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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박물관 선사고대문화실] 마한과 한성백제기 충남지역

삼한(三韓)은 서쪽 마한에 54국, 동쪽 진한에 12국, 동남쪽 변한에 12국이 연맹체를 이루고 있었다고 중국 역사서에 남아 있다. 그 중 마한(馬韓)은 호서, 호남 지방에 존재한 연맹체로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 중반까지 존재하였다. 마한은 54개의 작은 성읍국가들의 연맹체로 그 중 천안지방에 근거를 둔 목지국이 중심이 되었다.  지금도 교통의 중심지인 천안삼거리 인근에 위치한 천안 청당동에서는 무덤도랑을 지닌 묘제, 동물형상의 허리띠고리, 한반도를 대표하는 무기인 고리자루칼을 비롯한 철제무기, 공구 등이 출토되었다. 마한의 집터들은 에서는 발전된 토기 제작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들과 유리구슬을 제작했던 거푸집 등이 출토되어 촌락에서 다양한 생산 활동을 했음을 보여준다.

마한지역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무덤주인의 권위를 나타내는 칼을 비롯한 무기류, 생활용품에 해당하는 각종 토기들이 부장품으로 묻혔다. 중국과의 교류가 많았던 지역답게 중국의 영향을 받은 토기 제작기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마한의 무덤
기원 전후부터 300년경까지는 백제.신라.고구려가 소국을 통합해가던 시기이다. 그러나 충남지역에는 독자적인 마한(3~4세기)의 문화가 유지되고 있었다. 마한에서는 시신을 묻을 때 나무널과 나무덧널을 이용하였다. 무덤 주위에 ‘ㄷ’ 또는 ‘ㅁ’자 모양의 도량을 돌린 주구묘를 만들었다. 이러한 무덤 형태는 충청도의 내륙과 중서부지역에 주로 분포하였지만, 최근에는 경기도 남부와 전남지역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무덤에는 각종 철기와 함께 둥근바닥 항아리.깊은바리.두귀단지.겹입단지.새모양토기.톱니무늬 토기 등 지역색이 강하게 나타나는 특징적인 토기가 주로 껴묻혔다. 이 시기에는 철기의 제작이 보편화되고, 중국 전국계와 낙랑의 새로운 토기제작기술이 도입되었다. 모양을 만들기 위한 물레와 토기의 겉면을 다듬기 위한 두드림법이 사용되었으며, 소성온도를 높일 수 있는 밀폐된 가마의 도입으로 단단한 회색계열의 토기가 만들어졌다. <출처:공주박물관>

표주박모양 토기, 공주 하봉리, 마한

네귀달린 단지, 공주 남산리 출토, 마한

겹아가리단지, 두귀달린 단지, 공주 남산리 출토, 마한

손잡이잔, 천안 두정동, 마한

둥근바닥항아리, 공주 하봉리, 마한

바리, 연기 용호리, 마한

고사리모양장식검(연기 용호리), 둥근고리 자루칼(연기 응암리), 마한.

한반도지역 고유의 고리자루칼이다. 장식이 거의 없는 초기 고리자루칼로 보인다.

쇠도끼(공주 남산리. 천안 용원리. 공주 분강.저석리), 쇠투겁창(천안 용원리, 공주 분강.저석리), 둥근고리자루칼(천안 청당동), 마한

덩이쇠, 공주 남산리.대전 구성동, 마한

쇠낫, 천안 용원리, 마한

마한의 집터,
마한의 집터들은 구릉지대에 위치하며, 방형의 집터 안쪽 네 모서리에 각각 1개씩의 기둥을 세운 형태이다. 한성백제 지역에서 확인되는 ‘凸’ 또는 ‘呂’자형 집터와는 다른 또렷한 지역적 특징을 보여준다. 집터에서는 계란모양토기.시루.깊은바리 등 취사와 관련된 일상생활용기를 비롯하여 사발 등의 식기와 아궁이테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마한문화를 대표하는 두드림무늬토기는 정선된 점토띠로 그릇모양을 만들고, 그릇 안쪽에 받치모루를 대고 토기 겉면을 두드리며 단단하게 한 뒤, 물레로 형태를 다듬과 바닥을 마무리한 토기이다. 이러한 작업과정은 바탕흙이 굳기 전에 진행해아 하므로 숙련된 동작이 필수적이다. 그릇의 표준화에 따른 대량생산, 밀폐된 가마로 높은 온도에서 단단하게 구워져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된 점 등은 토기 제작기술이 이전보다 훨씬 발전된 결과라고 할 수있다. 또한 집터에서 출토된 유리구슬 제작과 관련된 거푸집은 집터 안에서 다양한 생산활동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받침모루, 아산 갈매리, 마한

목걸이, 천안 용원리.연기 응암리, 마한

유리구슬 거푸집, 아산 갈매리, 연기 응암리

거푸집은 광물을 녹여 만든 금속이나 유리 등의 액체를 제품으로 만들기 위한 모형이나 틀이다. 유리는 석영.탄산소다.석회암 등을 섞어 높은 온도에서 녹인 후 급히 얼리면 생기는 투명한 물질이다. 유리구슬을 만드는 방법은 유리를 가열하여 말랑해지면 막대에 감아 대롱모양으로 만든 다음 기위로 자르거나, 거푸집으로 작은 구슬을 한꺼번에 만드는 방법 등이 있다. 전시품은 둥근 유리구슬을 만드는 거푸집이다. 갈색 연질의 네모난 점토판에 벌집처럼 구멍을 뚫고, 구멍 가운데에 작은 구멍을 뚫어 구슬의 구멍이 생기도록 철심 혹은 나무침을 세운 후 유리액체를 부어 구슬을 만들었다. <출처:공주박물관>

얼굴무늬 손잡이, 천안 두정동, 마한

귀때토기, 대전 구성동, 마한바리(아산 갈매리), 깊은 바리(공주 장원리), 마한

시루, 대전 송촌동, 마한


계란모양토기, 공주 장선리, 마한

아궁이틀 편, 아산 갈매리, 마한

아궁이는 방고래에 불을 넣거나 솥이나 가마에 불을 지피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틀은 아궁이의 앞부분을 장식하는 것으로, 마한.백제지역에서는 대부분 흙으로 만들어졌다. 모양은 ‘∩’자 모양의 점토판에 돋을띠로 표현된 무늬가 있다. 백제에서는 서울 풍납토성이나 부여 군수리 등 도성의 집터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어 상당한 위상을 갖는 집단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문헌에 남아 있지 않은 백제에서의 취사(炊事)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서산 부장리 고분군(사적)>

충남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무덤 서산 부장리고분군(사적)이다. 2000년 이후 이곳에 임대아파트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유적으로 청동기시대에서 백제시대에 이르기까지 무덤, 주거지 증 다양한 유적이 발굴되었다. 무덤은 토광묘에서 목관묘까지 다양하다.

서산 부장리 고분 출토 유물.

서산 부장리고분군에서는 백제의 지방세력을 대표하는 형태의 다양한 유물들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특히 5호분에는 공주지역에서 볼수 있는 금동관모, 철제초두, 각종구슬을 비롯하여 환두대도, 철검, 도끼, 각종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한성백제기 지방의 유력한 세력으로서 마한의 전통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둥근바닥항아리, 서산 부장리, 백제.

상당히 큰 규모의 항아리이다. 중국과 교류가 많았던 이 지역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병모양토기, 짧은목단지, 곧은입단지, 서산 부장리, 백제

세발토기, 흑색마연토기, 서산 부장리, 백제


반부달린투겁창, 쇠투겁창과 창고달, 쇠투겁창, 서산 부장리, 백제

쇠낫, 삼칼, 서산 부장리, 백제

끌, 손칼, 서산 부장리, 백제


칼, 손칼, 쇠도끼, 서산 부장리, 백제

쇠도끼, 서산 부장리, 백제

세잎장식둥근고리자루큰칼, 두잎장식둥근고리자루큰칼, 백제.

장식이 들어간 고리자루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쇠자루솥, 서산 부장리, 백제.

두(鐎斗)라고 불리는 액체를 데우는데 사용하는 용기이다. 청동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곳에서 출토된 것은 철로 만든 것이다. 왕릉이나 지배층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는 유물로 상류층에서만 사용하는 것이다.

유리구슬, 유리곱은옥, 박유리구슬, 서산 부장리, 백제

금동귀걸이, 서산 부장리, 백제

흑옥달린귀걸이, 서산 부장리, 백제

유리 대롱옥, 서산 부장리, 백제

서상 부장리 고분군
한성백제(기원전18년~475년) 시기인 4~5세기 충남지역은 여전히 마한의 문화가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 해안교통로의 거점이자 철과 소금의 주요 생산지였던 태안반도의 맹주는 어느지역이었을까? 2004~2005년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 고분군 발굴조사에서는 마한의 전형적인 ‘ㅁ’자형 도랑이 돌려진 분구묘 13기가 확인되었는데, 한변의 길이가 20~40m에 이르는 것도 있다. 무덤 안에서는 금동관모와 신발, 자루솥, 고리자루큰칼, 중국제 자기편, 흑색마연토기 등으로 대표되는 위세품과 함께 짧은목단지, 넓은입항아리 등의 백제토기류, 큰칼.창.도끼.손칼 등의 철기류, 금동귀걸이.곱은옥.구슬 등의 장신구류가 다량 출토되었다.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는 마한의 전통묘제인 ‘ㅁ’자형 도랑이 돌려진 분구묘와 함께 한성백제에서 하사한 최고 수준의 위세품이 출토된 것이다. 이로 보아 당시 이 지역의 지배세력은 한성백제에 철과 소금을 공물로 바친 대가로 태안반도의 맹주로 부상할 수 있었으며, 한성백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산에 대해서는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朝)에 마한 54소국 가운데 치리국국(致利鞠國)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으며, 부장리 고분군은 2006년 사적 제475호로 지정되어 사적공원으로 정비되어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금동관편, 천안 용원리, 백제

관이나 관장식은 머리에 쓰는 장식품인 동시에 의관제의 중요한 품목으로 정권의 질서체계를 상징한다. 백제의 금동관은 역U자 형태로 관 윗부분에 대롱모양의 장식이 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이 금동고나편은 천안 용원리 9호 석곽묘에서 출토된 것으로, 백제 중앙으로부터 사여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공주박물관>

<출처>
1. 국립공주박물관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중앙박물관