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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 존덕정과 폄우사

창덕궁 후원 3번째 공간은 한반도 모양을 하고 있는 연못인 반도지(半島池)를 중심으로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영화당과 규장각 주합루가 있는 부용정 부근이 공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연못 주위에 작은 정자들이 있는 반도지 일대는 국왕 개인을 위한 사적인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반도지는 원래 둥근 연못 1곳과 작은 네모꼴 연못 2개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반도지 일대는 후원 중에서도 비교적 늦은 시기에 조성된 공간으로 가장 오래된 건물이 17세기에 조성된 존덕정이다. 존덕정에는 정조가 지은 글을 새긴 현판이 걸려 있으며, 그 옆에는 폄우사가 자리하고 있다. 연못가에 자리잡은 관람정과 승재성은 작은 정자이지만 장식성이 강하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데,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동궐 후원 반도지(半島池) 주변>

이곳은 공식적인 연회나 행사를 위한 공간은 없고 국왕이 개인적으로 사색을 즐기기나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반도지로 들어가는 길>

<반도지(半島池)>

반도지는 곡선형으로 만든 연못으로 한반도처럼 생겼다고 해서 반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는 네모꼴 연못 2개와 둥근 연못 1개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모양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옥류천으로 연결되는 길>

<승재정(勝在亭)>

 반도지 남쪽 언덕위에 세워진 정자로 화강석 기단 위에 1칸짜리 건물을 올려 놓고 있다. 창덕궁 후원 정자 중에서는 비교적 늦은 시기인 구한말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경복궁 향원정과 비슷한 분위기를 주고 있는 구한말 양식의 건물이다.

<정자가 세워진 언덕>

승재정(勝在亭)
승재정은 관람정의 건너편 연지(蓮池)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정자로 우거진 숲 사이에 있다. 장대석으로 쌓은 4각형의 기단 위에 사방 1칸씩으로 된 건물로 둥근 기둥을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사모 지붕이며 지붕 정상에 절병통을 놓았다. <출처:문화재청>

<존덕정(尊德亭)>

반월지라는 작은 연못과 반도지 사이에 있는 존덕정. 이곳에 있는 4개의 정자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644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정자에는 정조가 쓴 글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다. 작은 연못에 발을 걸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수로>

존덕정 뒷편으로 반월지라는 작은 연못이 있고, 수로를 통해 반월지에서 반도지로 물이 흐른다.

<수로를 건너는 아치형 돌다리>

<좁은 수로와 배수시설인 석누조>

<존덕정으로 들어가는 돌다리>

<돌다리 앞에 세워져 있는 연잎모양을 하고 있는 석물>

존덕정(尊德亭)
반월지 남쪽에 이중 지붕을 한 육각형 정자가 눈길을 끄는데 존덕정이다. 인조 22년(1644)에 세워져 처음에는 ‘육면정(六面亭)’이라 했다가 나중에 이름을 고쳤다. 반월지(反月池)란 이름으로 보면 반달 모양의 연못이어야 하는데 한 눈에 보아도 그렇지 않다. ‘동궐도(東闕圖)’에는 존덕정 북쪽에 네모난 연못과 반달 모양의 연못이 묘사되어 있다. <출처:문화재청>

존덕정과 정조의 교시
존덕정 안 북쪽 벽에는 ‘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제목으로 빽빽하게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정조가 집권 말기인 1798년에 직접 지은 글이다. “세상의 모든 시내는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니, 그 달은 곧 임금인 나이고 시내는 곧 너희 신하들이다. 따라서 시내가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치”라는 강력한 내용이다. 평생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했던 정조의 준엄한 꾸짖음을 듣는 듯하다. 천장 중앙에는 쌍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역시 왕권의 지엄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폄우사(砭愚榭)>

 존덕정 안쪽에 있는 작은 정자인 폄우사이다. ‘폄우(砭愚)’란 ‘어리석음을 고치다’라는 뜻이다. 폄우사는 1827년에 그려진 <동궐도>에는 ‘ㄱ’자로 그려져 있으나 지금은 날개채는 없고 앞면 3칸 규모의 ‘-‘자형 건물이 남아 있다.

폄우사(砭愚榭)
존덕정 서쪽에는 폄우사가 있다. ‘폄우’란 이름은 원래 송나라 학자 장재의 좌우명에서 따온 것이다. 장재는 서재 양쪽에 ‘어리석음을 고친다’라는 뜻의 ‘폄우’와 ‘아둔함을 고친다’라는 뜻의 ‘정완(訂頑)’을 붙여 놓고 좌우명으로 삼았다. <동궐도>를 보면 원래 폄우사는 ‘ㄱ’자 모양이었으나, 현재는 동향을 했던 부분은 없어지고 ‘ㅡ’자 모양의 집만 남아 있다. <출처:문화재청>

<관람정(觀纜亭)>

 반도지 연못에 발을 걸치고 있는 작은 정자인 관람정이다. 19세기에 제작된 동궐도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구한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으며, 장식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는 정자로 구한말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관람정(觀纜亭)
반도지(半島池)라 불리는 연못가에 있는 이 정자는 그 평면이 합죽선(合竹扇)을 편 듯한 모양으로 되어 마루틀이나 지붕틀에서도 평면형태에 따라 곡재를 사용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태의 건물이다.현재까지 남아있는 정자 중에 하나밖에 없는 부채골 정자인 관람정은 6개의 초석 위에 가늘고 긴 두리기둥을 세워 굴도리를 결구하였다. <출처:문화재청>

<가을 반도지 주변>

<반도지 주변 단풍>

존덕정과 폄우사
이 부근은 후원 안에서 가장 늦게 지금의 모습을 갖춘 곳이다. 연지는 원래 두 네모꼴과 둥근 한 개의 연못으로 나누어졋다가 일제강점기에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다. 주변에 육각 겹지붕 정자인 존덕정, 부채꼴모양의 관람정, 길쭉한 맞배지붕을 가진 폄우사 등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이 세워졌다. 관람정 맞은 편 언덕에는 단칸의 사모지붕을 가진 승재정이 날아갈 듯 앉아 있다. 1644년 건립된 존덕정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관람정과 승재정은 1830년대 이후에 세워졌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