1615~1622)>이다. 숲속 개울가에 소들과 시골 농부, 가축들이 모여들어 물을 마시거나 휴식을 취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나무 숲 사이로 맑은 햇빛이 스며들어 물결과 풀밭, 동물의 등 능선을 밝게 비추고 있다.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동물들이 물가에서 풀을 뜯거나 물을 마시고 있으며, 젖 짜는 여인과 피리를 부는 양치기, 목동들이 이들을 돌보고 있다. 루벤스는 중앙 부분을 인근에 걸려 있는 《숲속 풍경 속 양 떼와 양치기(A Shepherd with his Flock in a Woody Landscape)》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처음에는 풀을 뜯는 양 떼를 중심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나, 제작 과정에서 나무 패널 조각들을 덧붙여 구도를 변경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아드리안 브라우버(Adriaen Brouwer)의 <선술집 풍경(Tavern Scene, 1635)>이다. 벽칠이 벗겨진 낡고 음산한 선술집 안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짧고 날카로운 붓터치와 비명, 고통, 취기 등으로 일그러진 얼굴 근육 하나하나까지 사실적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하층민의 도덕적 결함, 욕망, 고통 등 인간 본연의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감추지 않고 시각화했다.

다비트 테니르스 2세(1610~1690)와 마찬가지로, 아드리안 브라우어는 농민들의 떠들썩한 일상을 묘사한 장면을 전문적으로 그렸으며, 이러한 작품은 안트베르펜의 상류층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이 소란스러운 선술집 장면에서는 술 취한 남자가 여인에게 애정 공세를 펼치고, 여인은 이를 뿌리치려 한다. 주변 사람들은 이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고 있다. 브라우어의 뛰어난 회화 기법은 다른 화가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렘브란트(1606~1669)와 루벤스(1577~1640)도 그의 작품을 수집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플랑드르의 대표적인 풍속화가 소 다비트 테니르스(David Teniers the Younger)가 그린 <마을 주막 밖에서 론볼스를 즐기는 농민들(Peasants playing Bowls outside a Village Inn, 약 1660년)>이다. 마을 주막(선술집) 앞 마당에서 공을 굴려 표적에 가까이 붙이는 전통 게임인 ‘론볼스(Bowls)’를 즐기는 시골 마을 사람들의 활기찬 일상을 표현하고 있다.

테니르스가 그린 소박한 전원생활의 즐거움은 부유한 도시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이 작품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여관 밖에서 가볍게 볼링과 비슷한 공놀이를 즐기고 있다. 땅에 박아 놓은 막대기를 표적으로 삼아 공을 굴리는 놀이이다. 테니르스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언덕을 그려내며 분위기 있는 풍경을 만드는 데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다. 멀리 내리는 소나기는 몇 번의 붓질만으로 간결하게 표현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다비트 테니르스 2세(David Teniers the Younger)의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Christ Crowned with Thorns, 1641)>이다. 성서 속 로마 감옥의 모습이지만, 17세기 플랑드르의 선술집이나 경비초소와 유사하게 그려졌다. 풍속화적 요소가 종교적 주제와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있다. 고전적인 성서적 주제를 자신만의 친숙한 17세기 일상 공간 구조 안에 끌어들여 재해석한 작품이다.

그리스도는 가시 면류관을 쓰도록 강요당하며 모욕과 고문을 당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이 장면은 기독교 미술에서 자주 다루어진 주제이다. 테니르스는 병사들에게 당시의 현대적인 복장을 입혀 이 장면을 동시대의 배경 속에 연출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했다. 이 작품은 이례적으로 큰 구리판에 그려졌으며, 부유한 미술품 수집가를 위해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피터르 프란초이스(Pieter Franchoijs)가 그린것을 추정되는 <루카스 파이트헤르베의 초상화(?)(Portrait of Lucas Fayd’herbe(?), 1640~1650)>이다. 인물은 관람객보다 약간 높은 시선에 위치해 있어 우리는 그를 약간 올려다보게 된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인물의 얼굴과 흰 깃, 손이 빛을 받아 강조되는 전형적인 17세기 바로크 초상화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루벤스와 앙토니 반 다이크로 대표되는 17세기 플랑드르 초상화 전통의 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인상적인 초상화의 모델은 피터르 프란쇼이스의 사촌인 루카스 파이데르베(1617~1697)일 가능성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안트베르펜과 브뤼셀 사이에 위치한 고향 메헬렌에서 활동했다. 조각가이자 건축가였던 파이데르베는 루벤스의 마지막 제자 중 한 명이었다. 164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에서 모델이 입은 유행에 민감한 복장은 그가 예술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호기심 어린 시선과 역동적인 자세는 자신감과 활력을 드러낸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야코프 요르단스(Jacob Jordaens)가 그린 대형 부부 초상화인 <코르넬리스 판 디스트(?)와 그의 아내의 초상(Portrait of Cornelis van Diest (?) and his Wife, 1636–1638년)>이다. 부부는 당시 부와 신분의 상징이었던 가치 높은 검은색 비단 옷과 정교한 레이스 깃을 착용하고 있다. 뒤로는 그리스·로마 고대 건축 양식에서 인용한 기둥 구조물과 붉은 벨벳 커튼이 배치되어 배경에 고전적이고 격조 높은 분위기를 불어넣고 있다.

요르단스는 두 인물을 마치 연극 무대 위에 있는 것처럼 높은 단 위에 배치했다. 이들은 루크레티아 쿠르투아(1645년 사망)와 그녀의 남편이자 안트베르펜의 유력 인사였던 코르넬리스 판 디스트(1588년 이후~1663년)로 추정된다. 위엄 있는 자세와 군직을 상징하는 어깨띠, 검, 지휘봉은 권위와 지위를 드러낸다. 반면 웃는 얼굴 모양의 석상과 작은 개는 장면에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얀 리벤스(Jan Lievens)의 <자화상(Self Portrait, 1650s)>이다. 화가는 팔꿈치를 의자나 받침대에 얹고 관람객을 여유롭고 당당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상류층 신사들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지닌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빛이 인물의 얼굴과 실크 옷의 광택을 우아하게 비추며, 인물의 지적인 품격과 당당한 존재감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

리벤스의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자세와 풍성한 풍경 배경은 안토니 반 다이크가 유행시킨 우아하고 귀족적인 초상화 양식을 반영한다. 리벤스는 영국에 머무는 동안 반 다이크를 만났으며, 그를 위해 일했을 가능성도 있다. 반 다이크는 리벤스의 초상화도 그렸는데, 이 작품은 현재 소실되었지만 판화로 제작된 복제품을 통해 그 모습을 알 수 있다.(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코넬리우스 존슨(Cornelius Johnson)의 <숙녀의 초상화(Portrait of Lady, 1655)>이다. 얼굴에 떨어지는 부드러운 명암 대조와 직물, 레이스, 피부 톤의 정교한 질감 처리는 네덜란드 화풍과 존슨 특유의 세밀한 기법이 결합된 특징이다. 영국 궁정 초상화의 세련되고 품격 있는 분위기와 네덜란드 초상화 특유의 사실주의적 절제미가 완벽하게 결합된 사례이다.

코르넬리스 존슨은 활동 기간의 상당 부분을 런던에서 보냈지만, 이 신원 미상의 여성 초상화는 영국을 떠난 지 12년이 지난 뒤 네덜란드에서 그린 작품이다. 검은색 의상은 다른 존슨의 초상화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실제 모델이 소유한 옷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존슨이 모델의 얼굴은 실물을 보고 그렸지만, 의상은 화실에 비치된 옷을 참고해 그렸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대 야코프 반 오스트(Jacob van Oost the Elder)의 <11세 소년의 초상화(Portrait of a Boy aged 11, 1650)>이다. 소년은 어른스럽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소년의 얼굴과 흰 깃 장식에 빛이 집중된다. 과도한 화려함보다는 절제되고 차분한 톤을 써서 인물의 순수함과 섬세한 내면 상태를 부각시켰다.

브뤼헤의 화가 야코프 판 오스트는 섬세한 붓질과 미묘하게 조절된 색채로 옷감과 모피, 피부, 머리카락의 부드러운 질감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세심한 묘사는 이 소박한 초상화에 다정하고 따뜻한 매력을 더한다. 그는 그림 오른쪽 아래에 자신의 모노그램으로 서명했다. 위쪽의 라틴어 명문을 통해 초상화 속 인물이 11세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화가의 아들로, 아버지와 같은 야코프라는 이름을 지녔을 가능성이 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플랑드르 화파 화가가 그린 <남성의 초상화(Portrait of a Man, 1636)>이다. 당시 신흥 부유층 및 귀족 사회에서 크게 유행했던 정교한 레이스 깃과 소매 깃을 착용하고 있어 모델의 높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짐작할 수 있다. 루벤스와 반 다이크가 주도했던 1630년대 플랑드르 초상화의 세련되고 우아한 극적 연출 및 인물 묘사 기법이 잘 드러나 있다.

우아하게 차려입은 젊은 남성을 그린 이 초상화에는 제작 연도인 1636년과 모델의 정확한 나이인 27세 6개월이 기록되어 있다. 화가는 건축 배경을 그리기 위해 안트베르펜에 있는 루벤스의 유명한 저택에서 세부 요소를 가져왔다. 그림 오른쪽 아래의 부조에는 눈을 가린 큐피드, 즉 세속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존재를 신성한 사랑이 제압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이 초상화가 모델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아이자크 라티하이스(Isaack Luttichuys)의 <소녀의 초상화(Portrait of a Girl, 1650)>이다. 소녀는 부유함의 상징이었던 진주 팔찌를 차고 있으며, 손에는 리본이 달린 부채를 쥐고 있어 상류층 유소년의 기품을 드러내고 있다. 부유층 가문이 자녀의 건강함과 가문의 번영, 그리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시각적으로 기념하기 위해 주문 제작했던 고급 초상화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뤼티휘스는 런던에서 네덜란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화가로 활동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그의 우아한 초상화는 반 다이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세부 묘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뤼티휘스는 초상화 속 인물 각자의 개성을 포착해 냈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그는 수십 년 동안 암스테르담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를 누렸다. 뤼티휘스는 이 소녀의 남동생도 초상화로 그렸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바르톨로메우스 판 데르 헬스트(Bartholomeus van der Helst)의 <검은 새틴 옷을 입고 부채를 든 숙녀의 초상화(Portrait of a Lady in Black Satin with a Fan, 1644)>이다. 어두운 드레스 위로 대비되는 정교한 레이스 칼라와 소매 장식, 그리고 가슴에 달린 리본 장식은 당대 상류층 패션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다. 밝고 균일한 빛 연출을 통해 여인의 매끈한 피부 톤과 단정한 헤어스타일, 우아하고 절제된 표정이 기품 있게 살아나고 있다.

판 데르 헬스트는 1640년대 중반부터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성공적인 초상화가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플랑드르 회화의 영향을 받은 화풍과 옷감에 대한 세심한 묘사 덕분에 그는 단독 초상화와 단체 초상화를 다수 의뢰받았다. 이 작품은 초상화 속 여성 자체뿐 아니라 그녀가 입은 의상의 값비싼 소재와 화려함을 보여주는 데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하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플랑드르에 대한 또 다른 시각, 1600–1650년 플랑드르 회화
개신교가 지배하던 북부 네덜란드와의 전쟁으로 인해 안트베르펜으로 향하는 무역로가 막혔습니다. 이로 인해 스페인 지배하에 있던 남부 네덜란드, 즉 플랑드르는 17세기 전반기 동안 정치적·경제적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랑드르는 예술가들에게 비옥한 토양이 되어주었고, 예술 작품에 대한 수요 또한 매우 높았습니다. 이는 스페인 총독들의 궁정 문화와 함께 지역 및 해외 수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안트베르펜에 있던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화실은 다른 플랑드르 화가들의 양성소가 되었습니다. 루벤스의 영향을 받은 이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야코프 요르단스(Jacob Jordaens)로, 그는 이 거장이 세상을 떠난 후 안트베르펜을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요르단스의 작품들은 놀라울 정도로 가식이 없으며, 그 속의 인물들은 마치 연극 무대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다비트 테니르스(소 다비트 테니르스, David Teniers the Younger) 역시 루벤스와 함께 작업한 후 브뤼셀로 이동하여 궁정 화가가 되었습니다. 농민들의 삶을 그린 장면으로 가장 잘 알려진 테니르스는 소규모 종교화에 일상의 요소를 더함으로써 작품을 한층 더 친숙하게 만들었습니다. 플랑드르 초상화가 지닌 생동감과 우아함은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북쪽의 네덜란드 여러 주에서도 세련미에 대한 취향이 발전하면서, 플랑드르 특유의 고상한 감각이 반영된 초상화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출처>
- 현장안내문, The National Gallery, 2026년
- The National Gallery, London 공식 홈페이지 (https://www.nationalgallery.org.uk/), 2026.10.20. 검색
- ‘National Gallery’, wikipedia, 2027년
-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10.20 확인)
- OpenAI, <ChatGPT (GPT-5.3)>의 답변, 2026년 10월 20일 작성
- Anthropic. (2026). Claude Sonnet 5.5 [대규모 언어 모델]. https://claude.ai, 10월20일 확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