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선원전(보물)는 역대 국왕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로 정전인 인정전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선원전은 임진왜란을 경복궁 선원전이 불타버린 후 숙종대에 역대 국왕의 어진을 모시기 위해 창덕궁 궐내각사 뒷편에 세웠다. 원래는 태조, 세조, 원종을 모셨던 것을 후에 숙종.영조.정조.순조.익종.헌종, 철종, 고종의 어진이 봉안되면서 11실로 구성되었다. 건물은 앞면9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종묘 정전이나 일반적인 사당과 달리 판문을 사용하지 않고 분합문을 사용하고 있다. 건물 앞 양쪽에는 제사를 위한 시설로 진설청과 내찰당을 달아 내어놓고 있다. 또 선원전 동쪽에는 국왕에 제사를 올리기 전 하룻밤을 묵는 어재실인 양지당을 두고 있다. 건물들은 구조적으로 간결하고 장식을 거의 하지 않은 건물들이다.
<창덕궁 궐내각사 뒷편에 위치한 선원전(보물)>
선원전은 역대 국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신을 건물로 앞면 9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 앞쪽에 양쪽으로 진설청과 내찰당을 달아내어 놓고 있다.
<동궐도에 표현된 선원전 일원>
선원전은 정전인 인정전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어진을 모신 건물인 선원전을 중심으로 그 앞으로 달아낸 진설청, 내찰당, 건물 뒷편 제기를 보관하는 의풍각, 제사을 모시기 전날 국왕이 머무는 재실인 양지당, 역대 국왕의 어필 현판을 보관하던 억석루와 행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에서 본 모습>
선원전은 1695년(숙종21)에 처음 세워졌는데 원래는 태조, 세조, 원종을 모셨던 것을 후에 숙종.영조.정조.순조.익종.헌종, 철종, 고종의 어진이 봉안되면서 11실로 구성되었다. 위패를 모신 종묘 정전은 판문을 하고 있는 반면에 선원전은 초상화를 모셔서 그런지 일반 전각처럼 문살이 있는 분합문을 하고 있다.
<선원전 내부(고궁박물관 재현)>
마지막으로 어진을 모셨던 신선원전 제3실 원종실을 기준으로 고궁박물관에서 재현한 것이다.
<선원전에 모셔졌던 영조어진(복제)>
1900년 경운궁 선원전 화재로 소실된 어진을 대대적으로 모사할 때 제작한 것이다. 익선관을 쓰고 두 어깨에 오조룡을 금실로 수놓은 홍룡포를 착용한 반신상이다.
<진설청>
선원전 왼쪽편에 위치한 진설청이다. 제사때 제사상을 차리는 건물로 왕릉의 정자각과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어진들을 신선원전으로 옮기면서 없어진 건물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내찰당>
선원전 오른편에 위치한 내찰당이다. 앞면1칸, 옆면 2칸의 작은 건물로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이 건물도 최근에 복원하였다.
<동쪽편 화계>
<선원전 행각>
<선원전 마당>
중국 문묘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오래된 측백나무 고목이 심어져 있다. 제향을 올리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양지당>
양지당은 선원전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재실 건물로 왕이 제사 전날 머무르는 어재실이다. 양지당은 본채와 행각, 출입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지당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이 건물도 신선원전으로 어진이 옮겨지면서 없어졌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
<양지당 행각>
<바깥에서 본 모습>
중문도 겸하고 있는 행각으로 국왕이 제사준비를 위해 재실에 머물 때 수행원들이 머물던 공간으로 보인다.
<재실(齋室)>
이곳은 국왕이 선원전(璿源殿)에서 제사를 올릴때 머무는 재실(齋室)이다. 창덕궁 궐내각사 중에서 넓은 마당을 두고 있는 큰 건물이다. 건물은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 옆으로 6칸의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영조가 영의사(永依舍)라 짓고 현판을 달게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건물에 현판이 걸려 있지 않다.
<재실 툇마루>
앞면 5칸짜리 주건물은 가운데 3칸의 큰 대청마루와 양쪽의 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앞쪽에 툇마루를 두고 있다. 일반적인 재실에 비해서 규모가 큰 편이다. 폐쇄적인 홍문관과는 달리 개방된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내의원 뒷편에 넓은 마당과 같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비상시 환자들이 머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결된 건물>
대청과 방으로 이루어진 4칸 건물 옆에 다락방이 있는 건물이 바깥쪽에 달려 있는 형태이다.
<재실 앞 마당>
건물 앞 마당은 궁궐 건물 중에서는 상당히 넓은 편이다.
<작은 창고 건물>
건물 앞쪽에 판문으로 잠겨 있는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다.
<행각>
마당 앞쪽에는 앞면 5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작은 행각 건물이 있다. 방과 대청마루, 창고로 이루어진 건물로 실무관원들이 근무하던 공간으로 보인다.
<건물 뒷편 선원전으로 연결되는 출입문>
선원전 행각끝은 바깥쪽에 있는 2층건물인 억석루와 연결되어 있다.
<억석루>
<반대편에서 본 모습>
억석루는 담장과 출입문으로 선원전과 구분하고 있다. 억석루에는 역대 국왕이 적은 현판을 보관하는 장소로 한옥이지만 중국풍의 건물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행각에 2층 건물을 올려 놓은 형태이다. 어제 어필을 보관하던 기관인 규장각에 속한 건물로 여겨진다.(?) 규장각 서고와 금천을 사이에 두고 있다.
<억석루 내부>
억석루 1층은 출입문 역할을 하고 있다. 규장각 서고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선원전 뒷편 의풍각>
선원전 일원
선원전은 역대 왕들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태조 이하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의 어진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새 선원전을 후원 깊숙한 곳에 건립하여 제사 기능을 옮기면서 선원전은 빈 곳이 되었고, 부속건물들은 2005년에 복원했다. 9칸의 몸채 앞 좌우로 진설청과 내찰당을 덧붙였고 재실인 양지당을 앞쪽에 설치해 제사 의례에 사용했다. 선전원 영역 뒤편에 있는 의풍각은 일제강점기에 신축된 것으로 전하며, 제사용 그릇과 도구 등을 보관하는 창고였다. <출처:문화재청>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건물로 제기 등을 보관하는 창고이다
고종황제의 초상화 제작을 기록한 의궤
고종황제 즉위 40년을 경축하기 위해 고종황제와 황태자 순종의 어진을 그리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의궤
1901년 경운궁(현 덕수궁) 선원전을 건립하고 일곱임금의 어진을 모사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술 그릇, 은제 수저를 담는 그릇, 은제 도금 주전자, 은제 향합, 은제 잔과 팔각받침
조선시대 역대 국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을 진전이라고 한다. 종묘가 국왕의 신주를 모신 공식적인 제사시설이라면 진전은 기념관의 의미가 강한 시설로 볼 수 있다. 종묘는 궁궐 동쪽에 두고 어진을 모신 선원전은 궁궐 정전 서쪽편에 두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의 어진은 궁궐안, 한양도성안, 국왕의 탄생지 등 여러곳에 모셨는데, 특히 태조의 어진은 함경도 영흥, 경주, 전주 등에 봉안되었다. 조선초 선원전은 경복궁에 지었는데,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리고 숙종대에 창덕궁에 선원전을 새로 지었다. 이후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태화전을 짓고,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덕수궁에 선원전을 새로 건립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선원전을 통합하여 창덕궁 뒷편에 신선원전을 짓고 어진을 옮겼다고 한다. 선원전에 모셨던 어진은 한국전쟁 당시 화재로 소실되면서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경복궁 태원전>
경복궁 제일 뒷편에 위치한 태조 어진을 모셨던 태원전이다. 구한말 경복궁을 중건할 때 국왕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태원전을 지었는데, 실제로는 국장이 있을때 빈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다. 창덕궁 편전인 선정전과 비슷한 구조이다.
<전주 경기전>
역대 국왕의 어진을 모신 곳 중 가장 잘 알려진 전주 경기전이다. 경기전 정전은 조선 왕조를 개국시킨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건물이다. 1410년에 창건된 경기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광해군때인 1614년에 중건했다고 한다.
<경기전에 모셔진 태조어진(복제)>
어진을 보관하는 전각, 진전
국왕의 초상화인 어진은 진전이라는 특별한 전각에 모셔졌다. 종묘가 돌아가신 국왕의 신주를 모신 곳이라면, 진전은 국왕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조선왕조는 궁궐 안에, 한양 도성 안에, 그리고 국왕의 탄생지 등 연고가 있는 지역에 진전을 건립하였다. 특히 태조의 어진은 함경도 영흥(탄생지)의 준원전, 경상도 경주의 집경전, 전라도 전주의 경기전 등에 봉안되어 특별한 추앙을 받았다. 가장 대표적인 진전은 궁궐 안의 선원전이다. 선원전은 ‘동쪽에는 신주를 모시고 서쪽에는 영정을 모신다’는 『주례』에 입각하여 정전의 서쪽에 자리하였다. 조선 초 세종대에 경복궁에 선원전을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자, 숙종대에 창덕궁에 선원전을 지었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 고종은 경운궁(현 덕수궁)에 선원전을 건립하고 외방의 진전을 고쳐 지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국가 제사가 축소되고 1921년 창덕궁의 현재 위치에 선원전이 건립되면서 다른 진전은 모두 통폐합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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